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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생] 가즈오 이시구로

작성자
선민
작성일
2016-04-15 08:19
조회
966
[길 위의 생] 가즈오 이시구로

1. 나를 보내지 마

나를 보내지 마. 절대로.

벤쿠버에 처음 도착한 그 주에 저는 야심차게 영어로 소설책 읽기에 들어갔습니다. 여기까지 왔는데 영어 공부를 안할 순 없지! 마침 친구가 제일 좋아하는 책이기도 해서 <나를 보내지 마Never Let me go>를 펴들었지요. 일본계 영국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의 작품인데요, 한 2주일을 매일밤 무조건 책장을 넘겼습니다. 무조건! 즉, 지천에 널린 모르는 단어들을 하나도 안 찾고 말이지요. 갑자기 영어만 쓰는 환경 속에 들어와서인지, 왠지 몰라도 버텨주겠다는 오기가 발동했던 탓도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영어 교습법에 나와있는 금언, ‘모르는 단어를 일단 넘어간 다음, 문맥에 맞게 떠올려보라’를 시험해보고 싶기도 했습니다.

딱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을 때, 정말이지 황홀한 경험을 했습니다. 그건 거의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처음 완독했을 때의 기분이었는데요. 정말이지 모르는 단어를 다 그냥 지나쳤기 때문에, 참말이지 소설이 뭘 전하려고 했는지 전혀 감 잡을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어쨌거나 한 2주일을 쉬지 않고 같은 일을 했다’, ‘영어라는 세계에 나를 강제적으로 밀어 넣어 보기는 했다’라는 단순반복, 단순시도가 주는 만족감은 꽤 커서, 덕분에 그 후 몇 달을 영어 한 글자 안보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벌써 벤쿠버에서 생활한 지 1년이 지났습니다. 돌아갈 날이 몇 달 남지 않았습니다. 수종(樹種)도 다양하게, 날마다 여기저기에서 벚꽃이 피고 지는 찬란한 4월. 어쩌다가 저는 ‘내년에는 내가 이곳에 있지 않겠구나’ 생각이 들었고, '아! 지금 내가 정말 해야할 일은 뭔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육아의 피로, 살림의 지겨움. 그런 것에 자의식을 쏟고 있기에는 너무나 시간이 아깝구나를 깨달았습니다. 사실, 생각해보면 이 봄은 오직 지금 이뿐입니다. 우리 각자가 사는 어디에서나 말이지요. 이렇게 갑자기 내게 주어진 한계를 떠올리게 되면, 인생은 문득 짧아집니다. 인간 관계는 새삼 특별해집니다. 말 안듣는 딸들도, 희안한 성격의 남편도 . ^^

저는 다시 <Never Let me go>라는 작품이 떠올랐습니다. 이 작품은 장기기증을 목적으로 배양된 복제인간의 이야기입니다. 기숙학교에서 생활하는 클론(복제인간)들은 사실 자신이 복제된 존재라는 것을 모릅니다. 이야기는 이런 질문을 갖고 진행됩니다. ‘과연 클론들이 어떻게 자신의 운명(장기 적출을 위해 일찍 죽는다)을 알게 될 것이며, 결국 자기 자신과 세상을 뭐라고 이해하게 될 것인가?’ 제가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것은 마치 탐정소설처럼 클론의 팔자를 쫓아가게 되는 이 박진감있는 스타일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점에서 인간도 클론과 처지가 같지요. 책에 나온 클론들처럼 우리도 왜 사는지, 어떻게 죽을 것인지를 생각해야만 합니다. 결국 소설가는 매순간 우리 곁을 맴돌고 있는 죽음이라는 한계를, 클론도 인간도 매 순간 생생하게 붙들고 있어야 하는 것은 바로 지금이라는 것을 다시 생각해보는 작품을 썼던 것입니다. 저는 떠나버리려는 봄의 끝무렵에 벤쿠버라는 한계를 생각하다가, 작년 봄에 지나쳐버렸던 수많은 영어 단어들 속에 숨어있는 의미들을 찾게 되었습니다. 영어 사전 없이 말이죠. 홋홋.  그것은 ‘나, 지금 이 순간을, 보내지마’ 였습니다.

