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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과 노자 하상공주 71장 ~ 81장 후기

작성자
박규창
작성일
2017-09-29 13:14
조회
119
노자 하상공주도 이렇게 끝이 났네요. 작년 여름에 봤던 노자가 왕필주로 보면서 좀 달랐고, 하상공주로 보면서 또 새롭네요. 원래 80장에 꽂혔었는데 이번에 읽으면서 81장이 왠지 감동적이었어요. 아직 혼자 어떻게 읽을지 감은 안 오지만 조금씩 주제가 어렴풋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구요......? 유가나 장자의 텍스트를 읽을 때마다 계속 우려먹어야겠어요. ㅎㅎ

이제 중용 시작하고, 그 뒤로도 장자 등등 뭔가 있을 테니 계속 같이 공부해요~

 

71. 지병(知病)

 

, 不知, ; 不知, , . 夫唯病病, 是以不病. 聖人不病, 以其病病, 是以不病.

 

()를 알면서도 알지 못한다 하는 것이 상덕(上德)이고, ()를 알지도 못하면서 안다 하는 것이 병이다. 오직 병을 병으로 여기므로, 병이 아니게 된다. 성인이 병이 아닌 까닭은 병을 병으로 여기기 때문이니, 이 때문에 병이 아니게 된다.

 

71장의 제목을 “병을 알다.”입니다. 여기서 ‘병’이란 도(道)를 알지 못하는데도 안다고 여기는 것을 말합니다.

지부지(知, 不知), 부지지(不知, 知)는 지이부지(知而不知), 부지이지(不知而知)로 해석했습니다. 그러면 ‘알면서도 안다고 여기지 않고, 모르면서도 안다고 여기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72. 애기(愛己)

 

民不畏威大威至矣. 無狹其所居無厭其所生. 夫惟不厭是以不厭. 是以聖人自知不自見 ; 自愛不自貴. 故去彼取此.

 

백성들이 작은 해로움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큰 해로움에 이르게 된다. 오장신이 머무는 곳은 안달복달하게 만들지 말고, 가지고 태어난 정()과 신()을 염증나게 하지 말아라. 오직 염증나게 하지 않기 때문에, 염증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인은 자신의 득실을 알뿐 덕을 드러내지 않고, 자신의 몸을 아껴 정기(精氣)를 보존할 뿐 세속적 욕망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스스로를 드러내고 귀하게 여기는 태도를 버리고, 자신을 알고 아끼는 태도를 취한다.

 

72장의 제목을 “자기를 아끼다.”입니다. 역시 정(精)과 신(神) 얘기입니다.

위(威)를 왕필은 ‘지배자의 권위’로, 대위(大威)를 ‘국가의 혼란’으로 해석했습니다. 하지만 하상공은 위(威)를 작은 해로움으로 풀고, 대위(大威)를 죽음으로 풀었습니다. 우쌤은 작은 해로움이 뜻하는 건 애정양신(愛精養神)할 줄 모르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협(狹)이 왕필본에는 압(狎)으로 돼있습니다. 왕필은 거(居)를 ‘백성이 사는 곳’으로 봐서 “백성이 사는 곳을 가까지 하지 말라.”라고 다스림의 관점에서 해석했습니다. 반면에 하상공은 ‘옹색하다’, ‘좁다’의 협(狹)을 썼고, 거(居)를 신(神)이 깃드는 오장으로 봤습니다. 그래서 “오장신을 옹색하게 하지 마라.”가 됩니다. 주석에 급협(急狹)이란 표현이 있는데, 우쌤은 ‘안달복달하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생(生)은 가지고 태어난 정(精)과 신(神)입니다.

성인은 도(道)로 몸을 닦아 정(精)과 신(神)을 깨끗하게 한 사람을 말합니다.

 

73. 임위(任爲)

 

勇於敢則殺, 勇於不敢則活. 此兩者, 或利或害. 天之所惡, 孰知其故? 是以聖人猶難之. 天之道, 不爭而善勝, 不言而善應, 不召而自來, 繟然而善謀. 天綱恢恢, 疏而不失.

