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콜콜

[사오정의 관찰 일지] 두 번째 한역이

작성자
지영
작성일
2019-08-16 20:48
조회
320
<함께 살아가는 연습 중인 한역이>

이번 주 관찰대상은 요즘 규문톡톡 ‘田cine’에서 활약 중인 한역이 입니다. 한역이는 올해 3월부터 연구실에서 공부하기 시작했는데요, 대학 졸업 후 부모님이 계시는 계룡에서 지내다가 연구실로 왔습니다. 그때 마침 건화도 출가를 하려던 차였고, 그래서 한역이와 함께 집을 구하기로 결정하고 이사하기까지 몇 주 안 걸렸던 기억이 나네요. 현재 ‘삼선동 부부’로 불리며 토닥토닥 사는 중입니다.

초반에 한역이는 규 트레이너의 소프트한(?) 코치를 받으며 홈 트레이닝과 가벼운 등산을 하며 체력을 키웠습니다. 운동 할 때마다 한역이가 슬픈 목소리로 “못 하겠어요〜규창샘〜”이라고 하면, 규창이는 한역이의 팔 다리를 애기 궁둥이 다루듯 찰싹찰싹 때리며 “할 수 있어요, 한역샘, 좀 만 더!”라고 사랑의 맴매를 하곤 했지요. 그럼 한역이는 슬픈 얼굴로 곧 쓰러질 것 같다가도, 반항 한 번 없이 해내다 바닥과 물아일체가 되곤 했습니다. 그 진풍경에 조용하던 오전 공부방이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던 때가 엊그제 같습니다. 얼마 전부터 연구실에 축구붐이 불어, 축구를 홈 트레이닝 대신 가끔 하는데요, 처음엔 전반의 절반 정도 뛰다가 체력이 떨어지면 예의 슬픈 표정을 지으며 숨을 몰아쉬었지만 요즘은 체력이 부쩍 늘었습니다. 이전처럼 골대를 붙잡고 뛰기를 거부하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드리블과 패스를 하고 점수도 내곤 합니다. 한역이도 조금은 땀 흘리고 뛰는 걸 즐기는(?) 듯 보입니다. 아닐 수도 있구요.



그렇게 한역이의 체력이 날로 느는 사이, 일상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토요일 ‘절차탁마 NY’, 화요일 초심자들을 위한 철학 세미나인 ‘비기너스’, 금요일 예술을 통해 철학하는 세미나인 ‘예술 인류학’, 화요일 ‘소리 내어 읽는 니체 세미나’(이 세미나는 얼마 전 니체 전집을 완독하면서 끝났습니다^^)까지 연이어 참가하기 시작했지요. 갑자기 세미나가 느는 바람에 한역이는 밤늦게 남아 과제를 하곤 했는데요, 아침에 수염이 거뭇거뭇한 초췌한 모습으로 발견되곤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체력도 약한 아이가 글 쓴다고 밤을 샜다니 모두가 걱정해서 한 마디씩 했습니다. “밤 샜니?” “네..좀 샜어요.” “얼마나 못자서 그래?” “6시간 정도 잤어요.” 음, 한역이의 기준에 따라 ‘6시간 이하’로 자면 그건 밤을 샌 거로 친다고 하는군요. 한역이는 바로 그제도 규문 톡톡 연재 글을 쓰느라 밤을 ‘새우고’, 또 밤을 ‘새워’ ‘예술 인류학’ 과제와 ‘절차탁마 NY’ 과제를 준비 했다고 합니다. 왠지 한역이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작작 좀 하세요, 지영샘!”( :cry: )



한역이 특유의 슬픈 표정과 슬픈 말투를 베이스로 하는 몸짓과 말은 초창기부터 연구실에 대유행 되곤 했습니다. 친해질 요량으로 누군가 한역이를 장난스럽게 놀리면 늘 순딩이 같은 미소를 지으며 그 놀리는 말을 듣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턴가 마냥 웃기만 하던 한역이가 ‘작작 좀 하세요~ 00샘’이라는 말을 똑 부러지게 하며 반응하기 시작했고, 말문도 트였던 거 같습니다. 그 즈음 연구실 소풍이 있었고 인적 드문 어느 골짜기의 즉석 무대를 압도한 한역이의 ‘달팽이’(이적)를 들으며 모두 함께 부끄러움을 나누기도 했지요. 그날 은남샘이 추천해주고 성태샘께서 미리 계산을 마친(!) 식당에서 배부르게 저녁 식사를 했답니다. 그날 이후 우리는 식사 때나 청소 시간에 ‘7080’ 갬성을 느끼고 싶을 때면 한역이의 추천을 받아 노래를 듣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도 가끔 ‘샴푸의 요정’을 듣는 20대 청년 한역이가 생소하지만, 뒤집어 보면 그만큼 제가 ‘편견이 강하구나’ 싶어 적어도 그 생소함이 불편하진 않습니다.



