일반 강좌

주역과 노자 70장 ~ 81장 후기

작성자
박규창
작성일
2017-08-01 18:46
조회
175
드디어 81장을 다 읽었네요. 대부분 그런가보다~하고 지나갔는데 중간중간 잠깐 생각하게 만드는(멍 때리는 것에 더 가까운 것 같기도 하고....?) 장들이 몇 개 있었습니다. 아직 텍스트를 읽는 게 잘 모르겠지만 구절 하나가 삶하고 연결될 때가 텍스트를 읽는 재미인 것 같습니다. 물론 그런 장은 5개가 안 넘지만요. 하하하

 

70.

吾言甚易知, 甚易行 ; 天下莫能知, 莫能行. 言有宗, 事有君. 夫唯無知, 是以不我知. 知我者希, 則我者貴, 是以聖人被褐懷玉.

 

나의 말은 매우 알기 쉽고, 행하기도 쉽지만, 천하 사람들은 알려고 하지도 않고 행하지도 않는다. 내가 하는 말에는 만물을 움직이는 도()가 있고, 내가 하는 일에는 모든 일의 주재자인 도()가 있다. 이를 모르기 때문에, 그래서 나를 모른다. 나를 아는 자는 드무니, 내가 귀해졌고, 그러므로 성인은 베옷을 입고 옥을 품는다.

 

言有宗, 事有君(언유종, 사유군)의 주어는 도(道)를 깨달은 성인입니다. 주석을 참고하면, 종(宗)은 만물의 주재자고, 군(君)은 만사의 주재자입니다. 우쌤은 종(宗)과 군(君) 둘 다 도(道)를 표현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知我者希, 則我者貴(지아자희, 즉or칙아자귀) 이 부분은 則 이 글자를 “즉” 혹은 “칙”으로 읽는가에 따라 해석이 달라집니다. 우선 “즉”으로 읽으면, “나를 아는 자는 드문즉, 나는 귀해진다.”가 되고, “칙”으로 읽으면, “나를 아는 자는 드무니, 나를 본받는 자는 귀하다.”가 됩니다.

피갈회옥(被褐懷玉)은 ‘베옷을 입고 옥을 품는다.’는 뜻입니다. 갈(褐)은 헐렁한 모포, 털옷, 베옷 등의 뜻으로 평민들이 입는 싸구려 옷을 말합니다. 옥(玉)은 전통적으로 중국에서 매우 귀한 보물입니다. 여기서 옥(玉)이 의미하는 것은 귀한 이치, 도(道)를 말합니다.

이 장을 보면 <노자>와 <논어>, <장자>의 차이를 알 수 있습니다. 우선 <논어>는 ‘천하를 안정시킬 수 있는 나의 능력을 사람들이 몰라준다.’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논어>의 이러한 시선에 입각해서 노자의 이 구절도 해석하는데, 우쌤은 똑같은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노자>는 ‘알기도 쉽고 행하기도 쉬운 나의 말을 사람들이 몰라준다.’입니다. 여기에는 <논어>에서 볼 수 없는 냉소, 허무, 오만 같은 것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장자>는 이 둘과 확연히 다릅니다. 우쌤은 아마도 장자는 자신을 알아주지 않기를 바랐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71.

知不知, ; 不知知, . 夫唯病病, 是以不病. 聖人不病, 以其病病, 是以不病.

 

알지 못하는 것을 아는 것이 좋은 것이고, 알아야 할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 병이다. 오직 병을 병으로 여기기 때문에, 그 때문에 병이 아니다. 성인은 문제점이 없는데, 병을 병으로 여기기 때문이니, 그래서 문제가 없는 것이다.

