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콜콜

3월 선물 목록

작성자
김훈
작성일
2021-04-01 21:16
조회
491

<3월 선물 목록>


 어릴 적 아버지를 따라 가까운 산 정상에 오르면 쌍안경이 아버지 손에 들려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밖에 다른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마도 저는 그 쌍안경에 눈을 대고 보지 않았을까요. 그리곤 거대하다고 느꼈던, 그래서 감히 내 집 앞 골목밖에는 생각지 못했던
세상의 크기가 실제 눈 앞에 펼쳐졌겠죠. 아. 저기 쯤 우리 집일 것이고, 동네가 희미하게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쌍안경 없이
육안으로 보면 오밀조밀한 도심의 풍경 속에서 우리 집과 동네들이 얼마나 작은 곳인가를 실감하게 됩니다.


 선물 목록을 통해 여러 샘들의 마음이 오가는 연구실의 풍경을 보게 되면서 저 자신 또한 이러한 공덕을 입고 있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됩니다. 그리고 좀 생뚱맞게도, 얼마 전에 서양기초반 세미나에서 읽었던 플라톤의 <국가>가 생각났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전체에서 부분을 보듯이,
국가의 정의가 무엇인가를 논하게 되면 개인의 정의도 자연스럽게 알 수 있지 않겠냐고 말합니다. 저는 여기서 한 개인의 문제가 전체 속에서
살펴졌을 때 얼마나 유용한지를, 어릴 적 쌍안경으로 전체 속에서 자신의 처지를 어렴풋이 보게 됐던 것처럼 조금은 알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선물 목록을 작성하는 것도 규문이라는 공간과 샘들이 연결된 전체 풍경 속에서 저를 들여 볼 수 있었기에, 그것이 제 공부에 얼마나
유용한지 조금씩 깨닫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 샘들의 보내온 감사한 마음을 조금 확장해 생각해보면  '여러 생명의 공덕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배우게 해주는 것이 아닌가. (보내주신 갈치, 봄나물, 한라봉, 초콜릿, 식자재 등의 선물들 중 생명 아닌 것에서 비롯되지
않은 것이 없더군요.)조심스럽게 헤아려봅니다.



니체팀 은옥샘께서 제주도로 여행 가셔서 갈치와 고등어를 며칠 간 먹을 수 있을 수 있을 만큼 푸짐하게 보내주셨네요.
생선이라면 연구실 식구들이 누구나 좋아하지만, 특히나 민호샘이 눈이 반짝거리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밥 먹는
중 민호샘이 생선뼈의 살까지 완벽하게 발라먹는 걸 보고 살짝 놀랐다능~ 민호샘 왈 "이거 사진 찍어서 은옥샘에게
보내야겠어요."하고 세심하게 은옥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니체팀 반장인 민호샘이었습니다. ^^



불티모어 세미나의 은미샘께서 집에서 직접 만들었다며 초콜릿을 식탁 위에 살짝 올려놓으셨습니다. 이것을 본 채운샘께서
"어쩜 이렇게 만들었어?"라고 물었더니, 은미샘 왈 "그냥 초콜릿인 줄 알고 샀는데, 만들어 먹는 초콜릿이더라구요. 그래서
걍 만들었어요."라며 쑥스럽게 답하시더군요.
위에 사진 상으론 하나인듯 보이나, 살짝 밑으로 하나 더 깔려있답니다. 초콜릿 빵처럼 동글동글 귀여운 것이 먹어봤더니, '살짝'
견과류와 함께 씹히는 맛이 일품입니다. 그리고 '오. 맛있어!'라는 혼잣말이~!!!
직접 만든 그 수고가 깃든 음식을 함께 나누고 싶어 가져오신 그 마음처럼 정말 맛있는 초콜릿이었습니다.



