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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읽기 12.19 공지

작성자
하동
작성일
2015-12-14 23:29
조회
699

<이이집(而已集)>에 이어, 이번주에는 <삼한집(三閑集)>을 읽었습니다. ‘而已集’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작품집 제목부터가 참 의미심장한 뭔가가 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1928년은 국민당 반동파의 세 확장과 더불어 많은 혁명세력들이 무차별적으로 테러와 희생을 당하는 등 혁명의 분위기는 퇴조했음에도 불구하고. 계급 혁명이나 혁명 문학에 대한 논쟁은 뜨겁게 불붙던 시기였지요. 그 과정에서 루쉰은 젊은 공산당원이자 소위 혁명문학가인 청팡우로부터 ‘한가롭고 한가롭고 또 한가로운’ 유한계급 노땅 취급을 받는가 하면, 그밖의 좌파 문학가들로부터 ‘취한 눈’으로 게슴츠레하게 인생을 관조하는 감상주의자나, 나이브한 인도주의자요 취미문학가쯤으로 매도당하는 일들이 숱하게 있었지요. 문학 권력을 둘러싼 일종의 헤게모니 투쟁이랄 수도 있고, 서로 다른 사상적 토양에서 성장하고 활동한 세대들간에 벌어지는 필연적인 갈등이랄 수도 있을 텐데요, 이 과정에서 루쉰은 참혹함과 분노를 감추지는 못하지만 그렇다 해서 결코 힘없이 그들의 생각을 받아들이거나 한발짝 물러서지 않습니다. 설익은 이론으로 무장한 교조주의적 공산주의자나 혁명문학가들이 중국 사회에 끼칠 해독을 우려해 이전보다 더 격렬하게 논쟁을 벌입니다.


<삼한집>의 많은 글들이 ‘창조사’니 ‘태양사’를 거점으로 활동했던, 이들 좌파 문학가들과의 치열한 논전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글들에 나타난 비판의 핵심은 역시, 그들이 ‘시대의 초월’을 극력 고취하지만 눈앞에 미만한 폭력과 암흑의 현실을 고통스런 시선으로, 감히 ‘정시’하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이같은 비판은, 전통과 국수에 대한 강조와 관심을 통해 불합리한 현실을 교묘하게 호도, 은폐하고자 했던 ‘정인군자’ 무리나 자유주의 문학가들에 대한 비판과 맥을 같이 하는 듯합니다. 이념과 명분만을 내세울 뿐, 현실을 제대로 보려고도 하지 않고 자신에게도 진솔하지 못해 결국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흘러가 버릴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도찐개찐인 셈이라는 것이지요. 무대도 바뀌고, 상대 배우들도 바뀌었지만, 도저한 현실주의적 면모만큼은 그의 글 속을 여일하게 관통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앞선 책에서 읽었던 이런 구절들, 생각나시는지요.


지난 날을 앙모하는 자, 지난 날로 돌아가라! 세상을 벗어나고 싶은 자, 어서 세상을 벗어나라! 하늘에 오르고 싶은 자, 얼른 하늘로 올라가라! 영혼이 육체를 떠나려 하는 자, 서둘로 떠나라! 현재의 지상에는 현재에 집착하고 지상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살아야 한다.


그러고 보니, 앞서 언급한 ‘삼한집’이란 제목에 대해~~. 수록된 글들이 28-29년에 쓰인 것들이고, 책으로 묶인 게 32년이니, 3-4년이 지났음에도 루쉰은 자신에 대해 ‘유한계급’이라 비판한 것을 잊지 않고 고스란히 비판자에게 상기시켜주고 있습니다. 그게 어느 정도 둘 사이에 어느 정도 화해가 이루어진 시점(31년에 좌련이 결성이 되는 걸 생각하면)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헉' 소리가 나올 만도 하지요. 근데, 그 마음이 단지 상대에 대한 빈정거림이나 뒤끝 확실한 기질에서 나온 것만도 아니라, 혁명을 하든 뭘 하든 끝내 잊어서는 안 될 것이 무엇인지를 상대방에게(이때쯤이면 동지가 된 그들에게) 확실히 각인시키고자 한 의도가 아니었나 생각해 보게 됩니다.