 

지부지, 상, 부지지, 병(知不知, 上 ; 不知知, 病.) 이 구절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먼저 본문 그대로 따라가면, 지부지(知不知)에서 부지(不知)는 ‘알 수 없는 이치’, 도(道)를 뜻합니다. 부지지(不知知)는 ‘알아야 할 것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해석은 63장처럼 동사 뒤에 말 이을 이(而)를 붙이는 것입니다. 그러면 “알지만 안다고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고, 모르지만 안다고 하는 것이 병이다.(知而不知, 上 ; 不知而知, 病.)”가 됩니다. 백서본 같은 경우에는 부지지(不知知)가 부지부지(不知不知)로 돼있습니다. 이것을 참고하면, “알지 못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 병이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처음 해석했던 부지지(不知知)의 지(知)는 안다고 얘기할 수는 없지만 하늘이 어떤 이치에 의해서 움직이는지, 도(道)가 있음을 아는 것이 지(知)입니다. 그렇다면 부지지(不知知)의 지(知)는 백서본의 부지(不知)로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병병(病病)은 “병을 병으로 여기다”, 좀 더 의역하면 “문제점을 파악하다”라는 뜻입니다.

부유(夫唯)와 시이(是以)는 노자에 자주 나오는 표현법입니다. 한글로 직역하면 껄끄러운데 한문에서는 매끄럽게 연결하는 표현법인 것 같습니다.

우쌤은 이기병병, 시이불병(以其病病, 是以不病) 이 부분은 꼭 없어도 될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왠지 부연설명인 것 같아서 어쩌면 이 구절도 주석이 섞인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72.

民不畏威, 則大威至. 無押其所居, 無厭其所生. 夫唯不厭, 是以不厭. 是以聖人自知, 不自見 ; 自愛, 不自貴. 故去彼取此.

 

백성들이 권위를 두려워하지 않으면, 크게 두려워 할 일에 이르게 된다. 백성들이 머무는 곳에 가까이 가지 말고, 백성들의 생활하는 곳을 괴롭히지 않는다. 군주가 백성들의 삶을 괴롭히지 않으니 백성들이 군주를 싫어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인은 스스로 세상을 이치를 알아도 스스로 드러내지 않으며, 스스로 아끼지만 귀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따라서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한다.

 

72장과 74장, 75장은 정치를 얘기하는 장으로 표현이 비슷해서 연결이 쉽게 됩니다.

우쌤은 72장의 표제어로 민불외위, 즉대위지(民不畏威, 則大威至)를 꼽으셨습니다.

무압기소거(無押其所居)는 “민가를 가까이 하지 말아라”라는 뜻입니다. 무(無)는 “~하지마라”라는 뜻이고, 압(押)은 “가까이 하다”라는 뜻인데, 백성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감독하고 압박하는 것을 뜻합니다. 기(其)가 가리키는 것은 “백성”입니다.

72장에서 厭 이 글자는 두 가지 의미로 읽힙니다. 하나는 ‘싫어하다’라는 의미에서 “염”으로 읽고, 다른 하나는 ‘괴롭히다’, ‘누르다’라는 의미에서 “엽”으로 읽습니다. 무엽기소생(無厭其所生) 이 구절은 “백성들의 생활하는 곳을 괴롭히지 않는다.”가 됩니다. 다음에 나오는 부유불염, 시이불염(夫唯不厭, 是以不厭.) 이 구절은 “군주가 백성들을 괴롭히지 않으니 백성들이 군주를 싫어하지 않는다.”가 됩니다.

자애, 부자귀(自知, 不自見 ; 自愛, 不自貴)는 성인은 만물을 사랑하고, 만물 안에는 자신도 있기 때문에 자신을 유별나게 대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우쌤은 군주의 존재감은 백성들의 생활을 괴롭힐 때 가장 크게 느껴지고 그럴 때 백성들은 군주를 싫어하고 난을 일으킨다고 하셨습니다.

 

73.

勇於敢則殺, 勇於不敢則活. 此兩者, 或利或害. 天之所惡, 孰知其故? 是以聖人猶難之. 天之道, 不爭而善勝, 不言而善應, 不召而自來, 繟然而善謀. 天網恢恢, 疏而不失.

 

무릅쓰는 것에 용감하면 죽고, 무릅쓰지 않는 것에 용감하면 살게 된다. 이 둘 다 어떤 것은 이롭고, 어떤 것은 해롭다. 하늘이 싫어하는 바 것, 누가 그 까닭을 알겠는가? 그래서 성인은 오히려 그것을 어려워한다. [그렇지만 이건 얘기할 수 있다.] 하늘의 도()는 다투지 않아도 잘 굴러가고, 말하지 않아도 잘 응하고, 부르지 않아도 스스로 오니, 느슨한 듯하지만 잘 작용한다. 하늘의 그물은 넓고 넓어서, 그물코가 성기지만 놓치지 않는다.