푸코의 <성의 역사> 세미나의 간식을 준비하기 위해 식자재를 무진장? 사 오신 미현샘이었습니다. 비록 간식 준비였지만,
사전에 혜원샘에게 문자로 연구실 식구들까지 먹일 요량으로 잡채를 해주신다고 연락을 주시고, 많은 양의 잡채와 떡볶이
직접 조리하시는, 그 마음을 헤아려보면 선물로 올리지 않을 수가 없더군요.
덕분에 연구실 점심 풍경은 다소 복작거리고 수다스러운 가운데 밝은 웃음이 넘나드는 즐거운 시간이 될 수 있었습니다.



토요일이면 항상 공부하러 일찍 오시는 은남샘께서 각종 한살림 표 식자재를 선물로 주셨네요. 매번 주실 때마다 빠지지 않는
두부와 버섯 그리고 1.5L 통에 담긴 천일염을 볶은 소금과 볶음 깨였습니다.
그리고 사진을 찍고 나서는 어떤 소금인지 몰라, 은남샘에게 물었더니, "어, 그게 볶음 소금이 음식 할 때 넣으면 맛있더라구."라고
말씀하시더군요. 그냥 소금이 아니라 음식을 조리할 때 맛있게 쓰여 지길 바라는 마음에까지 닿아있었던 소금이었던 것이죠.



난희샘께서 고향집에 부탁을 해서 울릉도에서 이 맘 때에만 맛볼 수 있다는 귀한 전호 나물을 선물로 가져오셨네요.
전호 나물은 향이 독특하고, 뿌리는 귀한 한약재로 쓰인다더군요. 아무래도 동해 섬 특유의 바닷바람과 햇살의 기운을
받고, 육지보다 일찍 땅을 움트고 나오는 봄나물이라.. 양기를 듬뿍 품고 있지 않을까요. 민호샘이 전호 나물을 먹고 '기운이
나는 것 같다더니~!' 요즘 바쁜 일정으로 지친 심신에 양기보충이 되었나봅니다. ㅎ 그리고 규문에 가장 먼저 봄이 왔음을
알리는 전령으로서 전호 나물은 반가운 손님이기도 했답니다.



주역팀 손호진샘께서 프로이트 전집과 디스커버리 총서를 규문각에 기증해주셨습니다. 평소 귀하게 여기던 서적들이었을 것을
연구실에서 함께 공유할 수 있도록 마음을 내어주셨네요. 서적의 품목만 봐도 각별함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조만간 규문각의
공간이 확장되고 책장들의 배치가 바꿔질 참이었데, 어쩜 적절하게 시기에 선물을 해주셨네요.
그리고 '짜짠' 위 사진은 전에 찍은 사진을 지우고 새로 배치된 규문각에서 호진샘이 가증해주신 책들이
예쁘게 정리돼 다시 찍업답니다. 이 사진을 보고 호진샘께서 흐뭇하셨으면 좋겠네요. ^^



주역팀 김태욱샘께서 카누커피를 선물로 가져오셨네요. 세미나들이 시작되고 샘들이 오시면서, 커피 소비량이 늘어나는
시기에 커피 선물은 정말 반갑습니다. 사실 태욱샘 얼굴은 뵈어서 알고 있었지만 이름을 모르고 있던 참에 다른 샘들에게 물어서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에 책을 찾으러 공부방에 들어오셔서 반갑게 인사드렸습니다.^^



격몽 세미나 하셨던 김지현샘께서 얼마 전 광동빌라(혜원. 규창, 건화샘이 함께 사는 곳)로 집들이 하러 오셔서 선물로
주고 가셨다고 하네요. 요즘 밥 지을 때마다 넣어 서 먹고 있답니다. 주신 선물 하나하나로 헤아려 보면 연구실의 무엇 하나 샘들의
내어주신 마음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3월도 감사한 마음들로 풍성해지는 규문입니다.



