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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 읽기 공지(10.3)

작성자
woogi31
작성일
2015-09-24 21:30
조회
842

이번 주 수업 없다고 느긋하게 한 며칠 게으름을 폈더니 그새 목요일이 돼버렸네요. 다들 이 틈을 타 그나마 여유를 즐기시지 않을까 싶네요.^^


지난 주, 드뎌 루쉰의 글을 읽기 시작했는데요, 출발이 어떠셨는지요. 전 첫 시간 토론과 강의 과정에서, ‘어이쿵, 더 열심히 읽고 준비했어야 했어, 이러다 루쉰과의 만남 또한 어쩡쩡하게 끝나버리고 말겠어’하고 속으로 자책이나 탄식 같은 걸 여러 번 했더랍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앞으로 어떻게 루쉰의 텍스트를 읽어나가야 할지에 대해서도 감을 잡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토론이나 강의 때 나왔던 얘기들을 중심으로, 키워드가 될 만한 것들을 정리해 볼게요.


먼저, 루쉰의 글들을 단순한 계몽사상이나 민족주의 등과 같은 특정 ‘이념’이나 ‘주의’로 환원시켜 버릴 수 없게 만드는 ‘그 무엇’, 즉 그의 글쓰기의 시공간을 끊임없이 잡아 흔들었거나 진동시켰을 그것의 정체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루쉰 이해의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이라는 점. 자신의 글쓰기와 삶을, 매순간 자기 앞의 무덤을 파면서 나아가는 일이라 말하고 있거니와, 그의 글에 드러나는 어둠과 적막, 허무와 비애의 이미지들을 보면 확실히 그는 단선적인 접근이나 가시적인 그물망으로 포획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것이죠. 다케우치 요시미는 그같은 ‘무덤 의식’에서 문학가 루쉰의 맨얼굴을 확인할 수 있다고 보면서, 일견 유사해 보이는 ‘양계초’ 식의 정치 소설이나 계몽 문학 류와는 아예 출발 지점이 다르다며 선을 분명히 긋고 있기도 합니다. 그의 전기를 통해서도 확인했던 바, 그의 생애는 무수한 ‘주의자’들과의 관계 속에서 펼쳐지는데, 그럼에도 그는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채로 오로지 그 자신을 살아갔던 사람이었습니다. 유일한 루쉰주의자였다고나 할 수 있을까요. 이같은 그의 특이성과 이질적인 지점들을 제대로 이해하긴 위해선, 텍스트나 말을 통해 가시화되지 않은 ‘無와도 같은 그 무엇’에 주목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듯합니다.


다음으로, 근대 전환기 지식인으로서 자기 시대의 문제와 모순을 대하는 그의 태도입니다. 당대의 많은 지식인들이 그러한 것들을 자신의 문제와 무관한 것처럼 대상화시켜 바라보고 ‘반응적인’ 대안들을 던져 놓은 데 반해, 루쉰은 자신이 바로 모순의 한 복판에 있다는 것을 고통스럽게 인정한 바탕 위에서 자기 시대의 문제들과 대면하고 맞서 나가고자 했다는 점입니다. 스스로 극복하지 못했거나 극복할 수 없는 지점들에 대한 솔직하고도 뼈아픈 응시야말로, 그의 글이 우리에게 주는 호소력과 설득력의 근원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와 관련해, 서구의 과학과 민주주의를 받아들이는 그의 태도 또한 눈여겨 볼만한 점인 것 같습니다. 당대의 많은 지식인들에게 그랬을 것처럼, 이 양자는 위기와 혼란 상황에 처한 중국의 현실을 타개해 줄 최선의 해결책으로 루쉰에게도 받아들여진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는 그것들을 보편적인 이념이나 절대지로 받아들여 그것들에 치우치거나 함몰되어버리지 않고, 자기 시대와 실리나 필요의 관점에서 비판적이고 능동적으로 수용하고자 하는 놀라운 균형 감각 같은 것을 보여줍니다. 물질문명이라는, 과학의 화려한 외피가 아닌, 그 토대가 되는 합리적인 세계관이나 윤리적인 가치의 문제들을 강조하는가 하면, 민주주의가 가져올 다수의 횡포나 선동 정치의 폐해에 대해 강경하게 맞서 경계합니다. 혼자 <과학사교편>이나 <문화편향론>을 읽으면서는, 당대의 신사조를 바라보는 계몽가 루쉰의 시각이 깔끔하게 정리된 글이라고만 이해하고 넘어갔는데, 토론을 하고 강의를 들으면서 온갖 이념과 주의주장들이 격돌하는 상황에서 이같은 균형 감각과 시대 의식을 굳건히 유지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이었을지 새삼 깨닫기도 했답니다.


