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강좌

[동화인류학] 1027 공지

작성자
수경
작성일
2017-10-23 16:12
조회
152
음... 강좌 프로그램이라 별도의 공지를 하지 않을까 했으나... 아무래도 필요한가 싶어 올려봅니다. ^^;;

언제나 알찬 <앙띠 오이디푸스> 수업이지요^^ 지난 시간에 몇 차례에 걸쳐 강조된 것은 개체와 사회의 관계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전도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사회가 변혁되면 개인의 삶이 바뀔 것이다, 법이 정비되면, 대통령이 하야하면, 자본주의가 사회주의가 되면 내 삶이 좋아질 것이다… 대개의 혁명이 그런 믿음으로 시도됩니다. 그런데 혁명 이후를 보면 여지없이 그것을 뒤집는 일련의 사건들이 이어지기 마련이지요. 혁명 이후에도 개인의 삶은 여전하고, 혁명 이후에 혁명을 다시 혁명하자는 반혁명의 목소리가 거세지기도 합니다. 사회주의 혁명과 68혁명을 지나 만들어진 <앙띠 오이디푸스>가 이에 대해 진단한 바는 숱한 혁명론과 혁명기획이 실패한 이유가 무엇보다 인간의 ‘욕망’에 대한 고찰이 빠져 있었으며, 그 때문에 개체와 사회의 관계를 정태적인 것으로 파악한 데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란 무엇인가? 저자들은 그것을 욕망하는 기계들의 작동 및 오작동에 따른 구성물이라고 간주합니다. 나는 수많은 요소들의 흐름과 절단에 의한 (출발점이 아니라)일시적 결과물이랍니다. 그 수많은 요소들, 그것은 다른 게 아니라 바로 내가 잠겨 있는 사회장입니다. 부지불식간에 내가 관통당하고 있는 사회의 온갖 회선들(채운 선생님은 이를 ‘문화적 격자’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어린 시절 강하게 영향 받은 존재 중 하나인 양친을 관통하는 온갖 사회적 회선들, 그로 인해 특정하게 구성되고 응고된 개체가 출현하는 것.

하지만 사회적인 것과 개체적인 것 사이의 관계가 고정적이거나 일방향적인 것은 결코 아닙니다. 선험적으로 사회가 주어져 있고 그 힘(일련의 법과 제도, 관습, 문화적 압력)이 개인 등에게 투여되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아주 역동적으로 사회적인 것과 개체적인 것 사이에서 서로 힘이 투여/재투여 되면서 동시에 서로를 작동시키고 새로 생산한다고 해요. 이때도 주목해야 할 것은 욕망의 흐름입니다. 대중이 특정한 정치체를 선호하거나 후보를 지지하는 것, 그것은 이데올로기 때문이 아니고, 사회적 강압 때문도 아니고, 속아서도 아니고, 바로 무의식적 욕망 때문이랍니다. 기계는 정확히 자신이 이끌리는 코드에 접속할 줄 압니다. 내게 쾌감을 주지 않는 한 독재자나 혁명가를 지지하지 않고, 특정한 신문을 구독하지 않고, 특정한 집회에 참가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까닭으로 우리는 혁명이나 사회 개혁을 이해할 수 있겠지요. 혁명에서 중요한 건 정의나 대의가 아니라 욕망입니다.

사적인 것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 모든 것이 욕망의 문제다. 이를 가지고 내 가족, 그리고 지금 읽고 있는 동화 속 가족들을 분석하는 게 우리에게 남은 과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은연중에 정신분석학적으로 가족과 욕망을 사유해온 우리(우리가 왜 그렇게 사유하는지 생각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일 듯합니다) 손에 쥐어진 완전 새로운 도구와 틀을 가지고 남은 3주 앗쌀하게 공부한 뒤 에세이를 써봅시다~

그나저나 ‘아빠’를 키워드로 한 동화 읽기는 잘 진행되고 계신지요? ^^ 이번 주 금요일에는 별도의 앙띠 세미나 없이, 채운 선생님의 강의를 적극 활용해 동화들을 좀 더 다채롭게 읽어보기로 했습니다. 동화 속 아버지들이 얼마나 낯선지, 내지 애초 우리에게 아버지로 알려진 인물이 실은 얼마나 희한한 존재인지 등등을 살펴보아요~ 겨레고전문학선집, 제본한 자료집, 그림 형제 민담집에 실린 해당 작품들을 고르게 읽으신 뒤 가장 문제적인 작품을 동양과 서양 각각 한 편씩 골라 분석해옵니다. 에세이 발표가 조스처럼 슬금슬금 다가오고 있으니, 각자 어떤 키워드나 주제로 글을 쓸 지도 곰곰 생각해와 함께 나눠보아요.

간식은 이응이 준비해줍니다. 그럼 돌아오는 금요일에!
전체 1

  • 2017-10-24 18:29
    나는 내가 아니다! 충격적인 시간이었지요. 그럼 금요일에 '아버지는 아버지가 아니다!'를 한번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