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문톡톡

[불공이야기] "찟타핫타의 아모르 파티Amor Fati"

작성자
규문
작성일
2021-06-03 12:13
조회
294

찟타핫타의 Amor Fati


글 / 현숙


마음이 안정을 잃어버리고 / 올바른 가르침을 식별하지 못하고 / 청정한 믿음이 흔들린다면, 지혜가 원만하게 완성되지 못한다.
마음에 번뇌가 없고 / 마음의 피폭을 여의고 / 공덕과 악행을 떠난 / 깨어있는 님에게 두려움은 없다. (『담마파다』, 마음의 품, 312~314)

법구경에 있는 부처님의 말씀 하나하나마다에는 다 인연담이 들어있다. 그 인연담을 보면 죄다 우리 얘기다. 부처님께서 모든 중생들의 삶을 낱낱이 꿰뚫고 계시다는 말씀일 것이다. 그런데 <마음의 품>에 있는 찟타핫타의 인연담을 읽으며 이게 딱 내 얘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전생이 혹시 찟타핫타? 어디 내 전생이 찟타핫타 하나뿐이었을까? 그러나 그의 삶의 행로는 유난히 나의 마음의 행로와 닮아있다.

찟타핫타는 한 마디로 변덕이 죽 끓는 사내다. 도대체 뭔 일을 한 가지도 진득하게 하는 법이 없다. 말 타면 견마 잡히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이라고는 하지만, 내가 봐도 이건 너무 하다 싶을 만큼 줏대 없는 삶을 살았다. 어찌나 갈팡질팡했던 내 마음의 행로와 똑같던지, 찟타핫타에게 깊은 연민마저 느껴졌다. 그랬구나, 그랬었구나, 그 업을 기워 갚으라고 이 생에 나로 다시 태어난 것이로구나! 그런데 찟타핫타는 ‘여섯 번이나 출가와 환속을 반복했’지만, 나는 그 찟타핫타보다 백번 천번은 더 출가와 환속을 반복하며 살아왔다. 업을 기워 갚은 게 아니고 더 착실하게 훈습하며 살고 있는 셈이다. 아주 작은 일부터 제법 큰 인생의 고비에서도 나는 매번 들락날락거리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살았다.

