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탁마

1209 수업 공지

작성자
수경
작성일
2015-12-04 16:26
조회
584
가로등은 전구 한 알을 매달고 있고 전신주는 전선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다...  가로등과 전신주 사이의 차이를 말하는 건 아주 쉽습니다.
생물학적으로 말하자면 이는 두 개의 종을 구분할 근거로서의 종차가 되지요. 물론 이 종차는 하나의 유 안에서 합치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니까 종차란 결국 개체들 사이에서 추출하고 표상화한 어떤 동일한 것과 차이 나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특정한 것을 기준으로 이것과 저것은 같다, 얼마만큼 같다, 다르다, 얼마만큼 다르다... 이렇게 가르는  거.
그러므로 여기서는 차이를 존재케 하는 이것, 저것이 선재하게 됩니다.
서로 다르게 존재하는 이것과 저것이 있어야 그 사이의 멂과 가까움의 정도를 측정하는 일도 가능해지니까요.
범주 안에서 형상인을 재단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그래서 차이의 철학이라 (부른다고)해도 들뢰즈의 그것과 아주 다릅니다.
아마 이런 구도에서 앎이란 존재하는 것들 사이에 있는 그 차이들을 아는 것일 테죠. 우리는 알 수 있고, 또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실상은 그런 게 아니다.......라는 건데, 솔직한 말로 이것만으로는 그닥 신선할 것도 파격일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어떤 것도 하나로 규정될 수 없다, 우리는 변한다... 이런 말은 드라마 대사에서도 빈번히 듣는 말이잖아요. -_-
1장에서 들뢰즈가 '일의성' 개념을 통해 하는 말도 비슷해 보입니다. 개체화가 먼저다, 차이가 먼저다...
대체 왜 이게 무슨 말이며, 왜 이게 그에게는 중요한 문제였던 걸까요?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몇 주 전 강의로 돌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채운쌤은 관념론과 대비되는 것으로서의 (스피노자, 들뢰즈 계보의)경험론은 관념이 선재한다는 것에 반박하며 그에 대응해 신체의 철학, 신체로서의 존재론을 펼친다고 했(던 것 같)습니다.
특히 들뢰즈가 '초월론적 경험론'이라 말할 때 그것은 개체 이전에 대한 사유, 개체 이전에 개체가 가능한 장을, 개체화의 조건에 대한 사유를 의미한다죠.
그런데 그 조건을 사유한다는 것은 사실상 개념으로 재현 불가한 것을 사유하는 것, 개념으로 재현 불가함을 사유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들이 발생하는 그 장은 개념으로 재현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경험하고 인식하고 사유하는 모든 것들의 바탕이 되는 이 세계, 생명, 삶은 결코 하나의 표상으로 묶어두기 불가하다는 거죠.
이처럼  개념으로 재현 불가한 것, 바로 그것을 들뢰즈는 '차이'라고 개념화했습니다.
그의 논의에 따르면 차이는 개념 안에서 개념의 동일성에 기대어 추출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것은 개념의 차이와 차이의 개념을 완전 혼동하는 거라고 들뢰즈가 말하기도 했고요.

들뢰즈가 말하는 존재의 일의성을 이 맥락에서 이해해야 할 것 같습니다.
모든 개체들은 하나의 목소리 안에서 현존합니다.
존재 안에서 개체들의 모든 개체화가 이루어지고, 또 그런 개체들을 통해 존재는 언명될 수 있답니다. 그리고 개체화란 결국 매번의 차이들의 반복에 다름 아니라는.
존재는 매번의 차이입니다.
매번 기존의 것이 와해되고 전혀 다른 것, 아직 규정되지 않은 것, 규정될 수 없는 것이 괴물의 형상을 하고 나타난다고...
이와 맞닥뜨려 매번 그것을 새롭게 구성해내기, 일반화시키지 않고, 기존의 표상에 따라, 습관에 따라 규정하지 않고 사유하기, 이게 곧 반복이라네요. (우리가 생각하는 반복과 정말 다르죠;)
암튼 이렇게 반복할 수 있는 것이 존재의 역량(나눠드린 프린트물에서는 이를 '힘의 정도'라 표현하네요. 그밖에도 변용의 역량, 존재에 참여하는 정도, 라는 표현도 눈에 띕니다)이라는.

채운쌤에 따르면 윤리적 과제가 이 지점에서 도출된답니다.
도래한 이 차이를  어떻게  사건화할 것인가, 어떻게 사유할 것인가- 여기에서 개체가 얼마나 변용하는지, 자기 한계까지 도달하는지가 드러난다고요.
습관대로 사유하고 표상화해 모든 차이를 동일하게 만들 것인가, 아니면 착란적 괴물이 되어 적극적으로 자신을 구성해갈 것인가. (니체의 영원회귀 사유의 구도에서라면 그는 회귀라는 선별적 시험을  통과한 존재)

일의성 개념이 워낙 중요하고 또 이해하기도 어려워 담 시간에 한 번 더 1장에 대한 강의 진행됩니다.
다들 더 꼼꼼하게 읽어오시고요, 공통과제는 '일의성'을 중심으로 정리하시는 걸로.
나눠드린 프린트물도 반드시 읽어오시고, 가져도 오시고요.
후기는 락쿤쌤, 간식은 아리쌤+래미쌤께 부탁드립니다.
자, 그럼 다음 주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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