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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번역기계] 팀 잉골드, <선線> "말하는 글"

작성자
규문
작성일
2021-06-02 10:40
조회
216
오! 번역기계 // 팀 잉골드Tim Ingold의 <선들Lines: A Brief History>(Routledge, Oxon, UK.) 

번역 / 오정아


 




 

1-3. 말하는 글

비슷한 시기에 문학 분야에서도 유사한 변화가 일어났다. 미셸 드 세르토(Michel le Certeau)는 《일상에서의 실천(The Practice of Everyday Life)》(1984)에서 근대 작가를 세상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데카르트적 주체로 상상한다. 눈앞에 펼쳐진 모든 것의 주인인 작가는 땅을 마주한 정복자, 황무지를 마주한 도시 설계자처럼 빈 종이를 마주하며 그 위에 자신의 작품을 얹어놓을 준비를 한다. 식민지 공간에 사회가 형성되고 계획된 공간에 도시가 세워지듯이 페이지의 공간에 텍스트가 생성된다(Certeau 1984: 134-6). 그러므로 텍스트는 아무것도 없던 곳에 만들어지는 가공물이다(혹은, 뭔가 있었다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제거된다). 호세 라바사(José Rabassa)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일기를 언급하며, 빈 종이에 글을 써나가는 것을 미지의 바다를 항해하는 일에 견주었다.

아무런 흔적이 없는 표면 위에 뱃부리와 펜촉이 패턴을 그린다. 이와 같은 전례 없음, ‘빈 종이’라는 가정이 콜럼버스의 경우처럼 작가와 항해자로 하여금 텍스트와 영토에 대해 ‘주인임’을 주장할 수 있게 한다.(Rabasa 1993: 56)

하지만 늘 그랬던 것은 아니다. 라바사가 세르토의 말에 동의하며 지적했듯이, 표면과 그 위에 놓인 구성물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르네상스 이후의 글은 기본적으로 중세의 성서와는 매우 다르다. 성서는 만들어진 것이 아닌 ‘말하는’ 것으로 이해되었기 때문이다(Certeau 1984: 136-7).

중세 시대에 글의 전형은 성서였다. 세르토에 따르면, 독자들은 성서의 목소리를 듣고 그것으로부터 배움을 얻고자 했다(1982: 136-7). 이는 구약성서에 묘사된 선례들을 따르기 위한 것일 뿐이었다. 예레미아서에 유명한 사례 하나가 묘사되어 있다. 예레미야 예언자는 하느님이 자신에게 이르신 말씀들, 즉 잘못을 범한 유대인들에게 내릴 벌에 관한 내용을 바루크를 시켜 “두루마리 책”에 적게 했다. 바루크는 두루마리를 손에 들고 유대인들에게로 갔고, 그들은 바루크에게 “그것을 그들의 귀에 읽어줄 것”을 청했다. 바루크가 그렇게 하자 그들은 몹시 불안해졌다. “어떻게 그 모든 말씀을 적었는지 우리에게 알려주시오.” 모여 있던 사람들이 그에게 요청하자 바루크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분(예레미야)이 이 모든 말씀을 입으로 불러주어서 내가 잉크로 이 책에 받아 적었습니다.” 글은 예언자의 입에서 필경사의 잉크 자국으로 이어지고, 읽기는 그 자국에서 사람들의 귀로 이어진다. 연결은 아무것도 거치지 않고 직접적으로 이루어진다.

