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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은 세대가 방향을 찾는 법" : 《뉴욕과 지성》(북드라망) 리뷰

작성자
규문
작성일
2021-05-20 13:52
조회
362
* 소식들은 들으셨는지요? 제 1회 북드라망 '봄봄봄 한뼘리뷰 대회'에서 규문 학인들이 다수의 상을 휩쓸었답니다^^! 12편의 수상작 가운데 3편, 그것도 1, 2, 3등을 나란히 석권하였습니다~~!! 수상작들은 북드라망 블로그(클릭)에 차근차근 업로드될 예정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그 와중에 저(건화)는 아깝게(?) 수상하지 못하여 아쉬운 마음에 이곳에 리뷰를 업로드합니다~^^


길 잃은 세대가 방향을 찾는 법
― 《뉴욕과 지성》을 읽고


글 : 건화


 


길 잃은 세대가 길 잃은 세대에게

저자는 뉴욕과 뉴욕에서의 삶, 뉴욕에서 만난 사람들, 그리고 그에 앞서 뉴욕을 거쳐 간 10명의 지성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런데 나는 책을 읽는 내내 93년생 동갑내기인 저자가 같은 세대로서, 한국의 20대로서, 공부 선배로서 나에게 말을 걸어오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은 익명의 외국인 유학생이 아니라 세월호의 비극에 아파하고 멀리서도 헬조선에 마음을 쓰며 스스로의 위치와 삶의 방향을 찾기 위해 몸부림치는 김해완이 그린 ‘뉴욕-시간의 지도’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그린 책-지도는 그의 또래인 나에게도 내 삶의 GPS를 설정하기 위한 몇 가지 힌트를 제공했다.

저자는 삶의 방향을 잃어버린 듯한 막막함에 이 책을 구상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나는 멋대로 저자의 문제의식에 나의 고민을 투사했다. 공부를 하는 사람으로서 요즘 내 고민은 ‘하고 싶은 말’이 없다는 거다. 읽은 책의 숫자는 늘어나는데 왜 뚜렷한 문제의식 하나 생기지 않는 것일까? 책을 읽고 강의를 듣고 세미나에 참여하면서 받고 있는 많은 지적 자극들은 어째서 나의 질문으로 전환되지 않는 걸까? 지금 나는 책을 읽는다고 ‘나는 누구인가’와 같은 실존적 물음들에 대한 답이 저절로 도출되지는 않더라는 저자의 말을 현재진행형으로 경험하는 중이다. 그래서 저자의 문제의식에 공감했고, 그의 말에 귀 기울이게 되었다.

붕 떠 있고 길을 잃었다는 이 느낌이 나만의 것은 아니리라 생각한다. 코인의 떡상과 떡락에 일희일비하는 내 또래 친구들. 지난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에서 갈 곳을 잃은 불만을 드러내 뜻밖의 관심을 받고 있는 이십대 남자들. 이들은 나와 같은 막막함을 느낄까? 내 눈에는 이들 또한 길을 잃어버린 것처럼 보인다. 저자가 말하듯 “내 삶의 GPS는 내가 설정해야”(144쪽) 한다. 자본이, 정치인이, 책이 삶의 방향을 대신 설정해줄 수는 없다. 대신 자신의 길을 찾기 위해 저자가 그린 지도가, 나의 지도 그리기를 시작하기 위한 단서를 제공해줄 수는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길을 잃은 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신뢰하고 존경하는 친구이자 스승인 저자에게 길을 묻는다.


방향을 설정하는 것은 몸이다

저자는 낯선 장소에 혼자 떨어져서 ‘방향감각의 상실’이라는 시대적 질병의 징후를 아주 예민하게 감지한 것 같다. 서울 이상으로 일상의 리듬이 빠른 뉴욕에서, 애매한 유학생의 신분으로, 학교를 다니고 알바를 하고 한국에서 오는 손님을 맞는 동시에 세미나를 하고 글을 쓰려니 ‘나는 누구이고 지금 여기서 무얼 하고 있는가’라는 의문이 절로 들었으리라. 그 와중에도, 혹은 그러한 절박함으로 문제를 구성하고 출구를 만들어냈다.

저자가 발견한 출구 중 하나는 바로 ‘몸’이다. 올리버 색스에 관한 챕터에서 저자는 ‘자기수용감각’에 대해 말하는데, 이는 “신경의 일종으로, 신체의 위치, 자세, 운동을 느끼고 그 정보를 뇌로 전달하는 기능을 담당”(227쪽)한다. 내 몸이 지금-여기에 존재하고 있다는 감각. 인간은 바로 이 확실성을 바탕으로 행위하고 사유하고 관계한다. 자기 몸에 대한 느낌을 상실하는 한 우리는 어떠한 고등한 의식도 쌓아올릴 수 없다. 방향감각의 상실은 바로 이 자기 존재에 대한 감각이 약해질 때 찾아온다. 우리가 길을 잃었다고 느끼는 것은 확실한 목적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도, 행복이 보장된 길이 주어져 있지 않기 때문도 아니다. 우리가 길을 잃는 것은 자기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으며 누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지를 느끼는 몸의 확신이 위축될 때다. 방향감각의 상실이란 “나와 세계의 관계를 ‘실감하는’ 몸의 능력”(8쪽)의 상실인 것이다.

