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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 알바생“훈이의 일기”] 10화 2부

작성자
김훈
작성일
2020-10-29 15:25
조회
225
규문의 최고령 인턴 4n세 훈샘이 내년 공부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지방 출장을 떠났습니다.
훈샘의 소소한 일상 이야기에서부터 비정규직 노동자로서의 삶, 훈 샘이 읽고 계신 책 이야기까지 다양한 썰들을 가볍게~ 풀어볼 예정입니다. 
무려 주 2회! 매주 수, 일 저녁 6시에 연재될 예정이니 애독을 부탁드립니다~




[비정규 알바생“훈이의 일기”] 10화 2부

_측량알바를 마치며 2부

'제주팀은 직원인 친동생 정태와 40후반의 형님 두 명, 그리고 내가 ‘최반장’이라고 부르는 동생까지 4명이 한 팀이다. 내가 속한 육지팀은 직원인 친구 호균이와 아는 동생 동현이, 그리고 오랜 경력자 광수씨까지 4명이 한 팀이다.'

동현이와 나는 김포공항을 빠져나와 지하철을 타고 송도로 가고 있었다.

"오늘은 영주로 최대한 일찍 가서 고구마 캐야 해."

계획은 이러했다. 우선 제주도에 돌아온 당일날 송도로 가서 동현이의 차를 빌린다. 그리고 같이 영주 집에 가서 하룻밤을 자고 오전 중에 여름에 심어둔 고구마 캐고 올라오는 것이었다. 동현이와 상의한 끝에 내린 최상의 결정이었다. 동네에서는 이미 보름 전에 다 캤다고 윗집 형님한테 전화가 왔었다. 하루라도 빨리 캐지 않으면 고구마가 서리 맞아 썩게 생겼다.

"이번 알바에 최대 수혜자들은 제주팀과 동현이네. 어차피 이렇게 될 거 처음부터 기분 안 나쁘게 초보자, 경력자 안 나눠도 됐잖아."

"그러니까. 제주팀 형님들이 다 기분 나빴다는 거 아니에요."

송도로 향하는 지하철에서 동현이와 나는 이미 훌쩍 과거가 돼버린 듯이 그간의 측량 알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짧은 기간 동안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정확히 일기에 써야 할 내용들을 시간에 쫓겨 대강 넘긴 듯하다. 나는 그래서 마무리 짓는 의미에서 몇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었다. ' '로 표기한 내용들은 그런 나의 욕심에서 쓰였다.

'처음 제주팀은 초보자로 육지팀은 숙련자로 분류했었는데, 그러다 보니 당연히 거리당 단가로 계산되는 측량작업에는 두 팀의 물량 차이가 현저히 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작업이 숙련될 때까지 제주팀은 일당 십만원(육지팀인 숙련자들은 일당 12만원이다)을 주기로 돼 있었다. 하지만 이 숙련될 때까지라는 것이 애매한 말이었다. 특별한 기술은 요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루 이틀이면 익힐 일이었다. 정확히 언제까지인지 말해줄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처음 일하러 오는 사람이 자신이 하는 일이 숙련도에 따라 두 팀으로 나뉘고 일당이 다르며, 작업하는 장소가 섬과 육지로 나뉜다는 등의 세세한 작업조건을 알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회사에서 사전에 작업상황을 충분히 숙지시키고 동의를 구하기 않았기 때문에 애초부터 오해를 낳을 소지가 많았다. 더구나 작업시간도 지켜지지 않았었다. 보통 정오 12시 안에 마치며 길어야 오후 1~2시쯤에 마친다는 작업은 평균 오후 3~4시가 돼서야 끝났다. 납품 기한이 빠듯해서라면 그 또한 사전협의와 동의가 있어야 됐지만 아무런 언급도 없이 매일 작업을 강행시켰다. 결국 육지팀의 숙련자들에 비해 제주팀의 작업량이 적다며 물량을 재촉했던 직원간의 통화가, 그 옆에서 우연하게 들었던 제주팀 알바생들을 화가 나게 만들었고 더는 못하겠다고 시정을 요구했다. 사장은 긴급히 제주도로 와서 회식자리를 열어 그간의 무리하게 일을 시킨 것에 미안하다며, 일당을 균등하게 12만원으로 하고 이번 현장 작업이 다 마친 후에는 얼마간의 보너스까지 챙겨주겠다고 약속했다.'

송도의 국제업무지구역에서 빠져나왔을 때 뺨을 스치는 바람이 제주도 보다 차고 날카로워서 놀랬다. 바로 바다를 앞에 두고 지어진 키 큰 아파트들은 그런 날씨 때문인지 을씨년스럽게 보였다. 이제 막 지어진 백색의 아파트 주변과 도로에는 다니는 사람도 적고 빈 점포가 눈에 띄었다.

