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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28 동사서독 후기

작성자
은남
작성일
2016-06-01 07:02
조회
3511
저도 샘의 강의 내용을 그대로 복기하는 수준의 후기이지만 이번주 강의내용중에 이것만은 꼭 후기로 남기리라 마음 먹었던 것이 있었는데, 바로 소세키와 루쉰이 외부에서 침입한 근대를 마주하면서 두사람이 가지고 있었던 문제의식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루쉰을 다시 읽는데 왜이리 글이 옛날스럽고 낯선지, 소세키와 비슷한 근대를 살았던 인물이 맞나 할 정도로 둘이 달라도 너무 다른 글들이 이상하게 느껴졌는데 샘의 자세한 설명을 듣고 나니 이해가 되었습니다..

소세키와 루쉰이 맞이한 근대는 서구의 힘의 논리를 앞세운 물질문명으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라는 체제가 국가나 민족주의를 기반으로 하여 들어온 것이었습니다. 일본은 메이지유신으로 외발적이고 강제적인 방식으로 이미 근대를 경험한 상태에서 소세키의 문제의식은 근대를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하는 저항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전통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아버지의 세대에서 무엇을 저항할 것인가가 아니라 밀려드는 서구로부터 자신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가 문제였습니다. 소세키는 근대문명이 바꿔놓은 우리의 삶의 양식에서 물질과 정신의 괴리에 주목하여 욕망에 길들여지는 자아, 분열하는 자아를 신경쇠약을 앓은 주인공으로 그려 내어 개인의 내면문제에 집중했습니다. 근대가 어떻게 개인에게 파고드는가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소세키의 글이 여전히 우리에게 친숙하고 모던하게 읽히는 이유이기도 한답니다. 그러나 루쉰은 훨씬 복잡합니다. 중국은 일본과 달리 근대라는 삶의 양식을 충분히 받아들이기전에 근대의 문제에 맞닥뜨린 것입니다. 소세키가 신경증을 앓고 있는 개인을 어떻게 정립할 것인가가 고민이라면 루쉰은 한번도 정립되지 않는 개인을 어떻게 정립할 것인가가 문제였던 것인데 어디서도 모델을 찾을 수 없었답니다. 자신의 낡은 전통의 습속에 물든 아큐같은 인물도 넘어서야 했고, 즉 자신의 무의식과도 싸움도 힘겨운데 서양의 근대가 가지고 있는 평등적인 인간과도 싸워야 합니다. 어떻게 이전의 예교의 노예가 되지 않으면서 근대의 노예가 되지 않을 수 있는가 하는 무거운 과제가 루쉰에게 떨어진 것입니다. 소세키의 배경이 도시, 젊음, 첨단을 걷는 양식이었다면 루쉰의 배경은 여전히 낡은 농촌, 고향, 옛날인물들, 관찰자에 머무르는 지식인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스스로 대단히 위대하다고 하는 버려질 수 없는 전통을 극복해야 되는 문제가 하나더 있기 때문입니다.

문학에 대한 태도도 다를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소세키는 영문학에 속았다고 말했지만 왜 문학을 해야 겠다는 말은 없습니다. 소세키가 문학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면 루쉰은 의학이 아니라 왜 문학이어야 하는가를 고민해야 했습니다.  마라시력설은 문학에 대한 피끓은 루쉰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한 글이라고 했습니다.  루쉰은 문학의 효용에 대해서 생각했을 것입니다.

‘대개 후세 사람들에게 남겨놓은 인문가운데 가장 힘 있는 것은 마음의 소리만 한 것이 없다.’  '대개 시인이란 마음을 어지럽히는 자다.'

민중을 자각시킬 수 있는 것은 문학밖에 없었던 것인데 한편으로는 문학이 위로를 주거나 계몽적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문학은 죽음이나 인간의 비참함, 폐허를 보여주어 인간의 도덕적 기반이나 세계에 대한 환상을 무너뜨립니다. 루쉰이 바이런에 빠져 든 것은 한편에 니체를 깊이 이해했기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바이런의 작품은 악마적이다 라는 것은 보편적인 도덕, 인식에 가장 강력하게 저항했기 때문인데 어떤 무리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가장 힘이 쎈 무리도덕을 파헤치는 것이 루쉰에게도 가장 큰 투쟁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문학은 오물을 보여주는 것이라는게 깊이 남습니다. 루쉰은 이 더러운 오물을 눈앞에 보여주고 또 기꺼이 치워주겠다고 합니다.

샘은 니체와 루쉰에 대해서도 많은 말씀을 하셨는데 제가 여기서부터 졸다가 듣다가 해서 후기는 여기까지만 짧게 쓸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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