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탁마

1.6 수업 공지

작성자
수경
작성일
2015-12-26 19:29
조회
682
다짜고짜 질문으로 시작해볼까요.
대체 왜 ‘종합’인가? 대체 시간의 종합이라는 말 자체가 뭔 소린가? 시간을 종합한다는 건가, 시간이 종합된다는 건가 @.@
공지를 쓰기 전 채운 쌤께 슬쩍 여쭤보았더니, 시간을 단선적이거나 인과적이지 않은 것으로, 수많은 요소로 이루어져 수많은 계열화가 가능한 것으로 사유함을 ‘종합’이라는 단어로 보여준다, 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_^;
이를 ‘시간의 텅 빈 형식’이라는 들뢰즈의 표현과 연결해 추리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들뢰즈는 우리 바깥에서 우리에게 선험적으로 주어진 것으로서의 시간 개념을 폐기하고, 그 대신 주체를 발생시키고 주체와 더불어 구성되는 시간을 사유하고자 했습니다.
이를 표현하는 개념어가 곧 ‘시간의 종합’인 듯해요.
시간은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다, 우리가 대상에 상응하는 행위를 구성하고 이를 습관으로 형성할 때 우리는 시간을 종합해 현재를 펼친다, 이때 비로소 개체에게는 즉자적 순간만이 아니라 세계가 존재하게 된다, 세계와 주체는 시간과 더불어 만들어진다… 이상의 설명을 아우르는 개념어가 바로 저 ‘종합’인가봐요.