"형, 여기는 항상 바람이 불고 차서 싫어요. 그리고 뭐 사려고 이마트 가려면 차 몰고 한참 가야 되요. 여기는 3차로 지어진 곳이라 아직 뭐가 없어요. 그냥 동생네 의정부 집에 가서 살아야 할까 봐요."

동현이는 얼마 전 송도 신도시의 아파트를 새로 분양받아 부모님과 함께 이사해왔다. 하지만 예전에 지방 리조트에서 일할 때 숙소 보일러가 고장 나 찬 바닥에 잤던 것이 몸이 붓는 질병으로 이어져 몇 년을 고생했었다. 그 탓에 추운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소파 완전 좋은데. 몇 평이야. 새집이 좋긴 좋네."

소파에 푹 걸터앉으며 나는 말했다

"형 저기 식탁은 물푸레나무로 만든 거예요. 백만원이 넘어요. TV도 최신형으로 얇잖아요. 평수는 좀 되는데. 저렇게 다 붙박이라 좁아 보여요."

"야. 너희 집 왜 이렇게 럭셔리 한 거야! 하긴 집 사러 오는 사람들한테 좋게 보이려면 인테리어는 이쁘게 해놔야지"

"형 여태껏 자기 집에 살아본 적이 없어요. 월세 집만 전전했어요.(동현이가 쓴웃음을 지었다.)이거 엄마가 당첨 받아서 4억 주고 샀는데 다 대출받아서 산거예요. 지금은 시세가 7억까지 가요."

"4억, 그러면 이자가 적어도 백오십만원은 될 텐데. 그리고 요즘은 원금거치가 몇 년 안돼서 같이 갚으면 몇 백은 매달 나갈 건데. 부모님 완전 힘드시겠다."

"형 요 앞에 바닷가 보이죠. 그 둘레로 공터가 있잖아요. 거기가 다 공원으로 조성되면 여기 집값이 더 오를 거예요."

“오. 대박인데. 야. 팔릴 때까지라도 자기 집이라고 만끽하고 살아.”

그리고 보면 나도 여태껏 영주집이 생기기전 까지는 내 집이라 할 수 있는 곳에서 살아본 적이 없었다. 88올림픽 때 부모님은 길동의 아파트와 천호동의 단독주택, 집이 두 채나 있는데도 지하 월세 방을 고집했다. 돈을 모아모아 자기 집을 마련하더니 이제는 집 두 채의 부동산을 불리고 불려서 자기 건물을 가지고 싶어 하셨다. 그렇게 가족은 자기 건물을 갖기 전에는 지하월세방을 전전해야하는 것이었다. 엄연히 따지면 거의 대출로 산 동현이의 송도 아파트도 자기 집이 아니었다. 도대체 자기 집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왜 자기 집이 사람들 인생에서 최상의 위치에 있어야하는 걸까.

이제는 우리 팀 직원인 친구 호균이에 대해 말해야겠다. 마지막 한대가리를 마치고 서울을 복귀해 생각해보니 친구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었다. 직원 두 명뿐인 회사에서 호균이는 전체 팀장이었다. 여러 명의 직원이 해야 할 일을 단 둘이서 해야 했기 때문에 급여는 일반적인 회사보다 높지만 업무량이 많았다. 현장에서 같이 측량작업을 하고도 숙소로 돌아와 저녁 12시 넘어 늦게까지 서류작업을 해야 했다. 그리고 새벽 5시 정도에 일어나 대강 씻고 현장으로 나가야 했기 때문에 운전 외에 자주 졸거나 피곤해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직원을 더 채용하면 됐지만 측량일은 특성상 겨울과 초봄에 걸쳐 5개월간은 일이 없었기 때문에, 직원들 월급을 다 챙겨주기가 열악한 하청 회사에서는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그러고 매년 사업 시즌이 다가오면 사장은 원청에 영업을 해서 무리하게 많은 물량을 받아온다. 그 받아온 초과 물량을 두 명의 직원으로 꾸려나가려고 하니 항상 업무량은 과도하게 많을 수밖에 없었다. 대신에 다른 회사보다 월급을 많이 줬지만 몸에 한계를 느낄 만큼 호균이와 정태는 힘들어했다.

“이 나이에 어디 가서 뭔 일을 하겠냐. 몇 번이고 때려 치려고 했지만 여기 아니면 이만큼 대우 해주는데도 없고 난 그만 두질 못해. 정태는 아직 어리니까.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때려치우는 게 나아. 더 나이 먹으면 힘들다.”

