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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3 수업 후기 및 공지

작성자
소담
작성일
2015-10-07 15:54
조회
851
숙제는 미루면 시간이 광속으로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이제서야 후기를 올립니다.

 

지난 수업에서는 <근대 중국사상사 약론>의 정치와 도덕의 계몽 부분, 루쉰 전집  <무덤> 뒷부분과 <열풍>에 대해서 토론했습니다. 내용적으로는 현옥샘의 발제문에서 나왔던 '옛 것과 새로운 것', '무리와 개인'을 중심으로 진행했습니다.

<거울을 보고 느낀 생각>, <수염에서 이까지의 이야기>, <수감록 35> 등에서 루쉰은 국수나 복고 따위를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그렇지만 그가 전통을 무조건 배척하거나 신문물에 대해 전면적으로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자신을 '다리'라고 표현한 루쉰은 자신에게도 전통이 박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전통에 대한 애증의 감정을 버릴 수 없었던 루쉰이 국수보존자들에게 비판을 멈추지 않았던 이유는 당시 중국의 상황과도 관련이 있었습니다. 당시 중국에서는 물질적인 힘을 가진 서양 국가들에 의해 새로운 문물이 들어오면서 구정치·구도덕과 서양의 새로운 문명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전통을 내세우던 사람들은 중국의 문명을 통해서 서양을 물리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문명 간의 경쟁에서 패배한 상황에서 물밀 듯이 들어오는 서양 문물을 수용하지 않고 옛 것을 고집한다는 것은 현실에서 눈을 돌리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눈을 크게 뜨고 볼 것에 대하여>에서 이런 국수보존을 '오랫동안 방에 갇혀 있는 늙은 나리를 여름 정오의 뙤약볕에 놓아두거나 규방에서 나온 적이 없이 곱게 자란 아가씨를 광야의 어두운 밤으로 끌어낸다면 대개는 눈을 감고 잠시 자신의 남은 옛 꿈을 지속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라고 표현했습니다. 루쉰은 바로 이 환상을 깨뜨리고 현실을 정시하라고 말했습니다. 전통을 붙잡고 늘어져 있는 게 눈앞의 패배를 바라보지 못하고 꿈만 꾸는 행위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무리와 개인의 측면에서 루쉰은 대중을 '노예'라고 표현합니다. <수감록 38>에서 나라의 영광스러움 뒤에 숨어 공격을 당하더라도 자신은 피해 버리는 군중들을 비판합니다.  <폭군의 신민>의 폭군보다 포악한 신민들도 그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그들은 불만을 품더라도 자신을 둘러싼 상황이 바뀌기만을 기대하고 자신 스스로가 변하고자 하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루쉰은 이것이 주인이 바뀌기만을 기대하고 자신이 노예에서 벗어나려는 생각은 하지 않는 다고 말합니다. 심지어는 노예가 되지 않은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종교나 다른 대상에게 노예로 삼아달라고 부탁하기까지 합니다. 루쉰은 그런 군중들이 자신이 노예 근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내면적인 용기와 이성을 통해 자신을 바꾸라고 말합니다. 외부가 아닌 자신의 내면을 바꿔야만이 노예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루쉰의 본질적인 혁명이고 이것이 퍼져나가 세상에 혁명이 이루어지기를 바랐다고 하셨습니다. 공교롭게도 이런 주장은 그 과거 중국의 상황에 특화된 것이었지만 지금까지도 효력을 발휘하고 있는 듯 합니다.

이 두 가지 외에도 생각해 볼 거리를 몇 개 더 주셨는데, 첫 번째는 계몽과 지식인의 의미입니다. 이전부터 계속 계몽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라고 하셨는데, 이번 강의에서 루쉰 시대의 계몽의 의미에 대해서 설명해 주신 것 같습니다. 과거에는 지식이 대중화되지 않아 지식의 양의 많고 적음으로 지식인이 판가름났습니다. 따라서 소수의 엘리트들이 다수의 민중들에게 지식을 전달해주는 식으로 계몽이 이루어 지는 게 대부분이었습니다. 량치차오와 천두슈는 이론과 학문을 통해 서양 제도와 가치를 설파했습니다. 하지만 루쉰은 문예를 무기로 들고 나왔는데, 진리를 추구하고 보편적인 이론화를 목표로 하는 학문과는 달리 문예는 어떠한 답도 제시해 주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대신 문예를 통해 계속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고 합니다. 이 점은 이번에 루쉰의 소설을 읽어보면서 찾아봐야 할 부분일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각종 매체들을 통해 지식이 만연한 현대 사회에서는 지식의 양으로는 지식인을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여기서 21세기 지식인과 계몽이 무엇일까라는 의문이 등장합니다. 두 번째는 '진화'의 의미입니다. <수감록 49>에서 루쉰이 바란 진화는 스펜서의 사회진화론과는 또 차이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흥겹게 나아가고자 한 루쉰의 진화의 의미란 무엇일지. 마지막으로 <근대 중국사상사 약론>에서 나온 루쉰의 희망은 단순히 인류 사회에 대한 것이라고 말하기에는 모순이 있는데, 루쉰에게 희망과 절망이란 무슨 의미인지. 어느 것이든 만만찮은 주제인 것 같은데 2주 안에 답을 찾아올 수 있는가도 의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처음으로 발제도 해 가고 후기도 써 보게 되었습니다만 어느 쪽이는 한 줄을 쓰는 데도 시간도 노력도 많이 드는 것 같습니다ㅠ 앞으로 익숙해지는 데 얼마나 걸릴 지... 그래도 한편으론 이제 시작이라는 느낌이 들기도 해서 다시 각오를 다지게 되기도 합니다. 다음 수업은 한 주(10월 10일) 휴강하고 그 다음주에 2권 전체를 읽고, 그 중 소설 한 편을 골라 분석해 오는 것이 공통과제입니다.

 

<공지>

1.수업 날짜 : 10월 17일

2.읽을 책  : 루쉰 전집 2권 <외침>, <방황> 전체

3.발제 : <외침> 정옥샘, <방황> 태욱샘

4.간식 : 정화샘, 은남샘
전체 2

  • 2015-10-07 16:39
    오! 게시판에 새 목소리가 올라오니 좋군요오오~~~ㅎㅎㅎ
    열공합시당-!

  • 2015-10-12 08:59
    엑기스만 모아 정리를 아주 잘 하셨네. 정리하면서 공부가 많이 되었을 듯~~~. 소설도 열심히 읽고 와서, 루쉰이 인간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해서 함께 고민하고 토론해 보도록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