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n

0314 수업 공지

작성자
수경
작성일
2016-03-10 15:10
조회
612
긴 방학 끝에 새 학기 개강했습니다. 반가운 김에 조촐한 뒷풀이 겸 신입생 환영회도 했지요~
모두 반가웠고, 특히 처음 뵌 수정쌤, 앞으로 즐겁게 끝까지 함께 가봅시다 ^^

지난 시간은 개강이라 세미나 없이 인트로 강의가 간단하게 있었습니다.
두 학기에 걸쳐 화엄경과 함께 무지막지한 시간을 보낸 터에 이제 또 어떤 말씀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됩니다.
지난 학기 뜻도 모른 채 반야심경을 읽었는데, 이번에야 이걸 공부하게 되었군요 ㅎ
채운쌤 말씀으로는 이제 화엄경과 대비되는 극도의 압축적 언어가 우리를 기다린다고.. ^^
이번에도 언어 문제를 가지고 흥미진진하게 공부할 수 있을 있을 것 같네요.

가지야마 유이치의 <공 입문>의 일부를 함께 읽었는데, 비교적 쉽게 空 사상을 풀어쓴 듯 합니다.
핵심은, 붓다가 전한 공 사상은 '없음'을 말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그냥 다 없다, 하나도 없다... 붓다가 하려는 말은 이게 아닙니다.
모든 것이 공하다는 것은, 지금 존재하는 모든 것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 실체로서 세상에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
인연조건에 의해 일시적으로 그러하게 현상될 뿐 본질적인 무엇, 같은 게 없다는 것.
붓다의 혁명성은 여기 있답니다.
이전까지의 수행자들이 아트만(자아)를 어떻게 브라만에 융합할 것인가 내지 고양시킬 것인가에 몰두했다면, 붓다는 그러한 아트만이 없다는 것, 자아도 신도 세계도 실체가 없다는 것을 끊임없이 말했다는.
하지만 붓다의 제자들조차 공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때로는 공 내지 깨달음에 집착해 병을 앓기도 했다지요.
이 문턱조차 넘어가야 '회향'(전환 / 중생에게로 깨달음의 공덕을 돌리기)이 가능하답니다.
채운쌤 설명에 의하면 공을 깨닫지 않고서는 회향도 가능하지 않다고 해요.
우리들이 곧잘 경험하는 게 이거죠. 누군가에게 받은 건 곧잘 잊지만 주거나  한 일은 어찌나 잘 기억하는지.
하지만 보살의 회향은 주었다는 생각 없이, 중생에게 자신의 깨달음의 공덕을 돌리며 다시 중생에게로 가는 것.
요컨대 어디에도 머물지 않으면서 마음을 내기. 이런 건 깨달은 자만이 할 수 있는 전환이랍니다.

한 가지 더. 보살의 이 같은 지혜(=공)는 언어에 사로잡히지 않으며 언어로부터 계속 이탈하는 것이라고.
언어야말로 대상을 실체로 인식하게 하는 마법의 주문이니까요.
주어+서술어 구조는 내가 있다고, 이 내가 이러저러한 것을 했다고, 그래서 이 같은 결과가 나왔다고 믿게 하지요.
그래서 공이라고 쓰는 순간 쉬이 공이 있다,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고 집착하는 마음을 내지요.
그러므로 불교의 언어는 끊임없이 언어를 파열시키면서 운동한답니다.
예컨대 <무문관> 같은 책이 보여주는 퐝당한 선문답들이 그런 것들. 나의 앎을 깨고, 내가 실체화하는 것을 부수기. 다시 언어를 통해.
불가에서 인식만이 아니라 '수행'을 중시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랍니다.
언어(적 이해)를 넘어선 차원의 깨달음을 위해 수행자들이 하는 명상 같은 게 이런 거.

사실 첫 번째 수업에서는 지금까지 배워온 것을 쉽게 요약 정리해봤던 것 같고요, 문제는 이렇게 수업시간에 들은 이야기를 실마리 삼아 실제 경전을 어떻게 해석해낼 것인가에 있겠죠.
앞으로 수행하는 마음으로, 지혜를 찾아, 정진해봅시다.

다음 주에는 <금강경오가해>4번까지 읽고 또 읽은 뒤 공통과제 써오시고요.
나눠드린, 혹은 제본한 <불교개론강의>하권 3부 1절('반야심경' 챕터 제외)도 읽어오셔요.
매시간 강독이 있으니 나눠드린 경전 원문은 필참!

한 가지 더.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 인간>이, 찾아보니 절판입니다. 제본할 예정이라 수업 순서를 조정합니다.
<인간> 다음에 읽을 <신경과학과 마음의 세계> 먼저 읽겠습니다. 그러니까 다다음 시간은 신경과학으로다가~

자, 그럼 한 주 잘 보내시고요.
참, 간식은 수영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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