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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와 함께 여름을~ 4강 공지

작성자
민호
작성일
2018-08-12 23:24
조회
223
스피노자의 철학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에티카>는 10년이 넘는 기간에 걸쳐서 쓰였는데 그 형식과 내용에 있어서 구분되는 지점이 있습니다. 1, 2부는 신과 정신에 대해 다루고 있다면 뒤의 3, 4, 5부는 정서에 대한 내용으로부터 윤리와 정치에 대한 논의가 전개된다고 합니다. 후에 연구자들은 스피노자가 <에티카> 집필을 중단하게 되는 한 가지 사건을 경험했다고 말합니다. 당시 대표적 공화주의자였던 ‘더빗(De Witt)’ 형제가 민중들로부터 학살당하는 사건을 겪은 스피노자는 “왜 인간은 예속을 갈망하는가?”하는 절실한 질문과 함께 <신학정치론>을 집필합니다.

왜 인간은 자신의 이해에 반하는 행동을 저지르는 것일까? 인간은 왜 자유를 갈망하듯이 예속을 갈망하는가? 여기서 스피노자는 인간의 행위를 주재하는 것이 이성이나 의지에만 있는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거기에는 ‘정서’라는 마음의 메커니즘이 있습니다.

<신학정치론>에서 스피노자는 신학을 철학과 동일시하는 사람들의 태도를 꼬집습니다. 정통 히브리어로 성서를 통독했던 그는 성서가 과학서가 아닌 비유와 상징으로 가득한 문학작품으로 이해합니다. 그리고 그 메시지들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입증하려 하는 사제들의 태도를 고발합니다. 그들은 성서의 기록에서 ‘자연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을 발견하고 그것을 ‘기적’이라고 규정합니다. 거기에는 놀람, 경외감이라는 느낌이 따라붙게 되고, 사람들은 신봉의 태도로 고착되고 맙니다. ‘있을 수 없는 일 = 기적’의 관계가 되고 그것은 자연 밖의 일, 신이 하는 일이라고 확인됩니다. 바로 여기서 미신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스피노자에게는 일어나는 모든 일은 원인으로 인해 일어나며 어떤 일도 전체 자연 안에서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신 역시 자연 밖에 있지 않지요. 따라서 일어날 수 없는 일로서의 기적은 없습니다. 기적은 상상일 뿐입니다. 그런 현상은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지 믿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일을 신학은 “믿으라”고 하지만, 철학은 “인식하라”고 해야 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것이 어려운 것은 ‘태생적인 무지에 머물러 있는 것이 더 쉽기 때문’인 우리의 관성 때문이겠지요.

성서의 이야기들의 상징을 잘 해석해보면 결국 ‘사랑과 정의’에 대한 내용들입니다. 하지만 기독교는 성서의 상징들을 “닥치고 믿어”라는 식으로 밀고나갑니다. 이해를 배제한 믿음, 그것이 미신입니다. 하지만 현상들을 믿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이해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아무리 난해해 보이는 사건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어려울 뿐이지만요. 그래도 그것이 자연 안에 있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적합함

스피노자는 누군가 가지고 있는 어떤 관념도 오류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세상에 ‘진리 : 오류’라는 구도는 없습니다. 그것은 진리가 있다고 믿는 자들에만 있을 뿐입니다. 단지 스피노자는 적합함을 이야기합니다. 어떤 사건 A가 나에게 해가 되었다고 해서 그것을 ‘나쁨’이란 관념으로 형성하는 것은 부적합합니다. 그 사건을 지금 이 상태의 나라는 단편적인 방법으로만 인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적합함이란, 사건 A가 나뿐 아니라 옆 사람에게, 저들에게 어떤지, 다른 공간과 시간 맥락 속에서는 어떠한지, 어떻게 영향을 받고 미치고 있는지의 전체 맥락의 이해에 맞춰보는 것입니다. 단편이 아닌 다방면의 맥락을 이해하는 것이지요. 불교의 용어로 무수히 많은 인과 연쇄, 연기 조건에 대한 이해. 그것이 적합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부적합한 관념에서 적합한 관념으로의 이행을 말할 때 마치 그것이 어떤 방향성을 두는 또 나의 목적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적합한 관념이 어딘가에 있어서 그곳으로 가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적합한 방향으로의 이동이 아니라, 계속해서 부적합한 관념의 단편 단편들을 벗어나는 것, 이해의 폭을 방사적으로 퍼지게 할 수 있는 것으로 보면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 더 많은 연관에 대한 연결과 접속. 그것이 적합한 관념으로의 이행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법과 상벌

스피노자는 법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법은 그 자체로 나와 공동체에 이익을 가져다주기 위해 있는 규칙이지 명령과 금지의 체계가 아닙니다. 어떤 규칙이건 그것을 명령과 금지의 체계로 받아들이고 벌이 두렵고 상을 바라기 때문에 지키는 것은 가장 못난 사람입니다. 법에 대한 가장 유아적 이해이지요. 아담의 선악과 이야기를 스피노자는 이 상벌의 개념으로 풀이합니다.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말을 명령과 금지로 받아들이는 순간, 그 금지에서 살짝이라도 벗어나는 (이브가 먹였다는 명목) 대목이 생기면 바로 먹게 됩니다. 하지만 그 과일의 본성이 네 본성을 파괴하기 때문에 하느님이 그런 말을 했다는 법에 대한 이해가 있었다면 기회가 있어도 결코 먹지 않았겠지요. 즉, 어떤 규칙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와 유사한 경우에도 응용할 수 있게 됩니다. (가령, 아이에게 칼을 만지지 말라는 엄마의 말) 스피노자 스스로가 법을 지키는 것은, 그것이 그의 본성에 맞기 때문입니다.

스피노자는 상벌은 내재적이라고 합니다. 상벌은 누가 주는 것이 아니라 그 행위 자체가 상이고 벌입니다. 숙제를 안 해왔다면, 벌금과 꾸중이 벌이 아니라, 안 한 것 자체가 자신에게 벌인 것입니다. 반대로 숙제를 잘한 것도 마찬가지로 그 자체가 상인 것이지요. 상벌은 외부에 있지 않습니다. 죄나 상은 법에서 확인되는 것이 아니라 본성에서 확인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의 구멍 많은 공지처럼, 많이 빠져나가는 과정에도, 몇 가지 스피노자의 개념들이 쌓여가고 있습니다.(이상한 방식으로 변용되어서이지만@_@) 이렇게 세 번째 시간이 끝나고 스피노자와의 핫한 여름이 무르익어가고 있는데요!

다음주에는 24장까지 읽어오시면 됩니다!

이번 주 배웠던 내용을 정리하고 새로 또 읽으시면서 막히고 아리송한 것들을 질문 만들고 체크해오시면 되겠습니다~~

이번 주 후기는 민호팀의 지현샘, 지은팀의 노을샘이 맡아주시기로 하셨구요.

다음 주 네 번째 시간 간식은 선미샘, 현애샘, 순화샘께서 준비해주시기로 했습니다!!

그럼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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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8-14 12:46
    민호반장님 쏙쏙 들어오는 공지 고마워요! 법으로 지키고 따라야할지 아닌지는 외부에서 결정해줄 문제가 아니라 내 본성에 맞는지에서 확인해볼 수 있다는 말이 와닿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