찟타핫타는 고귀한 가문의 자제였다. 어느 날 그는 황소를 잃어버리고 그걸 찾으려고 숲속에 들어간다. 그가 황소를 잃어버렸다는 건 매우 상징적인 의미일 것 같다. 십우도(十牛圖)가 생각난다. 이제 ‘마음의 안정을 잃어버린’ 찟타핫타는 그 잃어버린 마음의 본성을 찾는 여정을 걷게 될 것이다. 이는 우리 삶의 궁극적 목표가 바로 찟타핫타의 마음의 행로와 다를 바 없다는 걸 말하기도 한다. 황소를 잃어버린 찟타핫타는 정오쯤 되어 숲에서 황소를 찾긴 했으나, 허기와 갈증에 지쳐 승원의 수행들에게 음식을 얻어먹는다. 찟타핫타가 정오에 황소를 찾았다는 것은 삶에서 가장 최상의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밝은 지혜로 알게 되었다는 말일 것이다. 이는 일종의 발심이고 발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출발점인 것이다. 그러나 이 발원은 단 한 번만으로 영원히 지속되는 그런 것이 아니다. 전 생애를 통하여 그 마음을 다시 일깨우고 보살피는 지난한 과정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찟타핫타가 허기와 갈증에 지쳐 승원에서 음식을 얻어먹는 행위는 바로 그러한 수행의 길로 나아가는 첫 걸음을 내딛었다는 말일 것이다. 선재동자의 구법행처럼. 그래서 찟타핫타는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승단으로 출가한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행복해지고자 하는 행위다. 찟타핫타는 행복의 원인이 되는 생명의 양식을 승원이라는 외부로부터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나도 그랬다. 수녀원에 들어갈 때 그것이 최상의 선택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수녀가 무엇인지, 수녀가 되어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생각하지 못했다. 다만 거기엔 ‘지금’보다 나은 삶이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그 때 ‘지금 이대로의 삶’이 아닌, ‘더 나은’ 어떤 것을 원했고, 그것을 얻기 위해 간절하게 ‘지금 여기’를 벗어나고 싶었다. 그 때는 행복과 행복의 원인을 밖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찟타핫타도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찟타핫타는 승원에서 많은 음식을 먹으며 배가 부르고 살이 찌자 ‘왜 내가 탁발해서 먹고 살아야 하는가?’라고 생각한다. 외부적 조건이란 늘 변하게 마련이다. 마음의 본성을 떠나 바깥의 것들에 의지하는 한 마음은 늘 파도처럼 출렁이게 마련이다. 찟타핫타는 그 마음을 경험하는 중이다. 수행이란 마음을 경험하는 일에 다름 아니다. 자신이 바라고 원하는 것이 얼마나 무상한 것인지를 깨닫게 하는 과정인 것이다. 찟타핫타는 그래서 다시 세속으로 돌아간다. 수녀원은 정말 천국이었다. 아무 것도 부족할 게 없었다. 편안해진 몸과 다르게 마음에는 숱한 망상들이 생겨났다. 왜 그토록 불안했을까? 견마 잡히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수녀원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은 한정되어 있었다. 그것을 알고 나니 밖의 세상에서는 뭔가 더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찟타핫타도 그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재가자의 삶으로 돌아간 찟타핫타는 얼마 되지 않아 몸이 쇠약해지자 ‘내가 왜 이 고통을 참아야 한단 말인가?’하고는 다시 수행자의 삶으로 돌아간다. 마음을 밖에 의지하는 한, 만족은 없다. 현상은 늘 변하는 것이고, 무상한 것이며, 그것이 영원하길 바라지만 이 세상에 변치 않고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그 모든 것들이 나의 것으로 영원히 머무르기를 바란다. 어쩌면 삶이란 그런 우리의 환상을 여지없이 깨트리며 파랑새는 없다는 걸 깨우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을 알 때까지 겪고 또 겪어야 한다. 이것이 생사 윤회인 것이다. 삶이란 신들이 탁자위에서 하는 주사위 놀이라 했던가. 그 모든 우연이 삶의 필연이 될 때까지 우리는 거듭하여 삶을 연습하는 것이다. 찟타핫타의 줏대 없어 뵈는 모든 선택은 이러한 수행의 과정일 뿐이다.

그렇게 승원을 들락거리던 찟타핫타가 다시 환속하여 가정을 이루어 살던 어느 날, 찟타핫타는 ‘임신한 아내가 침을 흘리며 코를 골고 입을 벌리고 부풀어 오른 시체처럼 자는 걸 보고’는 그만 속세의 삶을 혐오하게 된다. 크게 넘어지면 그 아픔이 깊이 기억된다. 사람이 가장 크게 절망하는 순간은 가장 크게 기대했던 것으로부터 배반당하는 순간일 것이다. 누군가 코를 골고, 침을 흘리며, 입을 한껏 벌리고 잔다고 해서 그게 실망할 만한 일은 아니다. 그 당사자가 하필 옆집 아줌마가 아닌, 영원히 아름다울 것이라고 한껏 기대했던 ‘나의 아내’이기 때문에 실망하고 혐오하는 것이다. 실망은 내가 만들어 낸 환상에 대한 실망이고, 혐오는 내가 집착했던 것에 대한 배신감이다. 찟타핫타는 드디어 자신이 만들어놓은 기대와 환상이 얼마나 덧없고 무상한 것인지를 경험하게 된 것이다. 내가 그토록 애착했던 이 모든 것들이 다만 환영이었던 것인가? 이토록 무상한 것이었단 말인가? 이제 더 이상 마음 붙일 곳이 없어진 찟타핫타는 가사를 입고 집을 떠난다. 이게 생이었던가? 좋다! 그렇다면 다시 한 번!! 가사를 입고 다시 집을 떠날 때의 찟타핫타는 아마 이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출가란 출리심이다. 내가 그토록 바라고 원하고 집착했던 모든 것들로부터 떠나려는 마음이다.





