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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 주역수업(12.19)을 듣고

작성자
몽양
작성일
2015-12-24 17:49
조회
927
역시 공부는 항심입니다. 사정이 생겨서 지난 주 수업을 한 번 빠지고 났더니(중간에 공강까지 겹쳐서 2주 연속 쉬어버리지 않았겠어요) 감(언제 생겼었는지도 몰랐던 감이!)을 잃은 듯 수업 시작하고 난 후 몇 분을 이리저리 헤맸습니다. 우샘께서 사(師)괘를 지난번에 이어서 요번에 다시 처음부터 봐주셨지요. 그렇지만 낯이 설어서 그런지 딱히 못 알아 듣겠거나 너무 어려운 구절이 있었거나 한 건 아니었는데도 평소의 ‘아아!’ 하는 감동의 순간 같은 게 없었어요. 밍숭맹숭 필기만 하고 지나가 버렸습니다. (우샘, 죄송하여요ㅠㅠ) 내심 서로 다른 괘니까 한 주 정도 빠져도 크게 상관은 없겠지, 했었는데 중간에 맥락을 놓치지 않는 게 중요하다는 걸 요번에 제대로 알았어요. 아아, 역시 공부는 꾸준히 하는 겁니다. 빠지지 말고 잘 이어서 들을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아무튼, 그리하야, 처음부터 함께 들어서 낯설지 않은 관계를 시작한 이번의 괘는 ()! 비괘는 자체가 길(吉)해요. ‘비는 길하니’ 로 시작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어요. 사람들이 서로 사이가 좋고 가깝게 잘 지내서(人相親比) 저절로 길한 도(自爲吉道)가 된대요. 근원으로 돌아가 점을 치든(原筮), 중요한 사안이라 두 번 점을 치든(原筮) 군주답고(:有君長之道), 일정히 오래 갈 수 있고(:可以常久- 여기서도 꾸준히 오래가라는 말이 나오네요!), 정도를 얻으면(:得正道) 허물이 없다(无咎)고 해요. 저는 여기서부터가 참 좋았는데요. 사람이 혼자서는 스스로의 안녕을 보장할 수 없어서(人之不能自保其安寧) 와서(모여서) 서로 사이좋게 지내는 것을 구하게(來求親比) 되는데요. 그래서 안녕하지 못할 때엔(當其不寧之時) 마땅히 빨리 사람들에게 도움을 구해야(宜汲汲以求比) 해요. 스스로 해결하려고 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비를 구한다(求比)’는 표현이 재미있죠. 여기서 ‘비(比)’는 사이좋게 가깝게 서로 도우며(輔) 지내는 거예요. 이럴 때 너무 늦거나 뒤처지면 아무리 장부라 해도, 그러니까 스스로 뜻이 강한 자라 자부한다고 하더라도 흉하게 된다고 했어요(後夫凶). 비괘의 시대에는 따로 혼자 무엇을 하기 보다는 얼른 빨리 모여서 살아야 한다는 거죠. 이럴 때 외따로 떨어져 있으면 일이 잘 안 풀린다고 해요.

 

저는 저의 상황 – 공부를 하리라 마음만 먹은 채로 속절없이 흘러 가버린 몇 년의 세월 - 이 생각이 났어요. 공부를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하더라도 이런 저런 상황들에 떠밀려 이리저리 산만하게 흘러다니다 보면 어느 새 공부는커녕 책 한번 펴기도 쉽지 않았거든요. 어찌 시작을 했다고 해도 아무런 도움도 강제력도 없이 강한 의지를 갖고 지속적으로 습관을 만들어 나가는 건 더 쉽지 않았겠죠. 혼자 공부해서 뭔가 깨달을 만한 지혜가 없다는 건 둘째치고요. 지금 우리가 매주 정해진 시간에 모여 같이 공부를 하고, 그 전후로 각자 일정한 분량의 책을 읽고, 과제를 하고, 낭송을 하고, 시험을 보고, 후기를 올리고, 이것 중에서 빼먹거나 못하는 거에 대해 구박도 받고, 벌금도 내고.. 한때는 낭송실패나 지각결석에 대한 비싼 벌금을 가지고 가난한 백성들의 고혈을 빠는 독재에 반대한다며 보이콧, 쿠데타 같은 걸 계획하거나, 꼬박꼬박 벌금을 잘 걷어내는 똘똘한 총무에게 정권의 멍멍이라며 거센 비난을 한 적도 있었지만! 사실은 요런 것들이 있었으니 지금 이만큼, 여기까지라도 올 수 있었던 게 아닌가요. 우리가 어찌어찌하여 벌써 비괘를 읽고 있는(벌써 261페이지!) 것도 그렇고요. 저는 요 1년을 되돌아 볼 때, 남편이 새로 몸과 마음을 추슬러서 간신히 직장을 구하고, 다시 혈관이 막혀 3개월 째 직장을 그만두고, 침과 뜸으로 남편을 정신없이 치료하고, 그러다 수술을 보류하기로 결정하고 소송을 시작하고, 신체감정한다며 병원을 들락거리고.. 이런 저런 크고 작은 사건 속에서 넋을 놓고 정신이 나갔던(?!) 순간이 참 많았어요. 어쩌다 보니 다 지나갔는데(물론 지금도 진행중이긴 하지만), 글쎄요. 그래도 제 원래의 모습처럼 위아래로 크게 날뛰거나 흔들리지 않고 비교적(!!) 안정되게(?), 비교적(!!) 별 탈 없이 조용히(?) 지나갈 수 있었던 것도, 그 정신없는 와중에라도 책 읽고 과제하고 출석하지 않으면 계속 혼나는 이상한 모임이 있어서였던 것 같아요. 그때는 얼마나 짜증이 나던지요. 그리고 나 좀 혼자 있게 내버려 두라고 할 때마다 또 얼마나 끈질기게 들러붙던(!)지요. 근데 이럴 때 뒤처졌으면, 혼자 외따로 떨어져 있었으면 저는 어쩔 뻔 했나요. 그 땐 그렇게 얄밉고 이해할 수 없었던 채운샘께 지금은 무척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흠흠.

 

아무튼요. 혼자서는 약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같이 모여서 잘 지내고 서로 도와가며 조화를 이룬다는 비괘의 첫인상은 제겐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였습니다. 여기에 하나 덧붙이자면, 비괘의 기본은 ‘부(孚)’, 믿음, 진실성, 신의입니다. 사람들 사이에 진실성과 믿음이 있어야 서로 친하게 지내고 도울 수 있겠죠!

아직 비괘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흥미진진한 다음의 이야기는 이번 주 토요일에 이어집니다.  각 효의 이야기도 재미있는 게 많고요!

모두 성탄절 즐겁게 잘 보내시고, 건강한 모습으로, 각자의 기대를 가지고 토요일날 뵙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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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12-25 11:35
    뭔가 연말스러운 글입니다^ 0 ^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좀 식상한 구절이지만, 그래도 '부(孚)'괘 좋네유ㅎㅎ 토욜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