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n

6월13일 금강경 후기

작성자
수영
작성일
2016-06-19 15:57
조회
3476
선생님들 잘 지내고 계십니까. 늦게나마 후기를 올려 채무감을 덜어보려 합니다.
진즉에 썼어야 했는데... 이렇게 되어버렸습니다.
늦은 후기지만 짧게 쓰고 갈게요.

지난 시간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역시 삶을 지탱하는 것은 자신이 집착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이 집착하고 마음을 쏟고 있는 것이 사라져버릴 때 살 힘을 함께 잃는 일도 흔하게 일어난다고. 
언뜻 마음을 쏟는 것과 집착함은 다른 것처럼 보입니다. 
더군다나 마음을 쏟는 일은 스스로 무엇인가 준다, 심하면 보시한다 착각하게 되는 일 아닙니까.
하지만 마음을 쏟는다는 것은 그 대상이 또 그 행위 속에서 어떤 식이든 내가 얻는 것이 있기 때문이라고.
평생을 자식 뒷바라지를 하면서도 기꺼이 살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기도 하지요. 괴로움을 주지만 분명 얻는 것이 없지 않아요.
니체가 했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사람들은 고통을 견디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고통의 무의미를 견디지 못한다. - 무의미, 무목적, 무존재감… 이를 견딜 수 없어 기꺼이 자기 몸과 마음을 내줄 수 있는 것입니다. 존재를 견딜 수 없는 것이라고 했지요. 허무주의자! 허무주의자는 의미에 집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가상이기에 결국 허무를 붙드는 것 뿐이라고... 동사서독 때인가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불교n 수업 때는 이런 말을 했어요. ‘극을 당하고 하고... 이 관계가 본질적인 것은 아닌가’. 이 관계를 견디지 못하여 다른 고통(?)을 감내하려 한다는 것이 의아합니다. 
아무리 강렬하게 마음을 쏟았던 것조차 어느 순간 사라집니다. 마음이 달라지고 상황도 달라지고 대상 역시 같을 수 없지요.
이 때 찾아오는 것이 일종의 허무. 온통 에너지를 쏟았던 것이 중단되게 되었을 때 갑자기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됩니다.
기대는 무너지가 생의 활력처는 불현듯 사라져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되곤 합니다.
집착이 사람이 살게 하는 힘이 된다는 것이 바로 이 때에도 드러나지요. 
어쨌든 이 때 상처를 받기도 하고 실의에 빠지기도 하는데 그것이 결국은 자기 상에 걸려 넘어지는 것!
익숙하면서도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깨닫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보살은 존재가 이미 복덕임을 깨달은 자라고 했습니다. 인연 조건을 이해한 존재, 그런 채로 무엇인가 행위하는 존재입니다. 또, 주고 받음들 속에서 자신이 자신일 수 있음을 이해한 자라는 말도 있습니다. ‘내가 무엇인가를 한다’, ‘내가 준다’, ‘내가 받는다’, ‘쟤가 받는다’… 이런 자의식이 애초에 설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인 것이겠지요.

무엇을 받을 때에도 그것이 ‘나’라서 받는 것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받지 못함 역시 ‘나’라서가 아니지요. 또, 받고 받지 못한다는 것 역시 결국 자기 상에 좌우됩니다. 무엇인가를 받고 또 받지 못하고, 더 받고, 덜 받고, 손해를 보고… 뜻하지 않았어도 이 상을 놓지 못해 감정들을 키우는 일도 자주 있습니다.

또, 흥미로웠던 이야기 중 하나는 애정을 쏟고 또 받는 일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대체 순전한 애정이 있는가... 싶었습니다.
사람은 결국 자기를 기쁘게 하는 것에 애정을 쏟기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어떤 이로움을 준다 싶을 때 곧잘 애정을 쏟고 그것이 끝날 때 애정을 쏟는 일 역시 끝납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다 사랑을 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얻을 것이 없다’싶어 마음을 돌리는 일들만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자신을 기쁘게 했던 것, 자기를 빛내주는 것처럼 보이는 것, 가장 찬란하게 다가와 ‘순전하게’ 마음을 쏟고 있다고 생각하는 일들과도 어느 순간 결별해야 하는 힘이 필요한 것인가 싶었습니다. 그런 것들에도 얽매이지 않을 수 있는지... 아니 그런 것들에 어떤 기대나 존재감을 투사하지 않고 무엇인가 할 수 있는 것인지.
자신에게 고통을 주는 것에서 사람들은 “정신승리”로라도 놓여나고자 하지만 고통으로 다가오지 않는 집착은 볼 수조차 없다는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친구와 스승, 그리고 누군가와 더불어 같이 살아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이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엎어지는 일이 귀한 것도요...
어쨌든 나를 빛나게 하는 것, 좋아하는 것, 좋다고 여겨지는 것에 대한 집착은 정말로 벗어나기 힘듭니다.
또, 마음을 쏟는 일도 어떤 마음을 받는 일도 위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불교에서는 언제나 분별이 문제가 됩니다. 자기를 의미 있게 해주는 것처럼 보이는 것들과 결별할 수 있는가. 아니 그런 상에 사로잡히지 않고 무엇인가 할 수 있는가. 나 자신이 항상하지 않듯이 나나 타자, 세계에 대한 상 역시 항상 바뀝니다. 나를 의미 있게 해주는 무엇인가에 집착한다는 것이 이미 자기 부정인 것이겠지요... 아무튼 그래도 비슷한 질문은 계속 맴돌 것 같습니다. 수업 때 나왔던 ‘八風’ - 사람을 번뇌케 하는 8가지 바람을 올리고 후기를 마치겠습니다.

내일 뵐게요!


*  八風 : 이(利)·쇠(衰)·훼(毁)·예(譽)·칭(稱)·기(譏)·고(苦)·낙(樂)

이로움. 손실. 헐뜯음. 높이 기림. 칭찬함. 기롱. 괴로움. 즐거움
우리를 흔들어 놓는 여덟가지 바람입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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