또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그가 많은 글들을 통해 명시적으로 드러내고 있기도 한, 소위 ‘중간자 의식’이라고 하는 것의 성격과 정체입니다. 빠른 속도로 변하고 움직이는 혼란의 시대에 스스로의 역할을 두 세대를 이어주는 교량으로 규정하고 그에 맞는 책임감 있는 태도와 행동을 보여온 많은 선각자들의 일갈에 우린 익숙합니다. “청년들이여, 나를 밟고 나아가라!”는 식의. 여기에 더해, 루쉰의 경우 남다른 데가 있는 것이,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결국 중개인이고 다리일 수밖에 없다는, ‘無我’일 수밖에 없다는 엄연한 자연적인 진실을 그의 글쓰기와 삶 전체를 통해 빈틈없이 실현해 보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당연히 이같은 점은 그의 글과 삶에 독특한 색조와 아우라를 부여하는 중요한 요소이기도 할 테고요.


마지막으로, 잔인하다 싶을 정도로 도저한 ‘현실주의’를 빠트려서는 안 될 듯하네요. 전 ‘집 나온 노라’가 정말 뜨겁게 읽혔는데요, 읽고 또 읽어도 정말 대단하다 싶네요. ‘그래, 네가 각성이란 걸 하고 꿈에서 깨나서 집을 나왔어. 좋아, 좋은데, 앞으로 너 어떻게 살 건데?’하는 루쉰의 목소리가 쩌렁 울려퍼지는 것 같아요. 먼 훗날 그 언제가 아니라, 지금 당장 어떻게든 살아가야하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현실주의를 낳았을 텐데요, 이 앞에선 그 어떤 아름다운 꿈이나 이상도 다 낯을 못 들고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니, 그가 말년에 계급이 어떻고 사회주의가 어떻고 하지만 끝내 맑스주의자가 될 수 없었을 거라고 한 채운 샘의 말씀에 어찌 깊이 공감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요?


내용 정리한답시고, 책을 쭉 훑고 있는데 읽을수록 쉽지 않은 텍스트란 생각이 듭니다. 너무 다양한 의미와 울림을 담고 있어서 더욱 그런거 같기도 하고요. 어쨌거나 우린, 자기와 우리 시대의 어떤 지점을 루쉰을 통해 볼 것인가하는 문제의식을 끝까지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루쉰을 대상화해버리거나 당대의 시대적인 맥락을 무시하고 손쉽게 자기의 문제로 가져와 버리는 누를 범하지 않고, 루쉰의 문제의식과 나의 문제의식을 뜨겁게 결합시켜가며 읽어나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주 공지>


1. 읽을 책 : -<루쉰 전집 1권> 끝까지 (‘무덤’ 나머지와 ‘열풍’ 전부)


                    - <근대중국사상사 약론> 프린트 분


                   - <루쉰 풍파> 프린트 분


2. 발제 : -<루쉰 전집 1권> : 현옥 샘


              -<근대중국사상사 약론> : 소담


3. 간식 : 지은 샘과 미노 군(?)


4. 다함께 : 공통과제 및 단락 암송


어떤 사람들은 팔자 좋아 바다 건너 유람 즐기겠지만, 많은 분들이 후라이팬 앞에서 허리도 못 펴고 열심히 전이나 굽거나, 저처럼 천만리 먼 길을 차안에서 시달리는 분들 많으시리라 싶습니다. 어쨋거나 즐겁고 풍성한 명절 보내시고, 다음 주에 밝은 얼굴도 다들 뵈옵도록 하지요. 조만간 우리에겐 또 한 하루 휴가(10.10)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옵소사^^. 안녕~~~.

전체 6

  • 2015-09-24 22:26
    저희는 록키에 있습니다. ㅋㅋ 이제나저네나 반장님의 공지만을 기다렸는데, 드뎌 올라왔군요! 록키는 말로 표현이 안 되는 장관입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올 한가위만 같으면 좋겠네요!ㅋㅋ 모두들 고생하셔요. 서울에 가서 뵙겠습니다~

    • 2015-09-25 12:37
      지옥에 여행을 가셔도 감시의 시선을 늫치 않으실 분! 록키의 장관이라니, 상상이 안가네요 기운 많이 받고 돌아오시길요~~~^^

  • 2015-09-24 22:30
    저는... '공부가 먼가여' 모드입니다^^;;ㅎㅎㅎ 실컷 놀고 걷고, 잘 지내다 돌아가겠습니다-!

    • 2015-09-25 12:39
      거기 한번 다녀오면 앞으로 한 10년은, 여행이 몽가여? 모드로 살아가야 할 테니, 실컷 놀다 오쇼. 나도...걷 고 싶 다

  • 2015-09-25 09:38
    반장님도 학인들도 추석 잘 쇠시고요 ^^
    보름달을 보며 고민좀 해 보아야 할듯요..

    • 2015-09-25 12:42
      먼 고민? 내년에도 x씨 종자들하고 함께 추석을 보낼지 말지? ~~~ㅋ 샘도, 내려가고 손님치루고 하시느라 고생 많으시겄네요. 명절 잘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