 

[유위를] 행하는 데 용감하면 죽게 되고, 용감하지 않으면 몸을 살릴 수 있다. 감히 유위를 행하는 것과 행하지 않는 것은 이롭기도 하고, 해롭기도 하다. 하늘이 싫어하는 것을 누가 그 까닭을 알겠는가? 그러므로 성인은 오히려 그것을 어렵게 여긴다. 하늘의 도()는 다투지 않아도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 두렵게 하고,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때에 맞게 반응하게 하고, 부르지 않아도 스스로 음을 등지고 양을 향해 오게 하니, 느슨하면서도 [각각 댓가를 치르도록] 잘 처리한다. 하늘의 그물망은 드넓어서 성긴 것 같아도 놓치는 건 없다.

 

감(敢)은 “감히 유위를 행하다”란 뜻입니다.

시이성인유난지(是以聖人猶難之) 이 부분은 63장에도 나옵니다. 우쌤은 이 구절이 없는 게 연결이 더 자연스럽다고 하셨습니다.

천지소오, 숙지기고?(天之所惡, 孰知其故?) 이건 “하늘이 싫어하는 것을 누가 능히 그 까닭을 알겠는가?”로 해석됩니다. 좀 더 자세하게 해석하면, “천지의 운행이 그러하니 그 까닭을 어찌 알 수 있겠는가?”가 됩니다. 우쌤은 결국 이러한 말들이 뜻하는 건 하늘의 운행이 그러하니까 따지지 말라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승(勝)은 사람들로 하여금 저절로 두렵게 하는 것입니다.

응(應)은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 때에 맞게 움직이게 하는 것입니다.

천(繟)은 ‘너그럽다’, ‘느슨하다’의 뜻으로 천도(天道)를 묘사한 글자입니다. 주석을 참고하면, 선을 닦거나 악을 행하는 것 각각 댓가를 받는다고 합니다.

천망회회, 소이불실(天綱恢恢, 疏而不失)에서 회회(恢恢)는 ‘넓다’입니다. 이 구절도 액자에 많이 걸린다고 합니다. 노자 구절이 시 같아서 어디 걸긴 참 좋지만, 이해들 하고 거시는지 ㅋㅋㅋㅋㅋㅋ

 

74. 제혹(制惑)

 

民不畏死, 奈何以死懼之? 若使民常畏死, 而為奇者, 吾得執而殺之, 孰敢? 常有司殺者, 夫代司殺者, 是謂代大匠斲. 夫代大匠斲者, 希有不傷手矣.

 

백성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어찌 죽음으로써 두렵게 하겠는가? 만약 백성으로 늘 죽음을 두려워하게 하는데도 편법을 행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들 잡아 죽일 것이니, 누가 감히 그러하겠는가? 항상 죽음을 맡은 자가 있으니, 무릇 죽음을 맡은 자를 대신해서 죽이는 자는 이를 일러 목수를 대신해 나무를 깎는 것이라 한다. 무릇 나무를 대신해 나무를 깎는 사람치고 손을 다치지 않는 사람은 드물다.

 

74장의 제목은 “미혹을 제어하라.”입니다. 나라를 다스리는 것과 몸을 다스리는 것을 동시에 말하고 있는 장이기도 합니다.

주석을 참고하면,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이 형벌이 심하고 가혹하면, 백성들이 생을 도모하지 않으니 그러므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몸을 닦는 사람이 감정에 휘둘려 신(神)을 상하게 하고, 몸을 해칠 때까지 재물을 탐하면, 백성들이 두려워해야 할 것은 알지 못한다.”고 돼있습니다.

기(奇)는 ‘기이하다’란 뜻으로 여기서는 ‘편법’을 쓰는 사람을 말합니다. 주석을 참고하면, 도(道)로 교화하는데도 따르지 않으면 왕법으로 잡아 죽인다고 합니다.

