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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4일 주역수업 후기

작성자
재원
작성일
2015-10-29 00:34
조회
876
우응순 선생님께서 선생님께서 건괘에 대해서 주변의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좀 해 보라고 하셨는데, 마땅한 상대가 없었어요.

떠오른 게 우리 2살짜리 흰둥이(똥개) '푸곰이' 예요.



 

유기견이 되기 전에 업어와서 에미, 에비를 모르는 놈(음.. 중성입니다..)인데,  선천적인 것인지 태어나서 두어달 학대를 당한 것인지, 제가 너무 무섭게 해서인지, 겁도 엄청 많고 눈치도 많이 보고, 따라서 말을 정말 잘 듣고 똘똘합니다.  고구마를 정말 좋아해서, 고구마 한 조각이면 모든 걸 다 배울 수 있는 집중력을 발휘하는데요.   손, 하면 양쪽 손을 척척 얻는 건 기본이고, 집으로 가라면 집으로 가고요. 앉아, 엎드려, 물어와(공), 빵(발랑 눕습니다)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사도 합니다. 인사를 하는 개를 보셨나요. 밥 먹기 전에 항상 인사를 시켜 버릇 했더니 이제 자기가 원하는 게 있으면 옆에 와서 굽실굽실 합니다. 엄청 비굴해 보이기도 하고 무지무지 귀여워요. 마음 같아선 인사하는 동영상을 올리고 싶은데.. 사진이 올라가면 함께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무튼 푸곰이에게 배운 내용을 설명하려는데 막상 설명을 하려니 어휘 선택이 쉽지 않더군요.  전체적인 분위기는 알고 있는 것 같았지만 딱 정확하게 제대로 아는 게 맞는지 갸웃거리게 되는 문구들이 많았어요. 배운 것을 제대로 소화하고 있는지 확신이 없어서 단어를 선택하는 게 정말 조심스러웠어요. 아무튼 뭐, 어차피 제가 정확하게 모든 걸 다 이해하는 걸 기대하지는 않으실 테니,  오늘은 푸곰이에게 하는 이야기로 후기를 대신해보겠습니다.

 

푸곰아, 엄마가 요즘 주역 수업에 가고 있잖아. 주역이 책 이름인데..

주역은 세상의 모든 일들을 64괘, 그러니까 64개의 케이스를 대표적으로 내세워서 분류, 설명할 수 있다고 봤어. 이 64개의 괘들은 6개의 효로 이루어져 있는데, 효는 양(옆으로 그은 작대기)이거나 음(가운데가 끊어지게 옆으로 그은 작대기)이거나 둘 중 하나여야 해. 6개가 전부 양의 효로만 꽉 찬 괘를 건(乾)이라 부르고, 6개 전부 음인 괘의 이름은 곤(坤)이야. ‘건’은 하늘을, ‘곤’은 땅을 나타내는 글자란다. 이 세상은 인간의 입장에서 단순하게 하늘과 땅과 그 사이에 있는 인간(푸곰이도 여기에 넣어줄게), 이렇게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해서 삼재(三才)라고 불렀어. 6개 효로 이루어진 대상괘의 경우에, 맨 아래에 있는 두 효는 땅(地), 가운데 두 효는 사람(人), 맨 위의 두 효는 하늘(天)이라고 볼 수 있기도 해. 주역은 64개의 괘 하나하나에 대한 설명을 하는데, 그 시작이 ‘건’과 ‘곤’부터야. 그 중에서 엄마가 그 동안 배우고 온 건 건괘야.

