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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9월 9일 후기

작성자
박규창
작성일
2017-09-12 11:28
조회
109
「천하(天下)」편은 뭐랄까..... 쉽게 잡히지 않는 편이었습니다. 1장에서는 추(鄒)나라와 노(魯)나라의 선비들, 아마 맹자와 공자겠죠? 그들에 대해 높은 평가를 하는 것 같습니다. 기본적으로 유가와 도가는 서로 대립되는 부분이 있고, 대립되는 만큼 사상적으로도 명확하게 구분되는 지점이 있을 것입니다.. 근데 도가의 인물이 아니라 유가의 맹자와 공자를 높이는 이건 또 뭔지 싶었죠. 이에 대해 채운쌤은 아마 「천하」편은 장자학파의 유가라인이 썼을 수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장자라는 학파 안에도 유가, 명가 등 다양한 갈래가 공존하고 있었던 것이죠. 그렇다면 마치 『논어(論語)』가 여러 제자들의 기록이 모인 것처럼, 『장자(莊子)』라는 텍스트도 다양한 학술적 성향을 가진 여러 사람들의 기록물이라 할 수 있겠네요.

다른 텍스트들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동양의 텍스트는 어느 한 사람의 기록이라고 보기는 참 어려운 것 같아요. 오늘 규문에 죽간으로 된 『금강경(金剛經)』이 들어왔습니다. 보니까 왜 착간이 일어나는지 조금은 짐작이 됐습니다. 일단 정리를 못해서 섞인 게 아닌 건 분명해요. ㅋㅋㅋ 오셔서 한 번씩 보셔요. 상상하던 것과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그래도 직접 보고 만지는 건 또 다르네요. 어쨌든 정리하다가 실수로 섞인 거든 혹은 원문에 일부러 자기가 채워 넣었든, 지금 우리가 보는 장자라는 텍스트는 분명 맨 처음 쓰인 것과 다릅니다. 그렇다면 그 처음 쓰인 것을 복구하는 차원에서 역으로 거슬러 올라갈까요?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지만, 지금 있는 것 그대로 읽는 것도 하나의 읽기 방법입니다. 그러니까 장주(莊周) 한 사람이 아니라 ‘장자’라는 텍스트를 읽고 자기의 시대적 조건에서 새롭게 글을 쓴 모든 이들까지 합쳐서 ‘장자’로 보는 거죠. 그러면 내편의 이야기들이 어떤 식으로 외편, 잡편에서 변주되는지, 외편과 잡편의 시선으로 보는 내편의 의미 등 다양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말은 이렇게 해도 각 편의 한 장조차 쉽게 이해할 수가 없지만요. ㅠㅜ (어렵지만 재밌네요. 자아가 분열되는 느낌입니다.)

 

글을 쓴다는 건 아마도 문체에 대한 고민을 동반하겠죠. 장자처럼 문체에 대해 고민하고 그 고민을 전면적으로 드러낸 사람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우언(寓言)」편을 보면 문체에 대해 장자가 어떻게 고민했는지 드러납니다. 거기서 장자가 쓰는 세 가지의 서술방식을 볼 수 있습니다. “다른 사물에 가탁해서 하고 싶은 말을 서술하는” 우언(寓言), “세상 사람들이 중시하는 인물의 말을 빌려 무게를 더한” 중언(重言),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엉터리 같은” 치언(卮言).

만물이란 본디 끊임없이 유전(流轉)합니다.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변이하는 게 생명이죠. 언어는 이러한 흐름을 부분절단하여 어떤 고정된 의미를 규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만물을 설명하는 데 어떤 고정된 의미만을 가져오니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장자 본인도 언어의 한계를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있는 이곳에서 떠나지 않고 살아간다고 할 때, 어쨌든 언어를 가지고 갈 수밖에 없습니다. 고민은 여기서 시작되겠죠. 언어의 한계를 알면서도 그 언어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 즉,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의미가 고착되지 않게 의미를 분열시키는 언어사용. ‘우언’, ‘중언’, ‘치언’은 이런 장자의 사유가 나타나는 지점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전 원래 장자하면 ‘우언’이라 생각했는데, 「우언」편을 읽고 나니 사실 장자의 언어의 진수는 ‘치언’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치언(卮言)이 매일 나오는데 <구별을 없애주는 자연의 작용인> 천예(天倪)로 조화시켜 경계 없는 도를 따르게 하는 것은 <제동(齊同)한 만물과 함께> 생명을 다 살기 위한 방법이다.” - 우언1

 

채운쌤은 ‘치언’을 패러독스(paradox)로 설명하셨습니다. 패러독스는 ‘평행하다’의 para와 ‘견해’의 dox가 합쳐진 것입니다. 하나로 합치되지 않는 두 개의 의견이라는 거죠. 장자의 글쓰기가 바로 이 패러독스에 딱 들어맞는 것 같습니다. 어디서는 쓸모없음의 중요성을 얘기하다가도, 다른 곳에서는 쓸모가 없어서 죽는 얘기를 또 들려주죠.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건 대립된 두 개의 것을 이야기한다기보다는 하나로 규정될 수 없는 세상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용(用)과 무용(無用)의 얘기도 단지 둘 중 하나가 아닌 그 두 개의 사이에 있는 무엇을 얘기하기 위함이겠죠. 아마 이게 채운쌤이 얘기하신 0의 위치인 것 같습니다.

