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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의 시대에는 막혀야' - 주역수업(01.16)을 듣고

작성자
윤몽
작성일
2016-01-21 16:59
조회
794
이번엔 비괘(否卦)입니다.

비괘는 지난번 잠깐 말씀드렸습니다만, 두루 통하여 편안한 세상(태평성대)의 태괘(泰卦)와 반대쪽 짝을 이루는 괘예요. ‘막힐 색(塞)’ 자를 생각하시면 되겠어요. 아래(내괘)에 있는 곤괘는 아래를 향하려 하고, 위(외괘)에 있는 건괘는 위를 향하려 해서, 각자가 따로 놀기 때문에 서로 소통이 안 되고 에너지가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해요. 이것을 천지가 격절(隔絶)되어 있다고, 그러니까 가운데 칸막이를 두고 서로 뚝 떨어진 상태라고 표현했던 것이 기억나네요. 같은 맥락으로 동양의 문화권에서는 ‘결혼’이 무척 중요한, 그러니까 지금처럼 단순히 개개인의 선택의 문제를 넘어서는 국가적 차원의 문제였어요. 하늘과 땅의 소통과 결합은 음양의 조화이고, 인간으로 보면 남녀의 결합으로 볼 수 있었던 거예요. 따라서 결혼문제는 당시 지배계층의 큰 관심사였고, 남녀가 결혼을 하지 않으면 그 고독한 기운들이 쌓이고 쌓여서 가뭄과 흉년 같은 큰 재앙을 불러온다고 봤대요. 그러니 이런 어려움이 닥쳤을 때 국가에서 단체결혼식을 주선하기도 하고, 결혼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지역의 담당자를 문책하기도 했다고요. 이 시점에서 저는 옆의 누구를 콕콕 찌르면서 ‘어머, 어머, 큰 재앙이래, 몽투(몽원은 접니다)야. 큰 재앙이 온대, 얼른 결혼해랑.’ 하고 깐죽대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죠.

 

아무튼 비의 시대는 태괘와는 반대로 대(大)는 가고(往) 소(小)는 오는(來), 양(陽)은 가고 음(陰)은 오는, 군자는 가고 소인이 오는, ‘군자의 정도에 이롭지 못한(不利君子貞)’ 시대입니다. 이런 소인이 득세하는 어려운 시대를 만났을 때의 군자들은 최대한 몸을 낮추고 숨겨야 해요. 덕을 드러내지 말고(잘난 척도 금지) 어려움을 피해야 하죠(儉德辟難). 이럴 때는 높은 벼슬을 하면서 영광을 누리면 안 돼요(不可榮以祿). 육이 효사를 보면, 소인이 길(吉)하고 대인은 비(否)한 것이 형통(亨)한 거라고 나와요. 이 시대엔 대인의 인생이 안 풀리는 게 당연하다는 거예요. 이때 잘 나가면 소인인 거고요. 대인이 잘 나가게 되면 명예를 잃든 건강을 잃든 어쨌거나 막히게 되어 있대요. 비(否)의 시대엔 잘 되면 안 된다고, 막혀야 한다고 우샘께서 말씀하셨을 때 처음엔 어리둥절했어요. 막혀야 되는 게 대체 어디 있어요! ‘막히는 게 형통한 거’라는 말은 대체 뭐랍니까!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꼭 조롱하는 것 같지 않나요?!

 

이때 우샘께서 다산샘, 퇴계샘의 예를 들어주셨어요. 그 당시에는 무조건 정치를 하는 게 모든 선비들의 바람이었으니까, 당연히 두 분도 벼슬자리에 있기만을 바라셨겠죠. 귀양을 가서 일을 못하고 집에 앉아 있는 것이 답답하고 힘드셨을 거예요. 그렇지만 두 분은 공부를 하고 후학을 양성하는 일을 쉬지 않으셨고, 결국 후세 사람들인 우리에게 이렇게 널리 알려지게 된 거죠. 오히려 비색한 시대가 그분들에겐 ‘도를 널리 펴면서 화를 면할 수 있는(伸道免禍)’ 기회가 되었던 거예요. 그래서 우샘께선, 비색한 시대를 만났다면 우울해 할 거 없다고, 오히려 이 두 분이 비의 시대를 만나지 못했으면 열심히 나랏일만하다 돌아가셨을 거라고, 그랬다면 우린 이분들의 이름도 알지 못했을 거라고 하셨어요. 그러니 시대를 탓하는 건 아무 의미가 없어요. 여기서 중요한 건 비색한 시대를 만났을 때의 우리의 자세예요. 시대는 우리가 선택할 수 없지만, 그 안에서 우리가 어떤 삶을 살지는 선택할 수 있으니까요. 귀양 갔다고 집에 틀어박혀서 술에 쩔어 현실도피를 하거나 마냥 놀고먹으면 안 되죠. 만약 위 두 샘이 그랬다면 우리가 아는 다산샘, 퇴계샘은 없을 테고요. 오히려 출세 못한 것을 기회로 삼아서, 충격 받은 마음을 잘 수습하고 다시 단단히 마음을 먹고 자기의 리듬으로 흔들림 없이 공부를 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후학을 양성할 수도 있는 거예요. 우샘의 말씀을 인용을 하자면요. “비의 시대를 사는 것은 괜찮아요. 통탄할 일이 아니에요. 그 시대를 어떻게 살지는 자신이 선택하는 거예요. 그 시대를 잘 살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어요.” 주역이 고맙고 다행스런 것은, 이 괘는 전적으로 나쁘기만 하다거나, 전적으로 좋기만 하다고는 말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에요. 아무리 흉하고 나쁜 분위기의 괘여도 보다보면 살길이 있기 마련이거든요. 후회를 하거나, 돌이키거나, 자중하거나, 조심하면, 허물이 없어질 수도 있고 오히려 길해지기도 하는 게 주역의 이치이고 우리가 사는 세상의 이치이기도 합니다.

 

이번 토요일에는 주역 수업이 휴강인 거 아시죠. 루쉰 수업의 에세이 발표가 하루 종일 있다고 해요. 그러니 우리는 그 다음 주 토요일인 30일에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요!
전체 2

  • 2016-01-29 09:51
    후기 감사합니다~ 빠진 시간을 메울 수가 없는 와중에 도움 받고 갑니다. >_<;;

    • 2016-02-18 23:02
      앗. 도움이 된다니 기쁩니다. 빠지신 분들이 읽으신다는 말에.. 무거운 책임감이!!!! 열심히 쓰겠습니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