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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 알바생“훈이의 일기”] 10화 1부

작성자
김훈
작성일
2020-10-26 14:27
조회
211
규문의 최고령 인턴 4n세 훈샘이 내년 공부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지방 출장을 떠났습니다.
훈샘의 소소한 일상 이야기에서부터 비정규직 노동자로서의 삶, 훈 샘이 읽고 계신 책 이야기까지 다양한 썰들을 가볍게~ 풀어볼 예정입니다. 
무려 주 2회! 매주 수, 일 저녁 6시에 연재될 예정이니 애독을 부탁드립니다~



[비정규 알바생“훈이의 일기”] 10화

_측량알바를 마치며 1부

숙소에서 나와 모슬포 정류장에서 152번 버스에 올라탔다. 시간을 보니 정확히 8시 20분이었다. 공항으로 가는 도로는 한산했고 앉은 시선에서 15도로 뜬 해는 창가 쪽으로 따스한 온기를 전해주고 있었다. 어제는 이 시각에 스타프를 어깨에 메고 몹시 추워진 새벽 도로를 터벅터벅 걸었었다.

"저기 보이냐. 어제 우리가 측량했던 데잖아. 저기 면사무소하고 초등학교 기억나지? 버스길이 딱 우리가 측량했던 데네."

"형 어디어디요."

측량 알바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동행인 동현이의 얼굴은 싱글벙글이었다. 코로나로 3월부터 줄곧 백수였던 동현이는 벌어둔 돈을 다 까먹고(아마도 일확천금을 노리고 비트코인에 다 몰빵한 듯싶지만 차마 물어볼 수 없었다)집에만 콕 박혀 지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추석연휴가 끝나고 갑자기 팀원 한명 관두는 바람에, 내가 함께 일하자고 연락했던 것이다. 동현이는 진도와 제주도 등을 함께 다니며 난생처음 하는 이 알바가 마냥 즐거운 모양이었다. 얼마 전 동현이가 한 말이 기억난다. ‘형, 고마워요. 이 일을 하니까. 몸이 건강해지는 느낌이예요.’

'건강'이라면 꼭 동현이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처음 동현이를 만난 것은 약 8년전 명동 마사지 가게에서 2년간 일할 때였다. 마사지 공장이라는 편이 더 옳을 지도 모르겠다. 보통 공장에서 사람의 손의 힘을 이용해 물건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마사지 공장에서도 12시간 이상 쉴틈 없이 손의 힘을 이용한다. 다만 물건에 힘을 들이지 않고 사람의 몸에 힘을 들인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동현이와 내가 일하던 마사지 가게는 총 마사지사가 13명 정도 됐는데 그 중 여덟 명은 조선족이었다. 마사지 가게는 호텔의 로비 뒤편으로 철문을 사이에 두고 1층에 위치해 있었고 손님을 맞이하는 카운터를 제외하면 시설은 열악했다. 그중에서도 직원들이 식사를 해결하는 곳은 세탁실이 같이 있다 보니 매우 협소하고 지저분했다. 원래 로비로만 사용하도록 만들어진 곳에 칸막이를 쳐서 마사지실을 만든 탓에 12개의 마사지 베드가 놓일 만큼 넓은 공간인데도 환기 시설이 따로 설치돼있지 않았다.

조선족 마사지사들은 먹을 반찬이 부실해 도시락을 싸다니고 실내 공기가 탁해서 잠시 쉬는 짬에도 가게 밖으로 나가 맑은 공기를 쐬지만 돈이 된다면 15시간씩 일하고도 사장에게 작업 환경에 대해 불평하지 않았다. 그에 비해 한국 마사지사들은 불평이 많았다. 사장 입장에서도 조선족들만 쓰고 싶었겠지만 한국 손님들은 말이 잘 통하는 한국 사람을 원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적절히 섞어서 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한국 사람들에게도 단기간 목돈을 만들기에는 이만한 곳이 없었다. 보통은 일하러 왔다가 손사래 치며 하루 이틀하고 관두는 곳이지만 말이다. 결국 내가 관두고 얼마 안 되서 일하는 사람이 조선족으로 다 바뀌었다. 하지만 이곳에도 좋은 점은 있었다. 미리 말하면 언제든 쉴 수 있었고 한 달 정도의 휴가도 가능했다. (난 자주 쉬는 편이었는데. 여행계획이 잡히면 사장에게 한 달 전에 미리 통보해 흔쾌히 허락을 받아냈다. 이곳만의 장점이자 이곳 사장의 유일한 장점이었다.) 로테이션으로 순번을 정해놓고 손님을 받기 때문에 쉬는 인원이 생기면 마사지사들은 더 많이 벌어갈 수 있었다. 그래서 누가 쉰다고 말하면 일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반기는 내색이었다.