여기서! 무지렁이의 특권으로 질러보자면, 장자의 모든 말은 ‘치언’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치언’을 천예(天倪)로 푸는 것도 심상치 않아 보여요. ‘천예’에서 예(倪)는 ‘끝’, ‘가장자리’란 의미입니다. 직역하면 ‘하늘의 가장자린’란 의미인데, 여기서 하늘은 자연입니다. 그러니까 만물이 변(變)하고 화(化)를 겪고 있는 모든 것을 자연이라 하는 것처럼, 안팎이라는 분별없이 모든 차이가 공존하는 것이 ‘천예’인 거죠. 이런 점에서 본다면 내편 「제물론(齊物論)」편의 천균(天均)과도 같다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차이가 공존하고 있는 ‘천예’를 언어로 사유한다면 그 모습은 모순이 존재하는 ‘치언’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ㅎㅎ;; 아님 말구요.

신기하게도 동양과 서양은 지리적 환경이 그렇게 다름에도 불구하고, 시대적으로 봤을 때는 비슷한 사상이 있었다고 합니다. 장자의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단 디오게네스의 견유학파가 있었죠. 그리고 장자가 살았다고 하는 전국시대에는 제자백가라는 온갖 학파가 활동하고 있었죠. 비슷하게 고대 그리스에서는 소피스트들이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장자가 ‘치언’을 쓴 것처럼 소피스트들도 궤변(詭辯)이란 말하기 방식을 사용했습니다. 흔히 소피스트하면 입만 산 궤변론자라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떠오르는데요. 사실 이건 플라톤 이후의 이미지라고 합니다. 원래 그들이 사용한 ‘궤변’이라는 말하기 방식변은 ‘변론(辯)을 어그러트리다(詭)’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의미를 고정되지 않게 계속 어그러트리는 거죠. 재밌는 건 이런 뜨거운 논쟁이 동서양 둘 다 가장 다양한 사유들이 존재한 시대였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생각이 건강해지기 위해서는 뜨겁고 격렬한 논쟁을 통해 자신이 규정한 의미들을 계속 깨야할 것 같습니다.

 

 

하늘에는 일월성신의 운행법칙인曆數가 있고 땅에는 사람들이 사는 지역이 있는데 내가 어떻게 그것을 추구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이 어디에서 끝나는지 아무도 알 수 없으니, 어떻게 운명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또한 그것이 어디에서 시작하는지 아무도 알지 못하니, 어떻게 운명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서로 대응함이 있으니 어떻게 귀신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서로 호응함이 없는 경우도 있으니 어떻게 귀신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天有曆數 地有人據 吾惡乎求之. 莫知其所終 若之何其無命也. 莫知其所始 若之何其有命也. 有以相應也. 若之何其無鬼邪. 無以相應也. 若之何其有鬼邪.) - 우언4

 

전 이번 시간에 이 부분이 가장 감동적이었습니다. 운명이 있다고 하는 건지, 없다고 하는 건지 도대체 뭘 말하려고 하는 건지? 처음에 읽을 때는 이게 뭔 소린가 싶었습니다. 「천하」편 마지막 장 혜시가 아주 언어로 미쳐 날뛰었던 것처럼, 장자도 미쳐 날뛴다고 생각했습니다. ㅋㅋㅋㅋㅋ..... 근데 그게 아니었더군요. 운명이 있는지, 없는지를 가리는 건 자신이 알 바가 아닙니다. 어차피 내가 알든 모르든 우주의 운행을 어찌할 수 없다는 건 변함이 없습니다. 다만 내가 맞닥뜨린 상황을 가볍게 넘길 수 있는 태도는 내가 자연의 일부라는 겸손한 태도에서 나오겠죠. 즉, 저 말은 우주의 운행을 편하게 받아들이는 장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아내가 죽어도 곧 웃을 수 있었던 건 장자가 미쳤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도 처음에는 슬펐다고 하네요. 그럼에도 슬픔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던 건 장자가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자연스러운 것임을 받아들였기 때문이죠. 한 가지 일에도 쪼잔하게 끄달리는 저 자신이 비교되네요. 이번 후기도 반성으로 마무리!
전체 2

  • 2017-09-12 12:51
    서당개(특권적 무지랭이)의 후기가 일취월장!

  • 2017-09-12 19:52
    미쳐 날뛰는 장자!ㅋㅋㅋㅋ 이것도 좋은데?ㅋㅋㅋㅋ 장자를 고정된 의미로 보려는 순간 잡히지 않고 빠져나가는 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