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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기다리기' - 주역수업(11.28)을 듣고

작성자
재원
작성일
2015-12-03 17:34
조회
880
제 호(號)가 되어 버린 몽괘(蒙卦)에 이어서 지난주엔 수괘(需卦)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수괘는 여러모로 감동적인 내용이 많이 담긴 멋진 괘였어요. 일단 몽괘(蒙)를 이어서 아직 어린(幼穉) 만물(物)을 먹이고 기른다(養, 飮食之道)는 뜻을 가지고요. 수천수(水天需), 그러니까 하괘는 건괘(乾), 상괘는 감괘(坎)로 이루어져 있는데, 따라서 하늘 위에 구름이 있는 상으로 그려질 수 있어요. 아직은 하늘 위의 습윤한 수증기일 뿐이니까 비가 되어 만물에 고루 내릴 수 있을 때를 바라고 기다리는 상태라고 했어요. 나아가려는 성질(進)을 가진 건괘(乾, 健)가 험한 상황(坎, 險)을 만나 막혔으니 일단은 성질을 죽이고 기다릴 밖에요. 어리고 약한 상태에서는 제대로 자라기 전에는 어른의 몫을 해낼 수도 없고요. 그러니까 결국 수괘의 키워드는 ‘기다림(須, 待)’이 됩니다.

우샘께서 지금의 수(需)의 시대라고 하셨어요. 많은 젊은 청년들이(구름이) 비가 되어 내리기를 기다리고 있는 시대라고요. 그리고 기다림에는 철학이 필요하다고 하셨죠. 그런데 이 수괘가 바로 ‘어떻게 기다릴 것인가’, 즉 ‘어떤 자세로 무엇을 하면서 기다릴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일단 ‘때를 기다리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는 것이에요. 때도 되지 않았는데, 자라지도 않았는데 그냥 나서면 위험에 빠지거나 다치게 된다는 거예요. 강을 건널 준비가 안 되어 있는데 달려들었다가 물귀신이 되기 딱 좋은 것처럼, 일단 강을 건너려면 튼튼한 배를 만들어야겠죠. 즉,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인데, 여기선 그 준비의 전제 조건으로 제일 먼저 ‘부孚를 가질 것(有孚)’를 말해요. ‘내면을 꽉 채워야 한다(充實於中, 中實)’는 말인데, 이 ‘부(孚)’라는 단어는 ‘내적 진실성’이라는 어려운 말로 번역이 돼요. 주자샘은 믿음이 마음속에 있는 것(信之在中者)이라고 설명하셨죠. 사실 분위기는 어렴풋이 알겠지만 정확히는 잘 모르겠어요. 수괘에 대해서 공부하면서 조금씩 ‘아, 부가 이런 것인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아무튼 ‘부’가 있으면, 빛이 나고 광대해지고 밖으로 확 드러나서 형통해지고 정하고 길하게 된다는(有孚 光亨貞吉), 이런 온갖 좋은 글자들이 다 붙을 수 있게 되고요. 또 큰 강도 건널 수 있게 된다(利涉大川)고 해요. 자기가 충실한 존재가 될 때까지 잘 기다렸다가 나아가면 상처입지 않고 제 역할을 잘 할 수 있게 된다는 거였어요. 그럼 충실한 존재가 되려면 어떻게 하나요. 군자가 어떻게 하는지를 보아서 우리 같은 범인들이 그걸 따라할 수 있겠지요.

물론 군자도 기다림의 때를 피할 수 없지 않겠어요. 그럼 어떻게 기다리실까요. 군자는 이럴 때 음식연락(飮食宴樂)하시죠. 잔치를 벌여 즐기십니다. 오예, 저는 다른 건 몰라도 ‘음식연락’하는 것 하나는 아주 잘할 수 있어요! 이렇게 의기양양해지려는 순간, 넌 이것만 하잖아, 하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오잉. 그러고 보니, ‘음식연락’을 저처럼 ‘술 먹고 흥청망청 탱자탱자 노는 몰아(沒我)의 경지’로 오해하는 사람이 있을까봐 정샘께서 깨알 같은 설명을 적어두셨어요.