사(司)는 ‘맡기다’입니다.

대장(大匠)은 ‘뛰어난 목수’입니다. 착(斲)은 ‘나무를 깎다’, ‘도끼질하다’입니다. 대장(大匠)과 반대된 표현으로 졸부(拙夫)가 있습니다. 보통 ‘졸렬한 사람’이란 뜻인데, 여기서는 ‘서툰 목수’란 뜻으로 사용됐습니다.

 

75. 탐손(貪損)

 

民之飢, 以其上食稅之多, 是以飢. 民之難治, 以其上之有為, 是以難治. 民之輕死, 以其求生之厚, 是以輕死. 夫唯無以生為者, 是賢於貴生.

 

백성이 굶주리는 것은 위에서 걷는 세금이 많기 때문이니, 그렇기 때문에 백성이 굶주린다. 백성들을 다스리기 어려운 것은 위에서 유위를 행하기 때문이니, 그 때문에 다스리기 어렵다. 백성들이 죽음을 가벼이 여기는 것은 [위에서] 생활을 풍족하게 하는 걸 구하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죽음을 가볍게 여긴다. 오직 생에 유위함이 없는 사람만이 고관대작보다 낫다.

 

상(上)은 ‘군주’를 뜻합니다.

다(多)는 ‘유위를 행하는 게 많다’입니다. 이 장은 전반적으로 군주에 따라 백성들의 욕망, 생활 등이 결정되는 구도입니다.

경사(輕死)는 ‘죽음을 가벼이 여기다’입니다.

구생지후(求生之厚)는 생생지후(生生之厚)와 비슷하게 ‘생활의 풍족함을 구하다’란 뜻입니다. 앞의 구절들과 비슷한 구도로 본다면, 상(上)이 생략된 걸로 볼 수 있습니다.

귀생(貴生)은 긍정적인 의미로 쓰일 때도 있지만, 여기서는 지위와 봉급, 재산과 이익에 신경 쓰는 것입니다.

 

76. 계강(戒强)

 

人之生也柔弱, 其死也堅強. 萬物草木之生也柔脆, 其死也枯槁. 故堅強者, 死之徒 ; 柔弱者, 生之徒. 是以兵強則不勝, 木強則共. 強大處下, 柔弱處上.

 

사람이 살아있을 때는 부드럽고 약하지만, 죽어서는 딱딱하고 강해진다. 만물초목은 살아서는 부드럽지만, 죽어서는 마르고 뻣뻣하다. 그러므로 딱딱하고 강한 것은 죽은 무리이고, 부드럽고 약한 것은 산 것의 무리이다. 그렇기 때문에 군대가 강하면 이기지 못하니, 나무밑동이 튼튼해야 가지와 잎사귀가 같이 산다. 강하고 큰 것은 아래에 놓이고, 부드럽고 약한 것은 위에 놓인다.

 

유약(柔弱)은 화기(和氣)로 정(精)과 신(神)을 안고 있는 증거입니다.

견강(堅强)은 화기(和氣)가 다하여 정(精)과 신(神)이 없어진 증거입니다.

취(脆)는 약(弱)과 비슷하게 ‘취약하다’, ‘부드럽다’란 뜻입니다.

고고(枯槁) 둘 다 ‘마르다’, ‘시들다’란 뜻으로 죽은 것을 비유한 글자입니다. 이 표현은 그대로 굴원의 《어부사(漁父辭)》에도 나옵니다.

 

굴원이 쫓겨나 강호에서 노닐며 못가에서 시를 읊조리고 다니는데 안색이 초췌하고 모습은 야위어 보였다.(屈原旣放 遊於江潭 行吟澤畔 顔色憔悴 形容枯槁)”

 

주석을 참고하면, 병강즉불승(兵強則不勝)은 전투를 가벼이 여기고 살인을 즐겨서, 독이 흐르고 원한을 맺게 되어 약한 자들이 하나로 뭉쳐 강해진다고 합니다.