 

감(敢)은 ‘감행하다’, ‘무릅쓰다’라는 의미로 사용됐습니다.

용어불감즉활(勇於不敢則活) 이 구절에 대해 왕필은 “반드시 타고난 명을 이룬다.”라고 했습니다. 우쌤은 주석에 나오는 제(齊)가 ‘이루다’라는 의미에서 제(濟)로 봐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천지소오, 숙지기고(天之所惡, 孰知其故?) 이 구절에서 고(故)는 ‘까닭’, ‘연유’라는 의미로 사용됐습니다.

시이성인유난지(是以聖人猶難之) 이 구절은 도(道)를 깨우친 성인이라도 하늘의 뜻을 알기 어렵다는 것을 말합니다. 만물이 어떤 법칙에 의해서 그렇게 생성되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인간의 관점에서는 만물이 생성되는 것이 ‘우연히’ 기가 맞아서 생겨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인도 하늘의 뜻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것을 행하는 데 있어서 과감하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시이성인유난지(是以聖人猶難之)와 천지도(天之道) 사이에는 “그렇지만 이건 얘기할 수 있다.”를 넣으면 좀 더 매끄럽게 연결됩니다.

천연(繟然)은 ‘천이 느슨하게 늘어진 모습’입니다. 하늘의 도(道)는 느슨한 것 같으면서도 잘 작용한다는 것이죠.

우쌤은 하늘의 도(道)부터 ‘천연’한 모습까지 이 구절을 두 가지로 볼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는 다투지 않고, 말하지 않고, 부르지 않아서 느슨하면서도 잘 작용하는 것인지, 아니면 다투지 않고, 말하지 않고, 부르지 않고, 느슨하면서도 잘 작용하는 것인지에 따라 구절을 다르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진고응은 ‘부쟁’부터 ‘천연’까지 4개의 구절을 병렬로 파악했습니다.

천망회회, 소이불실(天網恢恢, 疏而不失) 이 구절은 도(道)를 매우 시적으로 표현한 구절입니다. 회(恢)는 ‘넓다’라는 뜻입니다. 하늘의 그물은 매우 넓어서 모든 것을 포함한다는 것입니다.

 

74.

民不畏死, 奈何以死懼之? 若使民常畏死而爲奇者, 吾得執而殺之, 孰敢, 常有司殺者殺, 夫代司殺者殺, 是謂代大匠斲, 夫代大匠斲者, 希有不傷其手矣.

 

백성들이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어찌 죽음으로써 두려워하게 하겠는가? 만약에 백성이 항상 죽음을 두려워하게 하고, 기이한 짓을 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잡아다 그를 죽이겠으니, 누가 감히 그러하겠는가? 죽이는 일을 담당하는 사람은 항상 있으니, 죽이는 일을 담당하는 사람을 대신해서 죽이는 것이니, 이를 일러 도목수를 대신하여 나무를 깎는 것이라고 한다. 도목수를 대신하여 나무를 깎는 사람치고 그 손을 다치지 않는 것은 드물다.

 

72장에서 “백성들이 군주의 권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라고 말한 구절의 다른 버전입니다.

사(死)는 여기서 ‘죽이는 방법’이란 의미로 사용됐습니다. 비슷한 뜻을 <논어>에서는 살(殺)로 표현한다고 합니다.

약(若)과 사(使) 둘 다 ‘가령’, ‘만약’이란 의미를 가진 글자입니다.

기(奇)는 ‘기이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주석을 참고하면, 기이하고 괴이함으로 백성들을 어지럽히는 것을 기(奇)라고 합니다.

오(吾)는 자연의 도(道)를 터득한 성인을 말합니다.