 

어떤 작은 하나의 사건도 생각할 수 없을 만큼의 수많은 원인이 거기에 참여하여 일어난다고 하지 않았던가. 어떤 때는 그 사건이 일어나도록 직접 영향을 미치기도 하지만, 어떤 방해나 간섭을 하지 않음으로써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그러니까 찟타핫타에게 다가 왔던 숱한 우여곡절은 그 모든 길이 다 붓다에게로 가는 길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는 운명을 너무 사랑한 이였는지도 모른다. 그는 끝까지 ‘이것도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까? 내가 정말 만족할 수 있는 그런 궁극적 행복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라는 질문을 놓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인연담에는 그가 여섯 번이나 출가와 환속을 거듭했다고 말하지만, 그 여섯 번의 번복은 그에게 실패가 아니라 ‘시도’였을 것이다. 찟타핫타는 매번 참기 어려운 굴욕을 견디며 다시 시도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그가 끝내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그 힘은 대체 어떤 힘이었을까? 사람은 뭔가 반드시 얻고자 하는 간절함이 있을 때 모든 걸 견뎌낸다고 한다. 산스크리트어로 ‘푸루샤’라고 부르는 ‘인간’은 ‘힘을 소유한 어떤 것’이라는 의미를 가진다고 한다. 즉 인간이란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룰 힘을 가진’ 존재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인 우리가 행복해지기를 원하고 고통을 피하고 싶어 한다는 건, 이미 우리 안에 그것을 이룰 힘을 가지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아마도 찟타핫타는 진작 그것을 알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렇게 변명 하나 붙이지 않고 고스란히 그 시간을 살 수 있었겠지. 자기 마음의 굴곡진 행로를, 원숭이처럼 날뛰는 그 마음을 끝까지 외면하지 않으며 그 시간을 견디는 삶. 무엇을 겪게 되더라도 그것들은 다 나로부터 생겨난 것이고, 나로부터 생산된 것이라는 마음을 잃지 않고, 그 모든 굴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찟타핫타는 시간을 견뎌내며, 그 모든 인연조건에 수순한 것이다.

이 인연담은 결국 그 모든 파란만장을 이겨내고 찟타핫타가 거룩한 경지를 성취했다는 훈훈한 결말로 끝이 난다. 그 찟타핫타의 에너지의 파장이 아주 먼데서,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지금 나에게로 오고 있다. 그 에너지의 파장 안에서 나는 지금 이 순간 다시 반복되고 있는 모든 인연들에 대하여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선택’을 기꺼이 하려 한다. ‘이것이 생이었던가? 좋다! 그렇다면 다시 한 번!!’ 인간인 나에게도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 힘’이 있으니, 나도 찟타핫타처럼 스스로 하나의 길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하나의 길이 될 것이다.
전체 4

  • 2021-06-04 09:50
    "마음의 본성을 떠나 바깥의 것들에 의지하는 한 마음은 늘 파도처럼 출렁이게 마련", "무엇을 겪게 되더라도 그것들은 다 나로부터 생겨난 것", "마음을 밖에 의지하는 한, 만족은 없다"라는 말들이 훅 들어오네요. 불교팀 공통과제의 퀄리티는 원래 이렇게 높은 건가요!?

  • 2021-06-04 11:12
    어제 이 글을 읽었는데, 뭔가 울컥해서 차마 댓글을 달 수가 없더라구요. 찟타핫타의 삶과 선생님의 이야기가 절묘하게 겹치며, 결국 자기 마음의 굴곡진 행로와 그 날뜀을 외면하지 않으면서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선택을 기꺼이 하겠다는 발심이 저를 건드렸나봐요. 공부를 길로 삼은 자들에게 너무나 힘이 되는 글이네요. 스스로 하나의 길이 되겠다, 저도 발심해 봅니다. 감사히 읽었습니다^^

  • 2021-06-04 13:04
    문득 '다 나로부터 생겨난 것이고, 나로부터 생산된 것이라는 마음을 잃지 않고, 그 모든 굴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 시간을 견뎌내며, 그 모든 인연조건에 수순하는 것'을 알아감이 인생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드네요. ^^~ 삶을 한 순간이지만 정면으로 바라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 2021-06-04 14:31
    찟타핫타의 이야기를 읽어보고 싶네요! 변덕이 죽 끓던 과정이 실패나 결함이 아니라 시도였다는 부분이 특히 감동적입니다. 남들 눈에는 변덕이라 보였을 모습들이 사실은 손가락질을 참으면서까지 부처가 되기 위한 간절함의 표현이라는 것이 큰 울림을 주네요. 힘을 얻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