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콜콜

롱롱ago... colorcloud in 스위스

작성자
규문
작성일
2017-04-06 03:46
조회
710
채운입니다.
기억하시는 분만 기억하시겠지만, 올해 1월 저 채운은 스위스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일전에, 니체가 산책하다가 '영원회귀'의 영감을 얻었다는 질스마리아의 호수와 니체하우스 사진을 몇 장 올려드렸습니다만,
기억하시는지요?(규문 홈피 '일상다반사'-> '시시콜콜' 코너로 가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그때 니체하우스 내부 사진을 공개하겠다고 약속한 터라, 약속을 지키는 차원에서 사진 몇 장 더 올립니다.
지금은 꽃피는 봄.
1월이라니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 그래도 남은 기억을 누룽지 긁듯 긁어 모아 볼까요?
long long ago........



질스마리아의 실바플라나에 있는 '니체하우스'입니다. 이곳 1층에는 소박한 니체 아카이브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니체가 읽은 책들, 니체의 동상, 데드마스크, 사진 등이 전시되어 있는 곳이지요.
유리에 반사되는 바람에 사진이 잘 찍히지는 않았습니다만, 아래 사진이 니체의 데드마스크(왼쪽)와 말년의 사진들(오른쪽)입니다.
책을 읽고 상상한 니체의 이미지와 사뭇 다르지요?

                

'니체 하우스' 2층으로 올라가 볼까요? 니체가 글을 썼다는 아주 작은 방이 하나 있습니다.(아래 왼쪽 사진)
싱글 침대와 2인용 소파, 의자, 그리고 세면대. 반 고흐의 <나의 침실>을 연상시키는, 딱 그런 방입니다. 우주로 통할 것 같은 창이 있는.
방으로 들어가는 게 금지되어 있어 목을 쭉 빼고 안쪽을 들여다보다가 순간 흠칫, 했습니다.
방 왼쪽 벽에 침대가 놓여 있는데요, 침대 위에 있는 허연 석고 덩어리 보이시죠?
저게 뭔고 하니, 바로 니체의 수염이랍니다.
어떤 예술가가 니체의 상을 저렇게 큰 수염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합니다.
위 사진에서도 알 수 있지만, 수염은 니체의 트레이드 마크였습니다.
입을 덮어버린 수염... 말을 삼켜버린 침묵... 마지막 10년간, 니체는 과연 누구였을까요?
자신을 완전히 망각한 채 사라져간 자, 니체.
참으로 니체스럽습니다.

     

제가 머물렀던 사흘간, 니체 하우스가 있는 질스마리아는 눈천지였습니다.
스위스에서의 마지막 일정이었지요.
질스마리아가 있는 생 모리츠까지는 '빙하특급'을 타고 왔더랬죠. 시속 30킬로미터로 달려 8시간만에 도착했습니다.
출발지는 그 유명한 '마터호른'이 있는 체르마트!
그래도 스위스까지 갔는데 마터호른은 봐줘야 하지 않나 싶어, 굳이 하루를 구겨 넣었습니다. 빙하특급을 타고 오는 풍광이 궁금하기도 했구요.
기차의 반 이상이 큰 통유리로 된, 아주 쾌적한 열차입니다. 오른쪽 사진 같은 풍경이 8시간 내내 이어진다고 보시면 됩니다.
1시간 내내 감탄하고 사진 찍고.... 그러나,  모든 좋고 아름다운 것은 어김없이 지루해지는 법이지요.@.@

      

암튼, 이 빙하특급이 출발한 체르마트, 거기에 마터호른이 있습니다. 짜잔!
숙소 근처에서 보이는 마터호른입니다.
파라마운트 영화사의 로고에 등장하는, 바로 그 봉우리지요.
  

기차를 타고 한 30분쯤 올라가면 봉우리 바로 맞은편에 이르게 됩니다.
아래 오른쪽 사진에서 뱀처럼 긴 선 보이시지요? 그게 기차가 올라가는 터널입니다. 작은 점 같은 건 스키를 타고 내려오는 사람들이구요.
이곳 사람들은 1080 모두가 스키를 탑니다. 에브리바디, 에브리웨어.

