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사서독

  동사서독  &  동사서독 숙제방

루쉰, 전사의 글쓰기 12월 12일 공지

작성자
김완수
작성일
2015-12-06 22:19
조회
1038

공지사항(15.12.12)


1. 읽어 올 글들


주 텍스트 : 루쉰 전집 5집 중 <삼한집>


보조 텍스트 : 책 ‘루쉰 잡문의 세계’ 중 부록1 루쉰 잡문의 정의 중 삼한집 부분(배포 완료)


기타 : 이이집의 ‘위진 풍도문장과 약술의 관계’는 12월 5일 일부 다루었지만 중요해서 다시 다룰 예정


2. 발제 : 전인선 샘(삼한집)


3. 공통과제 : 삼한집에 대한 공통과제 및 개인 선택 암송


4. 간식 : 김지은, 윤재원 샘


겨울에 성큼 들어섰지만 이곳 혜화동은 별로 겨울 기운이 느껴지지가 않습니다. 지난번 경복궁 서촌에서는 10월 초부터 길거리 은행잎이 가을정취를 한껏 내고 11월 초 노란 은행잎이 떨어지는 것으로 순식간에 겨울로 들어섰었는데 이 곳 혜화동은 거리의 플라타너스 잎도 별로 떨어지지 않고 대학로를 오가는 분주한 젊은이들과 많은 연극 공연 기운 탓인지 12월 초임에도 별로 겨울 느낌이 들지 않네요. 여기는 일 년 내내 봄기운인 것 같습니다.


이 날은 구름이 많았습니다. 그동안 동사서독 뒤 프로그램인 주역 수업 때문에 제대로 뒤풀이를 할 수 없었는데 주역 휴강 관계로 오랜만에 수업 뒤 대학로 중국집 진아춘에서 샘을 포함 11명이 회식을 했습니다. 술도 음식도 그런대로 만족스러웠었던 것 같았는데도 저는 썩 편안한 기분은 아니었습니다. 끝나고 제가 공지사항을 써야 할 차례라는 태욱 샘의 말이 있었기도 했지만 수업 중에 생겼던 불편함을 바로 떨칠 수가 없어서요. 보통 이런 불편한 마음은 시간이 약이라고 하루 이틀 지나면 잊게 되는데 오늘은 공지를 하는 바람에 오래 갈 듯싶습니다. 공지를 돌아가면서 쓰라는 것은 그런 불편함이라도 좀 더 오래 새기라는 뜻이겠지요.



15.12.05 수업 관련


0) 수업


1시 반부터 6시 20분(본문 암송, 발제 낭독, 공통과제 토론, 강의 순으로),


수업 14명(결석 3명), 6시 반부터 8시 회식(진아춘)


1) 교재


루쉰 전집 5의 이이집과 삼한집 그리고 수업 중 배포된 책 ‘루쉰 잡문의 세계’ 중 부록1 루쉰 잡문의 정의 중 이이집 부분. 루쉰 전집 5의 삼한집은 이날 범위가 아니었으나 ‘서언’과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언급이 있었습니다. 이이집 발제는 윤재원 샘.


2) 내용


수업 중 이이집에서 주로 언급된 잡문은 ‘혁명 시대의 문학’, ‘독서 잡담’, ‘유헝 선생에게 답함’, ‘사소한 잡감’, ‘혁명문학’ 등 이었습니다.


