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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중전 시즌2 역사강의 2강 후기

작성자
혜원
작성일
2017-11-12 21:35
조회
112
171108 수중전 후기 열녀전


수중전 2강은 <열녀전>에 대한 강의입니다. <열녀전>은 전한시대 유향이 역사적으로 이름 있는 여인들의 이야기를 엮은 역사책입니다. <사기> [열전]처럼 주제사적 접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열녀전>은 우리가 아는 열녀(烈女)만을 다룬 책이 아닙니다. 열녀(列女), 즉 여인들의 이야기를 열을 지어 놓은 책이라고 할 수 있지요.

<열녀전>, 제목만 들으면 알 수 있듯 근대 이후엔 봉건시대의 남존여비세태가 얼마나 극심했는지를 보여주는 책으로 주로 읽혔다고 합니다. 좀 훑어보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닙니다. 남편이 죽으면 적에게 시집가야 하거나 혹은 따라죽어야 하는 이야기가 왕왕 보이거든요. 사랑하는 사람을 따라 죽는 순정담도 모여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가 모여 있는 이유는 오히려 이런 여인 이야기가 흔하지 않기 때문임을 알아야 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드라마가 비일상적이기 때문에 보듯, 이 열녀전은 여인들 중에서도 유별난 여인들 이야기를 주로 모아놓은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기다 <열녀전>은 단순히 여인만을 억압하는 당시 사회를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다. 제국은 남녀를 막론하고 그들이 제국 신민으로서 행동해야 하는 규범을 만듭니다. 그것은 신분이 높을수록, 더 심해지지요. 규범은 남-여-어린이 순으로 ‘빡센’것이었습니다. 하긴 남성에 대한 이야기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은 그만큼 규범이 빡빡하다는 의미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어쨌든<열녀전>은 여인이 신민이 되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일종의 매뉴얼인 것입니다.

<열녀전>을 비롯하여, 여성을 위한 ‘매뉴얼’은 크게 다섯 가지가 있었다고 합니다. 우선 저번 시간에 배운 <한서>를 편집한 반소(확인된 동양 최초의 여학자!)가 지은 <여계(女戒)>가 있습니다. 이 책은 영조시대 수입 및 번역되어 우리나라에도 많이 보급되었다고 합니다. 두 번째는 당나라 ‘송약소’가 지은 <여논어(女論語)>입니다. 말 그대로, 여성을 위한 論語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명 때 인효문왕후가 지은 <내훈(內訓)>, 네 번째로 청 왕절부 유씨가 지은 <여범첩록>이 있습니다. 여기서 첩(捷)은 ‘요약하다’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여성의 신민 매뉴얼은 시대를 거듭하여 꾸준히 발간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유향의 <열녀전>은 이런 여성에 관한 책 중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까요. 우선 유향이 어떤 인물인지, 그리고 어떤 작업을 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유향은 고조 유방의 이복동생 유교의 4세손으로, 본명은 경생(更生)이었습니다. 한선제때 명유(名儒)로 선발되어 궁중도서관 서거각에서 오경을 강의할 정도의 인재였는데요, 이 명유라는 직책은 딱 전국에서 5명 뽑는, 하여간 최고의 학자 자리라고 보면 됩니다. 거기다 궁중도서관에서 일하니 온갖 문헌에도 접근할 수 있었지요. 그런데 문제는 한 권의 책이었습니다. 회남왕 유안의 책 중 <침중홍보원비서>라는 것을 입수하여 연금술에 빠져버리고 말았거든요. 궁중 상방에서 가짜 황금을 만들려고 왕의 후원도 받고 온갖 노력을 기울이는데 그게 되겠습니까? 결국 실패하고 서인으로 강등됩니다. 그리고 10년 후, 성제 때 다시 등용되는데요, 이때 이름을 향(向)으로 바꿉니다.

구사일생으로 등용되기는 했는데 문제는 이때가 전한시대 말기라는 것입니다. 외척 왕씨 세력이 부상하고 황제는 시들시들하고... 유향은 <홍범오행전론>이라든가 <오행지>를 써 황제가 다시 맘을 단디 잡도록 만들려 하지만 그게 도통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쌤 왈, 결국 중요한 것은 왕과 저녁식사를 같이 하는 자가 누구냐는 것이었으니..유향은 결국 .외척과의 세력싸움에서 밀려나고 맙니다.