우리가 살고 있는 뒤죽박죽인 것 같은 세상은 사실은 그 안에서 일정한 어떤 규칙대로 질서 있게 돌아가고 있어. 가끔 예측할 수 없는 많은 일들도 일어나긴 하지. 그래도 아침에는 해가 뜨고 저녁에는 해가 지고, 봄이 지나가면 더워졌다가, 선선해지면서 단풍이 들면 다시 추워지는 것처럼, 전체적인 흐름 속에서 이제 요 다음엔 어떻게 될지를 대충은 예상해서 우리가 대비를 할 수 있단 말이지. 엄마가 지난주에 반팔옷들을 치우고 긴팔에 두터운 옷들을 꺼낸 것처럼 말야. 이렇게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 자연의 법칙, 이 모든 것이 때에 맞춰 굴러가도록 하는 힘을 옛날 사람들은 '천지자연의 도'라고도 부르더라고. 천지 사이에서 살고 있는 인간은 마땅히 천지의 도를 따라, 그러니까 하늘과 땅의 모습을 본받아 살아야 한다고 해. 푸곰이가 엄마의 지붕 밑에서 살고 있으니 엄마의 말을 잘 들어야 하는 것처럼! 그래서 건괘에 대한 설명을 보면 우리가 본받아야 할 하늘의 모습이 어떠한 것인지를 알 수 있어. 하늘은 크고(大) 광대하고(元), 그것에서 시작된(資始) 만물들을 성장시켜(長) 풍성해지도록(亨) 하고, 만물이 각자 마땅히(宜) 이루도록(成) 하고, 바르고(正, 貞) 곧고(固) 오래가는(久) 것이래. 이런 천도의 끝없는 흐름, 생장수장(生長收藏)의 사이클의 쉼 없는(無息) 변주, 이 변화무쌍하지만 항상됨(常,恒), 믿을 수 있는(孚, 미쁨, faithful) 성실성(誠)은 꿋꿋하고 굳세지(健). 당연히 사람도 하늘처럼 넓은 마음으로, 나보다 약하거나 어린 자들을(푸곰이처럼) 자라도록 돌보고, 다툼이 없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 잘 살 수 있게 노력해야겠지. 그리고 때와 상황을 잘 파악해야 그에 맞는 바른 행동도 할 수 있을 테니까, 그 상황과 때를 잘 분별하기 위한(時中, 中庸, 利, 宜) 공부를 엄마가 하고 있는 거야. 뭐가 바른 행동인지도 배워야 할 지경이긴 하지만.. 아무튼 공부의 길은 멀고도 험하단다. 그리고 엄마의 약점과 연결해서 생각해보면, 때가 되면 가을과 겨울이 오는 것처럼, 일들을 이것저것 벌이고 그 목록을 늘리지만 말고, 마무리도 제대로 끝까지 해야 하고, 말을 꺼냈으면 책임을 지기도 해야 하고, 약속을 했으면 지키기도 해야겠지. 이렇게 우리는 조금씩 조금씩, 쉼없이 변화해 가는 거야. 그러면서 하늘처럼 자랑하거나 교만해지지 않고(善世而不伐) 조용히 자기 할일을 해야 한대. 근데 엄마는 이게 제일 어려워. 작은 일을 해도 티를 이렇게 내고 싶네, 어쩌면 좋니. 말을 안 하면 몰라줄까봐 불안해서.. 아빠가 고마워하기도 전에 매번 엄마가 생색을 잔뜩 내니까 고맙단 소리를 억지로 듣긴 듣는데, 듣고 나서도 계속 찝찝하고 말이지. 아님 뭔가를 해주고도 억울해하고 말이지. 엄마아빠가 엄청 싸우는 소리도 많이 들었지? 대부분은 엄마가 억울해하는 소리란다. 엄마는 언제야 좀 철이 들까.