수괘는 군자가 “능력을 쌓아뒀지만 기용되지 못한 상태(畜其才德而未施於用)”를 말하는 것인데, 이런 시대를 만난 군자는 도와 덕을 품고서 그 때를 편안히 기다린다(懷其道德 安以待時)”고요. 이 ‘도와 덕을 품는다는 것’이 배우고 ‘때때로 그것을 익히는 것(學而時習之)’과 같은 뜻을 가진 거라네요!! 그러니까 공부를 하고 배운 것을 생각하고 마음에 새기면서, 가슴에 좋은 것들을 품으며 기다림의 시간들을 채우라는 거예요.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꾸준함(恒, 恒心)이에요. 초구(初九)가 먼 곳에 있는 구오를 기다릴 때(需于郊)에도 항상심을 가지고 기다리면 허물이 없다(利用恒 無咎)고 했잖아요. 꾸준한 공부와 생각으로 오늘을, 이렇게 매일매일을 채우는 겁니다.

그리고 또 하나, “편안히(安)” 기다린다는 것이 정말 중요하죠. 주역에서는 조급해서 함부로 움직이는 것을(躁, 妄動) 정말 안 좋은 것으로 본대요.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고, 소인처럼 요행을 바라지 않고, 오늘 해야 하는 공부들을 꾸준한 마음으로 하나하나 하면서 때를 느긋하게 기다리는 것이에요. 때로는 기다리다 치미는 울화통(不平之氣)도 있겠지만 그럴 때는 친구들과 연락(宴樂)하면서 그 심지를 평안하고 고르고 조화롭게 (安, 平, 和) 잘 조절하라는 거예요. 단순한 현실도피나 생각을 안 하는 걸 얘기하는 게 아니에요. 군자의 기다림은 ‘설령 평생 뜻을 못 펴고 이런 상태로 살다가 죽어도 좋다’는 마음을 품은 경지예요. 이런 거리낌이나 욕망을 다 내려놓은 군자의 편안함은 안정자수(安靜自守), 즉 흔들리지 않는 고요하고 안정된 마음을 가지고 꾸준한 마음공부로 스스로를 지키는 것에서 나오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부를 가진다는 것(有孚)’도 바로 이런 걸 얘기하는 것일 테고요. 그러면 비록 오래 기다린다고 해도, 험을 만난다고 해도, 우리는 괜찮을 수도(無咎) 더 나아가서는 길할 수도(吉, 貞吉) 있게 돼요.

어린 아이가 영양소가 풍부한 좋은 음식을 잘 챙겨 먹으면서 커가는 것처럼, 어른이 될 때를, 나중에 쓰이게 될 때를, 능력을 발휘하게 될 때를 잘 기다리는 것이 바로 수괘였습니다.

여기서 끝내면 모두 심심하실 테니, 사진을 다시 한 장 올려보도록 할게요.

훈련받은 푸곰이, 기다려, 입니다.  요기조기 간식을 먹고 싶지만 잘 참고 기다리고 있어요. 그래봤자 몇 초지만요. 잘 참으면, 맛있는 간식과 칭찬과 포옹이 푸곰이를 기다리고 있어요. 착하고 똘똘한 우리 푸곰이예요.



이번 주는 쉬는 거 아시죠? 담주 토요일, 새로 시작하는 주역수업에서 모두 만나요!
전체 3

  • 2015-12-04 10:28
    오늘도~~~~ 우샘의 포근한 음성과 그대의 똘망한 눈망울이 동시에 느껴지는 좋은 후기, 감사드려요. 토요일에 뵙지요.

  • 2015-12-04 12:53
    오오 마음에 새기게 되는 이야기로군요. 이렇게나마 좋은 이야기 얻어들을 수 있어 기쁩니다. 앞으로도 알찬 후기 부탁드려요.

  • 2015-12-04 15:07
    정이천을 '정샘'이라고 부르는 건 너밖에 없을듯. 근데 왜 주희는 '주샘'이 아니고 '주자샘'이냐? '역전앞' 같은 부류의 합성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