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강좌

'뭉텅이로 뽑혀나가는 띠풀이 되어' - 주역수업(16.01.09)을 듣고

작성자
윤몽
작성일
2016-01-15 23:54
조회
931
모두 안녕하셨습니까. 너무 오랜만에 후기를 쓰게 되어버렸네요. 공부가 ‘항심(恒心)’이라는 걸 깨닫고 ‘모두 한결같은 마음으로 열심히 나아가자’고 소리 높여 외치자마자!! 바로 닥쳐오는 이런저런 일에 정신을 잃어버린 윤몽입니다. 역시 한치 앞을 모르는 인생이 아니겠습니까. 한주는 정신을 잃어 후기 자체를 잊고(이럴수가!! 말하면서도 몹시 부끄럽..), 그 다음 주엔 몸을 관리 못하여 뻗어버린 바람에(모두 감기 조심하십쇼! 요즘 몸살이 정말 무섭더군요@@) 2주 연속 자리를 비웠네요. 도무지 뭘 믿고 맡길 수가 없다는 호된 질책을 집에 오면서까지 주욱~ 받았더랬습니다. 그래도 쌉니다, 싸요. 저 스스로도 인정!! 정말 모두께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앞으로도 아무 일이 없으리라 장담을 어찌하겠습니까마는 그래도 이런저런 일들에 준비나 공부가 부족한 주가 (혹시라도, 행여라도!!!!) 있더라도 짧게나마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그냥 잊어버리는 황당무계한 일은 절대 없도록 알람을 꼭 맞춰 두겠습니다!!

아무튼, 맴매 후에 다시 정신을 차리고 이번 주 후기를 올리려 이틀간 꼼지락거려 봤지만(그래서 또 후기가 늦어졌지 뭡니까), 소축괘는 인트로만 듣고(오~ 한 여자가 다섯 남자를 마구 부리는 무언가 굉장히 마음에 드는 컨셉이구만! 어찌 전개될지 뒤의 내용이 기대되는데?)는 마무리를 놓쳤고, 리괘는 괘 자체의 설명을 못 듣고 마무리만 듣는 바람에(오잉? 뭔 호랑이 꼬리를 밟아?) 두 괘 모두 알쏭달쏭한 부분이 많았지 뭡니까. 집에서 혼자 어떻게든 좀 읽어보긴 했습니다만 게시판에 후기랍시고 글을 쓸 정도로 확신을 하기에는 제 한문 실력(?)이 심히 부족하야, 수영양이라도 붙들고 나머지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원통하지만 일단 미뤄두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심히 흥미로워 보이는 소축괘와 리괘를 그녀에게 하청을 좀 맡겨보았습니다만 별다른 소식이 없는 걸로 볼 때 역시 그녀도 밀려오는 에세이의 물결에 파도타기를 하느라 정신이 없는 모양이라고 짐작만 할 따름입니다.

 

그리하야, 이런 저런 사정을 나누는 통에 벌써 많은 지면을 할애했으므로, 오늘은 지난 시간에 살짝 맛을 보았던, 그러나 시작부터 함께 했고 앞으로 끝까지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라 짐작되어 더욱 정이 가는 ‘태괘(泰卦)’에 대해 간단히 얘기해 보겠습니다. 태괘는 아래엔 작대기 세 개(乾), 위에는 끊어진 작대기 세 개(坤)로 모양부터 재미있습니다. 보통 괘의 모양을 180도 위아래로 뒤집어서 만든 괘와 짝꿍을 삼아 같이 살펴보기도 하는데, 태괘의 짝궁은 비괘(否卦)입니다. 당연히 태괘와는 반대로 아래가 곤괘, 위에가 건괘겠죠. 위에 하늘이 있고, 아래 땅이 있는 이런 비괘의 모양이 바람직한 것 같아 보이지만, 주역은 보통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습니다. 위는 위대로, 아래는 아래대로 따로 노는 것이라 오히려 ‘막혔다(막힐 비否, 막힐 색塞)’고 표현한다고 해요. 기운이 그대로 멈추어서 변화하지 않는 것이 항상 가장 나쁜 것이에요. 태괘의 경우는 위의 땅(地)이 아래로 내려오려고 하고 아래의 하늘(天)이 위로 올라가려고 하므로 자연스럽게 위아래가 소통하고 기운이 흐르는 형세를 이룬다는 거죠. 이것이 음양이 만드는 우주자연의 법칙이고, 이처럼 소우주인 사람의 몸도 수승화강(水昇火降)이 잘 되어야 건강하다고 하죠. 이렇게 기운이 위아래가 원활하게 잘 돌아가는 태괘는 그래서 태평성대를 묘사하는 표현들(通, 泰, 安)과 연결됩니다. 태는 작은 것은 가고 큰 것은 오니 길하여 형통하다(泰 小往大來 吉亨)는 괘사를 보고 정이천샘은 당신이 꿈꾸던 세상을 신나게 풀어놓으셨다고 해요. 소와 대를 소인과 군자로 보아서, 소인은 조정 밖으로 내쫓기고 군자가 높은 자리에 오르는 세상을 그린 것으로 보신 거죠. 그냥 괘의 형태만 봐도 아래에서 위로 자라는 것이니까, 위에 있던 음들은 이제 점점 없어져가고, 바닥에 있던 양들은 점점 올라가는 것이 당연해 보입니다.