상유사살자살(常有司殺者殺) 이 구절에서 항상 죽이는 일을 담당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만물은 도(道)에 운동에 의해 소멸하게 된다는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대장착(大匠斲)은 나무를 깎는 장인 중 우두머리를 말합니다. 근데 앞과 연결해서 생각하면 만물을 생성하는 도(道)를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75.

民之饑, 以其上食稅之多, 是以饑. 民之難治, 以其上之有爲, 是以難治. 民之輕死, 以其[]求生之厚, 是以輕死. 夫唯無以生爲者, 是賢於貴生.

 

백성이 굶주리는 것은 윗사람들이 세금을 너무 많이 걷기 때문이니, 그래서 굶주리는 것이다. 백성들을 다스리기 어려운 것은 윗사람들이 의도를 가지고 일을 하기 때문이니, 그래서 백성들을 다스리기 어려운 것이다. 백성들이 죽음을 가볍게 여기는 것은 [윗사람들이] 잘먹고 잘 사는 걸 추구하는 것이 지나치기 때문이니, 그래서 죽음을 가볍게 여기는 것이다. 오직 지나치게 호화롭게 살려고 하지 않는 것이 삶을 귀히 여기는 것보다 현명한 것이다.

 

기(饑)는 ‘굶주리다’라는 뜻입니다.

식세(食稅)는 세금을 걷는 것입니다.

경사(輕死)는 죽음을 가볍게 여기는 것으로 74장의 불외사(不畏死)를 다르게 표현한 것입니다.

이기[상]구생지후(以其[上]求生之厚) 이 구절에 원래 상(上)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앞에 맥락을 살펴봤을 때 계속 윗사람들의 잘못이 백성들의 삶을 위협한 것이니 여기도 상(上)이 들어가야 한다고 해서 넣은 것입니다. 생지후(生之厚)는 50장의 생생지후(生生之厚)와 의미가 비슷합니다. 둘 다 잘 먹고 잘 살려고 하는 욕망을 말합니다.

귀생=익생 현:이기다 / 왕필, 귀생보다 좋은 것이다.

부유무이생위자, 시현어귀생(夫唯無以生爲者, 是賢於貴生) 이 구절은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먼저 왕필의 해석으로 보면, 생(生)은 자신의 삶에 재물이나 수명을 더한다는 의미에서 익생(益生)입니다. “지나치게 생을 추구하지 않기 때문에, 이것이 삶을 귀히 여기는 것보다 현명한 것이다.”가 됩니다. 반면에 진고응은 왕필과 다르게 해석했는데, 현(賢)을 ‘이기다’, 귀생(貴生)을 익생(益生)의 의미로 봤습니다. 그래서 “지나치게 생을 추구하지 않는 사람이 삶을 더하려는 사람을 이긴다.”가 됩니다.

 

76.

人之生也柔弱, 其死也堅强. 萬物草木之生也柔脆, 其死也枯槁. 故堅强者, 死之徒 ; 柔弱者, 生之徒. 是以兵强則不勝, 木强則兵. 强大處下, 柔弱處上.

 

사람의 생은 부드럽고, 죽음은 딱딱하다. 만물초목은 살아서는 부드럽고 무르며, 죽어서는 딱딱하고 건조하다. 그러므로 딱딱하고 강한 것은 죽은 무리이고, 부드럽고 약한 것은 산 무리이다. 그래서 군대가 강하면 [오만해서] 이기지 못하고, 나무가 크게 자라면 베어진다. [나무뿌리나 밑동과 같이] 강하고 큰 것은 아래에 처하고, [새로 나는 가지와 같이] 부드럽고 약한 것은 위에 처한다.

 

인지생야유약, 기사야견강(人之生也柔弱, 其死也堅强) 우쌤은 이 구절이 76장의 표제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유약(柔弱), 유취(柔脆) 모두 생(生)의 에너지를 표현한 단어입니다. 반대로 견강(堅强)과 고고(枯槁)는 죽어있는 것을 표현한 단어입니다.

목강즉병(木强則兵) 이 구절을 진고응은 목강즉절(木强則折)로 고쳤습니다. 왕필은 나무가 크게 자라면 외물이 가한다고 해석했고, 진고응은 나무가 크게 자라면 꺽인다라고 해석했습니다. 왕필과 진고응 둘 다 크게 차이는 없는 것 같습니다.