매주 토요일마다 공부하러 오시는 은남샘께서 이번에도 어김없이 한살림표  양배추, 브로콜리, 쑥, 시금치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오실 때마다 꼬옥 필요할 만한 야채들을 헤아려 가져오시는 그 마음이 저 사진 속에서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요즘에 간헐적 단식을
하신다고 시간을 정해놓고 하루 두 끼만 드신다 해서, 토요일이면 함께 먹던 점심을 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네요. ^^



주역팀 손호진샘께서 얼마 전에 귀한 서적도 기증해주셨는데, 한라봉도 두 박스나 보내주셨습니다. 어찌나 많던지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는 것만 같더군요. 그리고 세미나 간식으로 내어서, 껍질이 오진 것을 손톱을 꾹 눌러 까먹었더니. 달고 적당히
신맛에 '아, 맛있다!'라고 저절로 입 밖에 나왔다는... 요즘 치솟는 물가로 귀해진 과일을, 더구나 한라봉을 맘껏 먹은 호사를
누리게끔 마음을 내어주신 호진샘 덕분에, 연구실은 3월은 더욱 풍성해졌답니다.



저번 달에 이어, 이번 달에도 니체의 경희샘께서 계란을 선물을 보내주셨습니다. 꼼꼼히 포장된 계란은 한눈에 보기에도 싱싱하고
좋은 것임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다달이 보내주시는 그 마음을 헤아려보면, 그 마음이 규문에 어떻게 닿아있는지를 알게 됩니다. 이런
각별한 샘들의 마음 덕에 코로나로 어수선한 시국에도 연구실의 세미나가 무탈하게 진행되고 공부해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토요일이면 어김없이 공부하러 은남샘께서 이번에는 계란 선물을 주셨네요. 그제 경희샘께서 보내주신 계란과 더불어 규문
냉장고에는 계란이 더욱 풍성해졌습니다. 요즘 비싸서 귀해져 못 사먹는다는 계란이 저희 연구실 냉장고에는 든든하게 채워진 덕에
맘껏 단백질 섭취를 할 수 있게 되었네요. ^^



이번 달 초에 난희샘께서 울릉도에서만 난다는 전호 나물을 가져다 주셔서 맛있게 먹었는데, 얼마 자나지 않아 울릉도 부지갱이 나물도
선물로 주셨답니다. 무친 것과 절인 것 반반씩 가져오셨는데, 다 맛있지만 저 개인적으론 절인 것이 너무 맛있더라구요.
시원스러운 난희샘 성격처럼 손 크게 양을 많이 해다 주셔서 내내 두고 맛있게 먹을 일만 남았네요.^^



쌀을 10kg짜리 네 포대나 보내주셨는데, 어느 샘이 보내주셨는지 사방 수소문했으나 알 수가 없었습니다. 보통 택배에 보낸
이의 성함이 없어도 단톡방이나 열리는 세미나를 통해서 며칠 안에 알 수 있었는데... 그렇게 오리무중이었으나, 뒤늦게 푸코의 <성의 역사>
세미나를 하는 부천팀의 진아샘께서 보내셨다는 건화샘의 연락을 받고 드디어 알아냈습니다. ㅎ 진아샘이 보낸 주신
쌀로 인해 연구실 살림이 부쩍 풍성해졌습니다. ^^



태미샘께서 공부하러 오시면서 주방 요리에 필요한 식자재를 듬뿍 사다주셨네요. 이것저것... 순두부도 해먹고, 유부초밥도 해먹고,
떡국도 해먹는 등... 다양하게 오를 연구실이 식탁이 상상을 하니, 태미샘께서도 '그런 상상 속에서 이것저것을 세심하게 구입하셨겠구나' 하고
생각이 듭니다. ^^



불티모어의 김은순샘께서 크고 싱싱한 코다리를 가득 보내주셨습니다. 바로 며칠 전 산책 중에 규창샘에게 예전 기억을 되살려
코다리찜이 얼마나 맛있는가를 설명했는데, 이렇게 코다리를 선물을 보내주실 줄이야. 연구실 반찬으로 내어질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군침이~!!
보내주신 양이 많아서 저녁에 정옥샘과 혜원샘이 조리해서 먹기 좋게 일일이 잘라서 봉지에 담아 정리했답니다. ^^



미숙샘께서 명리학 세미나에 오셨다가 연구실 냉장고 야채 칸에 시골에서 직접 키운 쪽파를 살짝 투하하시고 가셨다는 걸,
'불교와 글쓰기'의 단톡방 수다를 통해 그 정보를 긴급 접수했답니다. 안 그럼 선물목록에 올리지 못할 뻔 했네요. ㅎ 위 사진은 이번
주 목요일 날,  주신 쪽파로 파전을 맛있게 해 먹기 위해 손질 중인 사진을 부랴부랴 찍은 것입니다.


