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n

12.07 수업 공지

작성자
수경
작성일
2015-12-03 16:04
조회
509
'인간의 조건'이라는 구절을 들으면 즉각 떠오르는 두 권의 책이 있지만 (설렁설렁 읽은 탓인지)두 책 모두 읽으면서 제목과 내용이 단박에 연결되지는 않았었는데, 스피노자의 에티카 4부는(제목이 "인간의 예속 또는 감정의 힘에 대하여"입니다만) 이거야말로 인간의 조건을  명확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글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근래 한창 제가 몰두해 있는 문제여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암튼 스피노자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수동적)감정이 발생된다는 것, 이게 인간의 조건입니다.
그리고 자연의 공통 질서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 이 또한 인간의 조건입니다.
벗어날 수 없는 이 두 가지 전제가 인간으로 하여금 윤리적 고민을 하게 한다지요.
그러니까 이런 말입니다.
인간은 수많은 타자들에 둘러싸여 있으며 그러한 관계 속에서 감정을 발생시키는 존재다.
문제는 이렇게 발생된 감정이  맘대로 만들어지거나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우리 의지로 특정한 감정을 만들 수 없고 지울 수 없다는 것.
심지어 감정의 힘에 휘둘려 때때로...가 아니라 자주 판단을 그르치고 자신에게 해를 가하는 선택을 한다는 것.
스피노자는 감정을 존재하는 인간의 조건이라 말하지만, 감정에 휘둘리고 감정에 제압되는 건 오직 예속된 인간에 국한된다고 말합니다.
물론 예속된 인간이 자유로운 인간보다 훨씬 많고요;
이런 예속된 인간은 자신의 본성의 법칙에 어긋난 삶을 살게 됩니다.
본성이라는 표현이 뭔가 께름칙하신 분들도 있겠지만, 스피노자가 말하려는 바는 자신을 편안한 상태로 두지 않고 스스로를 괴롭히는 것이라네요.
그러니까 내 역량이 증대되고 발휘되는 방식이 아니라 오히려 거꾸로 가는 삶을 사는 것은 본성에 어긋나는 삶이랍니다.
슬픔의 감정에 의해 보다 덜 완전한 방향으로  운동하는 삶.

내 의지로 예속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게 아니라면 대체 어떻게 해야 이런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걸까요?
앞서 말한 인간의 조건들이 그 힌트가 되는 듯합니다.

4부 공리가 말하는 바는, 자연 안에는 서로를 능가하는 수많은 존재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거였죠. 인간은 그 안에 있으면서 작용을 받고 또 주죠. 그
런데 이게 가능한 건 그것들 사이에 서로 같은 본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스피노자는 말합니다.
정리29에서 말하는바 우리 본성과 전혀 다른 개물은 우리를 촉진할 수도 파괴할 수도 없으니까요.
이 구도를 감정의 문제에 가져와도 재미있을 것 같은데요, 스피노자에 따르면 하나의 감정을 이기는 것, 그것은 (데카르트가 <정념론>에서 말한 바와 달리) 이성이 아니라 또 다른 감정이랍니다.
그러니까 하나의 감정 상태에서 다른 감정 상태로 이행하는 것, 그것은 우리 의지에 따른 것이 아니라 다른 감정이 더 우세한 탓이라는 거죠.
이렇게 보자면 스피노자는 감정을 힘 관계의 관점에서 보는 거겠죠.

하지만 문제가 여기서 다 해결되는 건 아닙니다.
대체 그 다른 감정이란 어떻게 생기는 걸까요?
어떤 사건에 대해, 어떤 인물에 대해, 어떤 물건에 대해 한 번 생겨나버린 감정이 '마음 먹어서' '애쓰고 또 애써서'가 아니라면 대체 어떻게 다른 감정으로 바뀔 수 있단 말인가요?
여기서 스피노자가 '이성'을 들고 나옵니다.
채운쌤 설명에 의하면 감정이 바뀌는 건  외부 조건들, 즉 관계가 바뀌지 않으면 불가능한 거라죠.
이는 물리적 장소의 이동을 말하는 것이기보다는 그 관계에 대한 '표상'을 바꾸는 것을 뜻합니다.
관계의 필연성을 인식하고 그에 대한 표상을 바꾸는 것, 이게 곧 스피노자가 말한 '적합한 관념'이며,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이 이성이라는 거죠.
이성을 통해 관계를 다르게 구성함으로써 하나의 감정은 비로소 억제되거나 사라질 수 있다고 해요.
물론 표상을 바꾼다는 건 그럼 의지의 작용이 아니냐, 이런 질문이 나올 수 있겠죠.
의지라면 의지가 맞겠습니다만, 아무튼 여기서 핵심은 또 다시 '수행'의 문제에 가 닿는 것 같습니다.
감정은 내 의지대로 곧바로 바뀌지 않지만, 무능력 상태에서 벗어나 보다 능동적으로 변하겠다고 우리는 마음 먹을 수 있고, 그렇다면 당장은 감정이 바뀌지 않더라도 내가 속해 있는 당장의 그 장 안에서 새롭게 관계를 구성해보고자 애쓸 수는 있다는 거죠.
그렇게 신체 변용을 꾀할 때 비로소 다른 관념이 형성될 가능성 또한 열린다는 겁니다.

채운쌤 말씀으로는 스피노자의 철학이 공동체의 윤리와 직결되는 것도 이런 지점에 있다고 하네요.
서로 다른 우리가 모여 어떻게 자신의 역량을 보다 키워가는 방향으로 함께 나아갈 것인가.
타자들로 인해 시시때때로 감정에 휘말려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또 어떻게  타자들과 더불어 능동적으로 존재할 수 있을까.

하여 다다음주에는 <에티카> 4부 끝까지 읽고 "공동체의 윤리"에 대해 공통과제 써옵시다^^
선험적 도덕 법칙으로서의 선악이 아니라 스피노자가 말하는 '좋음/ 나쁨'을 가지고 구축할 수 있는 공동체의 윤리가 무엇일지 함께 생각해보는 걸로.
그리고 들뢰즈가 쓴 <스피노자의 철학> 3부 읽어오시고요. 발제는 따로 없다네요.

그리고 당장 다음주에는 <화엄경> 53권~59권(이세간품) 읽고 공통과제 해오심 됩니다.
간식은 현옥쌤께 부탁드려요.
그럼 모두들 다음 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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