우쌤은 강대처하, 유약처상(强大處下, 柔弱處上) 이 구절을 나무로 비유해주셨습니다. 크고 단단한 것, 나무밑동과 뿌리는 아래에 있고, 새로 나는 연약한 가지들은 위에서 나는 것을 상상하면서 읽으면 좀 더 이해가 잘 될 것 같습니다.

 

77.

天之道, 其猶張弓與! 高者抑之, 下者擧之 ; 有餘者損之, 不足者補之. 天之道, 損有餘而補不足 ; 人之道則不然, 損不足以奉有餘. 孰能有餘以奉天下? 唯有道者, 是以聖人爲而不恃, 功成而不處. 其不欲見賢.

 

하늘의 도()는 아마도 활을 당기는 것과 같을 것이다! 높은 것은 낮추고, 낮은 것은 들어주고, 남음이 있는 것은 덜고, 부족한 것은 보충해준다. 하늘의 도()는 남음이 있는 것을 덜어내고 부족한 것에 보충해주지만, 사람의 도()는 그렇지 않아서, 부족한 것을 덜어내서 남음이 있는 것에 봉양한다. 누가 남음이 있는 것으로써 능히 천하를 봉양할 수 있는가? 오직 도()가 있는 사람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래서 성인은 일을 하되 뽐내지 않고, 일을 이루어도 거기에 처하지 않는다. [그는] 그 능력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이 장도 하늘의 도(道)에 대한 장입니다.

장궁(張弓)이란 표현이 있는데, 이것은 ‘화살을 시위에 메겨서 당기다’라는 뜻입니다. 반대 표현으로는* 이궁(弛弓)이 있습니다. 이것은 ‘활의 시위를 벗겨서 풀다’라는 뜻입니다. 예전에 우쌤이 2장과 3장 설명하실 때 해주셨던 설명을 상기해보면, 활을 당기고 푸는 것(一張一弛)은 여유가 있는 것은 덜어내고, 부족한 것은 채워주는 도(道)의 작용을 표현한 것입니다.

기.....여(其......與)는 ‘아마도 ~진저!’라는 감탄사입니다.

인지도즉불연(人之道則不然)은 “[하늘의 도(道)는 앞과 갔다.] 하지만 인간의 도(道)는 그렇지 않다.”입니다.

기불욕현현(其不欲見賢)은 도(道)의 작용처럼 일을 이루지만 자신을 뽐내지 않아서 잘 보이지 않는 성인을 묘사한 구절입니다.

주석을 참고하면, “성인은 그 능력을 보이지 않기를 원해서 천하만물에게 고르게 작용한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균천하(均天下)”라는 구절이 있는데, 우쌤은 균(均)이라는 글자를 통해 노자와 장자의 도(道)에 대한 사유를 엿볼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도(道)가 모두에게 평등하고 고르게 작용하는 것을 균(均)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78.

天下莫柔弱於水, 而攻堅强者, 莫之能勝, 其無以易之. 弱之勝强, 柔之勝剛, 天下莫不知, 莫能行. 是以聖人云 : 受國之垢, 是謂社稷主 ; 受國不祥, 是謂天下王.正言若反.

 

천하에 물보다 부드럽고 약한 것은 없지만, 딱딱하고 강한 것을 공격하는 것은 능히 이길 수 없고, 물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없다. 약한 것은 강한 것을 이기고, 부드러운 것을 딱딱한 것을 이기니, 천하 사람들은 이런 이치를 알지 못함이 없는데, 능히 행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성인은 말한다. 나라의 불명예를 감당하는 것을 일러 사직의 주인이라 하고, 나라의 상서롭지 못한 것을 감당하는 것을 일러 천하의 왕이라 한다.바른 말은 마치 반대되는 것 같다.

 

78장은 76장에 나왔던 유약(柔弱)과 견강(堅强)이 다시 나옵니다. 우쌤은 유(柔)와 약(弱)이 나온 장들을 다시 한 번 정리해주셨습니다.

