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강좌

스피노자와 함께 여름을~ 5강 공지

작성자
손지은
작성일
2018-08-18 21:55
조회
211
- 자유의지라는 환상

‘브뤼당의 당나귀’는 브뤼당이라는 철학자가 지어낸 유명한 이야기라고 합니다. 어느 당나귀가 굶주린 만큼 목도 탈 때, 건초를 발견하는 동시에 동일한 거리에 있는 물을 발견하자 어느걸 먼저 먹을지 고민하다 굶주림과 갈등으로 죽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설정 자체가 참 관념적입니다만, 생각해보면 우리도 이런 당나귀처럼 생각하는 때가 많습니다.

브리당의 당나귀 이야기에는 아주 중요한 전제가 하나 깔려 있습니다. 동일한 정도의 힘 사이에서 갈등할 때, 그것을 ‘자유의지’에 의해 선택해야 한다는 생각말입니다. 스피노자는 이를 ‘정신의 동요’라고 이름 붙입니다. 우리도 매일 사소하게나마 이런 정신이 동요를 겪으며 살아가죠. 공부할까 술마시러 갈까, 오늘 할까 내일 할까, 오렌지 주스 마실까 커피 마실까. 이런 것도 다 정신의 동요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스피노자라면 이런 고민이 참 쓸데없다고 말했을 거예요. 우리가 무엇을 하는 것은 나의 자유의지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가 오렌지주스와 커피 중 오렌지주스를 선택한 것은 내가 결단을 내려서 선택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 구체적인 조건 속에서 더 할 수 있는 것을 한 것일 뿐입니다. 마치 나의 선택인 듯 보이지만, 실은 여러 변수들이 놓여있는 조건 속에서 무언가를 하도록 우리의 신체가 규정되어 있는 것이지요.


- ‘선택’이 아닌 ‘이해’의 문제

이렇게 우리는 삶에 있어서 많은 부분을 ‘선택’의 문제로 생각합니다. 삶에서 중요한 변곡점이 찾아올 땐 더욱 그렇죠. 스피노자 본인도 철학가로 활동하던 초창기 시절에 두 가지 욕망 사이에서 갈등하며 극적인 정신적 동요에 사로잡힌 경험이 있다고 합니다. <참된 선을 추구하는 삶>을 욕망하면서도 동시에 <통상적인 가치(명예, 돈, 성욕)>가 주는 안락함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죠. 이 두가지는 서로 양립 불가능하니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것처럼 문제가 인식됩니다.

그런데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끝에 스피노자는 애초에 자신의 질문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참된 선>과 <통상적 가치>, 이 두가지는 ‘선택’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이해’의 문제라는 것을요. 통상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것은 그 자체로 선도 악도 아닙니다. 그것이 나에게 편안하고 기쁘다면 통상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것도 얼마든지 선이 될 수 있겠지요. 하지만 돈이나 명예, 성욕과 같은 것들은 내 스스로 구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원한다고 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얻고자 한다고 명예를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죠. 때문에 이것들을 추구하게 되면 외부에 매달리는 삶을 살 수밖에 없는건 당연지사입니다. 그러니 <통상적 가치>와 <참된 선을 추구하는 삶> 사이에서 갈등할 필요도 없어지는 것이죠. 무엇이 나의 본성에 이로운지를 확실이 ‘이해’하면, 어떤 것을 선택해야할지 망설일 필요가 없어집니다. 그래서 “참된 자유는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붙잡는 것, 이해하는 것(103쪽)”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비슷한 힘을 지닌 두 가지 사이에서 갈등한다면, 그건 ‘결단’해야할 때가 아니라 사유의 힘으로 ‘이해’해야 할 때입니다.


- 적합한 관념, 나의 본성에 입각하여 이해하는 것

이해한다는 뜻의 원어 comprehend를 풀면, ‘모두+잡는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보통 한가지만 잡아서 이해한 것을 ‘이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스피노자에게 있어 이해한다는 것은, 자신이 겪은 사건을 더 많은 질서과 연관 속에서 이해하는 것입니다. 앞에서 나왔던 문제처럼, 내가 어떤 두 가지를 동시에 욕망할 때 이런 욕망이 어떻게 발생했는지를 물어가며 자신이 딛고 있던 전제를 근원에서부터 뒤집어 다시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자신의 전제를 질문한다는 것은 기존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경험과 지식과 상식을 넘어서 더 입체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입니다. 이런 이해가 커지면 커질수록 편협한 인식에서 벗어나 더욱 확장된 관계 속에서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런 이해를 ‘적합한 관념’이라고 합니다.

적합한 관념은 다른 말로 하면, 나의 본성에 입각하여 이해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나의 본성’이란 나라는 인간의 타고난 성질같은 것이 아니라, 수많은 관계가 있기에 나란 사람도 존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연 안에 내가 있다는 것, 그게 바로 나의 본성입니다. 나의 본성에 입각하여 바라본다는 것은, 나를 중심으로 세계를 보는 게 아니라 수많은 관계 속에서 사건을 이해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가령 지금 일어난 어떤 사건이 해로워보일지라도 그것을 즉각적으로 ‘해롭다’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입체적 관계 속에서 이해하면 영원히 해로운 것도 없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적합한 관념과 부적합한 관념, 능동과 수동, 이성과 역량, 정신과 신체의 관계 등에 대해 짚어보았습니다. 다음시간은 깜짝 스피노자 세미나 마지막 시간입니다. 각자 배웠던 개념들을 나름으로 정리해서 스피노자와 함께하는 바캉스 마지막을 시원하게 달려보아요!

범위는 25장부터 끝까지 읽어오시면 되고요, 간식은 영숙샘, 강평샘, 정옥샘이 준비해주시기로 하셨어요. 이번주 후기는 현주샘과 연주샘입니다~ 그럼 다음시간에 만나요~~!

전체 2

  • 2018-08-20 17:01
    마지막 시간입니다. 질문 대방출합니다~~ 제가 여러분께, 그리고 여러분이 제게! 나름대로들 요래조래 정리해오소서.

  • 2018-08-23 23:40
    어떤 일을 하는데 있어서 우리는 정신은 '결단'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여전히 자유의지의 환상에 같인 착각이라는 것, 그건 바로 우리 신체가 조건 속에서 규정된 것이라는 말이 매우 인상깊었습니다!
    "무엇이 나의 본성에 이로운지를 확실이 ‘이해’하면, 어떤 것을 선택해야할지 망설일 필요가 없어집니다." 그리고 그 본성은 만은 관계 속에서, 즉 자연 안에서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죠!
    이리저리 해메던 스피노자의핵심개념들이 조금씩 정리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벌써 바캉스도 끝나가고 여름도 끝나가네요... 하지만 매우매우 풍족한 바캉스라고 생각되네요 하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