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좌 후기

10월 30일 스피노자 강의 후기

작성자
동하
작성일
2017-11-04 02:18
조회
90
스피노자 강의 후기 (네그리 + 발리바르)

지난시간에 이어 multus 다중의 개념에 대해 설명해주셨는데요. 네그리 이전에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던 다중의 개념이 그 이후 폭발하듯이 연구되었고 지금 우리가 쓰는 대중과 연관이 있게 되었네요.

샘께서 지난 시간에 이어 또다시 포텐샤와 포테스타스의 대립되는 개념을 구분해주셨는데 이것이 중요한가봅니다. 마키아벨리- 스피노자- 마르크스로 이어지는 포텐샤는 지배계급에 대항하는 다중의 해방역량을 뜻하며 포테스타스는 홉스- 루소- 헤겔의 계보를 갖는 법과 제도 등 국가중심의 권력의 관점으로 지배자가 피지배자를 억압, 통제하기 위한 힘으로 구분해주셨습니다. 스피노자와의 연관성으로는 1660년 <신학정치론>에서는 논의자체가 되지 않았지만 1677년 미완성의 <정치론>에서는 multitudo를 많이 인용했는데 인민주권이라는 개념이 18-19C에 등장한 것을 생각해 볼 때 국가의 권리, 주권자의 권리는 개인의 역량이 아니라 대중들의 역량에 의해 규정된다는 인식은 그 당시 굉장히 앞서갔던 것으로 후대 철학자들에게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네그리는 스피노자가 언급했던 다중(이런, 저런, 다양한 부류의 통칭)이야말로 국경의 장벽이 허물어지는 포스트모던 자본주의- 현대사회에 적합한 유일한 정치적 주체라고 찾아냈습니다.

네그리의 해석과 스피노자의 사유와 어긋나는 점은 스피노자가 ‘민주정’에 대한 글을 미완성에 그쳤다는 점에서 다중이 완전하게 절대적인 정치체, 직접 민주주의 주체라고 규정내리는 것은 네그리의 순전히 열정일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스피노자에게 있어서는 다중이 정치의 토대는 이루고 있지만 정치의 주체는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께서 아주 중요하지만 네그리가 일부러 말하지 않은 스피노자의 말이 있다고 합니다. “반드시 다중으로의 복귀는 막아야 한다.”라는~~ 스피노자는 대중이 해방의 주체, 정치의 주체라는 점에 있어서는 동의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요, 100% 직접민주주의(대의제의 모순?)를 부정했던 놀라운 선구안을 발견하게 됩니다. 스피노자가 대중의 복귀를 위험한 것으로 본 것은 자연 상태와 유사한 아나키상태에서 개인들의 평등과 자유는 현실적인 것이라기보다 상상적인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정치적 관계가 해체되면 폭력과 갈등의 폭발을 의미하며 개인들에게는 생명과 안전의 위험을 뜻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스피노자는 다중의 역량이란 항상 능동과 수동의 갈등적인 경향 속에서 동요를 갖기에 그 자체를 능동적, 해방적, 선량함으로 보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대중들은 집합적 실천에 의지할 수밖에 없기에 대중역량은 이성적인 존재자들이 행위 하듯이 제도적인 매개가 하나의 정신에 인도되는 것으로 활용되어야 한다고 보았다는 점입니다. 스피노자에 있어서는 역량(포텐샤)과 권력(포테스타스)을 대립적인 관계로 파악할 수는 없답니다.

5강 대중의 공포, 민주주의의 역설: 에티엔 발리바르

 

이번 시간에는 제게는 생소한 발리바르에 대한 설명을 샘께서 아주 작심하시듯 폭풍진도를 나가셨는데 솔직히 강의를 따라가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프랑스 철학자 발리바르는 스승 알튀세르 뒤를 이어 마르크스를 지속적으로 연구하며 인종과 민족문제에 관심을 갖는 유일한 인물입니다. 발리바르는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이 역사적으로 전개되는 위기나 전환의 과정을 분석하기에는 한계가 있고,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관점으로 파악하는 것은 예를 들어 성적불평등이나 내셔널리즘 등 다양한 문제를 풀기에 너무나 한정적이라는 점에서 이데올로기의 쇄신에 분투하였는데 그가 제안한 “국민형태”개념은 국민 공동체를 자연적이고 초역사적인 공동체(단군의 자손, 백의민족 등)로 간주하는 가상에서 벗어나. 국민의 역사적 형성과 재생산, 전환 과정을 계급투쟁과 결부시켜 사고하기 위해 고안한 개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발리바르는 네그리가 스피노자를 통해 다중이라는 의미를 획득했듯이 스피노자연구를 통해 넓은 의미에서의 이데올로기론을 발견했습니다. 그의 정치철학적 특징으로는 1990년대 이후 막스주의 해체의 영향으로 진보정치를 쇄신하며 바로 근대민주주의 정치의 세 가지 개념을 제시했다는 점입니다. 피억압자 자신의 권리를 선언하는 해방의 정치, 정치를 규정하는 물질적, 상징적 조건들, 특히 지배구조 및 권력관계들의 변혁을 정치의 중심적인 대상으로 삼는 정치인 변혁의 정치, 시민다움의 정치입니다. 발리바르는 스피노자 철학을 관계론적 관점에서 해석하는데 ‘관-개체성’이라는 개념은 ‘개체’ ‘사회’ ‘전체’ 같은 개념들이 어떤 실재성의 단위가 아니라 사실 추상화된 개념들이라는 것을 의미할 때 개체보다 개체화과정이야말로 진정 현실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스피노자는 인간의 원초적인 삶의 조건을 이루는 수동적이고 예속적 관계를 자유롭고 능동적인 관계로 이르도록 개조할 수 있는 길이 인과연관의 질서에 대한 정확한 인식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여기서 무수한 관계들과 그에 따른 변용들은 주체들을 생산하고 재생산하는 주체화과정과 동일한 것이겠지요. 사회적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각자의 윤리적 해방은 예속적 관계를 개조하려는 집합적인 실천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으며, 역으로 정치적 변혁은 다른 사람들과 삶의 조건을 개선하려는 각자의 윤리적 노력 뿐(스피노자:도의심)이라 한 것을 발리바르는 “시민다움”이라 합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스피노자의 민주주의는 대중 그 자체는 정치체제에 파괴적이고 위협적이 존재라는 보수적 관점을 유지하고 있으면서도 대중은 정치체제를 구성하는 근원적인 역량이라는 관점을 고수하고 있다는 점에서 스피노자의 정치학은 기형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는 군요. 그런 의미에서 스피노자의 민주주의론은 정치체가 완성된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구성과 봉기, 해체와 재구성을 거듭하는 과정으로서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 역시 수동과 예속으로부터 능동과 해방을 향해 나아갈 수밖에 없는 개인의 삶은 사회, 국가, 제도 등에 복종하고 투쟁하고, 변화하는 것의 순환과 다름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시간에는 스피노자의 민주주의 역설에 대한 부분이 조금 남아서  다시 마무리 설명해주신답니다. 다음강의 6강은  '스피노자와 권력'이라 쓰여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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