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콜콜

[비정규 알바생 “훈이의 일기”] 5화

작성자
김훈
작성일
2020-10-07 18:17
조회
222

규문의 최고령 인턴 4n세 훈샘이 내년 공부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지방 출장을 떠났습니다.
훈샘의 소소한 일상 이야기에서부터 비정규직 노동자로서의 삶, 훈 샘이 읽고 계신 책 이야기까지 다양한 썰들을 가볍게~ 풀어볼 예정입니다. 
무려 주 2회! 매주 수, 일 저녁 6시에 연재될 예정이니 애독을 부탁드립니다~



[비정규 알바생 “훈이의 일기”] 5화

2020년 10월 5일 월요일(출발)

어젯밤 마지막 추석 연휴를 규문에서 보내고 집으로 가는 길은 불안했다. 다음날 다시 측량하러 가야하기 때문이었을까. 항상 다른 곳으로 가야한다는 것은 익숙한 것에서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다. 측량하러가는 것을 삶의 동일선상에서 보지 않고 개별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삶의 전체를 조망하지 않고 눈앞에 익숙한 생활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낯선 곳에 대한 호기심보다는 떠난다는 불안이 더 크다.

측량 두 팀 중 한 팀은 오늘 제주도로, 내가 속한 다른 팀은 전라도에서 남은 물량을 치고 일주일 후에 제주도로 이동한다. 다른 하청 회사가 약속을 지키지 않은 덕에  계획대로라면 우리 팀도 제주도 비행기에 올랐어야 했지만 전에도 말했듯이 측량에는 변수가 많다.

자고 일어나 배낭을 짊어지고 지하철에 올랐다. 오전 9시까지 분당 수내역에 위치한 회사에 도착해야 했다. 출근 시간 때라 지하철은 붐볐다. 큰 배낭을 다리 사이에 끼고 서서 책을 펼쳤다.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라는 책의 제목처럼 흔들리는 지하철에 배낭을 끼고 있던 허벅지가 바싹 힘이 들어갔다. 사무실에 도착하니,  추석 전 같이 일했던 도균이라는 형님이 어제 저녁 늦게 못하겠다고 연락이 왔다는 것이었다. 같은 팀 스타프로 일했던 형님이었는데, 갑자기 회사에서 난처한 상황이 생긴 것이다. 회사에서도 연락할 만한 사람이 없던 터라, 나는 부랴부랴 아는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람을 구하지 못한다면 그만큼 일이 힘들어지고 무엇보다도 일정이 늘어나 규문 세미나에 참석하기 어려워질지도 모른다.

"야. 오늘부터 가능해? 일당은 12만원, 차타고 내려가기만 하는데 반대가리 6만원이야. 먹고 재워주고 맛 나는 거 사 달래는 대로 다 사줘! 대박이지! 그리고 형하고 같이 일하면 완전 재미있지. 너도 알잖아."

나는 일당 외 갖은 옵션을 붙여 설명한 효과였던지 흔쾌히 수락한 '동현'이라는 동생 덕에 예상치 않던 변수를 잘 넘길 수 있었다. 하물며 사람이 어떻게 사정 다 알면서 전날 저녁에 펑크를 낼 수 있냐며 곤혹스러워하던 사장의 표정도 밝아졌다.

수원의 청명역에서 급히 동현이를 태우고 전라도 신안군 지리읍으로 내려갔다.

보조점 측량이라는 것이 있다. 국가 기준점 주변에 두 개의 임시의 점을 내려 기준점이 침하됐거나 위치가 변경됐을 때를 대비해서 안전하게 보조 측량해두는 것이다. 지리읍에서 30분 정도 보조점 측량을 하고 전라도 나주로 이동했다. 숙소 들어온 시간이 저녁 6시 넘어서였다. 오늘은 이동만 한 것이 아니니 한대가리다.

2020년 10월 6일 화요일(전라남도 나주)

하루 측량 구간은 3km다. 하지만 측량한 구간을 되돌아오면서 한 번 더 측량하기 때문에 실제 총 측량 구간은 약 6km다. 이렇게 3km 구간을 반복 측량함으로써 두 개의 측량 값이 큰 오차 없이 동일했을 때, ‘납품 성과가 양호’하다고 말을 한다. 또한 이 양호한 납품 성과 값은 국가 지리원에서 지정한 오차 범위 안에 들었다는 것을 뜻한다.