    

암튼, 그 유명하다는 마터호른까지 갔는데요.... 보시는 바와 같이, 그냥 그렇습니다.
실은, 전 쫌 별로였습니다.
내내 이게 의문이었죠. 멋있는데, 멋있긴 한데, 왜 이렇게 감흥이 없을까.... 이 데데한 느낌은 뭘까....
이 의문은 후에 호시노 미치오의 책을 읽던 와중에 풀렸습니다. 조금만 인용해 볼까요?
"언젠가 알래스카에서 만난 스위스 탐험가가 내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스위스엔 더 이상 자연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대부분이 사람들의 손길로 만들어진 인공적인 자연입니다. 만일 그럴 힘만 있다면 스위스 사람들은 알프스를 관광하기에 좀더 편한 곳으로 옮기려고 할 겁니다.> (...) 며칠 전 친구와 잘츠부르크 교외의 산을 올랐습니다. 등산로도 잘 꾸며지고 아름드리 나무들이 울창했지만, 알래스카의 황량한 산들과 비교하면 왠지 싱겁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알프스를 처음 봤을 때 상자 속에 담겨진 모형 정원이 생각났습니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마다 사람의 정성이 묻어났지만, 사람의 정성이 진정한 자연의 생명력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여행하는 나무>)  
(*호시노 미치오에 대해서는 '일상다반사'->'규문톡톡'에 실린 <길 위의 인생> 코너를 참고하시길. '문장을 훔치다'에도 두어 번 인용했습니다.^^)

아하! 그거였습니다. 너~무 쾌적하다는 것. 쾌적한 기차(자연에너지로 가는 기차)를 타고, 시각의 쾌를 느끼며, 더없이 쾌적한 공기를 흡입한다는 사실.
이 모든 쾌적함이 역설적이게도 쎄-한 무감함을 야기한 것이죠.
인간을 위한, 인간에 의한 자연. 체르마트 곳곳에는 마터호른을 감상할 수 있는 최적의 veiwpoint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물론, 모든 뷰포인트까지는 기차가 데려다줍니다.)
최상의 뷰.... 좋았지만, 아름다웠지만, 그뿐이었습니다.
인간적인, 너무나도 인간적인 알프스랄까요....
좋은 데 다녀와서 배부른 소리한다, 라고 하실지 몰라서 마터호른 탐방기는 이쯤에서 이만 총총.

자, 이제 제가 빨빨거리고 걸어다닌 도시들 사진 대방출합니다.
우선, 클레센터가 있는 베른입니다.
베른 시가를 돌아 흐르는 아레Aare 강을 건너면(왼쪽) 파울클레센터(오른쪽)가 나옵니다.
렌조 피아노라는 건축가가 디자인한 건물이지요. 클레의 그림에 나올 법한 곡선들의 형상으로 되어 있습니다.

    

상설전과 특별전이 있는데, 제가 갔을 때의 상설전 제목은 무려 <시인과 사색가>! (왼쪽)
클레에게 딱 어울리는 전시 제목이지요. 심금을 울리는 전시였습니다.
특별전은 <클레와 초현실주의>.(오른쪽) 역시, 훌륭한 기획전이었습니다.
클레와 저의 만남은.... 음 어떻게든 이 만남을 풀어내보려 끙끙거리고 있습니다만;;

                    

이어지는 사진은 바젤성당이 보이는 라인 강의 풍경(왼쪽)과 바젤 대학 근처 광장입니다.

                       

제가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하는 걸 보니 보시는 분도 그러실 듯하여, 바로 다음 도시로 갑니다. 루체른과 제네바입니다.
루체른은 잠깐 들러서 이 다리만 봤습니다. 루체른 역 바로 앞에 있는 카펠교.  1333년에 지어진 목조 다리랍니다.
궁금하시면 구글을 참조하시고, 전 그냥 갔다왔다는 자랑질만 하는 것으로.^^



아래 왼쪽 사진은 제네바의 성 피에르 성당 근처에서 내려다 본 구시가의 풍경입니다.
루소가 살던 집이 근처 어디에 있다는데 결국 못찾았습니다. 해가 저물 무렵이기도 했고, 미술관을 돌아다녀 다리도 아프고 하여, 루소와의 교감은 패스.
루소의 집인 줄 알고 잘못 들어간 '종교개혁의 집'에서 관심도 별로 없는 종교개혁 관련 이미지들만 잔뜩 보고 왔지요.
종교개혁이란 게 글쎄요... 정말 종교적 자유를 가져온 개혁인지는 의심스럽습니다만, 스위스인들에겐 그게 자부심인가 싶기도 합니다.
종교개혁의 벽, 종교개혁 박물관 등등 뭐가 많이 있는 걸 보면요.
루소의 집은 못 찾았지만 루소섬은 찾았습니다. '섬'이라기엔 상당히 민망하고요, 그냥 다리 옆에 있는 작은 공터에 루소의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오른쪽 사진 나무 사이를 뚫어져라 보시면 루소 동상이 있습니다.)
스위스는 어딜 가나 깨끗합니다.
우리는 연일 미세먼지에 목이 칼칼하고, 사대강 사업 이후로 강물이 똥물이건만,  여긴 강이든 호수든 모든 물이 맑습니다.
저기 보이는 애들이 다 우리나라에서는 천연기념물에 해당하는 애들입니다.
물이 얼마나 맑은지, 우아한 백조가 쎄빠지게 다리 흔드는 모습까지 훤히 보일 정도입니다.
근데 뭐, 딱히 부럽거나 하진 않더이다.
유럽은 뭐랄까요... 활기가 없다고 할까요. 맑고 깨끗한데, 늙었습니다. 확실히.