36장의 유약승강강(柔弱勝剛强), 40장의 약자, 도지용(弱者, 道之用), 43장의 천하지지유, 치빙천하지지견(天下之至柔, 馳騁天下之至堅). 우쌤은 물리적으로 유약한 것이 견강한 것을 이기는 게 아니라 에너지가 생성되는 과정이라고 하셨습니다. 주역에서 음에서 양이 되고, 유에서 강으로 움직이고, 정에서 동으로 나아가는 사유를 참고하면 더 이해가 잘 될 것 같습니다.

강(强)과 강(剛)의 차이가 정확히 어떤지 잘 몰랐는데 이번에 우쌤이 그 차이를 설명해주셨습니다. 먼저 강하면 부러진다고 할 때의 강한 것은 강(强)입니다. 그리고 ‘의지가 굳세다’, ‘오래가다’라고 할 때는 강(剛)을 씁니다.

기무이역지(其無以易之)에서 “바꾸는 것은 없다.”의 목적어는 물의 흐름입니다.

수국지구(受國之垢)에서 수(受)는 ‘감당하다’라는 뜻이고, 구(垢)는 ‘때’, ‘더러움’으로 여기서는 ‘불명예’라는 뜻으로 쓰였습니다.

사직(社稷)이란 글자가 나왔습니다. 우쌤은 사극에서 흔히 종묘사직을 같이 얘기하는데, 종묘와 사직은 같이 붙여서 쓸 수 있는 글자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종묘(宗廟)는 왕들이 자신의 조상을 모시는 것이고, 사직(社稷)은 토지신을 모시는 것입니다. 원래는 같이 쓸 수 있는 글자가 아니었는데 주나라 때부터 종묘와 사직을 일치시키려는 시도가 있었다고 합니다.(맞나요? 쓰고 보니 잘 모르겠네요. ㅋㅋㅋ;; 아시는 분은 댓글로 보충해주세요!)

 

79.

和大怨, 必有餘怨, 安可以爲善? 是以聖人執左契, 而不責於人. 有德司契, 無德司徹. 天道無親, 常與善人.

 

큰 원한을 풀어도, 반드시 남는 원한이 있으니, 어찌 선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성인은 좌계를 가지고 있어도 빚 진 사람에게 독촉하지 않는다. ()이 있는 사람은 좌계가 있[지만 요구하지는 않고], ()이 없는 사람은 세금을 일정하게 걷는다. 천도(天道)는 친함이 없으니, 항상 선한 사람과 함께한다.

 

79장의 화대원, 필유여원, 안가이위선?(和大怨, 必有餘怨, 安可以爲善?) 이 구절은 63장의 보원이덕(報怨以德)을 같이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이미 큰 원망이 생겨버리면 그 모든 원망을 풀 수 없으니 사전에 원망을 살 일을 하지 말라는 것 같습니다. 여기서 안(安)자가 앞에 쓰이면 어찌 내(奈)와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고 합니다.

좌계(左契)라는 표현이 있는데, 백서에서는 우계(右契)로 돼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둘 다 어떤 것을 나누고 그 한 쪽을 의미하는 것, 일종의 계약서이기 때문에 의미상 크게 차이가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불책어인(不責於人)에서 책(責)은 계(契)를 가진 사람이 빚을 ‘독촉하는 것’입니다. 인(人)은 빚진 사람입니다.

철(徹)은 맹자에도 나오는 표현으로 모든 사람에게 10분의 1만큼 일정한 양의 세금을 걷는 것을 말합니다.

우쌤은 천도무친, 상여선인(天道無親, 常與善人) 이 구절에서 도가적 공동체를 엿볼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유가의 공동체의 핵심은 절문(節文)과 친친(親親)입니다. 사람마다 머물러야 할 자리와 법도가 정해져있는 것이죠. 그런데 도가에서는 모두에게 고르게 작용하는 것이 도(道)이기 때문에 사사로운 친함이 없다고 얘기하는 것 같습니다.

 

80.

小國寡民. 使有什佰之器而不用, 使民重死而不遠徙. 雖有舟輿, 無所乘之 ; 雖有甲兵, 無所陳之 ; 使人復結繩而用之. 甘其食, 美其服, 安其居, 樂其俗. 隣國相望, 鷄犬之聲相聞, 民至老死不相往來.

