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탁마

12.23 절차탁마 후기

작성자
락쿤
작성일
2015-12-26 00:12
조회
736
2015. 12.23. 들뢰즈 <차이와 반복> 2.대자적 반복(3~6절)

 

이번 수업은 지난 시간(시간의 첫 번째 종합과 두 번째 종합)에 이어, 드디어 두둥~~! 시간의 세 번째 종합에 대해 알 수 있었던(!?), 감 잡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세 번째 종합의 시간이 앞의 두 종합과 무엇이 다른 걸까요? 그리고 세 번째 종합의 시간이 후루룩 흩어지지 않게 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왜 들뢰즈가 ‘수동적 종합’을 얘기하는 것일까요?

주체가 먼저 서는 ‘내가 생각한다’라는 코기토가 아닌 주체는 발생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 데카르트적 코기토는 주체를 맨 앞에 두는 철학이었다면, 칸트는 ‘생각하는 나’ 이기 전에 ‘감각하는 나’가 있었던 것. 주체가 되는 과정을 수동성으로 본 것이었다. 그러나 감각하는 자아는 시간 공간을 선험적 공간 속에서 다시 세계를 자기의 내적 감각을 가지고 표상화하였다. 표상화하는 과정에서 ‘능동적 주체’에 전제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니깐 칸트는 주체가 발생한다는 지점까지는 가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주체가 발생한다는 것을 본 것. 들뢰즈가 본 포인트는 바로 여기다. 그렇다면 주체란 나중에 결과한 것이다. 어떻게 주체가 구성되는가에서 시간이 핵심이었다.  데카르트는 오로지 코기토를 순간으로 환원했다. 그러니깐 시간을 몰아내고 있다. 칸트는 이러한 데카르트 지점에서 더 나아가기는 했지만 시간의 경험을 선험적으로 주어진 형식으로 보았지 그 이상으로 어떻게 시간이 모든 것을 발생하는가라는 발생적 시간은 보지 못했다.

 

(시간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필요한 듯 합니다. 다시 새겨 보아요!)

“The time is out of joint”(경첩; 운동하는 축) 이 시간의 축이 탈구되었다! “시간은 빗장이 풀려버렸다.” 여기서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 규칙적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예측불가능한 방식으로 인과적 시간을 존재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즉 반복된 시간이 탁 풀려버린 것을 말한다. 시간이 더 이상 운동에 종속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간은 계량불가능한 어떤 것, 점진적인 양적 변화와 질적변화를 동반한 것을 말한다. 여기서 변화는 운동을 통해 시간을 경험한다. 시간은 사물들이나 운동들과 관련하여 갖게 되는 양태들, 관계들이다.

그러니깐 시간은 변화하고 운동하는 모든 것의 형식이지 시간 그 자체는 아니다. 즉 시간이 운동에 종속되어 사유한다는 것을 벗어난다는 거다. 균열된 시간이고 탈구된 시간이다.
(우리는 시간하면 규칙적으로 미리 존재하여 돌아가는 것이라 생각하고, 그래서 시간에 쫒기듯 살아가지만 들뢰즈는 이런 시간을 말하지 않는다는 것, 감 잡았습니다.^^ )

 

시간의 첫 번째 종합은 습관적 반복이다. 모든 유기체를 가능하게 하는 원리이자 본능이다. 자기 생존을 위해서 습관적 반복을 하는 것이다. 두 번째 종합은 의식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 행위를 할 때 기억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래서 현재의 사건을 의미화하고 이렇다 저렇다 과거의 틀에서 해석을 가져온다. 즉 기억의 반복이다.( 첫 번째, 두 번째 종합은 아주 익숙한 시간들이죠.  여기까지는 무리없이~)

 

(자, 이제 시간의 세 번째 종합입니다. ^^ )

 

[세 번째 종합의 시간은 기억과 결별하는 것이다. 길 위에서 내가 마주한 것과 전면 그대로 받아드리는 것이다. 그래서 “너 자신의 기억과 결별하고 새로운 길 위에 설 수 있는가!” 이 말은 시간을 탈구하는 혁명의 시간이다. 점진적으로 완성해 나가는 시간이 아닌 것이다. 아이오네스적 시간(순수한 시간, 잠재적 차원의 시간)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시간을 오 작동하는 시간이다. 이때 사유도 발생한다. 네거티브한 시간은 어떤 생성도 발생하지 않는다.
변화하는 운동의 시간(크로노스 시간)을 깨는 미친 생성의 시간이다. 시간 속에서 탁! 의식이 전환된 순간이다. 그렇다고 자신이 생각하는 의지로서의 순간이 아니다. 다른 시간으로의 분기이다. 인연 조건의 장에 의해 시간의 관념을 역동화하는 것이다.
기억만으로는 시간의 탈구가 되지 않는다. 그저 현재의 표상으로 묶여버리고 만다. 현재의 운동은 기억과 연동되어있다. 계속 재현의 논리만 선다. 상에 종속되어버린다. 새로운 상황에 놓여도 동일한 상황을 만든다. 거기서는 절대 사유가 발생하지 않는다.
미친 생성의 시간이 되려면 오이디푸스가 마치 자신의 눈을 찌르고 길 위로 나온 것처럼 기존의 동일성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가령 망하고 실수하고 절망하고 여기서는 더 이상 시간에 종속되지 않는다. 빗장에서 풀려난 시간. 그래서 미래의 시간이라 하는 것이다. 생성의 미래시간 말이다.