한역이는 패션으로도 모두를 압도하곤 하는데요. 어느 초여름 밤의 일입니다. 후드 점퍼와 반바지로 시작해 목이 긴 아빠양말에 샌달을 신으면 그만의 패션이 완성. 그대로 성균관대신입생이 우글거리는 혜화동 밤거리를 당당하게 워킹하는 모습이라니! 지금도 아빠양말 패션을 유지중입니다. 이런 아재(?)같은 모습은 패션에만 한정된 게 아닌데요, 먼저 앞에도 언급했지만 20대라 할 수 없는 몸 상태로 인한 그만의 독특한 식습관이 눈에 띕니다. 캔커피를 즐기지만 밤에는 안 먹고요, 아이스크림이나 술은 먹으면 몸에 이상이 와서 못 먹는다고 합니다. 매운 것도 못 먹는다고 해요. 하지만 식욕은 의외로 좋아서 다른 남학우들 못지않게 고봉밥으로 먹고 세미나 때 간식도 잘 먹습니다. 아, 고기 사랑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처음엔 연구실에서 고기를 먹지 않는 거냐고(회식 때마다 잘 먹습니다) 집에 가는 길에 건화에게 물어봤다고 합니다. 모두들 놀릴까 하다가 먹는 거로 놀리지 않았던 거 같기도...기억이 가물하네요.



한역이는 아재나 옹翁 같으면서 동시에 ‘신생아’ 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어느날 대량의 대파를 미리 다듬어 두는 작업이 있었습니다. 딱히 할 거 없는 사람들이 동원 되었고 한역이에게 파를 썰어달라고 맡겼습니다. 엉거주춤 앉는 폼이 어설퍼서 혜림이가 편하게 앉으라 했지요. 다소곳이 무릎을 꿇고 조심스럽게 칼질을 하던 한역이가 “아..이거 너무 매운데...어떻게 해요? 샘?”이라고 너무 슬프게 말하는데. 한역이에겐 정말 미안하지만, 모두들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박장대소 하고 말았습니다. 그냥 썰어야 한다는 말에 난생 처음 매운 맛을 보며 슬퍼하던 한역이는 그래도 그날 맡은 분량을 ‘꿋꿋이’ 다 썰고 갔습니다. 요즘은 설거지나 뒷정리뿐 아니라 배운대로 쌀도 씻어보고 된장국에 넣는 호박 등을 썰기도 하는데요. 음...아직 이 분야는 갈 길이 먼 것 같지만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



(한역이가 썬 된장국용 애호박)

지난 주 백종원식으로 졸여 얼린 양파 큐브를 꺼내는 데 재능을 보였습니다. 그 기쁨의 현장~!



얼마 전부터는 큐타벅스를 맡아 운영 중인데요. 청소하는 법부터 매상 올리기와 배달 서비스까지 차근차근 배워가고 있습니다. 본점의 애정 어린 감시(?)와 함께 연구실 친구들의 도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오다가다 청소하는 법을 가르쳐 주기도 하고 부끄러워하는(?) 한역이를 대신해 커피 매상을 올리기도 하고, 잔돈은 커피 값으로 보시하며 물심양면으로 돕고 있습니다. 이제 제법 청소도 야무지게 하고요, 배달도 잘 합니다. 이번 주도 불교샘들이 매상을 팍팍 올려주셨지요. 이렇게 쓸고 닦으며 손길이 가고 마음을 주고받는 만큼 이 공간이 한역이에게 더 편안해 지겠지요?



