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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굿 와이프' - 주역수업(10.31)을 듣고

작성자
재원
작성일
2015-11-05 02:46
조회
962
이번 주에는 곤(坤)에 대해서 배웠어요.

곤은 정말 많은 부분에서 건(乾)을 닮았지만, 그래도 자신만의 색깔을 가지고 있었어요. 남편을 상대적으로 더 돋보이게 하려고, 뛰어난(어쩌면 남편을 능가하는) 능력들을 슬며시 감추고 자기를 살짝 낮추는 아내의 겸손함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저는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 아내들은 남편에게 순종하라”, 식의 단순한 표현법에 일단 무턱대고 발끈부터 하고 보는 “요즘 젊은 여성들”에 속하긴 하지만요. 동양의 옛 글들(특히 지난 학기에 봤던 노자나 주역 계사전에서 말이죠, 여기 곤괘의 묘사도 그렇고요!)에서 이야기하는 소위 “여성적인 것”은 그런 식의 부정적인(현대 여성들이 기분 나쁠만한) 어감을 갖고 있지 않았어요. 오히려 바르게 살고자 하는 인간이라면 따라야 할 아름답고 바람직한 덕목들이었죠. 지난 학기에 상관적 사유에 대해서도 배웠지만요. 자연 속에 온갖 다양한 만물들이 배열되어 존재하는 여러 모습들에서 인간은, 높고 낮음, 위와 아래, 강하고 부드러운 것, 귀하고 천한 것 등의 상대적 차이를 “만들어내고”, 그 차이에 자신들의 입장에 따른 의미와 가치를 부여해서 그것들을 차별로 바꾸어버리곤 해요. 따라서 대부분은 이런 식의 이분법에서 자유롭지 못하죠. 자신의 심리나 판단에 더 낫고, 더 높고, 더 좋은 자리(position, 位)를 차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경쟁하며 피곤하게 살고 있는 게 이 때문일 테고요. 아무튼 차별적 가치판단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인간이 만들어낸 결과예요. 주역은 건곤의 오묘한 조화, 음양이라는 서로 같으면서도 다른 두 기운의 갈마듦을 보여줘요. 음 안에도 양이 있고, 양 속에도 음이 있고요. 음이 조금씩 양으로, 양이 조금씩 음으로 변해가기도 하고요. 여기서는 단순히 양이 음보다 더 나은 것이라거나, 음은 지양하고 양을 추구해야 한다든가 하는 이야기는 하지 않아요. 거기서 단순한 차별만이 보인다면 그건 읽는 사람의 마음에 이미 그런 식의 차별적 가치 판단이 있기 때문이겠죠.

어쨌거나, 전 처음 만나는 곤의 이미지에서 남편의 기를 살려주려는, 아주 지혜롭고도 겸손한 아내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갑자기 제가 최근에 보았던 미국드라마 《굿와이프》 (Good wife, 줄리아나 마굴리스 주연)가 떠오르네요. CBS에서 2009년부터 시작한 법정드라마고요. 지금 7시즌 방영 중인 걸로 알고 있는데, 섹스앤더시티(Sex & the city)에서 주인공 캐리의 남자친구 미스터빅의 역할을 맡았던 크리스 노스가 주인공의 남편으로 나옵니다. 검사장이었던 남편이 섹스&정치 스캔들로 구속된 것을 계기로 변호사로 재기하게 되는 아내의 이야기예요. 정치공작과 언론플레이, 손익관계에 따라 뒤집어지는 선과 악, 치열한 법정공방의 장면들이 현실적으로 그려집니다. 리들리 스콧 형제가 기획했다더니 잘 만들었어요.

