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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하는 월요일 : 스피노자와 정치학 4강 <스피노자와 들뢰즈> 후기

작성자
정은하
작성일
2017-10-22 00:26
조회
148

지난 시간에는 3강에 이어 스피노자 철학에 대한 들뢰즈의 해석을 좀 더 구체적으로 듣는 시간이었습니다. 그중 핵심적인 내용이 스피노자의 실체, 속성, 양태의 관계를 재설정하기 위해 도입한 들뢰즈의 ‘형상적 구별’ 개념과 일반 행동학 관점에서의 스피노자의 인간학을 이해하는 것이었습니다.


i) 형상적 구별


우선 형상적 구별의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스피노자의 속성 개념을 둘러싼 대립되는 두가지 논쟁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고 합니다.  속성은 <에티카> 1부-정의4에 의하면 ‘실체의 본질을 구성하는 것으로 지성이 지각하는 것’이라 정의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정의의 해석에 따라 속성의 위치가 전혀 다르게 파악 됩니다. 그 중 하나는 ‘주관적 해석론’으로 속성을 ‘인간 지성이 실체를 파악하는 하나의 관점’으로 이해하는 것으로, ‘인간은 신의 본질을 알 수 없고 단지 몇가지를 주관적으로 지각한다’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때 속성은 주관적인 성질에 불과한 것으로 전락 됩니다. 이와 반대되는 입장이 들뢰즈를 위시한 20세기 후반 주석가들이 주장한  ‘객관적 해석론’입니다. 이 관점에서는 속성을 실체의 객관적 본질로 파악하기 때문에, 속성의 위치가 크게 격상이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관점은 또 다른 난제를 불러일으키는데, 바로 ‘이렇게 무한한 속성을 지닌 실체가 분할되지 않고 어떻게 하나의 실체를 구성할 수 있는가’  다시말해 ‘실체의 통일성’이 문제가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실체의 통일성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도입된 개념이 바로 들뢰즈의 ‘형상적 구별’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형상적 구별’은 중세 일의성 철학자였던 둔스 스코투스으로부터 개념을 빌려 온 것으로, ‘형상적으로는 구별 되지만 수적 구별은 안되는’ 다시말해 따로 별개의 실체를 구성하지 않는 존재들 사이의 구별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들뢰즈는 바로 이러한 형상적 구별을 '질적구별'이라 표현하는데, 이것을  속성들 사이의 구별에 적용합니다. 이제 실체의 무한한 속성은 각각이 실재적이고 독립된 형상을 지니지만, 실체의 존재론적 통일성을 깨뜨리지 않고 도리어 그 실체의 통일성을 표현하는 존재로 인식됩니다. 그리고 이것으로 부터 실체는 ‘무한하게 많은 속성들을 자신의  본질들로 지니고 있으면서도 존재론적으로 하나일 수 있다’라는 결론을 끌어냅니다. 하지만 이러한 들뢰즈의 해석은 스피노자의 존재론과는 다른 실체와 속성들 사이의 차이를 발생시킵니다. 왜냐하면 형상적 구별 개념을 따를 경우, 실체는 서로 상이한 속성들을 통합하는 존재론적으로 통일체가 되며, 따라서 각각의 형상들에 비해 존재론적으로 우월한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관점은 실체와 속성은 ‘사고상의 구별’만 있을 뿐 실재적으로 동일한 존재라고 주장했던 스피노자의 존재론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ii) 일반 행동학으로서 스피노자 인간학


들뢰즈는 스피노자의 인간학과 윤리학은 일반 행동학에 기초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동물의 행동을 관찰하고 기술하던 기존의 ‘동물행동학’의 개념을  모든 존재자들의  활동을 대상으로 하는 일반 행동학으로 확장시켜, 이것으로부터 윤리의 문제를 새롭게 제기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활동으로서의 개체를 이해하는데 있어, ‘역량’은 굉장히 중요한 개념이 됩니다.


역량 개념은 매번 수업 때 마다  언급되었을 정도로 중요한 개념인데, 이 역량을 어떻게 이해하는지에 따라 의도했든 아니든 초월적 또는 그것과 전혀 상반되는 일의적 세계관을 긍정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들뢰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수의 비유와 같이 역량을 잠재태로 이해할 경우, 필연적으로 초월성 또는 양의성의 철학에 이를 수 밖에 없다고 비판 합니다. 왜냐하면 잠재태로써의 역량 개념을 신에게 적용할 경우, 신은 역량(potentia)을 지니지만 오직 의지에 따라서만 역량을 표현하는 존재가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신의 온전한 역량은 감춰어져 있고 인간에게 인식 불가능것으로 남게 됩니다. 하지만 활동으로서의 역량 즉 일의성의 관점으로 역량을 이해할 경우, 신의 역량은 감춰있지 않고 활동으로(act)로 남김없이 표현 됩니다. 그리하여  잠재태 또는 가능태로서의 역량은 존재하지 않고, 오직 현실태(actualize)로 표현되는 역량만이 존재하게 됩니다. 들뢰즈는 스피노자 철학 안에서 이러한 ‘활동으로서의 역량 개념’이 강조 되면서, 초월적 근거를 통해 가능적으로만 존재하는 양태가 이제  자신의 내재적 역량을 통해 독자적으로 실존할 수 있는 존재로 재해석 되었다고 보았습니다.


또한 들뢰즈는 스피노자철학에서 인간을 포함한 모든 자연적 존재자들을 관계의 측면과 역량의 측면에 따라 구성된다고 보았습니다. 관계의 측면에 따라 개체를 정의하는 것을 개체의 자연학적 정의로 보았고, 이는 개체들을 ‘운동과 정지 또는 빠름과 느림의 특정한 관계/비율’와 같은 운동과 관계에 의해 개체를 분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역량의 측면에 의한 개체정의는 개체의 활동역량 또는 능동/수동성, 코나튜스 측면에 의한 분류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은 중간에 그쳤기 때문에,  다음 강의를 들어야지 이러한 방식의 개체의 정의가 지닌 의미가 좀 더 분명해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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