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감

예감 세미나 후기

작성자
크느
작성일
2016-01-18 19:20
조회
614

에세이 발표 전날인 2016년 1월 8일은 ‘로이 뱃티’의 생일이었습니다. 아니 가동일이라고 해야 더 정확하겠죠. 1982년 개봉한 리들리 스콧의 영화 ‘블레이드 러너’는 2019년을 배경으로 인간과 복제인간(Repilcants)들의 차이를 그려냅니다. 결국 무엇이 더 인간적인지에 대한 질문을 복제인간 로이 뱃티를 통해 던지고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극중 복제인간(로이 뱃티)의 생일(가동일)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 입니다. 영화에 묘사된 것처럼 인간을 복제하지는 않았지만 양을 복제하고 배아줄기세포를 복제하는 것 보면 그렇게 다른 세계 같지도 않습니다.


만프레드 슈피처는 [디지털 치매]에서 “디지털 미디어는 우리의 뇌를 덜 이용하게 하고, 결국 시간이 갈수록 뇌의 능력이 감소하게 된다. 어린이와 청소년의 경우에는 뇌의 형성도 방해한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오스트레일리아의 작가 스텔락은 기계와 유기체의 혼성인 생명체 즉 사이보그를 자신의 몸을 통해 표현합니다. 인체의 퇴화 가능성에 대비해 우리의 몸을 확장는 실험을 하죠… 밀리에티(miglietti, [extreme bodies])는 그의 작업을 이렇게 분석합니다. “기존의 몸은 더 이상 통제할 수 없는 속도로 진화하는 현실에 적절히 대응할 능력이 없다. 지난 세기 경제 전략에 따라 사회 시스템 안에서 기술의 이용이 강요되고 행해졌다. 이는 우리가 거주하는 장소를 인간에게 낯선 곳으로 만들고, 각자 호신용으로 인공적인 ‘해결책’을 이용해야 할 필요성을 불러일으켰으며, 인체에 위험할 정도로 급속도로 환경을 바꿔놓고 있다. 스텔락은 인류의 ‘구원’이, 다양한 신기술과 경쟁할 수 있고 고도로 정보화된 현실을 수용하고 재개발할 수 있는 몸을 착안해내는 것과 직결되어 있다”라고 분석합니다.


디지털 매체에 대한 슈피처의 디스토피아적인 분석과 기술이 발전할수록 용도가 줄어드는 자신의 몸을 기계를 통해 확장시킨 스텔락의 작품은 우리가 처한 현실을 극명하게 드러내 보여줍니다. 더 이상 기억할 필요가 없어진 뇌와 순수한 내 몸만으로는 사회시스템을 따라가기 버거워진 현실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프랑코 베라르디’비포’는 [프레카리아트를 위한 랩소디]에서 세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정보의 가속화가 인간의 감정에 끼치는 영향과 가상적 소통이 신체적 지각에 끼치는 영향은 무엇인지, 그리고 인간들 사이의 교류가 점점 더 전자기기를 매개체로 삼아 이뤄질 때 무의식의 영역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라는 세가지 질문을 통해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경제와 정서의 영역에서 장기간에 걸쳐 일으킨 변이를 이해하려는 시도”를 합니다. 비포 역시 이렇다할 해답을 주지는 않지만 우리가 어떤 조건에 놓여있는지는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빌렘 플루서는 우리가 놓인 조건들 즉, 세계를 다음과 같이 분석했습니다. “근대적인 세계상은 우리가 그 앞에 서서 그것을 풀려고 시도하는 수수께끼의 세계상이었다. 우리는 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수수께끼 같은 현상들의 배경들 속으로 전진해 들어가야 했다. 이러한 전진은 과학에 의해 이끌어 졌다. 이때 목표는 풀린 수수께끼, 문제 없게된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었다. 진기한 의미에서 이 목표는 실제로 달성되었다: 세계는 문제없이 되지는 않았지만, 더 이상 문제성을 띠지 않는다. …… 우리는 더 이상 수수께끼 앞에 서 있지 않고, 비밀의 한가운데에: 황당무계함의 신비 속에 서있다. 그리고 우리는 더 이상 이 비밀을 해독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고 —그것은 읽을 수 없다—, 이 비밀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그것에 우리 고유의 기호를 투영하려는—시도를 한다. 새로 나타난 우리의 세계상 속에는 배경들이 없다: 세계는 전면을 가지고 있는, 아무것도 숨기고 있지 않은 표면이다. 그것은 영화관의 스크린이고, 그 위에 우리는 의미를 설계한다. 무엇보다도 영사기로서가 아니라, 스크린 직물 속에 포함된 매듭으로서 의미를 설계한다. 이렇게 잠정적으로 상상할 수 없는 세계상은 미래 정보사회의 세계상이다” 그가 그린 우리의 세계상은  ‘황당무계함의 신비’ 그 자체입니다. 플루서는 우리의 현실을 디스토피아적이지도 유토피아적이지도 않게 보고 있습니다. 단지 중세시대와 르네상스시대의 세계상이 다르듯이 지금 우리 앞에 새롭게 추상해야 할 세계 즉, 아직 직조되지 않은 디지털 정보들이 펼쳐져 있을 뿐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해야할 일은 그것을 새로운 방식으로 구성해야할 세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미나하는 3개월 동안 슈피처의 디지털매체에 대한 비관적인 시각이 불편하게 따라다녔지만, 비포, 플루서의 텍스트를 읽으면서 우리가 어떤 위치에 놓여있는지는 조금이나마 알게 된거 같습니다. 디지털 네이티브들의 무의식이 현대미술을 통해 어떻게 표현되는지 좀 더 살펴보지 못한 점은 좀 아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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