<한서>를 집필한 반고의 해석입니다만, <열녀전>은 이처럼 외척 세력에 눌려있는 황제의 정신줄 잡기위한 유향의 노력 중 하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조비연 자매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황제에게 ‘나라 세운 여인/나라 말아먹은 여인’이야기를 종류별로 모야 바친 것이죠. 물론 별 소용은 없었습니다. 전한은 맥없이 막을 내리고 왕망이 대를 이어 신(新)을 세우니까요.

재밌는 것은 유향의 셋째아들 유흠이 유향의 관직을 계승했는데, 아버지와 달리 왕망의 ‘베프’였다는 것입니다. 유흠은 왕망의 신임을 얻어 신(新)의 국사가 될 정도로 아버지와 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거기다 대세와 달리 고문학을 주장하여 유생과도 척을 진 독특한 인물이기도 하고요.

<열녀전>의 배경은 이렇습니다만 텍스트 자체를 단순히 ‘황제에게 올리는 교훈집’으로 보아서는 안 되겠습니다. <열녀전>은 총 8권으로, 유향이 쓴 것은 7권까지라고 전해집니다. 왜냐하면 8권 ‘속열녀전’은 앞의 7권과는 너무 다른 퀄리티라서 누가 봐도 유향이 쓴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유향이 쓴 <열녀전>은 명나라 <고금열녀전>과 구분하여 <고열녀전>이라고 부릅니다. 1-6권까지의 구성을 보면 그림+본문+찬+시경+송(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여성 교육서에는 그림이 많이 들어간다고 합니다. 그림으로 한번, 텍스트로 한번, 그리고 노래로 한번, ‘셋 중 뭐 하나라도 배우겠지’식의 반복교육의 효과를 노리는 것이죠. 그런데 7권에는 그 이야기에 나온 여인의 덕을 기리는 찬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7권은 [얼폐(孼嬖)전], 즉 ‘나라를 말아먹은 여인들’이야기거든요. 유향의 이런 작업은 후에 역사서를 만들 때 여인들에 대한 기록이 들어가는 관행으로 이어집니다. 범엽 후한서 열전에, 위서, 구양수 신당서 열전, 오사, 금사, 원사, 명사, 삼국사기 등 기전체로 이루어진 역사서에는 꼭 한자리씩 여인에 대한 기록이 자리 잡게 된 것이죠.

그럼 이 책은 어떤 내용인가? <열녀전>의 특이한 점은 딱히 특정한 원전이 없는 이야기가 많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잘 아는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는 원전이 따로 없습니다. <열녀전>에 처음 나오는 이야기지요. 맹자 어머니가 어떠했는지 우리는 <맹자>나 당시 역사서를 읽어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건 유향이 만들어낸 이야기냐, 아니면 당시까지는 전해지던 이야기냐 하는 의문이 생겨납니다. 그런데 사실 이건 우리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역사라는 게 어느 정도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깔고 가는 수밖에요. 다만 <열녀전>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우리가 ‘역사’라고 생각하는 기록에서 삭제된 이야기의 복원입니다. 순임금의 아내, 맹자의 어머니, 제경공의 아내 등 지배자의 여인들에서 당시 서민층 여인들의 이야기까지 골고루 담은 것이 바로 이 <열녀전>이거든요. 우리는 <열녀전>을 읽으며 당시 다양한 여자들의 삶의 선택을 볼 수 있고, 또 공사(公私)에 대한 감각, 가족과 국가에 대한 생각을 다시 살필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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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11-13 21:54
    우리는 지금 우리의 삶이 가장 개방적, 진보적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실상 고대인들의 삶을 보면 그런 것 같진 않아요. 연애도 누구 한 사람만 좋아하는 걸 최고로 여기고, 상대방을 바꾸면 개노무자식이 되버리는.....;; 예전엔 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계속 결혼해야 했다고 하지만, 그래도 지금 우린 연애와 결혼의 영역을 너무 특권화시킨 것 같기도 하네요.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