글이 ‘말하고,’ 사람들은 ‘귀로 글을 읽는다’면, 옹의 주장―글의 영향으로 누군가의 말을 듣는 행위가 보는 행위와 같아졌다는 주장―은 성립할 수 없다. 확실히 중세 시대에 글을 읽고 쓰던 사람들은 그들이 성서에서 읽었던 그들의 선조들과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우리와는 반대로 행동했다. 그들은 보기 위해 귀를 사용한 게 아니라 듣기 위해 눈을 사용했고, 말에 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글을 이해했다. 5세기의 인물인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렇게 썼다. “따라서 어떤 단어를 쓰면 기호가 눈으로 전달되고, 귀와 관련된 그 기호가 마음으로 들어간다.”(Parkes에서 인용 1992: 9). 중세 사람들이 우리와 다르게 글을 인식한 것은 그들이 일차적 구술성의 세계에 살며 오로지 말이나 노래가 글로 쓰인 형태에만 노출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읽기나 쓰기라는 활동 자체를 우리와 다르게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이해는 적어도 고대 그리스인들에게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에릭 헤블록(Eric Havelock)은 초기의 글들이 특정 경우에 특정인에게 언급되는 구두 선언의 성격을 지녔음을 보여준다. 글이 새겨지면 공예품조차도 목소리를 얻게 되고, 그것이 누구의 소유인지, 누구에게 헌정되었는지, 훔쳐가는 자에게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선포할 수 있게 되었다. 이탈리아의 나폴리 근처 해안에서 발견된 기원전 7세기 항아리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나를 훔치는 자는 눈이 멀리라.”(Havelock 1982: 190-1, 195)

이처럼 글이 말을 한다면, 읽기는 곧 듣기가 된다. 중세연구가 니콜라스 하우(Nicholas How)는 고대 영어 ‘rœd’와 그에 해당하는 게르만어 단어에서 파생된 ‘읽다(read)’라는 동사의 어원을 고찰하면서, 이 단어가 처음에는 ‘조언하다’라는 의미로 쓰였고, 이후에 ‘분명하지 않은 것을 설명하다(이를테면 수수께끼를 푸는 것과 같은)’라는 의미를 거쳐 ‘글을 이해하다’라는 의미로 확장되었음을 설명한다(Howe 1992: 61-2). 따라서 준비된(ready) 사람은 어떤 상황을 제대로 ‘읽어서’, 혹은 적절한 조언을 얻어서 그 상황에 대해 준비를 갖춘 사람이다. 무능함으로 악명 높았던 앵글로색슨의 에설레드 왕은 자문을 받지 않았고, 그럼으로써 왕의 가장 기본적인 의무를 다하지 못했으므로 ‘준비되지 않은 자(the Unready)’라는 별칭을 얻었다. 그는 듣지 않았던 것이다.

정리하면, 당시의 읽기는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형식, 침묵 속에서 홀로 글을 응시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공동체 안에서 행해지는 공개적인 구술 행위’를 의미했다(같은 책: 74). 이는 소리내어 읽는 행위였고, 하나의 공연이었다. 중세 초기에 이런 인식이 얼마나 널리 퍼져 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예가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에 기록되어 있다. 4세기에 밀라노를 찾은 아우구스티누스는 밀라노 주교인 암브로시우스가 성서를 읽는 모습을 보고 놀라움을 표한다. 실망스럽게도 암브로시우스는 소리를 내지 않고 성서를 읽었던 것이다. 시선은 글을 쫒고 있었지만 “그의 목소리와 혀는 침묵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유를 몰라 당황했지만 단순히 그가 더 공개적인 자리를 위해 ‘쉽게 잠기는 목을 보호하려고’ 그러는 거라고 짐작했다(Augustine 1991: 92-3, Howe 1992: 60, Parkes 1992: 10). 암브로시우스 주교는 ‘소누스 리테라룸sonus litterarum,’ 즉 ‘글자의 소리’에 관해 쓰기도 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Parkes 1992: 116).

일반적으로 수도원에서는 소리내어 읽거나 작게 중얼거리며 눈만이 아니라 입으로도 문장을 쫒았다.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보케스 파기나룸voces paginarum’, 즉 ‘페이지의 목소리’로 알려졌다(Leclercq 1961: 19, Olson 1994: 183-5). 읽어나갈수록 머릿속은 그런 목소리들로 가득찰 것이다. 반면 오늘날의 독자들은 소리가 전적으로 물리적인 현상이라는 생각에 익숙하므로 이런 목소리들을 상상의 산물로 여기며 떨쳐버릴 것이다. 우리는 그것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고 스스로를 안심시킨다. 오직 청각영상만이, 마음의 표면에 남은 심리적 흔적들만이 존재할 뿐이다.

