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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나 사이] 나카자와 신이치의 "사람은 곰을 꿈꾼다"

작성자
규문
작성일
2021-01-19 20:30
조회
343

새로 시작되는 '곰&나 사이'는 연구실의 삼십대 청년 혜원이가 올 한 해 신화학, 생태학, 인류학을 공부하면서, 관련 글들을 번역하고 씨앗문장으로 글을 써나가는 연재코너입니다. 제2, 제3의 코로나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만물의 상호연결성'을 저 무의식적 지평에서 다시 끌어 올리는 것이 아닐까요? 포스트 코로나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코너가 많은 질문을 던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람은 곰을 꿈꾼다


번역/혜원



* 이 글은 나카자와 신이치(中沢 新一)의 <꿈에서 곰을보다(熊を夢見る)>(角川書店, 2017)에 수록된 "
사람은 곰을 꿈꾼다"를 번역한 것입니다.


곰과 인간은 오랫동안 교류했는데, 일본열도에서도 구석기시대부터의 역사가 있습니다. 수렵민들의 승석문 문화가 발달했던 동북 지방은 곰과 무척 깊은 연관관계가 있는 ‘곰의 세계’였습니다. 동물의 왕이며 숲의 왕인 곰은, 인간이 외경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존재였죠. 아마도 ‘곰(쿠마くま)’과 ‘신(카미かみ)’은 고대일본어에서 같은 의미였을 겁니다. 숲의 신에게 존경심을 갖고 교류하지 않으면 인간은 숲의 동물들을 사냥할 수도 없습니다. 때문에 곰을 무척 중요하게 취급하는 일환으로 인간은 곰을 사냥했습니다. 외경심을 가지면서도 사냥한 거죠. 곰은 인간에게 있어 무척 양의적인 존재였습니다.



그 곰과의 관계를 인간은 신화를 통해 꿈꿨습니다. 북반구 최강의 지상동물인 곰에 대한 신화는 시베리아나 북방민족에 무수히 남아 있습니다. 그들의 일부가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가 지금은 아메리카 원주민 신화가 됐습니다. 게다가 남아메리카로 가면서 최강의 동물이 재규어로 대체되어 재규어 신화가 됩니다.


시베리아에는 동료들과 떨어진 남자가 동면하는 곰 곁에서 잠들고, 곰의 손에 묻어있는 꿀을 핥아 먹으며 목숨을 연명했다고 하는 대표적인 신화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마치 이 ‘동면하는 곰 곁에서 잠을 자 봐’라고 말하는 공연의 제목같죠. 인간 여성이 숲에서 잘생긴 남자와 만나 결혼하는 이야기도 많습니다. 신화에서는 자신의 반려가 곰이었다는 것을 눈치 채도 전혀 놀라지 않는다는 게 멋지죠. 인간과 모습은 같지만, 가족과의 만남에서 ‘우리를 노리는 인간 사냥꾼’ 같은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들은 여자는 ‘내가 온 곳은 곰 세계인가봐’하고 이해합니다. 그들이 밖으로 나갈 때 입구에 걸려 있는 가죽을 입고 ‘곰이 되는’ 것입니다.


인간 여성은 곰의 세계에서 무척 소중하게 대접받고 급기야 곰의 아이를 낳습니다. 이 아이는 쌍둥이인 경우가 많습니다. 고대인은 쌍둥이를 신성시하는 동시에 두려워했는데, 동물과의 관계에서 태어난 쌍둥이는 평범하지 않은 힘을 가졌다고 여겨졌습니다.


곰과 결혼한 여자와 그의 아이는 곰의 습성을 속속들이 알고 인간계로 돌아갑니다. 어디서 먹이를 잡고 어디서 자는지, 뛰어난 사냥꾼은 곰의 똥에서 건강상태를 파악하고 곰의 족적에서 아이를 밴 암컷 곰인지 판단합니다. 그런 자가 단서를 찾고 검증하는 데는 며칠이 걸립니다. 활쏘기 솜씨가 빛을 발하는 것은 정말 최후의 순간입니다. 우선 상대의 습성을 잘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은, 옛날부터 인간끼리 전쟁을 할 때도 같았습니다. 상대를 잘 알지 못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냥꾼은 그러지 않았죠.


또 곰과 결혼한 여성들은 아이를 밴 어미곰이나 아이곰을 죽여서는 안된다는 충고도 인간에게 전해집니다. 이것은 수렵민이 정한 것입니다. 사냥은 동면에서 깨어난 직후에, 수컷만 노릴 것, 죽인 곰을 정중하게 취급할 것, 그러면 곰은 매년 인간에게 고기와 모피를 ‘선물’해준다, 이러한 신화가 북방민에게 많이 보입니다.


