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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나서 감사해요' - 주역수업(03.12)을 듣고

작성자
윤몽
작성일
2016-03-17 21:06
조회
725
자, 오늘은 서합괘(噬嗑卦)입니다. 서(噬)는 깨무는 것이고, 합(嗑)은 합한다(合)는 뜻이 있어요. 입 안에 있는 음식물을 깨물어 입을 다무는 모습(‘합쭉이가 됩시다, 합!’ 아시죠?)을 상상할 수 있겠죠. 단전은 턱 사이에 이물질이 있는 것을 서합이라고 말한다(彖曰 頤中有物 曰噬嗑)고 했어요. 실제로 이 괘의 모습도 사람의 입과 턱의 모습을 나타낸 걸로 봐요. 1과 6에 있는 양효, 그러니까 초구와 상구를 벌린 입(턱) 모양으로 보고, 2,3,5의 음효를 벌린 입 사이의 공간으로 보고요. 중간에 양효인 4, 즉 구사를 입 안에 있는 이물질, 음식물로 보는 거예요. 그렇게 생각하고 괘의 모양을 바라보면, 음식물을 씹기 위해서 막 입을 다물려고 하는, 활짝 벌린 입과 그 사이의 이물질(우엑)이 보이는 것도 같아요!

서합괘는 형벌(獄)을 사용하는 것이 이롭다(利用獄)는 괘사로 알 수 있듯이, 죄인을 재판하는 도(治獄之道)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데요. 정확히 말하면 초구와 상구는 죄인이고요. 나머지 육이, 육삼, 구사, 육오는 재판관의 입장이에요. 아무튼, 여기서 입을 다물어 이물질을 부수는 서합의 행위는 죄인을 엄하게 처벌하는 것, 합리적이고 공정한 재판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서합괘는 형통하다고 해요. 이럴 때 형통함은 서합괘 자체라기보다는, 서합의 행동으로 해(害)가 되는 것을 없앨 때(이물질을 깨물어 부술 때) 형통해진다고 말하는 거예요. 서합괘의 효사를 읽다보면, 깨물어 입을 닫기(서합하기)가 만만치 않은 것들의 예도 많이 나와요. 딱딱하게 마른 육포 같은 것이나, 그 사이에 단단한 뼈가 들어서 조심해서 씹지 않으면 턱이나 이를 상하게 되는 것들도 있죠. 여기서 재미있는 건요. 그렇게 강하고 포악한 죄수를 상대하려면 그에 맞게 이쪽도 강할수록 그것을 제압하기가 수월할 거라고 생각하기 쉽잖아요? 하지만 주역의 세계는 이와 조금 다른 논리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이에요. 그래서 서합괘의 주인공인 군주는 육오, 즉 양이 아닌 음이에요. 음의 군주는 강한 양의 군주들보다 훨씬 부드럽고 유연한 군주예요. 그래서 너무 강하지 않고요. 5는 원래 양의 자리지만 음이 왔으니까, 음의 자리에 음이 왔을 때처럼 너무 물렁대지도 않고요. 전적으로 강하기만 하면 그 포악함에 상할 수 있고, 지나치게 부드럽게 하면 너무 풀어지는 것에서 잃는 것이 생기기 때문이래요. 너무 강하지도, 너무 부드럽지도 않은 중간의 지점을 잘 찾아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가장 공정하고 지혜로운 중도의 판결을 내리는 것, 이것이 서합괘의 미션이라고 하겠습니다. 따뜻하고 밝게 비추는 불의 명철함(離)과 서릿발 같이 떨어지는 천둥의 기동성(雷)이 아주 잘 어우러지는 형상이네요. 이것이 바로 형벌들을 밝히 잘 헤아려서(明其刑罰) 법령을 제대로 제정하는(飭其法令) 훌륭한 군주의 모습이죠.

서합괘를 읽다보면 다양한 벌을 받는 다양한 모습의 죄인들이 보이는데요. 발목에다 차꼬를 차서 걷지 못하게 하는 정도는 아주 가벼운 잘못을 한 사람의 경우고요. 코를 물어뜯길 정도로 호되게 혼나야 정신 차리는 경우도 있고요. 재판관에게는 썩은 부분이 있는 육포를 씹는 것과 같아서 재판관을 원망하거나 그 결과에 불복하는 경우도 있고요. 중죄인이라 목에 무거운 칼을 차서 귀가 상하는 경우까지도 있어요. 저는 주로 잘못을 하고 혼나는 위치에 자주 있게 되다 보니(착해서라기 보다..) 벌을 받는 죄인들의 아픔에 심히 공감을 하게 되네요. 단순하게는 크게 혼나기 전에 알아서 말 잘 듣자는 유치하지만 명료한 교훈을 끌어낼 수 있겠네요. 그리고 한 가지 더! 초구에서 사소한 잘못을 한 죄인에게 차꼬를 채워 못 걷게 하는 건, 작은 잘못을 크게 경계하는 경우(小懲而大戒)라고 할 수 있는데, 이건 너무하지 않나요? 억울하지 않을까요? 이 정당한 질문 앞에서 정샘은 이런 호된 징계가 작은 잘못을 한 그 사람에게는 오히려 복이 된다고 말해요. 왜일까요? 초반에 잘못에 대해서 경계를 하여 잘못된 일에 대해 두려움을 심어주면 나중에 그 사람은 악을 향해 감히 나아가지 않게 된다고요. 아하! 그래서 우리 채운샘이 맨날(가끔 기운 없을 때를 제외하고 평소에 주로) 버럭버럭 하시는 거군요. 번개처럼 떠오르는 우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이런, 저런, 요런(네! 바로 그 장면이요!) 장면들에서 순식간에 경험적으로 알아들을 수 있었던 교훈이군요. 흠흠. 억울해하지 말고 감사합시다!!

 

결론적으론 좋은 얘길 한 것 같지만서도.. 뉘앙스를 통해 지은 죄가 있으니 서둘러 자리를 뜨겠습니다~~!

오늘은 간단하게 서합괘에 대해 살펴봤고요. 다음 시간엔 비괘(賁卦)를 살펴보도록 해요! 그럼 모두 토요일에 만나요~ 휘리릭 =3==3
전체 4

  • 2016-03-17 22:33
    (가끔 기운 없을 때를 제외하고 평소에 주로~~)ㅇㅋㅋ ~~~ 아주 재미나고 쏙쏙 들어오는 후기, 아주 잘 읽었어요.

    • 2016-03-18 22:09
      앗! 동관으로 굳히셨어요?! 아래에 보니.. 셈은 졸지에 시누이, 저는 시어머니~@@ 오잉

  • 2016-03-18 17:57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깐죽거리는 시누이가 더 얄밉다더니. 북치고 장구치고 흥! 두고 보자구욤!!

  • 2016-03-18 20:59
    ㅋㅋㅋㅋㅋ 암튼 서합괘 매우 인상적이었어요. 아주 질감이 살아있는듯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