하지만 소리의 물질성과 관념적 표현을 구분하는 것은 근대의 산물이다. 이는 존재의 철학(philosophy of being)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다. 앞으로 보게 되겠지만, 이 철학에 따르면 신체 활동과 지적 이해는 식사와 소화의 관계만큼이나 본능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누군가 떠먹여주는 밥을 먹은 사람은 스스로 떠먹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식사 후에 포만감을 느낄 것이다. 그렇다면 중세의 성직자가 페이지에 적힌 글들을 눈으로, 그리고 아마도 손가락으로 따라가고 입으로도 중얼거리며 읽어나갈 때, 누군가 그에게 그 글을 읽어주었을 때만큼이나 그의 마음이 목소리들로 가득차지 않는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물론 이전에 그가 그 글이 노래로 불리거나 낭송되는 것을 들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반복을 통해 청각과 근육 의식에 자국이 남은 것이다. 그렇게 볼 때, 읽기는 듣기일 뿐만 아니라 기억하기이기도 하다. 글이 말을 한다면 과거의 목소리가 말하는 것이고, 독자는 현장에서 듣는 것처럼 그 목소리를 듣는다. 사학자 메리 캐루더스(Mary Carruthers)가 풍부한 예를 들어 보여주듯이, 고대 후기에서 르네상스에 이르기까지 글은 무엇보다도 기억의 소중한 도구로 여겨졌다. 글의 목적은 과거에 무엇이 말해지고 행해졌는지에 대해 객관적이고 완전한 설명을 제공함으로써 과거를 차단하는 것에 있는 게 아니라, 과거의 목소리들이 현재로 불려나올 수 있는 통로를 제공하는 것, 그래서 독자가 그 목소리들과 직접 대화하고, 그것이 말하는 바를 자신의 상황에 적용할 수 있게 하는 것에 있었다. 그러니까 글은 기록이 아니라 복원의 수단이었다.

캐루더스에 따르면, 고대 그리스에서 읽기라는 의미로 사용된 단어(‘anagignosko’)는 문자 그대로 ‘기억해내기’를 의미했고, 그에 상응하는 라틴어 단어(‘lego’)는 모으거나 수집하는 과정을 의미했다. 고전 작가들은 이 과정을 사냥이나 낚시, 혹은 먹잇감을 추적하는 과정처럼 묘사하기 시작했다(Carruthers 1990: 30, 247). 앙드레 르루아-구랑(André Leroi-Gourhan)이 엄청난 분량의 논문 《제스처와 말(Gesture and Speech》에서 표현했듯이, “모든 글은 인장과 주석으로 간간이 끊기는 촘촘한 배열로, 독자들은 원시 시대 사냥꾼처럼 그 배열들을 헤치며 자신의 길을 찾아간다. 지도를 들여다보는 게 아니라 흔적을 더듬어가는 것으로 말이다.”(Leroi-Gourhan 1993: 261)

이러한 흔적 따라가기(trail-following) 혹은 방랑하기(wayfaring)를 미리 계획된 항해와 구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간단히 설명하면, 항해자는 지도제작법에 따라 영토의 모습을 완벽히 재현한 지도를 앞에 놓고 출발 전에 미리 여정을 계획할 수 있다. 그렇게 떠난 여행은 계획을 진행시킨 것에 지나지 않는다. 반대로 방랑자는 이전에 누군가 일행과 함께, 혹은 다른 이들의 자취를 쫓아 여행한 길을 따라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여정이 복원된다. 이때 여행자는 오직 목적지에 도착해서만 자신의 경로를 알 수 있다.

이 둘의 구분에 대해서는 3장에서 다시 자세히 다룰 것이므로, 여기서는 고대와 중세의 독자들이 항해자가 아니라 방랑자였다는 사실만 언급하겠다. 그들은 종이 위의 글이 그 자체로 완전한, 완성된 이야기를 표현한다고 보지 않았다. 그보다는 기억의 지형 안에서 길을 찾아갈 수 있게 해주는 이정표나 징검다리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았다. 이처럼 길을 찾아나가는 것, 이곳저곳으로 인도되어 이동해가는 것을 중세의 독자들은 ‘둑투스ductus’라고 일컬었다. 캐루더스가 설명하듯이 ‘둑투스ductus’는 이동, 즉 글 사이로 생각을 이끄는 일을 요구한다(Carruthers 1998: 77).