그런데 인간과 동물의 결혼은 상상력이 꽤나 풍성하지 않으면 성립되지 않습니다. 또 자연 안에 있는 인간 존재를 겸허히 생각하지 않으면 떠오르지 않을 발상이죠. 그렇다면 어째서 이러한 픽션이 만들어졌을까요? 왜냐하면 곰을 죽이는 것에 대한 사냥꾼의 충격이 무척 컸기 때문입니다. 수렵민은 냉정하게 곰을 죽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떤 동물이든 죽일 때면 사냥꾼은 충격을 받는 법입니다. 시베리아 수렵민 중에는 정신적으로 병을 앓은 사람이 많았다고 전해집니다.


그 충격과 죄책감을 해소하는 수단이 신화입니다. 인간과 곰은 적이 아니라 사실은 결혼 하고 지식을 교환한 사이입니다. 곰을 죽이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죽인 것이 아니라 곰이 곰의 영(靈)이 돌아가는 세계로 간 것으로, 고기와 모피는 인간에게 남긴 선물이라고요. 그 증거로 곰과 인간 사이에 태어난 아이는 곰의 습성을 잘 알고 있는 훌륭한 ‘사냥의 왕’이 된다는 신화를 만든 것은 수렵민에게 ‘치유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냥은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 불가피한 행위입니다. 동물도 그렇습니다만, 동물은 충격을 받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거대한 자연의 순환 안에서 동물을 죽이고 연명합니다. 인간은 불과 무기, 문화를 통해 동물들과는 다른 차원의 존재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그러한 인간이 동물을 죽일 때는 쿵 하는 마음의 소리가 울리는 것입니다.


에도시대가 되면 마타기(일본 東北 지방의 산간에 사는 사냥꾼들. - 역자)의 세계에 상품경제가 들어와 곰의 간을 후지산 약초꾼 같은 사람들에게 팔아넘기게 됩니다. 다시 말해 돈을 위해 곰을 죽이게 된 거죠. 하지만 마음에는 죄의식이 여전히 남아 있었으므로 일본 각지에는 동물 위령탑이 세워져 있습니다. 마타기는 동물의 영을 위로했습니다.


아이누의 이요만테(곰 장송)는 그것을 거대한 신화로 만들어 의식을 거행합니다. 곰의 영을 위로하는 이 성대한 의식은 곰을 신의 세계로 전송하려는 사고방식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아기곰을 주워 인간의 모유로 키우고, 자라면 죽여서 신에게 바치고 향연을 베풉니다.


일본에서 곰과 인간의 관계를 현실적으로, 그리고 엄정하게 쓴 작가는 미야자와 겐지(宮沢賢治, 1869~1933)입니다. 그는 크림반도나 북구 신화를 많이 읽은데다, 동물과 인간의 관계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겐지 본인은 마타기와 깊이 교제하지 않았지만 어렸을 때부터 마타기 이야기를 들었을 테죠. 겐지가 쓴 작품은 동화라기보다는 신화에 가깝습니다. 「빙하쥐의 모피」에서는 오만한 인간에게 곰이 테러를 감행하기도 하고, 「나메토코산의 곰」에서는 곰이 사냥꾼에게 자신의 몸을 주기로 하고, 후일 약속을 지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사냥꾼은 다른 곰에게 죽습니다. 겐지는 생물 가운데 압도적 우위를 의심하지 않는 인간에 대한 엄한 시선을 항상 가지고 있었습니다.


동물을 죽이는 생활을 견딜 수 없게 된 인간은 농업을 시작합니다. 농업을 시작하면 동물과의 관계는 소원해집니다. 그래도 동북쪽은 깊은 산림이 있어 다른 지방보다 동물과의 관계가 깊습니다. 뿌리채소를 기르고, 산의 약초를 채집하고, 사냥을 하며 삽니다. 애초에 쌀 재배에는 적합하지 않은 토지입니다만, 쌀은 고기와 교환하면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에도시대에는 세금을 쌀로 거두며, 이를테면 쌀을 재배할 수 있는 토지로 만들어 갔습니다. 날씨가 일정하지 않으면 바로 대기근이 시작될 것이 뻔한데도 말입니다. 그렇게, 민간신화에서는 곰이 등장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곰은 동면하면서 꿈을 꾼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알게 되는 미래를 곰과 결혼한 인간이 듣고 인간세계로 돌아와 전해주는 것입니다. 잠들어 있는 사이에는 외계와 나를 가로막는 울타리가 전혀 없습니다. 인간도 곰처럼 틀어박혀 잠들어버리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옛날 여인들은 가정일을 돌본 후 대개 뒹굴며 쉬었습니다. 지금은 ‘일하는 여자들’이라 추켜세워지며 밖으로 나가 일하며 꿈을 꾸는 시간도 없습니다. 현대인은 ‘곰의 본성(熊性)’을 잃고 먼 세계를 투시하는 꿈을 꾸지 않게 된 것 같습니다만, 틈이 생기면 우리도 열심히 잡시다. 그럼 꿈속에 반드시 곰이 출현할 것입니다.