지적인 무기력 또한 감각하는 능력의 결여일 것이다. 많은 지식을 갖추고 있다고 한들 그것을 내가 살아가고 있는 조건과 연관시키지 못한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리고 앎을 삶과 연관시키는 힘 또한 ‘실감하는’ 몸의 능력에 달려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감각을 활성화시킬 수 있을까? “느낀다는 것은 세상의 모든 자극을 긍정해야 한다는 뜻”(242쪽)이라는 저자의 말이 내게 남았다. 몸은 항시 다종다양한 힘들과의 관계 속에 있다. 감각하는 능력이 크다는 것은 다양한 힘들과의 예측 불가능한 마주침에 열려 있음을 뜻한다. 유튜브를 볼 때보다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 차를 타고 이동할 때보다 두 발로 걸을 때 우리의 감각은 더욱 활성화된다. 그럴 때 우리의 몸은 고립됨 없이 이질적인 자극들을 향해 열리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맞서 싸울 적도 함께 할 동료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이남자’들의 분노와 ‘경제적 자유’에 대한 개미투자자들의 열망은 무감각의 징후가 아닐까. 방향을 설정하는 것은 몸이다. 그리고 방향을 설정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몸의 능력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지금 나의 몸이 관계하고 있는 힘들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서울에서 나고 자랐지만 나는 아직도 이 도시에서 길을 잃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지도 앱 덕분에 헤매지 않고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게 되었지만, 거기에 의존할수록 나의 방향감각은 상실되어간다. 최단거리와 교통정보를 제공해주는 지도 앱은 이 도시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어떤 사람들이 나와 삶의 터전을 공유하고 있는지, 내가 지금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가고 싶은지 알려주지 않는다. 방향감각을 되찾기 위해서는 스마트폰 화면이 아니라 내 주변을 살펴야 한다. 내 공부와 내 삶의 방향설정도 이와 마찬가지다. 주변을 보아야 질문이 생긴다. 문제가 생성되는 장에 나를 던져야 나의 질문을 구성하고 내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설정할 수 있다.

연결하는 글쓰기

《뉴욕과 지성》은 글쓰기가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해주었다. 저자의 뉴욕생활에서 글쓰기란 무엇이었을까? 낯선 공간에 적응하고 생활을 꾸려가기도 바빴을 텐데 어떻게, 그리고 왜 이렇게 두꺼운 책을 쓴 것일까? 아마도 글쓰기는 저자가 뉴욕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자본의 속도에 지배당한 그림자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 자신이 보고 겪은 것들을 통합해내기 위해 꼭 필요한 작업이었을 것이다.

저자의 글에서 박탈감을 느끼게 만드는 5번가의 명품 거리, 검정고시 시험을 치르기 위해 기다리던 뉴욕 교육청 건물 앞, 온갖 상념이 피어오르는 차이나타운의 모텔, 커뮤니티 칼리지의 동료들, 지하철과 공원과 길거리에서 만난 ‘미친’ 사람들, 자신들이 속한 사회를 ‘헬’이라고 규정하는 한국의 청년들, 그리고 지성들의 반짝이는 문장들은 하나의 이야기로 재조합된다. 글쓰기란 이런 파편적인 경험들을 하나로 엮어내는 작업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작업을 통해 더 많은 것들과 “공동의 몸”(241쪽)을 형성할수록 자기 존재에 대한 확신도 증대됐으리라고 생각된다. 저자의 단단한 문장들에서 그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하고픈 말’이 있어서 글을 쓴다는 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글쓰기는 독백이 아니다. 글쓰기는 나의 자의식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세계를 연결시키는 작업이다. 문제의식이나 하고싶은 말은 나에게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세계와 마찰하는 과정 속에서 생성되어가는 것이다. 《뉴욕과 지성》은 글을 쓰고자 하는 욕망을 자극한다. 더 많은 이야기들과 연결되고, 더 많은 몸들과 관계하고, 더 많은 자극들을 긍정하고자 하는 욕망을.
전체 5

  • 2021-05-20 17:56
    저한테는 이게 1등인데.. 다른 글 못 봤지만 어차피 다 봐도 이게 1등인데ㅎㅎㅎ 방학 때 뉴욕과 지성을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 2021-05-21 16:06
      ㅋㅋㅋ ㅋㅋ ㅋ 맥이시는 건지 헷갈리긴 하지만... 맹목적인 지지 증말 감사합니다아

  • 2021-05-21 11:54
    ㅎㅎㅎ나영샘 팬심은 식을 줄을 모르네요..^^ 예전에 잠시 들춰보기만 했던 책인데 저도 방학 때 다시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글쓰기가 파편적인 경험들을 하나로 엮어내는 작업이고, 이 작업을 통해 더 많은 것들과 '공동의 몸'을 형성하게 된다는 말... 정말 그러네요. 에세이도 그렇게 생각하고 써봐야겠어요.
    잘 읽었습니다! 다른 분들 리뷰도 기대하고 있을게요~

    • 2021-05-21 16:07
      네! <뉴욕과 지성> 정말정말 좋아요... 꼭 읽어보세요! 그리고 수상작들도 기대해주십쇼 ㅎㅎ!

  • 2021-05-25 22:12
    지성들의 텍스트를 읽고 쓴 저자의 글을 읽고 어떻게 글을 쓸 수 있을지 궁금했는데, 이렇게 쓰는 거군요! 엄지척~ 훌륭한 귀감이 되는 글입니다.

    이 세계 속에서 길을 잃었다는 건 나와 세계의 관계를 실감하는 '몸의 능력'을 상실했다는 것이로군요. 이때 방향을 찾기 위해 "나의 몸이 관계하고 있는 힘들에 주의를 기울인다"는 건, 나의 몸이 무엇에 공감하고 무엇에 열려있는지 혹은 닫혀있는지... 그런 걸 관찰한다는 것일테죠. "나와 세계를 연결시키는 작업으로서.... 더 많은 이야기들과 연결되고, 더 많은 몸들과 관계하고, 더 많은 자극들을 긍정"하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라는 건화샘의 결론에 "좋아요 x 1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