하지만 이처럼 기억을 돕는 행위를 인지활동으로 국한시켜 생각하면 안 될 것이다. 텍스트, 이야기, 여행의 경로가 이미 복합적인 구성물처럼 존재하고, 그것이 글, 말, 여행으로 구체화되기에 전에 먼저 완전한 상태로 접근되고 복구되어야 하는 것처럼 생각하면 안 된다는 얘기다. 중세 사상가들이 기억의 작용을 마치 마음의 표면에 흔적을 새기는 것처럼 상상한 것은 사실이다. 작가가 펜으로 종이 위에 글을 쓰거나 여행자가 땅 위에 자신의 발로 흔적을 새기는 것과도 비슷하다. 하지만 그들은 흔적이 새겨지는 표면을, 둘러볼 공간이 아닌 거주할 지역처럼 생각했다. 그런 지역은 전체를 한 번 훑어보는 것으로는 알 수 없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수고로운 과정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여행을 할 때와 마찬가지로 글을 읽을 때 사람들은 읽어나가는 과정에서 기억을 되살린다. 그래서 기억해내는 행위는 ‘그 자체로 공연으로 여겨졌다’. 글은 읽으면서 기억이 되살아나고, 이야기는 말하면서, 여행은 해나가면서 기억이 되살아난다. 요컨대 모든 글과 이야기, 여행은 뭔가를 발견하는 게 아니라 여정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각각의 여정은 같은 지역을 지난다고 해도 매번 새롭다. 이 여정들을 모두 포함하는 견본 같은 건 없고, 이 모든 여정은 단순히 원고나 지도를 보고 ‘읽어내는’ 것으로 여겨져서도 안 된다(Ingold 2001: 145).




 

1-4. 독자의 소화

이런 결론을 염두에 두고 앞서 살펴본 원고와 악보의 구분으로 돌아가보자. 이 구분에 따르면 한쪽의 기호들은 개념을 나타내고 다른 쪽의 기호들은 실제 소리를 나타낸다. 따라서 원고는 인지 작용을 통해 ‘안쪽으로’ 읽히지만, 악보는 실행의 과정에서 ‘바깥쪽으로’ 읽힌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 고대와 중세의 원고들은 글자와 단어로 이루어져 있음에도 원고로 인정받기 힘들다. 무엇보다, 원고에 적힌 기호들이 독자의 관심을 이끄는 곳은 소리의 배후에 있는 의미가 아니라 귀로 들리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조금 뒤에 그가 정립한 음악 표기 체계에 대해서도 알아보겠지만, 11세기 베네딕도회 수사였던 귀도 다레초(Guido d’Arezzo)에게는 모든 글자가 악보의 모든 음처럼 특정한 ‘복스vox’ 즉 소리를 불러낸다는 점이 더없이 명백했다(Carruthers 1990: 18).

또한 소리를 내든 조용히 혀와 입술만 움직이든, 당시에는 읽기라는 행위가 글의 목소리를 듣고 대화를 나누는 하나의 공연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읽기가 주변의 세계로부터 얻을 수 있는 모든 감각 정보로부터 단절된 채 혼자 하는 지적 활동일 수 있다는 생각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 장 르클레르크(Jean Leclercq)가 말한 대로, 읽기는 “낭송과 글쓰기와 마찬가지로 몸과 마음 전체의 참여를 요구하는 활동”으로 이해되었다. 따라서 12세기 프랑스 클뤼니의 수도원장이었던 피에르 원장(Peter the Venerable)은 감기 때문에 목소리가 나오지 않자 “‘렉티오(lectio, 낭독)’를 행할 수 없었기에” 성서를 읽을 수 없었다(Leclercq 1961: 19-20). 이처럼 글을 읽는 것이 공연과도 같고, 이를 통해 소리를 경험하게 된다면, 그 글은 원고가 아니라 악보로 불려야 하는 게 아닐까?