이번 달 3월 선물목록은 미숙샘이 야채 칸에 투하해 놓으셨던 쪽파 선물로 마무리가 지어졌습니다. ^^


요즘 성대 쪽으로 향하는 산책로 곳곳에는 개나리, 벚꽃, 제비꽃, 이름 모를 들꽃들까지 색색이 꽃들의 향연입니다. 그 풍경에 제 마음이
은근 설레는 것을 보면 겨울 내 따뜻한 봄이 오길 기다렸었나 봅니다. 그처럼 샘들이 보내주신 선물 또한 하나씩 헤아려보면
색색들이 꽃처럼 제각각 다양합니다. 봄나물에서 쪽파, 코다리에 이르기까지 말입니다. ㅎ 그리고 선물 들어온 날은 포장된
박스 테이프를 뜯으며 '어떤 샘이 어떤 걸 보내셨을까.', '사진은 이렇게 찍어야지.', '선물 목록에 이렇게 적어야겠다.' 등의 은근
즐거운 일이 되기도 했습니다.
4월에도 연구실에선 여러 샘들이 보내주신 각가지 마음들과 세미나의 열띤 토론들, 화기애애한 샘들의
수다가 변함없이 이어지겠죠. ~^^


전체 9

  • 2021-04-02 16:46
    미숙이 쪽파들 옆에 수줍게 끼어있는 불교팀 호정의 마음 좀 보아요~~
    미숙은 먹을 수 없는 걸 선물했다며 냅다 핀잔했지만
    우리는 호정의 그 마음을 맨날 먹고 산답니다~~^___^

  • 2021-04-02 16:58
    나 이런 사람이야. ㅎㅎ. 무아를 공부하는 사람이라구. ㅎㅎ

  • 2021-04-02 21:19
    하야간 훈샘의 선물목록은 선물보다도 더 풍부하고 재미져요. 이번에는 어떤 구슬을 꿸까 궁금해서 들여다보게 되요. 이번에는 훈샘과 훈샘 아빠와의 쌍안경 속 추억이야기~~~아련하게 상상하게 된다는~^^ 담엔 어떤 이야기일까요? ㅎㅎ

  • 2021-04-03 09:44
    이번 달은 정말 푸짐하게 차려먹었습니다. ㅋㅋㅋ 봄나물을 무쳐먹고, 부쳐먹고~ 가져다주신 덕에 3월달 아주 통통하게 보낸 것 같습니다. 매일같이 무엇인가 들어와서 대략 '이번 달에는 선물이 많이 들어왔구나' 싶었는데, 모아놓고 보니 정말 많네요 ㅋㅋ 인간적인 무엇이 어디 따로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사람 냄새가 나는 3월이었습니다~

  • 2021-04-03 23:47
    사람입에서 나오는 것두 무섭지만 들어가는 것도 장난아니지요. 상시 연구원보다 한번씩 오는 학인들이 해치우는 양이 더 많을걸요. 저도 잘먹었습니다. 제철반찬이 최곱디다!!

  • 2021-04-04 10:55
    댓글 달 곳은 따로 있는거 같은데? 무아를 공부하는 분들이 그러시면 안되죠!!

  • 2021-04-04 11:32
    댓글로 (코)웃음 보시중인데요

  • 2021-04-13 09:52
    갈수록 수려해지는 오프닝...! 감동먹었습니다!!

    * 아 그런데 쌀 선물 보내주신 진아샘은 <성의 역사> 팀은 아니고요, 부천에서 일리치 읽기 세미나를 하고 계십니다(물론 2학기부터 성의 역사 팀에 합류하실지도 모르죠??).

    • 2021-04-15 10:50
      ;; 아. 그런 실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