목강즉공(木強則共)에서 공(共)이 왕필은 병(兵)으로, 진고응은 절(折)로 돼있습니다. 왕필이나 진고응은 ‘무기가 와서 친다’, ‘꺾인다’로 해석했지만, 하상공은 ‘같이 산다’라는 의미에서 공(共)을 썼습니다.

 

77. 천도(天道)

 

天之道, 其猶張弓乎? 高者抑之, 下者舉之 ; 有餘者損之, 不足者與之. 天之道, 損有餘而補不足 ; 人之道則不然, 損不足以奉有餘. 孰能有餘以奉天下唯有道者. 是以聖人為而不恃, 功成而不處, 其不欲見賢.

 

하늘의 도()는 활을 당기는 것과 비슷하지 않은가? 높은 것은 누르고, 낮은 것은 들어 올리니, 남는 것은 덜어내고, 부족한 것은 보태준다. 하늘의 도()는 남는 걸 덜어내고 부족한 데 보태주지만, 사람의 도()는 그렇지 않으니, 부족한 것을 덜어내어 남는 데 받든다. 누가 능히 남음으로써 천하를 받들겠는가? 오직 도()가 있는 사람만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인은 베풀지만 보답을 기대하지 않고, 공을 이루어도 거기에 처하지 않으니, 자신의 현명함이 드러나긴 원하지 않는다.

 

77장은 천도(天道)와 인도(人道)의 대립이 어떻게 드러나는지가 관전포인트입니다. 사람들이 흔히 따르는 인도(人道)가 아닌 천도(天道)를 따르는 게 성인의 도(道)입니다.

천지도, 손유여이보부족(天之道, 損有餘而補不足) 이 구절에 대해 주석에서는 “하늘의 도(道)는 가득 찬 것은 덜어내고 부족한 것은 보태주니, 늘 중화(中和)를 최고로 여긴다.”라고 돼있습니다.

우쌤은 천도(天道)의 운행을 본받은 성인은 어떻게 부족한 사람에게 나눠줄 것인지를 고민하다고 하셨습니다. 주석을 참고하면, “스스로 작위와 녹봉을 성찰한다.”라고 돼있습니다.

위이불시(為而不恃), 공성이불처(功成而不處)는 2장부터 여러 장에 나왔습니다. 처(處)와 거(居)의 의미는 통합니다.

 

78. 임신(任信)

 

天下柔弱, 莫過於水, 而攻堅強者, 莫之能勝, 以其無以易之. 弱之勝強, 柔之勝剛, 天下莫不知, 莫能行. 故聖人云 : 受國之垢, 是謂社稷主 ; 受國之不祥, 是謂天下王.正言若反.

 

천하에 부드럽고 약한 것으로 물보다 더한 게 없고, 딱딱하고 강한 것을 공격하는 것으로 능히 물을 이길 수 없으니 물보다 쉬운 게 없기 때문이다.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고, 부드러운 게 강한 것을 이기니, 천하에 알지 못하는 이는 없지만 능히 실천하는 이가 없다. 그러므로 성인은 이렇게 말했다. “나라의 더러움을 감당하니, 이를 일러 사직의 주인이라 하고, 나라의 재앙을 감당하니, 천하의 왕이 된다.” 바른 말은 마치 그른 말 같다.

 

78장의 핵심은 유약(柔弱)과 견강(堅强)의 대립입니다. 이러한 구도는 36장과 43장, 76장에도 그대로 나옵니다. 노자를 볼 때 저번에 우쌤은 부쟁(不爭)을 주제로 볼 수 있다고 하셨는데, 이번에는 유약(柔弱)과 견강(堅强)도 얘기해주셨네요.

유약(柔弱)의 성질을 가진 것으로 물(水)이 나오는데, 주석을 참고하면, “물은 부드럽고 약하므로, 둥근 곳에 들어가면 둥글게 되고 각진 곳에 들어가면 각지게 되며, 막으면 멈추고, 터놓으면 흘러간다.”고 합니다.

