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콜콜

[비정규 알바생 “훈이의 일기”] 1화

작성자
김훈
작성일
2020-09-23 19:58
조회
370
규문의 최고령 인턴 4n세 훈샘이 내년 공부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지방 출장을 떠났습니다. 
훈샘의 소소한 일상 이야기에서부터 비정규직 노동자로서의 삶, 훈 샘이 읽고 계신 책 이야기까지 다양한 썰들을 가볍게~ 풀어볼 예정입니다. 
무려 주 2회! 매주 수, 일 저녁 6시에 연재될 예정이니 애독을 부탁드립니다~

_비정규 알바생 “훈이의 일기”

종일 도로를 걸으며 측량을 보조하는 알바생에게 가장 큰 문제는 변을 보는 일이다. 노골적으로 표현하자면 싸고 먹는 일이 가장 곤혼스럽다. 주유소나 마을 노인정 같은 변을 볼만한 장소가 나타나기를 바란다. 하지만 꾸욱 참아왔던 배 속이 더 이상 참지 못할 지경에 이르면 염치 불구하고 남을 집 후비진 담벼락이나 다들 훵하게 보이는 곳에서 엉덩이를 하얗게 드러내는 창피를 감당할 수밖에 없다.

몸의 생리적인 현상은 참을 수가 없다. 현장에 나가기 전에 변보는 일에 성공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측량하는 내내 신경이 쓰이는 애로사항이다. 그러니 측량 알바는 어떤 측면에서는 아침부터 변과의 전쟁을 치른다.

새벽 4시쯤 일어나 대충 씻고 4시 30분에 모텔 주차장에 모여서 가까운 편의점을 이동해 아침을 밥을 간단히 때운다. 일나서 바로 볼일을 보지 못했다면(대개 볼일을 보지 못한다.) 속을 부대낄만한 것은 피하고 적게 먹는다. 당최 자신이 없다며 아침을 거르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현장에 도착해 해가 뜰때까지 다들 차에서 잠깐 눈을 붙인다. 날이 밝아지는 6시쯤 시작해서 보통 12시쯤 끝나는데, 이번 현장에서는 지리원 납품 기한이 빠듯해서 오후 1~2시까지 일한다. 이번 측량 구간들은 시골 뚝방길이거나 지방 1차선 도로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화장실은 거의 전무하고 풀 많은 야산이나 논, 밭이다. 그래. 야산에 싸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다들 정말 급하지 않으면 야산에는 가려고 하지 않는다. 엄청난 모기 떼에 엉덩이를 뜯기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러고 보면 대개 비정규 노동자들의 비애라는 것이 낮은 임금보다도 당연히 노동을 위해 먹고 싸고 쉬어야 하는 인간의 기본적인 대우를 해주지 않는 것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전라도 영광으로 측량 알바를 오기전 일기를 쓰는데 도움이 될까 싶어 <임계장 이야기>이라는 책을 읽었다. ‘임계장’은 임시계약장노인장을 줄여 부른 말인데, 글쓴이 본인이 정년퇴직 후 버스회사 배차계장, 아파트경비 등의 비정규직을 겪으며 쓴 이야기다.

그 내용 중 같은 아파트 경비원으로 10년 넘게 일한 선배가 신입 경비원인 글쓴이에게 건넨 충고의 말이 있다.

“자네는 경비원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그 생각이 잘 못된 것이라네. 사람이라면 어떻게 이런 폐기물 더미에서 숨을 쉴 수 있겠는가? 사람이라면 어떻게 이런 초소에서 잘 수 있겠는가? 사람이라면 어떻게 석면 가루가 날리는 지하실에서 밥을 먹을 수 있겠는가? 자네가 사람으로 대접받을 생각으로 이 아파트에 왔다면 내일이라도 떠나게. 아파트 경비원이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경비원을 할 수가 없어.”

<임계장 이야기> 조정진 中

‘아파트 경비원과 갑질 문화’가 사회적 이슈가 됐던 것이 몇 년전이었던 것 같다. 내가 일기에 변 이야기로 시작한 것은 인간으로서 가장 서러운 것이 먹고 싸고 쉬는.., 등의 기본적인 것에서 비롯된다는 생각에서이다. 돈 주고 산 물건처럼 마음에 안들면 자르거나 바꾸면 된다는 식의 비정규직 채용에 대한 사회적 풍토와 더이상 사람이 아니라고 인정할 때 경비원으로 일을 할 수 있다는, 인간적 존엄을 스스로 포기하게 만드는 저런 현실이 엄연히 있다는 것에 울분이 일어났던 것 같다.

