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콜콜

[비정규 알바생 “훈이의 일기”] 6화

작성자
김훈
작성일
2020-10-11 19:16
조회
212

규문의 최고령 인턴 4n세 훈샘이 내년 공부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지방 출장을 떠났습니다.
훈샘의 소소한 일상 이야기에서부터 비정규직 노동자로서의 삶, 훈 샘이 읽고 계신 책 이야기까지 다양한 썰들을 가볍게~ 풀어볼 예정입니다. 
무려 주 2회! 매주 수, 일 저녁 6시에 연재될 예정이니 애독을 부탁드립니다~



[비정규 알바생 “훈이의 일기”] 6화


2020년 10월 11일 일요일(전라남도 진도)

심란해서 3일간 일기를 쓸 수가 없었다. 아침 8시에 일어나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고 숙소로 돌아와 바리캉으로 제 머리를 깎았다. 오늘은 일기 납품 날(일기를 쓰려고 서둘러 카페로 가는 날에는 측량 팀원들에게 농담조로 ‘일기 납품하러 간다’고 말한다)이다. 심란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일기를 쓰기 위해 머리를 깎은 것이다. 몇몇의 사람들이 자기 만에 마음을 다스리는 경건한 의식 같은게 있다면 나에게 그것은 ‘머리를 깎는 일’이다. 기른 머리와 마음의 정도를 가늠하고 이 때다 싶은 적당한 시기에 약 6mm정도로 머리를 깎는다. 앞머리를 깎을 때는 거울을 보지만 뒷머리는 손바닥의 감촉으로 머리가  균질하게 깎였는지를 가늠한다.(인도나 동남아 등지로 여행을 하면 거울이 없거나 불이 켜지지 않는 열악한 숙소들이 많다. 손바닥으로만 머리를 균일하게 다 깎였는지를 가늠해야 하기 때문에 온전히 자신의 머리에 집중하는, 명상 같은 묘한 경험을 하기도 한다)그 다음에 가장 중요한 일은 몸과 주변을 세척하는 일이다. 짧은 머리카락이 몸에 남으면 옷을 입을 때 따갑고, 옷에 묻으면 찾아내기도 어렵다. 즉 마무리가 잘 되지 않으면 몸이 내내 따갑고 괴로운 일이 된다. 그리고 욕실 주변에 머리카락을 세심히 씻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이용할 때 불쾌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타월로 몸부터 닦는다. 머리부터 닦으면 타월에 머리카락(아무리 잘 씻어도 머리에 머리카락이 남아있기 마련이다)이 묻어서 몸에 다시 붙을 수 있다. 머리의 굴곡을 손바닥으로 느끼고 머리카락이 몸에 남아있는지 여부를 세심하게 관찰하는 등의 이런 일련의 과정은 자기 몸과 애정 어린 관계를 맺게 해준다. 그러니까 바리캉은 항상 빠질 수 없는 필수품이 됐다.

십여 년 전에 대학로에서 연극할 때였다. 치매 할아버지 역할을 위해 머리를 짧게 깎고 부터 자신의 얼굴에 신경 쓰지 않게 되는 편안함이 지금까지 줄곧 이어진 것이다. 하지만 머리를 짧게 깎으며 살았던 연유에 대해 더 깊이 고찰해보자면, 대학교 시절까지 멀리 되돌아 봐야 할 것 같다. 어려서는 자신의 외모에 신경을 쓰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 생각하겠지만 나는 유독 타인의 시선을 의식했다. 대학교 시절은 머리카락이 귀를 가릴 만큼 길게 길렀음에도 항상 모자를 쓰고 다녔다. 거울을 보면 모공은 어찌 크게 보이던지. 정말로 그때는 자신을 곰보라 여겼다. 실제보다 과장되게 자신을 인식하고 타인들과의 소통에 서툴렀다. 그래서 늘 사람들과 보이지 않는 투명한 벽이 있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항상 끊임없는 생각들이 머리 속에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는데, 씻을 때도, 걸을 때도, 밥을 먹을 때도 멈추지 않았다. 사람들이 많은 동대문 쇼핑몰이나 백화점에 가면 손과 머리에 식은땀이 났고 현기증이 나서 오래 돌아다닐 수 없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외부와 단절된 자기만의 세계에 살았던 것이다. 자기에게만 몰두하는 시선은 타인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 이해가 불가하니 타인과 군중으로부터 식은 땀이 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타인에 시선을 유독 의식했던 이유가 타인에 대한 몰이해에서 연유된다는 사실을 난 알지 못했다. 다만 타인을 시선을 더는 의식하지 않고 자기의 삶을 살고 싶었기에 머리를 깎기 시작했던 것이다. 실제 그런 실천이 표면적으로는 다른 사람을 만들어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자기 문제에 근본적인 원인을 알지 못하면 항상 같은 문제로 고통 받는다. 자기의 세계에 몰두하는 나는 여전했다.

애초에 하려고 했던 이야기를 해야할 것 같다. 심란한 3일간이었다.

오늘은 처음 쉬는 휴일이다. 추석 연휴를 빼고 쉬는 날 없이 일을 했다. 일하러 오기 전 늦어야 오후 1시~2시 쯤에 마친다고 들었다. 하지만 회사사정에 의해 실제 작업은 오후 3시~5시 쯤에 마쳤고 그제는 저녁밥을 먹고 6시가 되서야 숙소에 들어왔다. 나른하고 지쳐서 생각이란 것을 할 수 없었다. 충분히 숙고하고 탈고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약간의 짜증이 밀려왔다.