어느 날 밤인가 둘이서 친동생인 정태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호균이가 꺼낸 말이었다. 하지만 둘 뿐인 회사에서 6년간 얼굴을 맞대고 일을 하다 보니 서로에게 불만의 골이 깊어져 있었다. 호균이는 정태보다 직급이 높았고 사장이 모든 작업을 전적으로 맡길 만큼 신뢰하고 있었다. '하기 싫은 일을 돈 때문에 고통스럽게 억지로 맞추고 있다'는 것은 둘 다 같은 마음이었지만 호균이는 오히려 사장이 요구하는 것보다 더 잘하려고 일에 몰두했다. 때문에 상대적으로 그렇지 않은 정태에게 자주 꾸지람을 했고, 그래서 둘은 사이가 안 좋아졌던 것이었다. 그리고 알바생들은 늦게까지 작업을 시키는 호균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에 비해 정태는 알바생들이 좋아하고 따랐다.

"나는 언제나 악역이야. 내가 악역을 맡아야 회사가 돌아가! 야, 니 동생 얼마나 봐주고 있는지 알어. 뭐 하라고 시키면 해야지. 핸드폰으로 게임 할 시간은 있고 영수증 정리할 시간은 없냐"

호균이는 취하면 나 들으라는 듯 뱉는 저 말이 내 가슴을 맥히게 만들었다. 길게 한 숨을 내쉬었다. 하...

“호균아. 나는 너희들 다 좋아한다. 일터에서 어찌됐건 그건 너희 둘의 문제야. 내가 해결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더는 내 동생 얘기 안했으면 좋겠다. 동생과 있을 때도 네 얘기 나오면 하지 말라고 할 거야.”

십여 년 전 나, 호균이, 정태는 우리 집에서 약 4년 동안 같은 방을 쓰며 살았다. 나와 정태는 친형제니까 그렇다 해도 남들 보기에 4년 동안 얹혀사는 호균이도 그와 같이 사는 우리 식구들도 이상하게 보였을 것이다. 방이 두 개뿐인 반지하 셋방이었는데 큰방은 부모님이 쓰고 셋은 작은 방을 썼다. 나란히 놓인 세 개의 컴퓨터 책상 밑으로 나란히 셋이서 발 뻗어 누우면 방이 꽉 찼다. 그러다 아는 동생 한명이라도 자고 가는 날은 누군가는 한명은 새우잠을 청하는 불상사를 감수해야했다. 그 불상사의 몫은 항상 호균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여태껏 호균이에게 ‘그때 우리 집에 사는 게 불편하지는 않았냐’라고 물어본 적이 없었다. 다만 가끔 만나 술 한 잔에 수다를 떨 때면, 호균이는 그렇게 셋이서 한방에 컴퓨터 게임을 하며 살던 시절이 가장 행복했다고 회상하곤 한다.

누구나 많은 말 못할 어려운 시절 있기 마련이 아니겠는가. 자기 건물을 갖겠다며 자기 집을 불리던 부모님은 결국 그 욕심 때문에 IMF 때 부동산 사기를 당하셨다. 그로인해 몇 년에 걸친 복잡한 법적 소송을 치러야 했고 은행에서 쓴 대출에 대한 이자는 내가 갚아 나가야 했다. 군대를 제대하고 대학 휴학계를 냈다. 이십대 중반이었던 내가 그 이자를 갚기 위해 난생 처음 시작한 일은 청담동에 위치한 호텔의 벨보이였다. 그 때 호균이를 처음 알게 되었다.

.........3부로 이어집니다.
전체 4

  • 2020-10-29 21:32
    측량 알바 일기로 시작해서 여러 이야기가 새록 새록 나오니 읽는 재미가 있습니다. 부모님의 부동산 대출 이자를 갚기위해 시작한 청담동 호텔의 벨보이라니! 훈샘의 경력은 정말 스펙트럼이 넓으시네요. 또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 2020-10-29 22:33
      같은 팀원들 한명한명에 대한 이야기를 쓰면서 마무리지으려고 했는데..ㅎ
      저도 모르게 길게 쓰게되네요. 재미있었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 2020-11-01 08:58
    마지막 문장에 낚여서 다음회 언제 올라오나 규문 홈피 클릭 수 올리고 있습니다. “누구나 많은 말 못할 어려운 시절 있기 마련이 아니겠는가”라면서도 조근조근 풀어내시는 이야기 속에 샘의 마음과 샘과 함께 하시는 분들까지도 담담하지만 따뜻하게 다가옵니다~

    • 2020-11-02 00:32
      방금 올렸습니다. 그 말못할 사연을 3부에 마저 풀면서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