제가 느낀 하상공의 재미는 진지한 왕필에 비해 재밌는 주가 많다는 것입니다. 유지승강(柔之勝剛)에 대해, “혀는 부드럽고, 이는 단단하지만, 이가 혀보다 먼저 망가진다.”고 합니다.

불상(不祥)은 ‘상서롭지 않은 것’, ‘재앙’이란 뜻입니다.

 

79. 임계(任契)

 

和大怨, 必有餘怨, 安可以為善? 是以聖人執左契, 而不責於人. 有德司契, 無德司徹. 天道無親, 常與善人.

 

큰 원한을 풀어도 반드시 남는 게 있으니, 어찌 제대로 해결했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성인은 좌계를 잡고 있을 뿐 다른 사람을 추궁하지 않는다. ()이 있는 사람은 계에 맡기고, ()이 없는 사람은 남이 잃은 것을 살핀다. 하늘의 도()[계만 잡고 있을 뿐] 사사로움이 없으니, 항상 선한 사람과 함께 한다.

 

79장의 제목은 “계를 맡다.”입니다. 여기서 계(契)란 깐깐한 계약문서가 아니라 구두계약급의 허술한 계약문서, 부절입니다. 이와 반대로 철(徹)이 나오는데, 맹자에서는 철법(撤法)이라고 해서 모든 이들에게 10분의 1세를 걷는 개념으로 쓰이기도 합니다. 여기서는 철저하고 깐깐한 계약관계입니다. 계의 중요성을 말하는 건 부절로만 믿을 정도로 순박한 사회를 뜻합니다.

화대원(和大怨)에 대해 주석에서는 “살인한 사람은 죽이고, 상해를 입힌 사람은 형벌을 줘서 상응한 방식으로 대응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화보(和報)란 표현이 나오는데, 우쌤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으로 갚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사(司)는 ‘살피다’란 뜻이 있지만, 여기서는 ‘맡다’, ‘담당하다’란 뜻으로 쓰였습니다.

 

 

80. 독립(獨立)

 

小國寡民, 使民有什伯, 人之器而不用. 使民重死, 而不遠徙. 雖有舟輿, 無所乘之 ; 雖有甲兵, 無所陳之 ; 使民復結繩而用之. 甘其食, 美其服, 安其居, 樂其俗. 鄰國相望, 雞狗之聲相聞, 民至老死不相往來.

 

나라를 작게 여기고, 백성을 적게 여기니, 백성들로 하여금 10, 100명의 행정구역에 살게 하고, 사람들의 농기구를 함부로 쓰지 않는다. 백성으로 하여금 죽음을 무겁게 여기게 하면서도 [자신이 거처하던 곳으로부터] 멀리 가지 않게 한다. 비록 배와 수레가 있더라도 그것에 올라타지 않으니, 비록 갑옷과 무기가 있더라도 그것을 늘어놓지 않으며, 백성들로 하여금 결승문자를 다시 쓰게 한다. 채소를 먹어도 맛있게 여겨 [백성의 음식을 빼앗지 않고], 자신의 옷을 아름답게 여겨 [오색을 귀히 여기지 않고], 초가집을 편안히 여기지 [화려한 무늬에 집을 좋아하지 않고], 그 질박한 속()을 즐긴다. 이웃나라는 서로 바라보고, 닭과 개의 울음소리는 서로 들리니, 백성들이 늙어 죽을 때까지 서로 오고가지 않는다.

 

소국과민(小國寡民)은 여러 가지로 해석되는데, 하상공은 나라가 많거나 백성이 많아도 그들을 작고 적게 여기는 것으로 풀었습니다. 우쌤은 ‘제국을 다스리지만 제국을 다스리지 않는 것처럼 하는 것’으로 정리해주셨습니다.