 

그리고, 취리히!
대성당(왼쪽)과 성모 성당과 성 피터 성당(오른쪽)이 있는 곳이지요.
모두 고딕 양식의 오래된 성당들입니다.
내부가 찬란한 스테인드 글라스로 빛나는, 고즈넉하고도 아름다운 곳입니다.

     

아래 사진은, 20세기초 '취리히 다다'의 아지트였던 <캬바레 볼테르>입니다.
Dada를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간단히 말씀드리면, 똘끼 충만한 예술가들이 모여 도주로를 만들어낸 곳이지요.
지금도 전시나 공연을 위한 공간으로 쓰이고 있는 모양입니다.

     

취리히에서 질스마리아에 이르는 12일간의 여정이었습니다.
다 지난 일입니다. 여행의 순간엔 이런저런 생각들이 제법 많았는데, 다 잊었습니다. 그런 거죠.
남는 게 사진이라지만, 요즘처럼 사진이 흔한 시절에, 더군다나 웹사이트에 이미지들이 그토록 넘쳐나는데, 사진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싶네요.
죽어라 찍었는데, 지금 보니 다 죽어 있는 사진들입니다.
어쩌면 공간이란 건, 내  두발로 걷고 있는 그 시간 동안만 현존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꿈 같습니다.
요즘 <장자>를 읽고 있어서 더 그런 걸까요.
지금 순간도 내일이면 또 꿈처럼 아득하겠지요... 흐흐흐.

약속한 니체 하우스 사진 몇 장 올리려던 게 이렇게 길어지고 말았습니다.
약이 오르시거나 부러우셨다면... 송구스럽습니다.
이왕 송구스러운 김에 송구스러운 말씀 한 마디 더.
저 채운은 5월에 지중해기행을 갑니다. 그렇게 됐습니다.
다녀온 후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전체 5

  • 2017-04-06 12:38
    아, 얄미워라. 송구스럽다는 말이 이렇게나 주먹을 유발하는 단어였다니.
    보기만 해도 눈이 시원해지는 사진들이네요.
    늙은 도시라도, 맑은 공기가 부럽네요. 정말 숨 한 번 크게 내쉬고 싶습니다. 후~~~우

  • 2017-04-06 12:58
    10년 전에 저 코스를 손잡고 돌아다니던 기억이 새록새록... 또 언제 가보려나. ^^
    끌레 센터는 정말 말이 필요없는 곳이었죠. 잔뜩 사와서 집 벽마다 치장하고 책들도 꽤 사왔는데 아무래도 지속할 동인이 없는지라 제대로 정리 못하고 내꾼져 두고 있네요. 발췌이기는 하지만 그의 일지가 역시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그리고, 프라우뮌스터에서 샤갈 스테인글라스는 보셨나요. 제가 갔을 때 쮜리히는 온통 공사중아라... 뭘 제대로 볼 수 없었네요.
    "볼테르"도 문이 잠겨 있어서 입구에서 사진만 찍었는데, 내부에도 들어가 보셨군요.

  • 2017-04-07 07:07
    저는 죽을 때까지 가볼 일이 없을 것 같은 곳인데-- 뭐 딱히 가보고 싶지도 않지만서두-- 스승님의 글을 따라 이렇게 훒어보니 딱 좋네요!!

  • 2017-04-07 10:03
    '죽어있는', 그러나 느무~~ 근사하게 살아있는 사진들 속에 '쎄빠지게' 두발로 걸었던 쌤의 '현존'의 시간들이 주름잡혀 있네요.^^

  • 2017-04-07 10:39
    수염이 입을 덮어버린 니체.... 뭘까요. 흠...... / 백조가 다리 흔드는 모습을 보는 건 재미있을 것 같네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