먼저 책제목에서 사용된 이이(已而)는 한문에서 ‘~할 뿐’ 이라는, 단정적인 글에서 사용되는 끝맺음 조사로서 우리말로 옮기면 ‘~할 따름‘이라고도 합니다. 이 따름이라는 말은 참 만만치가 않습니다. 예를 들어주신 게 ’공부를 할 따름‘이라는 말이었는데 이렇게 써 놓고 보니 감당하기가 쉽지 않은 말입니다. 채운 샘의 말에 의하면 이렇듯 ~할 따름이라고 말할 수 있기 위해서는 마음이 거기에 완전히 가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제 경우를 봐도 공부를 할 따름이라고 말할 수 있냐하면 턱도 없는 말입니다. 발제가 부담스럽고, 하다못해 이런 공지 글 쓰는 것도 삼한집의 ‘어떻게 쓸 것인가‘에 나오는 구절을 인용하자면 ’쓰지 않아도 된다면 물론 그쪽이 편하지만‘입니다. 수업을 신청했던 학기 초의 발심은 스르르 흐려지고 나름대로의 따름만 구실로 하는 것이지요. 내고자 했던 마음을 유지 못한 것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따름입니다. 이런 따름이란 말을 책이름으로 쓰기 위해서는 삶이 그것을 지탱해주어야 하는데 루쉰이야말로 그런 제목을 책이름으로 쓸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사람은 자기 깜냥으로 세상을 보기 마련인데 자신이 생각하기에는 불가능하다는 행동이 있습니다. 제 경우는 붓다가 그런 첫 사람이었지만 이천오백 년 전의 옛사람이어서 상상으로만 가능해 별로 현실감이 있지는 않았는데 나와 가까운 시대에 그런 사람이 있으리라고는 꿈도 꾸지 않았습니다.


조별 토론에서 대부분 샘들이 루쉰의 글이 전과는 많이 다른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글이 바뀌는 건 사람이 바뀌는 것만큼이나 쉽지 않습니다. 이런 변화가 생겼을 때 보통 우리는 외부의 환경이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보아온 것이 그것이 다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요. 1927년은 중국의 격변만큼 루쉰도 여기저기 옮겨 다니면서 교수에서 전문작가로 변하는 시기였습니다. 환경이 크게 변했으니 당연히 글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람이 바뀌어 글이 달라지는 드문 경우를 우리는 여기서 보게 됩니다. ‘유헝 선생에게 답함’에서 루쉰은 자신이 직접 보고 확신한 것 한두 가지를 말합니다. 그리고 그 첫째로 나의 망상이 무너졌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청년들끼리 살육하는 것을 보고는 루쉰은 이이집 이전까지 보여주었던 청년에 대한 기대를 일거에 무너트립니다. 그런데 여기서 루쉰은 청년에 대해 실망했다고 하지 않습니다. 단지 내 망상이 무너졌다고 할 뿐입니다. 이 거대한 세상은 결코 자신이 표상(예상)하는 데로는 되지 않습니다. 우리네 보통 사람이 하는 말로 바로 한치 앞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세상일이 자신의 예상과 다를 때 우리는 흔히 세상 탓을 합니다. 자신의 자존심을 건드리기 싫으니 세상을 해부합니다. 그리고 세상은 복잡한 인과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아Q처럼 언제나 세상 탓 할수 있는 충분한 재료를 찾아냅니다. 몰론 세상사의 인과에 대해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제는 거기서 자신이 빠진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바뀐다는 것은 누구나 압니다. 짧게는 사계의 변화로부터, 또 길게는 어지러울 정도로 변화가 많은 시대를 살아온 자신의 경험을 돌이켜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변화 속에서 나는 얼마나 변했나를 생각해보면 많이 변했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습니다. 달라진 IT기기를 그때마다 적응해 사용할 수 있는 것과 같이 변화의 외면에 적응한 게 내 변화의 대부분은 아닌지요. 나는 수많은 일들이 나를 관통해가도 끄떡없는, 철갑을 두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루쉰처럼 오십이 다 되가는 나이에서 세상경험을 통해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진솔하게 인정하는 것이 흔히 볼 수 있는 일도 아니고, 또 숙고를 거쳐 자신의 생각을 새롭게 한다는 것은 더욱 쉽지 않은 일 같습니다. 자신의 평생 지녀온 가치체계는 다르게 표현하면 그 사람의 전부입니다. 그 전부인 것이 무너질 때의 허망함은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파시스트는 ‘이것이 절대적으로 옳음이라는 것을 놓지 않는 자’라고도 정의할 수 있다고 합니다.


혁명문학을 관련해서 루쉰은 문학이 할 수 있는 일은 삼한집의 ‘어떻게 쓸 것인가‘에 나오는 것처럼 모기에 몸이 물린 것을 쓸 수 있을 뿐이라고 합니다. 이십 세기 중국의 전사라는 사람이 그의 무기인 글로서 할 수 있는 게 이게 다라는 거지요. 그러니 루쉰에게서 신념의 글, 선동적인 느낌을 주는 글이란 기대할 수 없습니다. 앞날을 예상하고 민족에게 명확한 방향을 제시하는 그런 글은 없습니다. 단지 자신이 겪은 일을 모기에 물려 가려워 긁고 싶어 미치겠는 것처럼 절실하게 풀어놓고 거기서 한 발자국씩 앞으로 나가는 담담함만이 있을 뿐입니다.