십백(什伯)은 ‘10명, 100명’의 뜻으로 귀천의 신분에 따른 거주지를 구별하는 행정구역을 뜻합니다.

기(器)는 왕필이나 진고응 같은 경우에는 ‘이로운 물건’, ‘문명의 이기’로 풀었지만, 하상공은 ‘농기구’로 봤습니다.

이불용(而不用)은 농사꾼들이 농사짓는 때를 빼앗지 않는 것입니다. 비슷하게 《맹자》에 농사짓는 시기를 빼앗지 않는다는 얘기가 있는데, 우쌤은 이 둘을 비교해서 보라고 하셨습니다.

진(陳)은 ‘늘어놓다’라는 뜻인데, 병장구를 늘어놓는 건 전쟁 전에 무기를 점검하는 과정입니다. 그러니까 ‘무기를 사용하다’라는 뜻입니다.

우쌤은 속(俗)을 어떻게 번역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하셨습니다. 풍속(風俗)으로 번역하면, 지배자의 영향(風)으로 백성들의 삶이 결정됐다고 하는 지배자의 관점으로 보게 됩니다. 그밖에 민속이나 민예 같은 것들은 일제 강점기에 생긴 거라 번역하기에 마땅하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상망(相望)으로 ‘서로 바라보다’라는 뜻으로 매우 가까운 거리를 뜻합니다.

불상왕래(不相往來)가 뜻하는 건 정말 오고 감이 아예 없는 게 아니라 지금 있는 자리에서도 충분히 만족하는 삶, 자족적인 삶을 뜻합니다.

 

81. 현질(顯質)

 

信言不美, 美言不信. 善者不辯, 辯者不善. 知者不博, 博者不知. 聖人不積, 既以為人, 己愈有 ; 既以與人, 己愈多. 天之道, 利而不害. 聖人之道, 為而不爭.

 

믿음직스런 말은 화려하지 않고, 화려한 말은 믿음직스럽지 않다. ()로써 몸을 닦은 사람은 말을 잘하지 않고, 말을 잘 하는 사람은 도()로써 몸을 닦지 않았다. ()를 아는 사람은 박학다식하지 않고, 박학다식한 사람은 도()를 알지 못한다. 성인은 쌓지 않으니 남을 위해 베풀수록 자기는 더 있게 되고, 다른 사람에게 줄수록 자기는 더 많아지게 된다. 하늘의 도()는 이롭지 해치지 않는다. [이를 본받아] 성인의 도()는 베풀지 다투지 않는다.

 

81장의 제목은 “질박함을 드러내라.”입니다.

선(善)은 ‘도(道)로써 몸을 닦은 사람’입니다.

변(辯)은 ‘말 잘하다’란 뜻으로 교언(巧言)이기도 합니다. 주석을 참고하면, “불선하면 혀가 환란에 이른다.”고 돼있습니다.

지(知)는 ‘도(道)나 진(眞)을 아는 것’입니다.

박(博)은 박학다식(博學多識)입니다.

주석을 참고하면, “성인은 덕을 쌓지 재물을 쌓지 않으니, 덕이 있으면 어리석은 이를 가르치고, 가난한 이에게 재물을 줘야한다.”고 합니다.

기(旣)는 대개 ‘이미’란 뜻이지만, 여기서는 ‘자발적으로’, ‘알아서’의 뜻입니다. 우쌤은 베풀수록 점점 더 많아지는 건 재물이나 영예가 아니라 그 사람의 덕(德)이라고 하셨습니다.

성인의 도(道)의 부쟁을 무위지치(無爲之治)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주석을 참고하면, “성인은 하늘이 베푸는 바를 본받아, 일을 완성하고 이루는 데 나아갈 뿐, 백성들과 더불어 공명을 다투지 않으니, 그러므로 성인의 공을 온전히 할 수 있다.”고 돼있습니다. 우쌤은 굳이 이 말을 넣은 까닭은 당시 아랫사람과 다투던 어떤 에피소드가 있기 때문일 것이라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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