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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하는 월요일: 스피노자와 현대정치학 2강 - 알튀세르[후기]

작성자
만두
작성일
2017-09-26 16:05
조회
214
<우회>

스피노자라는 사상가는 그 유명세에도 불구, 막상 어떤 사상을 설파하고 전개했는지 알려진 바는 거의 없는 양반입니다. 오히려 스피노자가 이토록 유명세를 타게 되었는지가 더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뭘 주장했는지도 무엇을 했는지도 잘 모르는데 유명하니 말입니다. 지난 강의에서 그 설명이 심도 있게 진행되었음에도 깊은 동의까지 이어지지는 못했습니다. 17세기 한 사상가를 21세기 후반에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연구하게 된 이유가 더 궁금했거든요. 도대체 서구 지성은 3세기라는 시간 속에서 스피노자에게 무슨 짓을 한 거지?

오늘 강의 중 스피노자의 사상은 그의 주저 <윤리학>에 응축되어 있다고 하셨는데 이 <윤리학>에 대해 가장 잘 알려진 내용은 단 하나, ‘어렵다더라’입니다. 나머지 저서들은 거의 보고도 못 본 척. 알튀세르가 필연적으로 헤겔을 경유하는 맑스의 철학을 좀 더 명료하게 이해하기 위해 스피노자를 우회하기로 했듯, 우리는 스피노자를 경유하는 현대정치학 사상가들을 통해 거꾸로 그 어렵다는 스피노자의 사상에 대한 이해를 명료하게 가져볼 수 있는 우회를 하고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오늘은 현대 맑스주의 철학자 알튀세르를 우회하여 스피노자의 1)존재론 2)인식론 3)상상이론에 다가가 보았습니다.

알튀세르는 맑스주의 역사유물론의 발전을 위해 스피노자의 존재론을 배경으로 ‘구조인과성’ 개념을 제안합니다. 맑스주의는 “구조 전체와 그 구조를 구성하는 요소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이론적 해결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이전 철학의 지배적 모델로는 데카르트가 발전시킨 기계적 인과성 내지 타동적 인과성 모델이 있는데, 이는 부분들에 대한 구조 작용의 유효성을 설명하지 못합니다. 또 헤겔과 라이프니츠가 발전시킨 표현적 인과성 모델로는 역으로 구조 안에 통합된 부분들의 자율성을 설명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알튀세르가 도입한 스피노자의 존재론, 편의상 스피노자의 인과성 모델은 앞선 두 모델과 어떻게 맞서고 있을까요?

스피노자의 존재론은 구조와 요소라는 이항적 관계가 아니라 실체-속성-양태라는 삼항의 관계를 구성합니다. 우선 실체는 속성을 통해 모든 양태들의 내재적 원인이기에(1부 정리18) 유효적 원인입니다. 예시될 수 없지만 논리적으로 유일한 실체는 모든 양태들이 그 안에 있으며 실체 없이는 어떤 것도 존재할 수 없고 인식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데카르트식 인과론이 극복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양태들에게는 어떠한 자율성도 없다는 것인가? 헤겔과 라이프니츠 인과론처럼 부분들의 자율성 나아가 그 실재성 자체가 의심되는 것은 아닌가?

우선 <윤리학> 1부 정리28에서 모든 독특한 실재는 분명히 실존하는데, 유한하고 규정된 실존을 갖습니다. 그리고 이 유한하고 규정된 실존을 갖는 모든 실재는 유한하고 규정된 실존을 갖는 다른 원인에 의해 실존하고 작업한다고 말합니다. ‘작업한다’가 빠졌다면 우리는 타동적 인과론, 또는 도미노 같은 관계론에 빠지게 되겠죠. 저를 포함해 내심 도니노를 상상하다 뜨끔하신 분들이 계셨었죠? 스피노자의 사상은 설익은 이미지화를 허락하지 않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도미노 연쇄는 피동적이라 각각은 아무런 작용인을 가질 수 없지만 스피노자의 개체들은 각각의 작용인을 가지고 있습니다. 작업한다는 의미에서의 ‘역량’은 아무래도 다른 우회로를 통해 만나야 할 것 같습니다만 결론적으로 스피노자의 모든 개체에는 각각의 작업하는 역량이 주어져 있기에 일정하게 규정된 방식의 자율성을 보장받고 있으며 헤겔과 라이프니츠의 표현적 인과성의 한계를 넘어섭니다.

그런데 속성은 뭐지? 속성은 각각의 요소들의 자율성과 관계합니다. 평행론 명제로 유명한 2부 정리7의 주석이 그것인데, 모든 양태들은 그것들이 속한 속성 아래에서 자율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는 선에서 넘어가야 할 듯. 알튀세르의 우회에서 일탈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알튀세르의 구조인과성 개념은 스피노자의 실체와 양태의 인과성에서 고안되었고, 각각의 요소들의 자율성은 속성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또 다른 개념인 ‘인식론적 절단’으로 넘어가봅니다.

알튀세르는 과학사에서 인식의 단절과 연속성이 있음을 설명하기 위하여 세 가지 일반성 개념을 도입하였습니다. 이 세 가지 일반성 인식 이론으로 맑스주의의 이론적 작업 방식을 설명하려고 했답니다. 알튀세르는 과학사를 설명하기 위한 방편으로 인식론적 목적에 따른 인식의 종류를 나누고 있습니다만 스피노자는 주로 윤리적 목적을 겨냥하고 있다고 합니다. 스피노자는 <윤리학> 2부 정리 40의 주석2에서 이러한 인식의 종류를 밝히고 있으며, 알튀세르는 이런 인식 유형 구별에 착안하여 그의 인식론적 절단 개념을 도입한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의 앎이 다 같은 앎이 아니며 앎에는 어떤 단절과 연속성이 있음을 아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강의록 내용을 그대로 따오면,

3가지 유형의 인식은 1)막연한 경험과 기호를 통해 형성되는 1종의 인식 또는 상상 2) 공통 통념들 및 적합한 관념들로부터 형성되는 2종의 인식 또는 이성 3) 신의 어떤 속성들의 형상적 본질에 대한 적합한 관념으로부터 실재들의 본질에 대한 적합한 인식으로 나아가는 3종의 인식 또는 직관적 지식입니다. 이중 1종의 인식은 거짓의 유일한 원인이고 2종과 3종의 인식이 필연적으로 참되다고(정리41)합니다. 따라서 1종의 인식과 2,3종의 인식 사이에는 (윤리적?) 단절이 존재합니다.

마지막으로 알퉤세르의 이데올로기를 통해 스피노자의 상상이론을 만나야 했지만 시간이 허락하지 많았습니다. 이 부분은 다음 번 강의에서 밝혀주시기로 하셨기에 궁금증을 품고 명절을 맞이해야 겠습니다. 저는 우회로 통한다는 의미가 스피노자의 전모를 단박에 다 밝혀주지는 않지만 사상의 다양한 측면을 보여줌으로써 오독의 이탈을 방지하고 점진적인 깊이의 접근을 열어주는데 있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아주 긴 호흡이 요구되는 스피노자 사상을 중도포기 않게만 해주어도 감사할 따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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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9-28 14:41
    신속하게, 그리고 성실하게 정리해 올려주신 후기 감사하게 잘 읽었습니다. 중간중간 뭘 하다 그랬는지 놓친 부분이 있었네요. 어렵지만 매혹적인 스피노자 철학이 또 어떤 철학 및 정치사상과 만나 변용되는지 확인할 수 있는 알흠다운 시간, 앞으로도 많이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