지난 시간에는 세번째 종합을 중점적으로 살펴봤습니다.
들뢰즈는 세 번째 종합을 영원회귀, 긍정의 역량, 빗장 풀린 시간, 시간의 텅 빈 형식, 죽음본능, 평민의 죽음, 극단적 형상의 탄생 등 실로 다양하고 낯선 단어들로 설명하고 있는데요.
이 모든 것이 의미하는 바는, 세 번째 종합이란 존재하는 모든 것이 겪는 매순간의 생멸과 관련된다는 겁니다.
습관의 반복(첫 번째 종합)과 기억의 반복(두 번째 종합)으로 이루어진 일상 아래에서 이 모두를 가능케 하는 것으로서 존재하는 세 번째의 반복은 절대적이고 극단적으로 새로운 것의 반복이다…
우리가 동일자로 표상하는 주체 ‘I’란 실상 매번 깨지고 그때마다 매번 타자들이 찾아와 구성한 새로운 형상의 회귀에 다름 아니다… 라는.
그런데 이렇게 얘기해놓고 보면 궁금해지는 것이, 지난주 공부한 바에 따르면 시간의 첫 번째 종합은 유기체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 했었잖아요...?
그러니까 동물들도 본능에 의해 첫 번째 종합을 행한다는 거죠.
아메바든 기린이든 동물들은 주어진 매순간을 응시하고 수축해 현재를 구성한다는 점에서 과거에 대한 집착이나 미래에 대한 기대 없이 매순간을 산다고 봐도 될 것 같고요.
그런데 이렇게 되면 세 번째 종합과 첫 번째 종합이 같은 차원에 놓이는 것 아닐까요?
세 번째 종합은 인간이 유기체 차원의 삶으로 이동한다는 뜻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건가요?
하지만 동물들이 동일자에 구애됨 없이 풀 뜯어먹고 살 듯 그렇게 사는 삶,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게 영원회귀일 리 없을 것 같은데요;
여기서 채운 쌤이 강조하신 역량 및 윤리의 문제를 가져와야 할 것 같습니다.
동물이 인간처럼 기대도 후회도 하지 않을 수 있는 건 시간의 세 번째 종합 운운할 것도 없이, 계산과 예측과 회의가 가능한 뇌와 신경구조 등의 발달 정도가 상이하기 때문이죠.
반성적 사고와 재현에 능한 인간으로서는 첫 번째 반복 차원에서 머물 수가 없습니다.(만약 그렇다 할 수 있다면 그건 우리가 습관적이고 반응적 사유에 머물러 있다는 측면에서;)
인간의 뇌는 매순간 일어나는 자기 신체의 변용을 포착해 이를 연속선상에서 바라보는 데 능합니다. 잘 기억하고, 잘 이어붙이고, 잘 지어내지요.
그러니까 인간의 반복은 첫 번째 차원에서 머물지 않습니다. 과거를 수축하고 이완하면서 자신의 삶 전반을 구성해가지요.
자기 삶이 이러저러하다고 규정짓거나, 지금 일어난 일에 대해 이러저러한 해석을 내릴 수 있는 것은 모두 두 번째 종합 덕분입니다.
여기까지 이해하기는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문제는 세 번째입니다.
채운 쌤에 따르면 세 번째 종합은 역량의 문제입니다. 이를 감당할 수 있겠는가? 매순간의 죽음, 매번 찾아오는 낯선 얼굴, 끊임없이 반복되는 찢김의 시간을, 감당할 수 있는가?
같음과 유사함의 정도에 근거해 세계를 배열하고 자기 삶을 구축하는 건 인간이라는 종이 삶의 편의를 위해 택한 방식입니다.
세계는 익숙해져야 하고, 나도 나 자신에게 익숙해져야 합니다. 인간은 다른 동물들보다 훨씬 이를 잘해내지요.
하지만 동시에 인간은 동물들과 다른 차원의 종합이 가능합니다. 아니 가능하기 이전에 인간의 신체(국지적 자아들, 나르키소스적 자아)가 시간의 세 번째 종합을 원합니다.
들뢰즈의 표현대로 나르키소스적 자아는 기억 없는 건망증 환자… 그것들이 사는 세계는 주체의 역사가 아니니까요. 생명차원의 세계, 삶의 세계...
들뢰즈는 데카르트와 칸트에서 프로이트에게까지 이어지는 짝패 - 주체의 정체성과 재현적 사고를 이처럼 시간과 반복의 문제를 통해 전복하고자 했습니다.
욕망은 억압하는 게 아니라 물음을 던지고 생산한다. 자아란 나르키소스적 자아, 무수한 자아들이다. 반복은 억압이 아니라 삶 그 자체로부터 온다, 삶 안에 내재한 죽음이 반복이다 등등.
(어째서 세 번째 종합까지 설명을 마친 뒤 이야기가 다시 프로이트로 갔는지 이로써 조금 짐작할 수 있습니다. 프로이트의 혁명이 시작된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되 그 끝까지 가보는 작업이 2장 4절에서 시도되지죠. 쾌락, 억압, 타나토스 등 정신분석학의 용어를 들뢰즈가 어떻게 전유하는지 보고 있노라면 말문이 막힙니다.)
그러니 생명으로서 존재하는 삶, 이 동물처럼 살자, 는 말로 잘못 이해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세 번째 종합이야말로 습관적 사유/습관적 삶과 단절하는 것, 내가 가진 상과 내 의지처를 버리고 모든 불확실성에 대해 긍정할 수 있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시간의 세번째 종합에 이르러서야 시간은 운동에서 풀려나 미래를 구성하게 됩니다.

책을 다시 읽고 정리하면서 새삼 든 생각은, 시간의 종합이든 영원회귀든 내 상상력과 언어로 이렇게 저렇게 만들어보지 않고는 뜬구름 잡는 소리밖에 안 되겠다는 거였어요.
다들 저랑 비슷하실 것 같은데, 각자 하고 있는 공부, 읽고 있는 책, 봤던 영화 등등을 최대한 활용해봐야겠어요. 송년회 덕분에 한 주 방학인데, 다들 복습과 예습 열심히 해보셔요~

다음 주는 송년회, 가능하신 분들은 3시에 오셔서 함께 산책합시다~
그 다음 시간은 3장 사유의 이미지 읽고 오시면 돼요. 나눠드린 프린트도요~
후기는 락쿤쌤이 올려주셨으니 참고하시고요, 간식은 홍명자쌤+고지영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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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12-27 00:34
    단순히 많은 계열들을 사유한다는 게 아니라, 그런 계열들을 인식의 여러 능력들(감성, 상상력, 지성 같은)로 통일하는 것. 그것이 인식의 종합이라고 할 수 있음. 시간의 '종합'이라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겠지요. 수경 말대로, (한 주 쉬시는 김에) 각자의 언어로 시간의 세가지 종합을 꼭 정리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