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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2후기와 9.19 공지

작성자
요순
작성일
2015-09-17 04:21
조회
953
(반장님 왈) "성실하고 빠릿하게 생긴" 깜둥이가 뒤늦게, 그것도 '숙제방'에 올린 후기를 채운이 퍼다 나릅니다.
(죽지도 않고 살아온) 김반장님의 덜떨어진 안목과, 이름값을 전~혀 못하는 요순의 게으름이라뉘.... 이것도 동사서독의 운명이겠지요. 쩝.

안녕하세요. 깜둥이입니다~ 후기가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ㅠㅠ
지난 시간에는 왕스징의 <루쉰전>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공통과제>
무쇠 방 이야기가 많은 선생님들을 감동시켰습니다. 모두 나갈 수 없는 무쇠 방 안에서 자고 있을 때, 깨어난 나는 그 사람들을 깨워야할까요? 깨운다면 사람들이 고통 속에서 죽어갈 수도 있을 텐데 말이죠. 그러나 루쉰과 그의 친구는 거기서 희망을 봅니다. "아닐세. 몇몇 사람이 깨어났으니 그 무쇠 방을 무너뜨릴 수 있는 희망이 전혀 없다고는 말할 수는 없네." 그럼 우리 삶에서 깨어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또 희망은 무엇일까요? 루쉰이 살아온 것에서 그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봉건제와 제국열강들이 루쉰에게 던지는 불편함과 굴욕을, 그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살면서 느꼈던 생각과 감정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은 것이죠. 루쉰은 주어진 환경을 온몸으로 겪고 할 일을 본인이 선택했습니다. 덕분에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은 글쓰기를 통한 폭로(봉건제와 제국열강, 지식인들의 위선 등에 대한)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그렇게 글을 썼나봅니다. 그의 삶에서 보건대, 깨어있다는 건 주어진 환경에 있을 때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들을 다르게 보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발견하는 것이 희망 아닐까 하구요.
정옥샘은 죽을 걸 안 다음에 그가 한 일이 '여전히' 글쓰기라서 놀랍고 감동받으셨답니다. 죽음을 앞둔 걸 알게 되면 '내가 더 아등바등해서 뭐하나'하고 삶을 허무하게 느낄 수도 있고, 편안하게 남은 생을 휴식으로 마무리할 수도 있을 텐데... 루쉰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의 생 마지막 3년은 앞의 6년 동안 쓴 글자 수에 맘먹는 분량의 글을 생산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어떤 것도 그의 묵묵한 글쓰기를 방해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어떤 이념이나 사상도 사는 것을 앞서갈 순 없습니다. 태어났기에 사는 거고 살아지니까 사는 것 같아요. 그런데 여기서 산다는 것은 태어나서 살아지니까 막 사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어떤 이념이나 사상으로 자신의 삶을 환원하는 것이 아닌, 일순간 드는 충동적인 감정에 자신의 삶을 내맡기는 것이 아닌 상태입니다. 본인의 매 순간을 강하게 느끼고 그 순간을 살아내는 것을 소중히 여기는 상태입니다. 루쉰은 그랬기에 미래에 대한 망상적인 기대로 뻘짓(?)을 하지도, 절망으로 허무함에 빠지지도 않고 죽을 때까지 글을 쓰며 살아낼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발제>
저는 <루쉰전>의 내용을 요약하는 식으로 발제했습니다. 왕스징은 루쉰이 민중을 위해 한평생 살았다고 봤습니다. 왕스징의 생각이 이상하다 싶으면서도 그것에 대해서 의심을 깊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루쉰을 읽어낼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지점이었습니다. 의학을 공부하던 사람이 민중을 위해 하루아침에 문학도가 될 수 있을까요? 민중을 위해 죽기 직전까지 미친 듯이(?) 글을 써낼 수 있을까요? 어떤 사람이 여태껏 비슷한 일을 하며 살아오다가 갑자기 전혀 다른 일을 할 때, 여기서 불연속적인 지점이 발생합니다. 불연속적인 지점을 만들어내기까지 분명 루쉰은 여러 생각과 감정에 휩싸였을 겁니다. 우리는 루쉰이 아니기에 그의 생각과 감정을 그대로 알지 못합니다. 대신 우리의 생각과 감정으로 그 인생의 불연속적인 부분을 이해하는 것이지요. 다른 평전을 읽을 땐 여러 생각과 감정으로 이런 지점을 읽어봐야겠습니다.
또 하나. 저는 발제문에 희망, 핍박과 같은 단어를 별 생각 없이 마구 써댔습니다. 글을 쓸 때마다 지적받는데 이번에도 역시...(ㅠㅠ) 각 단어가 저에게 어떤 의미인지 구체적인 상황 안에서 생각해야 하겠지요. 철학을 공부할 때 구체적인 맥락과 상황이 없으면 나중에 붕 뜬 관념 덩어리만 가져간다고 하셨습니다. 글을 아무리 열심히 써도, 이렇게 붕 뜬 단어들만 나열하면 공부하는 것이 아니겠구나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케우치 요시미가 쓴 <루쉰>으로 왕스징과 다르게 루쉰을 봤습니다. 왕스징은 그가 민중을 위해 살았다며 그의 정치성을 엄청나게 띄웠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는 어떤 당파나 사상에 귀속되지 않음으로써 정치를 거부했습니다. 그의 사유가 어디에 환원될 수 있는 차원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죠. 사회 속의 자신을 봄과 동시에 자신이 속해있는 사회를 보면서 사회와 자신에게 동시에 발견되는 여러 모순을 짚어냈습니다. 또 삶에 어떤 망상적인 기대도, 절망도 하지 않고 살아내는 것을 온몸으로 느꼈습니다. 어디에 속할 필요도 없었고, 반대로 어디에 속했다면 이런 사유를 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의 글은 그의 이런 생각의 결과물이었을 테니, 여러 생각과 감정을 감싼 글들이 어찌 다른 사람들에게 와 닿지 않을 수 있었겠어요. 그의 글이 여러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뜻으로 정치적이지 않아서 ‘더 정치적이었다’고 평하나 봅니다.
도덕과 관습, 주류의 시선과 권력에 속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과 삶에만 집중했던 루쉰. 앞으로 읽을 그의 글을 통해 환경과 삶에만 집중하여 사고하는 것은 어떤 상태인지, 그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보겠습니다.

<공지>
세미나 시간 변경: 1시 30분!!!(무한 강조!!!)
읽을 책:  다케우치 요시미 <루쉰> 3장
<루쉰전집1-무덤>의 ‘다시 뇌봉탑이 무너진 데 대하여’(294쪽)까지
<무덤> 서문 '제기'
<무덤> 뒤에 쓰다
발제: 은남샘
간식: 요순, 옥상샘
전체 2

  • 2015-09-17 08:27
    아니 어쩌자고~~~ 이 바닥에서 찍히면 오래가는 거 눈치 챘을 텐데... 담주에 제대로 해서 오명을 씻고 새사람으로 거듭날지, 이후로도 오랫동안 눈총과 입질을 감당하며 살지... 택일하시길~~ㅋ 암튼, 수고하셨네, 요순님.

  • 2015-09-17 14:11
    꼭 말할 것은 없지만...... 나도 발제여;;;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