친구는 회사와 자신을 동일시했다. 나도 내가 쓰는 일기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있는 것일까. 친구가 회사 사정이 어려워 그날 물량에 대해 예민하듯이 나도 일기를 쓸 시간과 상황이 어려워 짜증이 났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친구가 자신의 회사의 사정에 몰두하느라 다는 팀원들을 헤아리지 못하듯이 나 또한 일기를 쓰는 것에 몰두해 다른 사람들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그제부터 진도에서 가장 높은 첨찰산을 걸어서 정상(해발 485m, 정상에 위치한 진도 기상대 안에 국가 기준점이 있다)까지 측량하고 있다. 가파른 경사는 평지에 비해 기계수가 멀리 보지 못하기 때문에  다음 지점까지 스타프를 세우는데, 제일 가파른 곳은 약 3~4m 밖에 가지 못한다. 즉 스타프와 스타프 간의 거리는 좁아지고 스타프 2명과 기계수는 가깝게 붙어있게 된다. 그 때문에 사이좋게 서로 수다를 떨게 되고 기계수와 스타프가 번갈아 이동하는 거리가 짧아진다. 보통 평지에서 상대 스타프가  15m정도의 다음 지점까지 세우고 그것을 기계수가 볼 때까지 4~5분간의 시간적 텀이 생긴다. 그 텀의 나는 일기에 관한 아이디어를 메모하거나 쓴 문장들을 수정을 한다. 그런데 비탈진 산 길에서 그것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텀이 없이 빠르게 스타프를 세워야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쉬는 날 없고 늦게 끝나니, 화가 났다. 그제 오후 5시에 늦게 끝내고 직원인 친구가 ‘좋은 것 먹자며’ 비싼 고기 집을 갔다. 아마도 저번에 늦게 끝내 내가 뭐라고 그랬던 것이 눈치가 보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늦다니! 나는 이번에는 더 쏘아붙였다.

“구두로 약속한 것이 늦어도 오후 1~2시에 마친다고 그러지 않았어. 회사 사정, 사정하는데 그래서 오후 2~3시까지는 감안했는데, 이건 너무 심한 거 아니야. 그렇다고 더 일하면 일당을 쳐주는 것도 아니고, 더 쳐준다고 일하라고 해도 이런 식으로 일하면 몸이 힘들어서 못해.”

저번에 도균이 형님이 바로 전날 그만 두겠다고 말한 것은 잘못이지만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그 형님을 소개한 사람의 말에 의하면 ‘당초 약속했던 것보다 일을 심하게 시켜서 관뒀다’라는 것이다. 그 빵구난 자리에 내 아는 동생을 당일 날 불러서 다행히 회사입장에서는 곤혹스런 일을 면했다. 사실 나는 좀 늦게 해도 불평 없이 일하는 스타일이다. 더구나 일기를 쓰고 있으니, 일 그 자체보다는 그것에 관해 쓰는 과정을 통해 측량을 더 능동적으로 하게 됐고 측량 알바 경력이 오래 되서, 회사에서는 내가 제일 잘 일한다고 여긴다. 우리는 육지 팀으로 불리는데, 팀원 4명 중 유일한 직원인 친구(직원이 두 명 뿐인 회사에서 다른 한명의 부하 직원은 내 친동생이다)는 제주도 팀을 맡고 있는 내 친동생인 직원에게 ‘육지 팀은 물량을 많이 뽑고 늦게까지 일을 잘 한다’라며 질책을 하는 것이다. 제주도 팀원들에는 내가 소개해서 일하는 성규이라는 동생이 있다. 그리고 직원인 내 친동생과 추석 전 다른 팀이었지만 저녁밥을 같이 먹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던 찬우라는 형님이 있다. 찬우 형님에게 그제 저녁에 전화가 왔었다.

“내가 친동생인 정태한테 거기 팀장이 전화하는 내용 들었는데, 육지팀 늦게까지 일하고 물량도 많이 뽑는다고, 육지 팀하고 비교하면서 여기 완전 쪼더라구. 여기 팀원들 다들 스트레스야. 저기 자기가 좀 말해야 되는 거 아니야. 그리고 거기서 너무 일해주면 여기까지 힘들어져.”

그제 유독 친구를 쏘아붙이며 화를 냈던 가장 큰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내가 열심히 한 것이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거나 피해를 준다면 나로선 가장 참기 힘든 일이다. 나의 열심도 다른 사람들의 처지를 이해하며 유연하게 행해질 때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을 일이다.
전체 6

  • 2020-10-13 22:24
    흥미진진하네요. 다음 글이 기다려집니다. 추워지는데 옷 단디 입고 일 하이소. 단디 입으모 일하기 힘드려나? 암튼, 몸 관리 잘 하이소.

    • 2020-10-14 23:37
      아니요. 단디 입어야되요. 그럴려고요. 날씨가 많이 추워졌어요~^

  • 2020-10-14 09:08
    연극도? 샘 못하는게 뭐죠? 짜증난다는건 쉬라는 신호~몸챙김하세요~샘~쫄깃한 글 잘 읽었어요~^^

    • 2020-10-14 23:39
      그다지 잘하는 것도 없습니다. ㅎ 삼일간의 슬럼프가 있었지만 다시 회복했습니다~^

  • 2020-10-14 10:56
    나두 나름 진도 관계인인데~ 진도에 저런데가 있나요? ^^
    훈샘 건강하게 일잘하고 돈많이 벌어서 다음 시즌에 만나요ㅎㅎㅎ

    • 2020-10-14 23:41
      진도 관계인이셨군요.ㅎ 떼돈벌어 세미나 입성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