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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1 동사서독 공지

작성자
혜원
작성일
2017-11-05 16:00
조회
125
171111 동사서독 공지



1. 장자의 감정론


[덕충부]에서 장자는 감정이 본래 없다고 합니다. 그러자 혜시는 인간이고서 어떻게 감정이 없겠냐고 반박하지요. 보통 우리는 혜시와 같은 반응을 보일 겁니다. 인간이 어떻게 감정이 없다고 볼 수 있는가?

하지만 장자가 말하는 감정이란 혜시가 생각하는, '인간이라면 본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감정은 인간에게 본래 있는 것이 아니라 외물과의 마주침 사이에서 나타나죠. 감정은 인간에게 있는 게 아니라 그 마주침 속에서 마음이 동하는 것일 뿐.

그렇다면 그 마음이 동하는 것 자체가 감정이므로 인간에게는 본래 감정이 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이겁니다. 인간은 왜 자신에게 감정이 있다고 생각할까요. 그건 외물과 마주칠 때 생겨나는 마음의 동요를 '나'라고 생각하는 데서 기인하는 게 아닐까요.

감정은 일종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이 발생했을 때 슬프다, 기쁘다, 좋다, 싫다 하고 의미를 부요하는 것이죠. 요컨대 감정은 습관입니다. 어린아이의 경우 아직 그 습관이 없기에 우리가 '슬픈 상황'이라고 생각할 때도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는' 얼굴을 하지 않지요. 아이들이 웃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기쁘다'라는 감정을 가지고 웃는 게 아니고요. 외부의 힘에 대한 순연한 반응이 어린아이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감정에 휘둘립니다. 달리 말하면, 어떤 상황에 대해 그것에 대해 해당되는 감정이 일어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아주 습관적으로요. 이 매커니즘을 이해하지 못하면 '슬픈 상황'에서 '슬픈 감정'이 일어나는 것은 인간이 본래 가지고 있는 성정이라고 단정짓게 됩니다. 우리의 지성이 동의하는 만큼 감정을 일으키는 것이죠. 만약 감정이 일어나는 메커니즘을 이해한다면 감정이 일어나더라도 섣불리 그 감정과 나를 동일시하지 않고 얽매이지 않을 수 있게 되지요.

인간이 우주 전체의 이치를 통찰하지 못하면, 상황에 따라 응해서 발생하는 마음의 작용을 자기와 동일시하며 붙들어 매게 됩니다. 감정은 반응의 결과일 뿐인데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감정을 절대시하게 되는 것이죠. 그럼 감정을 계기로 인과를 짓는데, 그럼 감정은 더 뚜렷해집니다. 이게 조증. 그리고 그 감정이 사라지면 '나'가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에 우울증에 걸립니다. 이런 무서운 순환구조라니! ㅇㅁㅇ

철학은 우리가 경험한 사건들로부터 그 사건들을 관통하는 원리/이치를 통찰하는 것입니다. 그 통찰력이 없으면 우리는 매번 경험하고서도 그 경험을 흘려보내고 다시 같은 경험을 하게 됩니다. 채운쌤은 '왜 이런 일을 겪는가'가 아니라 '왜 이런 일을 다시 겪을까'를 물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건 우리가 그 일을 관통하는 이치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만약 인간에게 당장의 아픔이 어떤 원리에 의한 것인지 투시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아프더라도 거기에 동요하지 않게 됩니다. 인간은 계속 요동치는 감정 속에서 자기 자신을 주체하지 못할 때 감정에 휘둘리는 것이죠. 공부는 감정이 일어날 때 거기에 휘둘리지 않는 항상성을 기르는 것입니다. 어떤 결과가 닥치든 어떤 마주침이 와서 마음을 일으키든 일정성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고 그건 공부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는 채운쌤 말씀^^/

지성을 쓰지 않으면 우리는 자꾸만 감정에 휘둘리는데, 이것이 좋지 않은 것은 감정에 휘둘리는 자신은 또 스스로를 연민하여 정당화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슬픔에 빠져 있을 때 자기 자신에 대한 연민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그 슬픔의 감정을 유지하고 싶어하고 그렇게 점점 자기 역량을 약화시키는 것이죠. 역량이 약화되는 것에서 빨리 빠져나와야 하는데 인간은 자기 약한 모습을 연민하기에 그것을 정당화하고 빠져나오지 않을 이유를 만드는 것입니다.

장자는 인간의 감정이란 거울과 같이 외물에 응하다가 외물과 함께 사라지는 것이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인간의 감정이란 특권화될 수 없다는 것.장자는 마음이 동하는 것 자체를 부정하는 게 아닙니다. 그 감정으로 우리를 해치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죠. 때문에 장자는 무엇보다 자연을 따를 것을 강조합니다. 자연은 호오(好惡)가 없고 항상적이며 늘 자신의 역량을 남김없이 펼치니까요.



2. 자본주의적인 마음


우리는 자본주의를 쉽게 비판합니다. 돈과 이윤만 아는 세태에 쉽게 탄식하죠. 하지만 우리 역시 그 자본주의적인 마음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쉽게 통찰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마음을 자본주의적으로 쓰는데, 주면 받아야 한다는 생각, 마음을 주지 않거나 일부만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모두 투여량을 계산하여 그만큼의 결과가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자본주의적 사고방식인 것이죠.

이런 사고방식과 관련해서 장자의 '잊으라'는 말을 생각해볼 수 있겠습니다. 즉 미래에 기대를 투사하여 그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말라는 것이죠. 이런 경우 우리는 과정을 생각하지 않게 됩니다. 과정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뭔가를 하고 난 후 따라 나오는 가치들을 생각하면 우리는 수동적으로 외물에 의존하는 삶을 산다고 봤던 것이죠.

[전자방]에는 행위 자체를 강조하는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활쏘기, 그림그리기, 낚시 등. 어떤 일을 하면서도 그 결과는 잊는, 의도함이 없는 것. 이것이 나의 행위가 계속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고 다음 스텝으로 가는 능동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중간 에세이 발표합니다.

3장 분량으로 ‘내가 장자를 공부하는 이유’에 대해 써 옵니다.

간식은 각자 조금씩

후기는 강석쌤



다음 시간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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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11-05 16:30
    담주 중간에세이는, 말씀드린 대로, 우리의 공부에 대한 중간 ‘성찰’입니다. 대체 우리는 왜, 지금, 장자를 읽는가. ‘내가 지금 장자를 읽어야 하는 이유’를 주제로, 각자 고민하고 있는 삶의 문제들을 지금까지 공부한 장자를 무기로 돌파해보시길 바랍니다. 말 그대로, 학인분들의 ‘‘시도(essai)”를 기대합니다! !(이런이런... 또 이 몹쓸놈의 기대를....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