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n

0425 수업후기

작성자
정은하
작성일
2016-05-06 10:51
조회
616
지난주 수업에는 <인간이 알아야할 모든것, 인간> 1-4장까지 같이 읽었습니다.

<신경과학과 마음의 세계> 보다는 훨씬 쉽게 풀어썼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세세한

과학적 설명 때문에 쫓아가는게 이외로 어려웠던 책 같습니다.

수업시간에서는 그중 유위의 세계인 과학과 무위의 세계의 불교의 세계관이 서로 맞닿아 있는 부분으로 '상보성의 원리', '세계의 인식방법으로서의 해석원리'에 관한 설명을 집중적으로 해주셨습니다.

상보성의 원리는 우선 서로 차이가 나는 하나 이상의 세계를 전제로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음-양, 자아-타자의 구별과 같이 음은 양에 의해서만 결정되고 양은 음에 의해서만 결정되고, 자아 없는 타자도 존재하지 않지만, 타자 없는

자아도 존재 할수 없듯이 차이가 우선 존재하는 세계의 원리입니다. 그래서 단독으로 존재하는 실체가 없고 차이 나는 존재들이 서로가 서로를 구성하는 방식으로만 존재하는 것들의 세계입니다. 이것은 신-인간-영혼과 같이 하나의 계열로만 정립되는 서구적 세계관과는 확연히 차이나는 것이라 합니다.

책에서는 상보성의 원리를 들어 전체-부분의 관계를 ‘부분이 전체를 구성하고 동시에 전체 또한 부분을 구성한다’라고 설명을 합니다. 채운샘이 이때 구성의 의미를 ‘construction(구축)’의 의미보다는 ‘composition’의 의미로 읽어야 한다고 이야기 해주셨습니다. construct는 부분의 축적과 같은 고정된 이미지가 강한 반면에, composition는 음악의 작곡과도 같이 ‘부분이 변하면 전체상이 다 같이 변하는’식의 구성방법을 떠올리는 게 전체-부분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더 적합하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부분-전체의 상보적 관계는 부분이 전체를 구성도 하지만, 부분 역시 전체와 맞물려서야 개체의 변이가 가능한 존재라는 것을 이야기 합니다. 이러한 상보성의 원리가 바로 불교에서 설명하는 연기적 존재, 또는 상입상즉의 관계를 잘 설명해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책의 3,4장은 우리가 세계를 지각하는 방식과 인간의 탄생과정에서 유전자의 역할에 관한 설명을 주로 합니다. 그런데 채운샘은 이 가운데 ‘생명의 역량 으로서의 번역(해석)능력’을 주목해야 한다고 이야기 하십니다. 이말은 우리 몸 안의 신경세포와 유전자가 단순히 정보를 전사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정보를 전환하고 복사하고, 해석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신경세포는 전기선과 같이 하나의 배선으로 연결된 것이 아니라, 세포와 세포 사이에 ‘틈’이 존재하고, 이 틈을 통하여 외부세계의 신호를 물리적신호->화학적 신호->물리적 신호로 전환하고 다시 재해석함으로써 외부세계의 지각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유전자 역시 개체 생성과정에서 정보를 단순히 복사하는 것이 아니라 ‘지배단백질을 생산함과 동시에 항상 해석하는 작업(p242)’을 수행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의식적으로 하는 해석작업 이전에 보다 근원적 차원의, 즉 세포적 차원에서 해석과정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명확해집니다. 니체가 ‘힘(신체)이 해석한다’고 이야기 한 것이 단순히 철학적 비유가 아니라 실재 생리학적 사실 이였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인식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외부 세계는 이미 ‘번역된 세계(개별상)’일 뿐이고 , 우리는 이러한 개별상을 가지고 다시 세계를 구성하고 있다(총체상)는 사실을 구지 불교의 언어를 통하지 않고서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번역된 세계에 또 다른 상을 부여하고 거기에 집착함으로써 번뇌에 번뇌를 재생산하고 있다는 것이 불교의 가르침입니다.

그럼 세포적, 유전자적 차원에서 이미 결정되버리는 존재라면, 우리는 영원히 망상 속에 머무르는 것 이외에 할 수 있는게 없는 존재일까요. 18세기 계몽주의자들이 기계론적인 세계관과 접속하면서 운명론, 결정론에 빠져든 것도 비슷한 문제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어떻게 개입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의식이 바로 종교적 또는 철학적 실천지점과 맞물려 있다고 합니다. 연결의 ‘틈’이 존재하는 것 때문에 생기는 문제를 다시 그 ‘틈’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즉 그 ‘틈’을 통해 전달되는 마음의 회로를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한거라 합니다. 수행 또는 명상을 통해 그 들어온 자극의 회로를 바꾸어, 다시 산출되는 세계를 바꾸는 것이 바로 불교의 실천적 지점 이라고 합니다. 금강경에서 ‘사구계를 수지독송’하라는 계명 역시 이렇게 마음의 회로를 바꾸는 하나의 수행방법으로 이해할 수 있는 거라고 합니다.

이번책을 읽으면서도 그렇고, 확실히 불교의 세계는 과학과 참 잘 통한다는 생각이 드는 것 같습니다. 단순히 관념상으로만 억지로 이해하려고 했던 것들이 좀 더 구체적으로 명확해지는 기분이랄까요. 그것도 너무 과학에 대한 맹신에 의한 것이 아닌지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무위와 유위는 같은 것을 설명하는 다른 방식일 뿐이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좀 더 이해가 되는 것 같습니다.
전체 2

  • 2016-05-06 13:03
    함께 세미나 해온 시간이 쌓인 증거인가, 후기에서 은하쌤 목소리가 솔솔~ ^^ 듣고 지나간 이야기들을 이렇게 보니 좋군뇨! (근데 사구계가 아니라 사구게...^_^)

  • 2016-05-06 13:27
    은하샘은 생각도 글도 안정감 있게 일취월장하시는 듯!(맞춤법버그만 없으면 금상첨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