아무튼, 엄청 멋있는 사람을 군자(君子)라고 하는데, 군자는 하늘의 이런 흐름을 보면 그것을 본받아 스스로 노력하기를 쉬지 않는대(自彊不息). 엄마도 사실 속으로는 엄청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앞으로 노력하기를 쉬지 않고 해보려고 해. 좋은 세상에서는 나가서 열심히 일을 하고, 나쁜 세상에서는 숨어서 좋은 세상을 준비해야 한다고 책에 나와 있더라. 지금은 나쁜 세상을 살고 있어서(?!)인지 아님 엄마가 아직 물속에서 잠수(初九)를 하고 있는지 엄마가 반백수로 이렇게 집에 있지만, 이렇게 집에 있는 동안 놀지만 말고 공부도 하고 생각도 하고 운동도 하고 그래야 한다는 거야. 그래야 나중에 밭에 나가거나(九二) 연못에 있거나(九四) 뛰어오르거나(九四) 하늘을 날거나(九五) 할 때 지식도 있고, 생각도 있고, 체력도 있는 사람이 되지. 이번 주에 엄마가 수업을 들으면서 무릎을 쳤던 두 글자는 충(忠)과 신(信)이었어. ‘충’은 자기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면서 매일매일을 성실하게 사는 거야. 자기성실성이라고 할 수 있대. 이렇게 살면 다른 사람에게도 신의, 믿음을 얻을 수 있어. 엄마처럼 이렇게 변덕이 죽 끓듯 하고 감정의 기복이 들쭉날쭉한 사람한테, 다른 사람의 믿음을 얻을 정도로 성실하거나 꾸준한 건 너도 알다시피 정말 일생일대의 도전이야. 이건 멋있는 말로 진덕수업(進德脩業), 수기치인(修己治人), 충서(忠恕), 이런 식으로 조금씩 다르게 표현할 수 있어.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지금 내가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을 매일매일 조금씩 쉬지 않고 하는 것, 그리고 그 영향을 나에게서 주변 사람에게로 확장시키는 것, 주변 사람에게 믿음을 얻고, 그런 나의 변화를 통해 상대와의 관계가 좋은 방향으로 달라지고, 그렇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기도 해. 이렇게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만 꾸준히 변(變)하다 보면, 언젠가 갑자기 다른 사람처럼 확 변하는(化) 경지에도 이르는 수가 있대.

엄마가 이르러야 할 곳을 제대로 알아가는(知至) 중이겠지? 그곳에 실제로 이르는지는(至之) 시간이 지나봐야 아는 거고 말이야.

아무튼, 어려운 이야기 듣느라 수고했어. 엄마 수업 때면 자꾸 짖으며 수업을 방해하는 개가 한 마리 있는데, 그에 비하면 이렇게 긴 얘기도 얌전히 듣는 우리 푸곰이는, 엄마 집의 법도를 따라 짖음을 삼가며(愼) 사는, 충성스럽고 믿음직스런(忠信) 군견(君犬)이야. 아유, 예뻐. 간식을 줄게.

 

덧말1 : 사실 채운샘은 지지지지(知至至之)로 글을 쓰라고 하셨는데, 어떻게든 끼워넣긴 했습니다. 아무튼 미션 완료.

덧말2 : 이번주는 외우지 않아도 되어서 좋네요!

지난주의 저조한 출석률이 채운샘이 잘못 올리셨던  과도한 숙제공지 때문이라 믿고 있는 1인입니다.

이번주는 모두모두 가벼운 마음으로 토요일에 뵙겠습니다!!
전체 6

  • 2015-10-29 08:54
    64괘가 다 끝나면 푸곰이가 어땋게 변해 있을지 진짜 궁금하군요. 계속 이 폼으로 연재해 가 보시길~~^^ 재원, 화이팅!

    • 2015-10-30 01:19
      푸곰이는 아무것도 알아듣진 못하고 있지만요. 점점 의젓해지는 것 같아요!! 응원감사감사^^

  • 2015-10-29 17:20
    참... 잘도 찍어다가 붙였구나. 지각과 결석을 하지 말고(자강불식!) 따박따박 공통과제 써와서 토론하고(충&신!) 에세이까지 마쳐야(지지!) 군자가 되든 군견이 되든 하지 않겐?^^

    • 2015-10-30 01:22
      결국 공통과제와 에세이 압박을 하실 줄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지지 쓰라고 하신거죠!! 진즉에 눈채챘다고요!!!! 에잇!!

  • 2015-10-31 18:49
    허 참! 참응로 군자 견이로세
    군자 견의 엄마는 요조숙녀?

    • 2015-11-05 15:49
      앗. 우샘께서 댓글을!! 요번주 후기를 통해서, 군자 견의 엄마는 곤녀인 것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