처음 3km는 갈 때는 시간이 느리게 간다. 되돌아오는 3km는 시간이 빠르게 느껴진다. 같은 길이를 걷는 데도 시간의 온도차가 다른 것이다. 실제로 시간을 재어보면 돌아오는 3km가 적게 걸린다. 처음에 3km는 6km 남았다는 생각에 페이스 조절하며 그냥그냥 걷는다. 되돌아오는 3km는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걸음을 재촉한다. 예전에 선배가 '삼십대의 시간보다 사십대의 시간이 빨리간다'라는 것이다. 막상 그 나이가 되니 정말로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 것 같다.  인간의 평균 수명이  80세라면 마흔부터는 '측량에서 되돌아오는  3km'와 같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젊다고 여겼을 때는 늙는 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살았다.  마흔 언저리 부터는 자신의 늙음을 체감하고 살아갈 시간들을 인지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시간들의 인지는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라고 느끼게 만든다. 또한 자신이 잘 살지 못하고 있다고 느낄 때 그것을 더 체감하는 것 같다.

새벽 6시 10분, 날이 밝기 시작했다. 차 문을 열고 나오니 많이 쌀쌀했다. 숨을 '하'하고 뱉으면 뿌연 김이 나왔다. 손이 시려 장갑을 꼈다. 차량의 뒷문을 열면 3m의 스타프 두 개가 9인승 카니발의 보조석에서부터 뒷문까지 비스듬하게 간신히 들어가 있다.  좌석 손잡이에 고정시킨 세 개를 끈을 차례로 풀고 스타프를 꺼냈다. 본격적인 작업에 앞서 항상 해야 할 일은 수준측량기의 장비 점검이다. 최대한 평지에서 양쪽의 스타프를 세우고 측량기를 번갈아보면서 오차가 '0'값에 가깝도록 자동 조정한다. 즉 모든 조건이 동일할 때 측정값이 오차기 나지 않는다면 기계는 정상이다.

오늘 측량은 두 가지 큰 변수가 있다. 하나는 일나서 변을 보지 못해, 측량 중간에 화장실을 발견하지 못하면 민망한 일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오늘부터 새로운 스타프가 된 초심자 동현이와 같이 일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형. 이거 어떻게 하는 거예요?”

"어. 그냥 시키는 대로 하면 돼."
전체 6

  • 2020-10-07 20:31
    아닛 왜 여기서 끝나죠?! 초보자에게 어떻게 하는 것인지 더 친절하게 알려주세요ㅋㅋㅋㅋㅋㅋ다시 시작된 훈샘의 긴 여정을 응원합니다~!!ㅋㅋㅋㅋㅋㅋ

    • 2020-10-08 21:18
      마저 길게 쓰고 싶은데.. 요즘 늦게 까지 일하니.. ;; 친절하게 알려줄께요. ㅎ ㅎ그 응원 잘 받겠습니다. 꾸벅~^

  • 2020-10-08 14:50
    땅끝에서 순례를 하고 계신 훈샘~ 감기 조심하세요!
    거기서도 공부생각뿐이시군요ㅎㅎ 수필 읽는 듯한 기분이 들어 아주 좋습니다!!

    • 2020-10-08 21:28
      책을 읽고 혼자서 조용히 숙고해볼 시간이 없다는 것이 아쉽네요. 새벽 공기가 차서 감기 안걸리려고 꼼꼼히 차려입고 일 나갑니다. ㅎ 규문 복귀하면 함께 탁구합시다. 요시~~!!!

  • 2020-10-09 10:15
    똑같은 40년이지만, 다시 돌아오는 40년은 어떤 고민 속에서 달라지는지 좀 더 듣고 싶습니다! 그리고 훈쌤은 40을 돌아오는 기점으로 삼으셨지만 저는 언제를 돌아오는 기점으로 삼을지도 고민되네요. 잘 읽었습니다! 남은 측량도 힘내서, 요시!

    • 2020-10-11 00:21
      앞으로 남은 생은 예측불허지만 팔십까지 산다는 과정하에 '어떻게 삶을 살아갈지.' 늘 고민합니다. 그걸 이야기로 풀어볼까요. ㅎ 함께 탁구하는 날까지 요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