암송 시간에 마치 지정곡 부르듯이 많은 분들이 줄줄 암송한 대목이, ‘어떻게 쓸 것인가’의 일부분이었습니다. 토론 시간에도 저희 조에서는, 모기에 물렸을 때 우리의 몸이 느끼는 것 같은 ‘절실함’으로 글을 쓴다는 것과 ‘제멋대로’ ‘솔직하게’ 글을 쓰는 게 과연 어떻게 쓰는 것일지에 대해 많은 얘기들을 나누었습니다. 늘 이런 말들 앞에서는 많이 허둥대게 되는 것 같습니다. 다들 자기 경험들을 끌고 와서, 열심히는 사는 거 같은데 왜 그게 ‘절실함’으로 드러나지 않는지, 속에 있는 얘기들을 다 끄집어내 ‘솔직하게’ 쓰는 거 같은데 매양 매가리없는 자기반성의 글이 되어버리고, 하여 깊은 공감과는 거리가 먼 글이 되고 마는지에 대해 토로했더랍니다. 강의 시간에 채운샘께서는, 루쉰의 글이 절실하고 솔직해 보인다면 그 지점이 어디일지를 잘 보라 하시면서, 무엇보다 자기의 욕망과 정서를 잘 관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과 이를 위해선 그것들이 어떤 조건과 배치 속에서 만들어지고 흘러가는지, 그 욕망의 회로를 철저히 투시하는 법을 철저히 배우고 훈련해야 한다고 하시네요. 그것도 혼자서는 잘 되지 않으니, 자신을 어찌해 볼 수 없는 낯선 관계의 장 속으로 던져 놓을 수 있어야 ,다시 말해, 배움의 장으로 걸어 들어가 부딪치고 또 부딪쳐야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읽고 생각해야 늘 자기 모순을 확인하고 반성하는 차원에서 끝나버리고, 삶 자체는 결코 변하지 않는다고. 자주 들어 익숙한 말씀일테지만, 지금의 자기를 넘어서 보고자 한다면 새기고 또 새길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이이집>에 실린, ‘위진 풍도 · 문장과 약 · 술의 관계’를 다시 읽었는데, 역시 학자 루쉰과 사회 사상가 루쉰이 절묘하게 결합되어 있다는 생각을 금할 수가 없었던 듯합니다. 그리고, <삼한집>에서는, 루쉰의 문예 이론과 ‘좌경유치병’ 이론가들에 대한 공격적인 태도가 드러난 글 몇 편을 읽었습니다. 논쟁 양상이나 주제가 살짝 복잡해지는 듯하니, 한 번 더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고요, 못다 읽은 부분을 다음 시간에 읽을 예정이니 <삼한집>을 반드시 챙겨오셔야 되겠습니다. 참, 지난 시간에 못 읽은, 전인선 샘 발제문도 함께 챙겨오시구요.


돌아보니 벌써, 우리는 그의 책을 5권씩이나 읽어버렸네요. 1집 <무덤>의 첫 글 ‘인간의 역사’가 1907년 작이니, 그의 20여년의 삶과 글쓰기의 궤적을 따라온 셈이네요. 이로써 우린, 어쩌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린 게 아닐가 싶기도 합니다. 읽지 않았을 때와는 분명 다른 삶이 펼쳐질 수밖에 없을 텐데요, 앞으로 남은 여정에서도 또한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는 루쉰을 확인하려들기보다는, 이제껏 만나지 못한 새로운 루쉰을 찾아내려고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 달여 남았습니다. 끝까지 힘내서 가보자구요~~^^.


<공 지>


1. 읽어올 책 : 루쉰 전집 6권 중, <이심집(二心集 )>


2. 발제 : 최정옥 샘


3. 간식 : 홍명자샘 & 혜원이


4. 다함께 : 암송 및 공통과제


* 에세이를 위해서, 린시엔즈의 <인간 루쉰>을 읽으라고 하시네요. 두툼한 책으로 상 · 하 두 권입니다. 일찌감치 읽어나가는 게 좋을 듯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서너번 정도 수업이 남았으니, 가급적 결석하지 마시고 이번 토요일엔 다들 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전체 2

  • 2015-12-15 10:21
    - 간식은 홍명자샘과 혜원이입니다.^^ 따로 연락드릴게용~~♡♡
    - ★★ 지난 시간에 전인선샘 발제문을 못읽었어요-! (저희 조에서는 미리 읽었지만은^^';) 암튼 요번 시간에 읽을 것이니 다들 챙겨오셔요~~★★

  • 2015-12-15 00:15
    결석자에게 매우 매우 도움이 되는 친절한 후기, 고맙습니다!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