 

나라는 작고 백성은 적다. 많은 이로운 물건이 있어도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백성들이 죽음을 무겁게 여겨서 멀리 옮기지 못하게 한다. 비록 배와 수레가 있지만 탈 바가 없고, 비록 갑옷과 병기가 있어도 늘어놓을 바가 없으니, 사람들이 다시 새끼를 엮어서 쓰게 만든다. [자기 땅에서 난 음식을] 맛있게 먹고, 자기 옷을 아름답게 여기고, 거처하는 곳을 편안히 여기고, 풍속을 즐긴다. 이웃나라가 서로 바라보이고, 닭과 개의 울음소리가 서로 들리니, 백성들이 늙어 죽어도 서로 오고 가지 않는다.

 

80장의 소국과민(小國寡民)은 노자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 중 하나입니다. 어떤 사람은 80장을 마지막 장으로 착각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소국과민. 사유십백지기이불용, 사민중사이불원사(小國寡民. 使有什佰之器而不用, 使民重死而不遠徙). 이 구절은 부분부분 여러 해석이 가능합니다. 먼저 우쌤은 소국과민(小國寡民)에서 한번 끊고 읽으셨습니다.

사(使)는 ‘가령’, ‘만약’의 의미로 쓰였습니다.

십백지기(什佰之器)는 ‘열 개, 백 개의 많은 기계’로 해석되거나 ‘열 사람, 백 사람의 몫을 하는 기계’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진고응은 많은 기계로 해석했습니다.

소국과민(小國寡民) 구절을 아예 다르게 해석한 것도 있습니다. 주어는 소국과민(小國寡民)이고, 사(使)는 ‘~하게 만들다’라는 의미로 해석한 것입니다. 그러면 “소국과민(小國寡民)은 문명의 이기(利器)가 있어도 쓰지 못하게 하고, 백성이 죽음을 무겁게 여겨 멀리 옮기지 못하게 한다.”가 됩니다.

무소진지(無所陳之)에서 진(陳)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늘어놓다’라는 의미로 보는 것입니다. 보통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병장기를 다 늘어놓고 그것을 점검한 다음에 병사들에게 나눠준다고 합니다. 다른 하나는 ‘진을 치다’라는 의미로 보는 것입니다. 둘 다 전쟁을 벌일 일이 없다는 점에서 통하는 것 같습니다.

사인부결승이용지(使人復結繩而用之)에서 復 이 글자는 ‘다시’라는 의미에서 “부”로 읽었습니다. 결승문자를 사용하는 시대는 복희씨 시대라고 합니다. 결승문자는 간단한 거래관계에서만 쓸 수 있는데 그러려면 시장경제가 아니라 마을경제 정도의 단순하고 작은 규모여야 한다고 합니다.

감기식, 미기복, 안기거, 락기속(甘其食, 美其服, 安其居, 樂其俗) 이 구절은 장자 외편 <거협>편에 그대로 나옵니다. 식(食)은 자기 땅에서 난 음식으로 멀리 가지 않아도 먹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인국상망(隣國相望)은 ‘서로 바라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나라’입니다.

계견지성상문(鷄犬之聲相聞)도 닭과 개 짖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매우 가까운 나라를 뜻합니다. 맹자에서도 계견지성(鷄犬之聲)은 이상적인 국가를 표현할 때 사용하는 단어지만 노자와는 완전히 다르게 사용합니다. 맹자가 말하는 계견지성(鷄犬之聲)은 국토 여기저기서 들리는 것이고 그것은 그만큼 인구가 많다는 것을 뜻합니다.

우쌤은 이 장을 통해 유가와 노자가 각각 그리는 이상적인 통치가 어떻게 다른지 알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유가는 이상적인 군주가 천하를 통일해서 다스리는 것을 지향하는 반면에, 노자는 수많은 작은 공동체를 지향합니다. 그리고 그 공동체들은 장자 외편 <천지>편에 나오는 기심(機心), 문명으로 인해 일어나는 욕망을 경계합니다.

