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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조이 번역] 팬데믹 시대에 공동체를 기르기[3]
작성자
규문
작성일
2021-01-22 14:59
조회
157
*규문의 어학 세미나 ‘엔조이(En-joy)’에서는 이번 시즌 동안 <Nourishing community in pandemic times>라는 논문을 함께 읽고 번역해보았습니다. 안드레아스 베버는 이 논문에서 코로나바이러스가 인간과 비인간 존재를 포함한 생명 집단과의 연결성을 잃어버린 결과이자 동시에 그것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힌트를 ‘애니미즘’적인 사고방식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합니다. 처음 도전하는 번역이기도 하고, 애니미즘이라는 낯설고 멋진 사유를 접하는 경험이어서 그 과정이 조금 어렵기도 하고 재밌기도 했는데요. 정아 샘의 도움와 다른 샘들의 수고 덕분에 어찌어찌 번역을 하게 되었고, 여기에 그 내용을 올려보려고 합니다. 앞으로 4회에 걸쳐 연재될 테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4.  모든 존재는 한 가족이다


토착인들의 우주론인 애니미즘은 인간과 비인간 존재 사이의 상호의존성을 사유하고 실행하는 가장 급진적인 방식이다. 이러한 급진성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애니미즘이 무엇인가를 재발견할 필요가 있다. 애니미즘은 서구 인지 제국 내에서의 그릇된 설명에 의해 오랫동안 오해되어왔다. 순진한 ‘토착적’ 인간들이 나무, 강, 산의 정령들과 귀신들을 모시면서 홉스식의 자연 상태에 살고 있다는 생각은 그릇된 신화다. 이러한 신화는, 이른바 ‘원시인’들이 나무-존재에게 의례적으로 감사를 표할 때 하는 행위에 서구의 사고방식을 투영한 것에서 유래한다. 이는 애니미즘에 기반한 급진적 상호의존성을 이해하지 못한 탓이다.

식민주의적 지식을 최고로 여김으로써 우리는 생태적 지식과 대안적 세계관이 함의하는 바에 대해서는 잊고 있었다. 이 지식에서 중심이 되는 원칙은 서구적 의미의 앎을 축적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공유하는 것이다. 애니미즘은 지속적으로 생명을 만들어내는 세계, 우주의 풍요로움을 유지해나갈 책임이 있는 세계를 모든 존재가 공동으로 창조한다는 사실을 이해한다. 또한 우주가 사물이 아니라 인간과 닮은 행위자로 이루어졌다는 사실도 이해한다. 생명을 갈망하고, 자신의 필요를 표현하고, 서로 교류하기를 요구받는다는 점에서 인간과 닮은 행위자들.

“애니미스트란 세계가 인격들(persons)로 가득 차 있다고 보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인간이 세계를 이루는 인격들 중 일부만에 불과하며, 모든 존재가 언제나 타자들과의 관계 안에서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종교인류학자 그레이엄 하비는 이렇게 말하며, 토착적이고 애니미즘적인 우주관을 새롭게 정의한다.

관계들로 이루어진 우주에서 번성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상호의존성이 요구되며, 상호의존성은 어느 한쪽이 아니라 모두에게 요구된다. 이러한 세계에서 우리는 서로 대립하는 원자적 개인들이 아니다. 우리는 공동으로 하나의 일관된 삶의 과정을 만든다. 공동체는 개인만큼이나 중요하다. 이 공동체는 인간뿐 아니라 다양한 존재들로 이루어져 있다.

생명을 이어나가는 데 필요한 태도를 이와 같이 사회적으로 정의하는 것은 생태적으로 보아도 정확하다. 형태적 측면에서 볼 때도, 생태계는 상호의존성의 구현체다. 생태계는 다양한 방식으로 얽힌 무수한 존재들로 이루어져 있다. 생태적 삶은 끊임없이 타자들과 관계 맺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생태계는 참여자 전원이 공유하고 이끌어내는 공유재이지, 자기중심적인 행위자들의 집합이 아니다. 오랫동안 다윈의 자연 경제학은 경쟁(‘자연 상태’)을 지나치게 강조해 왔고, 경쟁 내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의존 관계들에 적절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허물어져가는 서구 인지 제국을 대체할 관점은 이미 성큼 다가와 있다. 그것은 생태계에서 무의식적으로 실행되는 상호의존성의 에티켓이다. 이는 오랫동안 생태계와 상호관계를 유지하며 살아온 사회들이 문화적으로 도입해 온 것이다.

이 관점을 탐구하기 위해서 우리는 ‘서구적 합리성’이야말로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이며, 나머지는 사소하거나 심각한 미신이라는 전제를 버릴 필요가 있다. 인류학자 에두아르도 콘(Edoardo Kohn)이 "토착민들은 숲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대신 "숲은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고 질문했던 것과 같이, 과학인류학은 겸손한 태도를 취하기 시작했다.

우주의 생산성을 그 구성원들 사이에서 공유하려는 애니미즘적 태도는 서구 인지 모델의 기본원칙들과 대조된다(표를 보라). 애니미즘은 영(靈)이 깃든 물질적 존재에 대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상호의존성을 가능하게 하는 문화의 정립과 풍요로운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경험을 통합하는 우주론과 관련된다.

 

서구 문화의 핵심적 믿음


토착적 사유의 핵심적 믿음


1. 나는 네가 아니기 때문에 나이다. 1. 나는 너로 인해 나이다.
2. 우리 존재의 본질은 이기주의다. 2. 존재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상호의존성이다.
3. 현실은 근본적으로 비활성인 물체들로 구성된다. 3. 모든 것은 살아 있다.
4. 우리는 개인의 죽음을 피해야 한다. 4. 우리는 세계를 풍요롭게 해야 한다.
 

이 원칙들은 여러 핵심적인 분야들에서 작동되며, 그러한 분야들은 인류세의 쟁점들 중 가장 결정적인 영역에 속한다. 인류세에서 대부분의 갈등은 우주를 공유하는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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