아무 상 없이 자기 생 자체를 사는 것. 생이 나를 통해 기회를 주는 것. 생은 우리에게 우리를 통해 매번 기회를 준다. 그런데 우리는 그냥 흘려버리고 산다. 이렇게 흘려보내지 않는 것이 세 번째 종합의 시간이다. 그렇다고 절대적으로 차이나는 것, 새로운 것을 한다는 것이 아니다. 변하려고 주체가 애를 쓰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아무 상 없이 삶을 맞이 한다는 것이다. 외부에서 선 지식이 와야한다. 인연의 장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수동적 종합이다.]
 

욕망은 하나의 대상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대상:주체, 1:1로 짝지어지지 않는다. 자아는 8자형의 교차 지점에 있다.

다시 말해서 ‘현실적 대상들의 원환’과 ‘잠재적 대상이나 초점들의 원환’이 만드는 접합 지대에 있다. 자아는 현실적 대상과 현실적 대상 밖 사이에서 구성되는 것이다. 그러니깐 데카르트의 코기토처럼 한 점으로 출발점에 딱 하나로 주어진 것이 아니다. “잠재적 대상은 자신의 고유한 동일성을 결여하고 있다. 좋은 엄마, 나쁜 엄마는 두 개의 부분 대상이 아니라 같은 대상이다.”(230쪽) 아이들은 동일한 엄마의 표상을 갖고 있지 않다. 표상을 삼는 것은 어른들이다. 예를 들면 내가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 것은 그 사람의 앞면을 보고 좋아하는 것 뿐만 아니라 내가 모르는 그 사람의 잠재적 뒷면을 보고도 좋아하는 것이다.

잠재적 대상은 자신이 향하는 곳에 있으면서 있지 않는 속성을 지닌다.(233쪽) ...잠재적 대상은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서 언제나 자리를 옮긴다.(239쪽) 잠재적 대상의 자리바꿈 위장을 통해서 드러난다. 기억이 현재 행위 속에 펼쳐질 때 원래 그대로 드러나지 않는다. 가면을 쓰고 드러난다. 이 원리를 통해 반복은 현실 안에서 위장된 반복으로 태어난다. 반복은 근원적인 것과의 관계가 아니다.

들뢰즈에게 죽음본능은 자기 동일성을 깨는 것이다. 이 죽음은 현재의 죽음도 과거의 죽음도 아닌, 항상 도래하고 있는 죽음이다.(255쪽) 들뢰즈의 세 번째 종합은 무언가 생성하는 시간, 미래의 반복이라고 했다. 여기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것은 죽음이다. 즉 무아의 시간. 이전에 내가 죽고 내가 사는 것이다. 내가 아니다. 비인칭이다. 생성의 조건은 죽음이다. 매번 새로 시작한다. 크로노스의 시간은 이전의 내가 조금 변화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이지만 세 번째 종합의 시간은 매번 새로 시작하는 것이다.

두 번째 반복은 현재를 구성하는 무의식, 기억과 연관 맺으면서 우리가 사는 현재에서 우리가 살지 않은 현실과 연관 짓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해석한다. 하지만 세 번째 시간은 여기서 넘어서는 것이다. 들뢰즈는 이것을 ‘차이’라고 한다. 차이는 동일성으로 침입하는 빗장 풀린 시간이라 하는 것이다.

세 번째 종합의 시간은 내 앎의 상태가 신념 자체가 붕괴를 묵도하는 순간, 기존의 인과 관계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시간이다. 우리의 역량이 제대로 발휘되는 시간이다. (존재가 변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일테지요. 당연히 잠재성과 같이 가는 것이고요~)

필요한 것은 사유 자체 안에서 사유하는 활동을 분만하는 것이다. 이는 어떤 폭력의 효과 아래 일어나는 분만일 것이다.(257쪽) 이것이 죽음의 체험이다. 세 번째 종합은 근거나 정초 위에 서는 것이 아니다. 무-바탕을 말한다. 여기서 어떻게 사유를 발생하는가이다.

 

(뭔가 시간의 개념이 손에 꽉 잡히지는 않지만.. 그래도 가벼운 마음이 듭니다. 지난 수업 때, 채운샘께서 말씀해 주신 것을 메모해 두었던 것인데요. 이것으로 마무리해 봅니다.)
*미래에 대해 기대하지 않기. *나에게 일어난 사건에 좋고 나쁨의 관념 버리기. *삶으로부터 의도와 계획 버리기. *동일성에 대한 신념 제거하기. *모든 불확실성을 전면 긍정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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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12-26 12:22
    우워 락쿤쌤 덕분에 잠깐잠깐 딴 생각하느라 놓친 수업 내용을 이렇게 얻어 듣네요. 공지도 오늘 중 올라갑니다 +_+ / 모두들 수요일 송년회 꼭 오시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