 

81.

信言不美, 美言不信. 善者不辯, 辯者不善. 知者不博, 博者不知. 聖人不積, 旣以爲人, 己愈有 ; 旣以與人, 己愈多. 天之道, 利而不害. 聖人之道, 爲而不爭.

믿을 만한 말은 아름답게 꾸미지 않고, 아름다운 말은 믿지 않는다. ()를 체득한 사람은 이것저것 구별하지 않고, 이것저것 구별하는 사람은 도()를 체득한 것이 아니다. 아는 사람은 잘난 척 하지 않고, 잘난 척 하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 성인은 사적으로 축적하지 않고, 축적되기 전에 다른 사람에게 베풀어서 자신이 더욱 갖게 되고, 축적되기 전에 다른 사람에게 주어서 자신이 더욱 많아지게 된다. 하늘의 도()는 이롭지 해롭지 않다. 성인의 도()는 도와주지 다투지 않는다.

 

선(善)은 ‘도(道)를 체득한 사람’입니다.

변(辯)은 ‘말을 잘하다’인데, 우쌤은 이것저것으로 명확하게 구별해서 말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박(博)은 ‘넓다’라는 뜻도 있지만 여기서는 ‘잘난 척하다’라는 뜻입니다.

적(積)은 ‘사적으로 쌓다’라는 뜻입니다.

기(旣)는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이미’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성인은 사사로이 쌓지 않기 때문에, 이미 다른 사람에게 주었다.”가 됩니다. 다른 것은 ‘먼저’, ‘~하기 전에’로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인은 사사로이 쌓기 전에, 다른 사람에게 주었다.”가 됩니다.

우쌤은 성인이 다른 사람에게 주어서 자신이 더욱 많이 소유하게 되는 것(己愈有)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만족과 같은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마도 노자의 성인은 가난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쌤은 <도덕경>에서 도(道)를 두 가지로 나눠서 설명하고 있다고 맨 처음에 말씀해주셨습니다. 하나는 우주가 움직이는 법칙, 운동인 천도(天道)고, 다른 하나는 인도(人道)입니다. 인도(人道)의 목표는 천도(天道)를 본받아 가장 그것과 똑같이 하는 것입니다. 인도(人道)가 천도(天道)를 본받았을 때를 성인의 도(道)라고 하는 것입니다.

천지도, 리이불해(天之道, 利而不害)의 주석을 보면, “움직여서 항상 생성한다.”라고 돼있습니다. 여기서 우쌤은 생성(生成)의 반대로 사성(死成)을 같이 얘기해주셨습니다. 어떤 것이 태어난다면 그것은 반드시 언젠가 흩어지는데, 이때 흩어지는 것을 사성(死成)이라고 하신 것이죠. 그리고 사성(死成)을 다른 단어로 해석하면 귀근(歸根)이라고 하셨습니다.

위이부쟁(爲而不爭)에서 위(爲)는 ‘보충하다’(輔), ‘도와주다’(助)라는 의미로 사용됐습니다.

 

전쟁의 시대를 살았던 노자는 자기 시대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그것을 돌파하기 위한 사유의 흔적이 <도덕경>입니다. 우쌤은 노자의 철학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키워드가 있다면 그것은 ‘부쟁’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각자 노자를 해석해보라고 하셨습니다.(아이고, 큰 숙제를 주셨네요.^^;;) 다툼이 일어나는 것은 유위(有爲) 때문이고, 유위(有爲)를 우주의 운행을 본받아 극복하는 것이 무위(無爲)입니다. 우쌤은 해석하더라도 무위(無爲)를 끌어내는 것에서 멈추지 말고 그것을 다른 키워드와 연결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우쌤이 명(明)이나 지(知), 교부(敎父), 현덕(玄德) 등등의 개념을 열심히 설명해주신 것도 이제야 이해가 가네요. 노자 – 우응순본이 얼른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주부터 9월 2일까지는 하상공의 노자주를 봅니다. 노자를 양생의 관점에서 보면 어떻게 읽을 수 있을지 궁금하네요. 그럼 다음 주에 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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