경험은 그 자체만으로는 사람을 결코 현명하게 만들지 못한다고 합니다. 기구한 사연을 많이 겪었다고 거기에 비례해 뭔가를 얻는다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수련을 쌓아 경험을 자기 것으로 소화할 힘을 못 갖추면 똑같은 경험을 해도 매번 똑같은 결과만을 가져올 뿐이라는 것입니다. 이건 매번 에세이 때마다 겪는 일이니 정말 실감납니다. 그러나 자신의 내면에서 질문을 길어 올리고 그것을 끈덕지게 추적해보라는 말은 귀청이 앉도록 들어온 말인데도 아직도 실마리를 찾지 못합니다. 공부는 한다는 흉내만 내고 가능하면 편하게 살고 싶다는 욕망과 이대로는 안 된다는 각성의 갈등에서 주로 전자에 머물고 있으니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여기까지가 공지입니다.


공부에는 예습과 복습이 필요한데 예습은 숙제 등을 통해 어느 정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복습은 참 어렵습니다. 귀찮기 짝이 없고 하기가 싫습니다. 어쨌든 들었으니 머리에 남아 있겠지 하고 치부합니다. 해서 억견으로 책을 읽고 또 그 생각으로  글을 써오고 그리고는 수업 시간에 들었던 이야기 일랑은 곧 홀랑 잊어버립니다. 이러면 자신의 생각을 바꾸는 공부가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더 견고히 하는 공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학기는 복습에 초점을 두어 공통과제에 지난 수업 내용을 꼭 반영하자고 했는데 그것도 몇 번 하다가 말아졌습니다. 돌아가면서 후기를 쓴다기에 그것도 기회겠다는 하는 생각은 들었지만 막상 이번이 제 차례라고 하니 짐을 떠 앉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수업 내용 중요한데 빼먹은 것도 많고 쓴 것도 정리가 잘 되지 못한 부분이 많지만 끝이 없는 일이라 여기서 줄입니다. 다음번 공지는 태욱 샘이 쓰실 테고 태욱 샘 다음 주 공지를 할 분은 미리 그 전 주에 결정해 주시면 좀 더 수업 내용을 알차게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전체 5

  • 2015-12-07 07:25
    샘, 정말 감동적인 후기입니다요. 끊임없이 소걸음으로 나아가시는 샘의 모습이 역연히 느껴지는 글입니다. 얼마전에, 완수샘 코스프레해보겠다고 살짝 맘을 먹었는데, 그만 내려놓아야할거 같습니다.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분이 바로 샘인 듯요. 한 주 잘 지내시길요~~~~^^

  • 2015-12-07 09:14
    진아춘의 맛난 음식을 앞에 두고 우울해 보이셨던 이유가 공지 때문이었군요!! 그니까 이게 다 태욱샘 때문인 거죠?^^ 샘의 마음이 여실히 느껴지는 후기였슴다~ 샘 후기를 읽고 모두들 한 주간 '불편'을 만끽하실듯...ㅋㅋ

  • 2015-12-07 23:08
    어제, 간밤에 읽고 혼자 한참 뭉클(?),, 왠지 '열공하겠어요!' 고백하고팠달까요, 으허허^^;;/ 샘, 담에 또 후기남게주셔요-! ☆☆)

  • 2015-12-08 14:54
    뒷풀이 같이 못해 아쉬웠는데... 콜택시타고 그래도 수업은 안빠지길 잘했다 싶습니다. 수업내용 못듣고 쌤 후기 읽었으면 가슴 칠뻔 했어요! 참말 잘 읽었습니다요. 꾸벅

  • 2015-12-09 22:21
    에고 저는 뒷풀이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쳐 안타까웠는데 완수쌤은 강의에 공부에 진정한 참새이시네요 ^^ 저도 읽었다 외웠다 들었다 딱 거기까지...이런 자기만족 반복을 돌아보게 하네요..뭉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