전체 9

  • 2021-01-19 23:00
    "틈이 생기면" 우리도 열심히 잡시다! 방점이 앞에 있다는 거~ ㅋㅋㅋ 틈이 있으나 없으나 항상적으로 주무시는 우리 마담님께 특히 강조하고 싶군요. 아, 꿈에서 한번이라도 (저의 숭배 3종인) 곰을, 고래를, 코끼리를 만나고 싶습니다!!

  • 2021-01-19 23:10
    울 혜원샘이 한땀한땀 번역해주는 귀한 글들을 이제 계속 읽게 되는 거죠?! 오, 아리가또~ 감사하므니다.

    죽인 곰을 정중하게 대하고 곰으로부터 얻은 고기와 모피를 곰이 준 선물로 여기던 그 옛날 수렵민의 사유... 거기엔 곰과 인간, 자연과 인간 사이의 강력한 유대감이 있었던 거죠. 곰과 내가 분리되지 않은 하나의 세계에 속한다는 사유 말입니다. 문득 제 주위의 온갖 물건, 음식, 옷이 어떻게 제게 왔는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대하던 제 태도에 잠시 착잡해집니다. 정중하게 대하지는 못하더라도... 아, 최소한 함부로는 대하면 안되겠습니다!

  • 2021-01-20 00:22
    충격과 죄책감을 해소하는 수단이 신화. 아 맞네. 재밌어요.
    번역한 것 같지 않고 술술 읽히네요. 혜원샘. 2편 기대합니당.

  • 2021-01-20 08:26
    혜원샘의 번역글을 읽으며 코로나가 어찌보면 자신를 돌아볼 수 있는 동면의 시간이 될 수도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거리에 사람들이 없어지자 동물들이 그 거리를 차지하고 배회하는 동영상을 작년에 중순에 본적이 있었습니다. 동물과 사람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기분좋은 순간이었죠. 곰의 본성을 찾고 먼 세계를 투시하는 꿈을 꿔야하는 시기가 도래한 것 같네요.^^

  • 2021-01-20 10:02
    어떤 동물이든 죽일 때면 충격을 받는다는 얘기가 좀 더 궁금하네요. 사냥 과정에서 정이 든 걸까요? 상상을 하게 되네요. ㅋㅋ 그리고 그러한 충격을 해소하는 수단으로서 영(靈)이 발명된 것도 재밌네요. 요즘 영성이 뭔지 고민 중인데, 개체와 개체를 뛰어넘는 연결된 관계망에 대한 느낌? 전-개체적인 차원? 그런 것 같네요. '웅성'을 잃어버린 현대인이 다시 '영성'을 회복하기 위한 실천? 그런 게 궁금해지네요!

  • 2021-01-22 09:13
    나도 곰 꿈을 꿔보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드는 글이네요. 내가 나카자와 신이치의 글을 읽어보지 못했어도, 혜원샘 글을 읽으니 잠시라도곰을 생각해보게 하네요. 그것이 상호연결성! 새로운 세계로의 연결 기대해볼께요~^^

  • 2021-01-22 22:27
    오호 문장을 많이 다듬은 느낌이 드네요. 지금껏 읽어본 혜원누나 번역 중에서 가장 술술 읽히는 것 같습니다. 신화에는 불과 무기, 문명을 통해 자연으로부터 분리된 인간으로 하여금 세계 안에 거주하도록 하는 지혜가 깃들어 있었던 거네요. 다음 이야기도 기대됩니다.

  • 2021-01-27 23:51
    <꿈에서 곰을 보다> 궁금했는데 샘 덕분에 읽게 되네요. 진지하게 읽어내려오다 마지막에 웃음이..^^ 저도 곰을 만나기 위해 얼른 자야겠어요.ㅎㅎ 다음 편도 기대할게요!

  • 2021-01-28 22:00
    이번 글 동화를 들려주는것 같기도 한 것이 넘 귀엽고 따뜻하네요.
    생각해보니 숲에서 길을 잃은 애기가 며칠만에 발견됐는데 그동안 곰이랑 같이 있었다고 얘길했다는 뉴스를 들은 것 같기도 합니다. 곰은 무섭고 일단 피해야하는 것으로만 생각했는데, 그동안 자연이나 동물에 대해 너무 무심했다는 생각도 드네요. 재밌게 잘 읽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