 

지난 시간에 들었던 내용 중에서 가장 마음에 다가왔던 것은 초구의 효사였는데요. 뭉텅이로 뽑히는 풀들을 기억하십니까. 초구는 뭉텅이로 함께 뽑혀 올라오는 띠풀이니 그 동류로 함께 나아가니 길하다는 거였죠(初九 拔茅茹 以其彙 征吉). 잔디나 그런 걸 뽑아보신 경험이 있다 아시겠지만, 한 줄기가 뽑히지 않고 뭉텅이로 주변의 풀들과 함께 뽑혀 올라오는 경우가 있죠. 그런 걸 상상하시면 되겠습니다. 이 모(茅) 자가 그 당시에 요긴하게 사용됐던 갈대류의 어떤 풀(띠풀)을 나타내는 글자라고 하는데요. 그것이 혼자 뽑혔으면 흉(凶)했거나 나쁜 얘기(吝이라든가..)가 나왔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같은 무리들끼리 똘똘 뭉쳐서 떼로 뽑혔기 때문에 다행인 거였어요. 초구는 맨 아래에 있어서 힘도 없고 함부로 어디 나설 수가 없는 자리지만요. 1, 2, 3이 함께(여기선 세 양이겠죠) 힘을 모으기 때문에 위로 올라가더라도(征)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길(吉)하다고까지 나와 있어요. 저는 묘하지만 규문에서 함께 (수업을.. 아니죠. 사실은 수업 중에서도 다른 게 아니라) 구박을 받는 몇몇 동지(?!)들이 생각이 났습니다. 최근 제가 입버릇처럼 고맙다고 많이 하죠. 실명을 거론하면 누가 될까봐 차마 거론하지는 못하겠습니다. 혼자였으면 미친 듯이 혼났을 날, 미리 와서 먼저 혼나주고 있거나, 중간 중간 시간차 간격을 두고 적절한 타이밍에 혼나줘서, 채운샘의 핵폭탄처럼 불끈 솟구친 간 기운을 평균으로 나눠서 맞을 만한 한방으로 바꿔주는 그들이 있어 참으로 고맙다고, 제가 매번 농담 반, 고마움 반으로 얘기합니다. 이번 기회를 빌려 다시 말합니다. 진심으로 그대들이 있어 다행입니다. 우리는 다 부족하고, 어리고, 실수도 많고, 이상과는 아직 거리가 먼 약한 띠풀과 같은 학생들이어요. 우리는 모두 혼자서는 약하고 뽑혀나갈 수도 있지만(아, 물론 혼나는 건 이해하기 쉬우시라고 든 하나의 예에 불과한 겁니다. 물론 뽑혀나가는 게 규문에서 퇴학을 당한다거나 그런 얘기를 하는 것도 절대 아니어요~ 오해는 금물!) 우리가 함께 뭉쳐있을 때 쉽게 뽑혀나가지 않는 힘을 가지게 되죠. 지난번에 올렸던 글의 맥락과도 비슷한 내용이기도 해요. 혼자서는 공부를 아무리 해봤자 잘 안되지만, 이렇게 모여서 함께 글을 읽을 때 훨씬 오랜 시간 공부해 나갈 수 있는 힘이 생기고요. 그리고 어쩌면, 1, 2, 3처럼 지금은 나약하고 어리숙하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우리들이, 4, 5, 6의 그럴듯하고 성실해 보이고 완벽해 보이는 모범생들보다 더 오래 갈지 누가 알겠습니까. 공부를 좋아하고 잘하는 믿을만한 학생이 딱 다섯 명만이라도 있으면 참 좋겠다며 한숨 쉬시던 채운샘, 우리 띠풀들을 생각하시면 위로가 좀 되지 않으십니까. 여기서 중요한 건, 띠풀들은 똘똘 뭉쳐서 함께 버텨야지, 혼자 맥없이 쑥 뽑혀 버리면 절대 아니 되옵니다. 물론 다같이 휙 뽑혀버려도 안되고요.

 

짧게 쓰려던 후기가 이상하게 내용은 별로 없는데도 좀 길어졌습니다. 갑자기 떠오른 비괘(比卦)의 구오에서 나왔던 네 글자를 나누고 이만 마치려고 해요. ‘거스르는 자는 버리고 따르는 자는 거둔다(舍逆取順)’는 내용이었죠. 현명한 임금이 사방(四方) 중의 한 방향의 도망갈 길을 터주고서, 내 정치가 싫어 떠나는 자는 잡지 않고, 찾아오는 자는 받아들여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이야기였죠. 우리는 배우고 싶어 규문을, 주역수업을 찾아온(順)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우샘, 채샘, 우리를 거두심(取)이 마땅한 줄로 아뢰옵니다.
전체 2

  • 2016-01-16 00:13
    좌우지간 오버는! '공부를 좋아하는' 이라고만 했지 '공부를 잘하는'이라고는 안 했음!! 그리고 다섯 명이라고 했다면.... 나의 탐심. 두세명? 아니 한두명? ....^^ ;;;

    • 2016-02-18 23:01
      '공부를 좋아할 예정인' 윤몽이올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