2. 길 위의 생

벤쿠버에서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음. 영어 공부를 해야지. 암! 저는 다시 벤쿠버에 처음 왔던 그 순간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듣기 능력 향상을 위해 동영상 채널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가즈오 이시구로의 인터뷰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아젠다' 라고 하는 캐나다의 한 방송채널에서였는데요.(http://tvo.org/programs/the-agenda-with-steve-paikin) 여기에서 가즈오 이시구로는 글쓰기와 문학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작품을 읽어서인지 이 작가가 무척 친근하게 느껴졌는데, 정신 차려보니 어느새 저는 그에 대해 뒷조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나가사키에서 태어나 5살 때 영국에 왔으며, 젊은 시절에는 노숙자들을 돕고, 미국 횡단 여행을 하고, 락 음악에 빠져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지요. 그러다가 <The Paris Review>(http://www.theparisreview.org)라고 작가들이 말하는 작가, 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실리는 잡지에서 가즈오 이시구로에 대한 인터뷰를 발견했습니다.  출력하고 보니 무려 10페이지가 넘는 왕창 긴 인터뷰였는데요. 한번 궁금함이 발동한 뒤라, 뭐 읽자! 싶어서 읽어보았습니다.  이번에는 컴퓨터로 사전을 켜 놓고서 말이지요. 가즈오 이시구로가 진짜 <Never Let me go>를 쓴 이유도 찾아보고 싶었습니다.

인터뷰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그가 자신의 주인공들에 대해 이야기한 부분입니다. 인터뷰어는 어떤 작가의 영향을 받았나고 물었는데, 그는 살롯 브론테, 도스토에프스키, 체홉, 제인 오스틴을 꼽다가 마지막으로 플라톤을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왜요? 그건 플라톤이 쓴 소크라테스의 대화 때문인데요.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믿는 것, 아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 이들 앞에 나타나 그 신념을 아그리 무너뜨리기 때문입니다. 가즈오 이시구로는 자신의 소설에는 소크라테스가 없다. 대신 인물들 모두가 자기 자신의 소크라테스라고 소개합니다. 가즈오는 노숙자와 생활하면서, 히피처럼 미국을 돌아다니며, 일상적인 노동을 통해, 자신이 성숙할 수 있었다고도 강조했는데요. 그가 생각하는 성숙이란, 가즈오 이시구로라는 소크라테스가 탄생하는 과정이었습니다.

<Never Let me go>의 결말에서 클론들은 다 죽습니다. 하지만 가즈오는 이 작품이야말로 인간의 품위를 다룬, 낙관적인 작품이라고 했습니다.  클론들은 알지 못하는 곳으로 격리되고, 하나하나 떨어져 나가는 장기와 함께 조금씩 삶을 잃어가면서 비로소 우정과 사랑에 진심으로 헌신하는 생을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저도 제 식으로 이 봄을 더 만끽할 궁리를 해야겠습니다. 헤메고, 방황하고, 즐기고, 울고 하는 모든 순간이 다 '지금'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 말이지요.

* 안녕하세요. 저는 오선민입니다. 벤쿠버에서 아이들일 키우며 지내지만, 올 겨울에 다시 서올로 돌아간답니다.  가면 바로 혜화동에서 공부하려고요.   <길 위의 생>을 연재하려고 하는데요. 가즈오 이시구로처럼 이러저러하게 제가 만난 인물들, 소설 속 주인공들 등. 말 그대로 여기저기를 걷고 있는 인생을 엿보며 글을 써보려 합니다. 그게 지금 제가 제일 하고 싶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제목은 소세키 선생님을 떠올리며, 베꼈습니다. 홋홋.
전체 3

  • 2016-04-15 10:21
    으앗! 깜짝선물 같군요:) 앞으로의 글들도 기다려질 것 같습니다!!
    또 뵈어요-!!

  • 2016-04-15 13:07
    언젠가 한번쯤 이 작품에 대해 좀 길게 써보고 싶다고 늘 생각해왔는데, 선수를 빼앗겼네요ㅎ 장기기증자가 프롤레타리아 혹은 (세대 간 경쟁에서의)어린 세대의 은유라고 읽을 수도 있겠는데, 하지만 그렇게 읽는 데 만족하길 허용하지 않는 소설이라고, 그래서 좋은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전에 영화로도 봤는데 하나하나 장기를 빼앗겨 생기를 잃어가는, 일종의 가죽 주머니처럼 되어가는 인물들을 보며 마음이 무너졌더랬어요. 생명의 존엄 내지 인권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여러 모로 인간이란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되더군요. //다음에는 어떤 이야기를 해주시려나 기대됩니닷 몹시몹시.

  • 2016-04-15 17:04
    오~ 길 위의 생이라니, 소세키 같잖아!ㅋㅋ 기대기대 뿅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