물론 내 측량 보조 알바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변을 보는 것이나 몇가지 애로 사항들이 있긴하지만 내가 그동안 겪어온 수많은 비정규 알바들을 생각해보면 대우가 나쁘지 않다. 일 특성상 그럴 수 밖에 없는 납득할만한 것이다. 영세한 작은 측량회사에 고충이 있다.

그것은 다음에 써야 겠다. 오늘도 새벽 4시 30분에 기상해 오후 2시에 일을 끝내고 커피숍에서 일기를 쓰고 있다. 내 숙소는 3명이 온돌방을 같이 쓴다. 자기 전까지 TV를 켜놓고 늦게 술을 마시거나 수다를 떠는 등등.., 어수선해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는 것은 쉽지 않는 일이다. 일하며 걷는 내내 어떻게 일기를 쓸지. 그럴려면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측량에 대해 이것저것 묻거나 내가 공부한 것과 지금 겪는 알바가 어떤 연관이 있을까라고 생각하는 등.., 수동적 지시에 따르기만 했던 알바생이 능동적으로 변하게 된 것이다.
전체 12

  • 2020-09-23 20:11
    '훈이의 일기' 덕분에 수동적 훈이가 능동적 훈이가 되었다는, 훈훈한 이야기로군... 음, 좋아. 좋은데 맞춤법과 오타 좀! 훈이의 일기를 맞춤법 훈련의 장으로 삼으시라.(후니 : 아 훈련의 장으로요...아 근데 그게 변도 봐야 하고 낮잠도 자야 하고 그래서... 아 네네 한번 해보겠습니다... )

    • 2020-09-23 21:39
      다음날 일을 끝내고 다시 읽어보니 오타가 많아서 놀랬습니다. 대강 그래도 말은 되게 해야겠다는 생각에 수정하고 고쳤어요. 다음에는 좀더 세심히 쓰고 퇴고해서 문장의 질을 높이는 장으로 삼겠습니다. ㅎ

  • 2020-09-23 20:23
    능동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네요! 쓴다는 생각으로 하는 일에 대해 묻고, 공부한 것과 어떻게 연관되는지 생각하고... 지루할 법도 한 하루 6시간의 순롓길이 글감이 되겠네요~~

    • 2020-09-23 21:44
      분명 글쓰기가 능동적으로 만들어주는 유용한 측면이 있습니다. 돈 받고 하는 순례길에서 글까지 쓰게 되니. 꿩잡고 닭도 잡아먹는 일석이조입니다. ㅎ

  • 2020-09-24 12:40
    오오 측량사는 카프카 소설에서만 봤는데 진짜가 나타났다!! 연재 시간까지 정해두다니 엄청난데요? 근데 내년에 어떤 공부 하시려구요? 아무튼 샘의 알바와 내년 공부까지 미리 응원합니다.

    • 2020-09-24 16:51
      생각이 뻗쳐 닿는대로 공부해볼 생각입니다. 그 응원받아서 화이팅하겠습니다~^

  • 2020-09-25 13:27
    훈샘 첫화부터 꿀잼이에요ㅋㅋㅋ 쾌변을 기원합니다!

    • 2020-09-25 18:09
      다행이네요. 조마조마하게 올렸는데;; 측량 5일째 노가다 용어로 다섯대가리했습니다. 아직까진 측량 도중 싸지 않고 잘 버티고 있어요. ㅎㅎ

  • 2020-09-27 10:51
    훈쌤의 엉덩이는 "하얗다." 음 , 그렇겠군요. 수년전 인도에 갔을 때 아침 안개 속에 큰 물컵 같은 걸 들고 숲으로 사라지는 남자들을 본 적이 있어요. 큰 걸 해결하기 위해서죠. 이제 날도 선선하니 모기떼 습격은 걱정 안 하셔도 될 듯한데요. 모쪼록 속이 편하시기를 ,

    • 2020-09-27 21:25
      저는 새벽 안개 속에 물티슈 들고 숲으로 사라지곤 합니다. ㅎ ㅎ 왠걸요. 아직 수풀 옆을 지나면 모기가.. ;;; ^

  • 2020-09-27 15:57
    훈샘 글의 오타, 저는 발견을 못했어요. ㅎ 훈샘이 제주길을 걸어가며 일하는 모습과 제가 아는 제주의 풍경이 오버랩되네요~모기 조심하고요~

    • 2020-09-27 21:33
      글 올리고도 줄곧 수정해서 오타가.. 안보일겁니다. ㅎ
      제주는 추석 연휴 후에 갑니다. 모기에게 뜯기지 않도록 조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