한번은 어느 날 “쉬는 사람들이 많아, 계속 일을 해서 팔이 아파!”라고 한국어가 서툰 조선족 아주머니가 푸념했더니, 사장은 "못하겠으면 다른 사람에게 넘겨."라고 단칼에 자랐다. 그러면 아무도 다른 사람에게 일을 넘기지 않는다. 어쨌든 그날 받아가야 하는 일당이 걸린 일이기 때문이다. 마사지사는 수입을 5:5로 사장과 나눈다. 한 사람을 하고 안 하고가 누구보다 더 벌거나 더 버는 차이로 결과한다. 그 결과로 퇴근할 때 남들보다 못 벌었다고 비교되면 기분이 좋을 리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날 저녁 퇴근할 때 14시간 일하고 이십몇만원의 일당을 챙겨가는 그 조선족 아주머니에게 "황!! 이것 봐 열심히 하니까. 이십몇만원 벌었잖아. 오늘 일등 했어."라고 사장이 말했다. 사장은 늘 퇴근시간이 되면 누가 일등하고 얼마 벌었는지를 다들 들으라고 큰 소리를 말한다. 마치 말 잘 들은 아이들에게 포상해주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전 날 벌이가 좋으면 오전 10시 전에 출근한 조선족 마사지사들(일찍 출근한 사람이 앞 순번을 가져간다. 앞 순번의 벌이를 한 달 계산해보면 몇십만원 더 벌어가기 때문에 아침시간이 되면 ‘누가 먼저 오냐’의 암묵적 전쟁이다)은 웅성웅성한다. '누가 얼마 벌었더라.', '어제 그 손님은 진상이었어', '오늘 일번은 누구야?' 대강 이런 말들이 중국말로 오간다. 한국 마사지사들은 어쩌다 자기들 면전에 대고 욕한다 해도 알아들을 수 없으니 “한국말로 해! 한국말로!”라고 꾸짖기도 한다.

대개 오전 10시에서 오후 10시까지 보통은 12시간을 기본으로 일했다. 본인이 더 벌고 싶거나 사장이 부탁하면 14시간 일하기도 했다. 마사지 시간은 코스에 따라 45분, 60분, 90분, 120분에서 3시간까지 다양했는데 손님들은 보통 60분과 90분짜리를 주로 받는다. 하루 근무 12시간을 기준으로 평균 아홉 명 정도를 했다. 봄에서 가을 초까지는 명동에 들어오는 관광객(주로 일본인이 마사지를 받는다)들로 하루 아홉 명이 넘는 날이 부지기수였는데 엉덩이 붙이고 밥 먹을 시간도 없었다. 서서 마사지 하는 중에 카운터 직원이 입에 김밥을 넣어주거나 업어져 누워있는 손님에게 소리 안 나게 한손으로 마사지하고 한손으로는 빵과 우유를 먹어야했다.

어쩌다 동현이 이야기를 하려다보니, 처음 알게되서 같이 일했던 곳에 대한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런 곳에서 악착같이 돈을 벌겠다고 무리하게 일했던 동현이는 나이가 가장 어린 마사지사였다. 집이 의정부여서 저녁 10시에 마치고 서둘러 집에 가도 12시가 넘었다. 12시간 노동 후에 바로 잠만 자고 아침 10시까지 오는 것은 매일 고단한 일이었을 것이다. 제주도 공항으로 향하는 버스에서 동현이와 나는 같이 마사지가게에서 일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형 그때는 돈 버는 재미에 악착같이 일했어요. 그 때 몸이 더 망가진 것 같아요."

동현이는 명동 마사지 가게에서 일하기 전에 지방의 리조트에서 일했는데 겨울에 고장난 숙소 난방을 고쳐주지 않아서 그냥 참고 견뎌다는 것이다. 그 이후로 병원에서는 아무 이상 없다고 했지만 몸이 자주 붓고 아파서 병원에서 약을 타먹고 있었다. 그런데 명동 마사지 가게에서 일하면서 그 병을 더 키웠던 것 같다. 조금만 무리하면 발목이나 손목이 울퉁불퉁하게 붓는 날이 많아졌다. 그렇게 몸이 안 좋아 쉬는 날이 빈번해지고 다리까지 절어서 서 있거나 걷기가 불편해져 가게를 그만둬야했다.

"사지 멀쩡한 게 얼마나 다행이냐. 너 전에 아팠던 거 생각하면 이렇게 웃으며 같이 측량 알바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다행이야. 아. 그리고 보니 이번에는 나만 아팠군. 족저근막염이니 피부염에 걸리고. 너는 완전 건강하고 말이야."

"형! 왜 그렇게 아프고 그래요."

동현이와 나는 크게 웃었다. 건강해진 동현이와 이렇게 다시 또 같이 일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리고 우리가 타고 가고 있는 152번 버스가 방금 지난 곳은 어제 우리가 측량했던 곳이었다. 우리가 측량하는 중에 이 버스가 지나갔다. 우리 곁을 지나갔던 버스를 타고 자신이 측량한 길의 풍경을 거꾸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예전 같으면 아무 생각이 없이 지나쳐버렸을 풍경들이지만 삶의 연계성을 인지하고부터는, 풍경 그 자체보다는 자신의 삶과 연계해서 넓게 조망해 볼 수 있는 것 같다.

...... 2부로 이어집니다.
전체 4

  • 2020-10-28 16:52
    오... 측량한 길의 풍경을 바라보며는 훈샘의 동현님과의 추억으로 저도 빠져들어버리는 듯했습니다. 한 손으로 소리없이 빵과 우유를 먹었다는 대목은 인상이 깊이 남네요. 한승태의 <고기로 태어나서>를 방불케하는 노동에세이 잘읽었습니다!

    • 2020-10-29 15:39
      사전에 규창샘이 추천해줘서 <고기로 태어나서> 을 읽는 것이 무의식 중에 작용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ㅎ 한손으로 마사지하면서 다른 한손으로 피자 두조각도 먹었던 적도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외국인 손님이라 가능했습니다. ㅎ

  • 2020-10-29 10:50
    주로 앉아서 공부하는 연구실에서 몸을 쓰는 이야기를 듣는 게 넘 신선해요. 그 경험이 공부와 만나는 지점도 흥미롭고~ 진정한 N잡러 샘ㅎㅎ

    • 2020-10-29 15:42
      그냥 돈이 필요해서 일했던 기억들이 제 공부를 위한 거름이 될 수 있을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