다시 한번 답은 부정이 될 수밖에 없다. 이 글은 원고도 악보도 아니기 때문이다. 현대적 사고로 볼 때는 의미와 소리, 인식과 실행의 개념이 언어와 음악의 영역으로 나뉘지만, 고대와 중세에는 그런 식으로 대립되기보다는 같은 것의 다른 측면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르클레르크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사람들은 “몸과 마음으로 글을 읽었다. 입으로는 그것을 발음하고, 기억으로는 그것을 새기고, 지성으로 그 의미를 이해하고, 의지로 그것을 실행에 옮기고자 했다.”(Leclercq 1961: 22)

따라서 읽기는 ‘실행’인 동시에 ‘이해’였다. 앞에서도 비유를 들었지만 실행과 인식(혹은 낭독과 묵상)은 본질적으로 식사와 소화의 관계와도 유사하다. 중세의 학자들은 글을 읽는 방법을 이야기하며 위장에 관한 은유를 즐겨 사용했다. 독자는 여물을 먹은 소가 우물거리며 되새김질을 하는 것처럼 입으로 단어들을 중얼거리며 텍스트의 내용을 머릿속으로 숙고할 것을 권고받았다. 달리 표현하자면, ‘반추(ruminate)’해야 한다는 것이다(Carruthers 1990: 164-5).

피에르 수도원장은 기도에 열중하는 수사를 보고 “그의 입이 쉼없이 신성한 말씀들을 반추한다”며 감탄했다.(Leclercq 1961: 90). ‘영국사의 아버지’로 불리는 영국의 역사가이자 신학자였던 성 베다(the Venerable Bede, 730년경)는 자신의 글에서 영국 최초의 그리스도교 시인인 목동 캐드먼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놀라운 시적 재능을 타고난 캐드먼은 자신이 일하던 수도원의 수사들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는데, 성 베다는 그에 관해 이렇게 묘사한다. “그는 모든 것을 귀로 들어서 배웠고, 청결한 동물이 되새김질을 하듯 배운 것을 외우고 반추하여 아름다운 선율을 지닌 운문으로 변화시켰다.”(Colgrave and Mynors 1969: 419).

여기서 기억은 되새김질한 글의 영양분으로 포만감을 느끼는 위장과도 같다. 뭔가를 먹으면 그득해지는 위장처럼 기억은 읽기를 통해 가득 채워진다. 기름진 음식으로 가득 찬 위장이 구수한 트림이나 방귀를 분출하고는 편안해지듯이, 성 제롬이 한 것으로 알려진 말에 따르면 “영혼의 숙고는 말을 끌어내고, 마음의 풍요는 입을 움직여 말하게 한다.”(Carruthers 1990: 166). 신성한 말일수록 그 소리는 더욱 아름다웠다. 신도들에게 “목소리보다 마음으로” 노래할 것을 권한 사람이 바로 성 제롬이었다는 점을 기억하자. 시원한 트림도 그렇지만, 목과 입은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낸다기보다 그저 풀어놓는 것일 뿐이다. 마음에 새겨진 것들은 마음에서 절로 우러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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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6-05 23:01
    감기 때문에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성서를 읽을 수 없었다니(!) 12세기에 글이란 원고가 아니라 악보가 맞네요! 귀를 통해 들음으로써 배우고 소리로 배운 것을 반추하고 기억하고 되새김질한다면 정말 배움이 ‘소화’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혼자하는 지적활동으로서의 ‘읽기’라는 생각 자체가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게 신기하면서도 지금 저 자신에게 익숙한 ‘조용한 읽기’의 행위를 다시 생각해보게 합니다. 종종 읽었던 내용이 머리에서 슥 증발하는 저의 증상은 아마도 그들처럼 “몸과 마음으로 읽고, 입으로 발음하고, 기억으로 새기고, 지성으로 이해하고 의지로 그것을 실행에 옮기고자” 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지... ㅠ.ㅠ

    이번에도 좋은 번역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해요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