사실 한역이 자체만이 아니라 연구실 친구들의 케미도 이야기 거리가 정말 “어~마 어~마” 합니다. 대표적으로 퇴근시간에, 모두들 가방을 싸고 한 곳을 바라봅니다. 달팽이처럼 느린 속도로 짐을 싸는 한역이를요. ‘두고 간다.’부터 ‘안녕~’하고 인사 하고 나가는 등 온갖 짓을 해도 한역이의 짐 싸기는 책 정리와 가방 정리를 다 하고 깨알같이 시계까지 차야 마무리가 됩니다. 요샌 미리 싸놓기도 하지만, 뭐 기다리는 시간이 그리 지루하진 않습니다. 가끔 졸리긴 해요.



뭐니뭐니해도 규문의 꽃(?)은 글쓰기이기 때문에 3~4명씩 모여 서로의 글을 봐주며 진행되는 연재 준비 상황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이번 주, 영화 <행잉록에서의 소풍>을 보고 어제 글을 올리기 직전까지의 풍경입니다. 글에 나타나는 한역이의 문제점을 꼼꼼하게 짚어주는 규창이, 지현샘, 건화. 문장을 다듬고 새로 만드는 것부터 제목을 다는 마지막 마무리까지 거의 2시간가량 걸렸습니다. 물론 그 전에 기획과 구도 짜기부터 시작해서 셀 수 없는 시간을 함께 했던 건 말할 것도 없습니다. 영화를 통해 한역이의 현재 고민인 ‘글을 쓰면서의 불안감과 공포감’을 ‘의존’이라는 차원에서 다시 보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는데요, 처음에는 자기 문제가 뭔지 잘 봐지지 않아 계속 물어 보는 한역이와, 계속 말해도 코멘트가 받아들여지지 않아 답답한 팀원들이 어찌 풀어갈지 잠깐 걱정했는데, 기우였습니다. 서로 답답해하면서도 글을 매개로 문장을 고치고 비틀고 덧붙이고 지우고 드러내고 새로 만들면서 더듬더듬 길을 만들어 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마지막 회의 중 한 장면.

“형은 불안을 감당하지 않으려는 거 같아.”

“음......”

“확신을 갖고 말해줘.”

“음.......음....”

“형이 생각하기에 3번 문단과 연결되잖아요. 3번 첫 문단에서 생각을 어느 길로 내고 싶어요?”

“뭔가, 확신 있든 없든, 내 식대로 가는 거로 가고 싶은데...”

“음, 그럼 그렇게 해.”

“음 그런데 불안한데.....”

“말기암이다~”

전체 6

  • 2019-08-17 10:46
    단숨에 읽었네요. 한역샘의 규문 생활이 손에 잡힐듯 그려지네요. 한역샘이 규문에 만드는 충격과 공포의 파장도 재미있고, 슬픈 눈과 목소리의 한역샘이 규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변화될지 궁금하기도 하네요. 지영샘의 관찰일지도 기대됩니다.

  • 2019-08-17 11:48
    관찰자가 적당히 개입된 관찰일지군요. 두 번째라는 제목이 뭘까... 여러 생각을 들게 만드는 군요.

    • 2019-08-17 13:25
      '행잉록에서의 소풍' 외전인가요? 영화 속 등장인물이 실종되는 게 아니라, 늘어나는 건가요? 두 번째 한역이? 아니, 그럼 첫 번째 한역이는? 미스테리한 제목이네요. ㅎㅎ. 이것은 증가인가? 감소인가? 증가이면서 감소인가? 증가도 감소도 아닌 것인가?

      • 2019-08-17 13:42
        헐~~~~~~~~~~~~~~~ 첫번째는 규창이었자너!! 이 호정사오정아!! 설마! 호정이 웃으라고 한 얘기에 정색하고 싸우자고 대든겨? 내가?? 사오정2, 사오정3의 탄생!!!ㅋㅋㅋ

        • 2019-08-17 13:49
          사오정3의 탄생을 축하해야 하는건지? 긁적긁적. 꿋꿋한 규창이에게 맞장구 치는 중이올시다. 규창이가 여러 생각이 든다고 하길래. ㅎㅎ. 저도 여러 생각이 드는군요.

  • 2019-08-17 12:57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이십팔년간 나만 보았던 미개봉 영화가 그림처럼 펼쳐있군~ 음하하하하핫 암튼 아주 독특한 캐릭터를 도맡아할려고 작정하고 태어난 이 청년을 이렇게 감성적으로 스케지 하다니!! 사오정은 귀대신 빛나는 눈을 가졌구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