흠흠.. 다시 돌아와서, 건괘를 건(健:꿋꿋함, 굳건함)으로 설명했다면, 곤은 순(順)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해요. 하늘의 이치를 ‘따르는’, 순리를 ‘따르는’ 곤의 이미지는 유순하며 굳건히 오래(지속성!) 묵묵히 걸어가는 암말(牝馬)로 묘사가 돼요. 앞장서면 미혹되고 뒤처지면 얻게 된다(先迷後得)는 말도 사실은 유순하게 따르는(順) 곤의 미덕을 묘사한 것이지만, 사실 건괘에서도 언제나 마음껏 앞장서거나 나아가라고 했던 건 아니었죠. 초구에서는 아직 때가 아니니 물속에 있으라(潛龍勿用)고 했었고, 구삼에서도 종일 조심하고 두려워해야(終日乾乾 夕惕若) 한다고 했고, 구사에서도 뛰어오를 때를 잘 봐야(或躍在淵) 한다고 했었죠. 상구처럼,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날아 오르려다가는 후회가 있을 것(亢龍有悔)이라는 경고도 기억해야 할 거예요. 더군다나 마무리로 용구(龍九)에서도 앞장서지 않으면 길할 것(无首吉)이라고 결론을 내렸으니까요. 언제나 너무 나서지 않게 조심하고, 자신을 겸손히 낮추고, 뭔가 이룬 바가 있을 때 그 공로를 자신이 아니라 신하는 임금에게, 아랫사람은 윗사람에게 돌리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곤괘의 ‘단왈’은 건괘와 매우 비슷한 구조로 되어 있지만, 미묘하게 글자들을 바꿔요. 자신을 낮추기 위해 자신의 격을 살짝 낮춘다고 해야 하나요. ‘대재(大哉)’ 대신에 ‘지재(至哉)’라고 하고, ‘만물자시(萬物資始)’ 대신에 ‘만물자생(萬物資生)’, ‘내통천(乃統天)’ 대신에 ‘내순승천(乃順承天)’, 이런 식으로요. 건도를 바탕으로 만물이 시작되었다면, 곤도에 힘입어 만물이 태어나요. 그리고 순순히 순종하여 하늘을, 천도를 받들고요(順天, 承天).

그리고 순(順) 만큼 곤에 대해 잘 묘사하는 다른 글자가 후(厚)라고 했어요. 흔히 후덕하다고 하죠? 자애로운 어머니 같은, 두툼한, 넓고 푸근한, 넉넉한, 풍요로운 대지는 그 위에 우리 인간을 비롯한 온갖 만물들을 모두 차별 없이 실어주고 있어요(坤厚載物). 모든 생명을 기꺼이 품어 주고 있죠. 그리고 또 한 가지, 건도를 강건중정순수(剛健中正純粹)라는 여섯 글자로 설명했다면, 곤도는 ‘함홍광대(含弘光大)’, 이렇게 네 글자로 설명할 수 있어요. 넓은 포용력(包容), 너그러움과 넉넉함(寬裕), 밝고 환하게 빛남(昭明), 널리 두터움(博厚) 정도로 풀 수 있겠네요. 곤에 대해서 말하려고 했지만 사실 건에 대해서 만만치 않게 많은 이야기를 다시 했네요. 그만큼 건과 곤이 서로 연결되어 있고, 서로 안에 서로를 품고 있어서, 한 가지를 빼고는 다른 한 가지를 완전히 이해할 수도, 제대로 설명할 수도 없기 때문인 것 같아요. 같이 있어야 완벽해 지는, 정말 금슬 좋은 부부 같네요. 이쯤에서 어느 금슬 좋은 부부의 아름다운 사진(다분히 인위적이나 그래서 아름다운?!  반올림해서 160인 신부의 키를 170은 되어보이게 늘린 놀라운 마법의 사진!!) 한 장으로 글을 마무리 해야겠네요. 물론 이 사진이 제가 '굿 와이프'라는 걸 암시했다거나 하는 그런 불순한 의도가 있었다고 오해하지(내지는 트집잡지 - 채운샘!!) 말아주세요.



요번 주는 다시 곤괘 외우는 숙제가 있다죠!

한 번 제대로 외우고 난 문구가 수업에 나올 때에는, 확실히 머리에 쏙쏙 잘 들어온 경험을 모두 해 보셨겠지요. 저도, 아, 이래서 외우는 거구나, 했습니다.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글로 쓰고 읽고 하면서 입에 붙이고 나면, 천천히 따라오는 깨달음이 있다고 해요. 이상하게도 한문은 마냥 읊으면서 외우고, 외우고서 읊조리는 게 진리인 것 같아요.

그럼, 우리 모두 곤괘를 술술 읊어보아요!!
전체 8

  • 2015-11-05 09:10
    켁! 화면 내리다가 사진에서 뿜었음. 너 우리한테 왜 이러니...................

    • 2015-11-05 15:42
      캬캬. 미션완료.

  • 2015-11-05 10:18
    우화화~~~ 앞으로 어떤 사진이 더 올라올지 ㅋ ㅋ 기대되는군요. 여튼, 곤괘의 키워드를 잘 정리해주셔서 감사해요, 곤녀.

    • 2015-11-05 15:45
      곤녀가 되고 싶사와요ㅋㅋ

  • 2015-11-05 10:32
    커피뿜었슴..화면닦고 있슴..곤괘 꼭 외워야지..

    • 2015-11-05 15:45
      오늘은 주로 뿜는 반응이군요! 굿굿ㅋㅋ

  • 2015-11-05 10:41
    정말이지- 잼나게 읽다가,,,,,,,,,,당혹케 하는군요. 한참 누군가 쳐다봤음?!ㅋㅋ
    후기 잼나용~~~!

  • 2015-11-05 15:48
    요즘 기술이 좋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