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n

10.05 수업 공지

작성자
수경
작성일
2015-09-17 15:29
조회
725
제목 보셨죠? 추석 포함된 두 주의 달콤한 방학 후 10월 5일에 수업 재개합니다.
저는 그 사이 멋진 숲과 바다를 오가며 열심히 걷고 사색(낄낄)하다 오겠습니다. 다른 선생님들 모두 추석 잘 쇠시고 5일에 만나요^^
읽어올 부분: <에티카> 3부 정리 30까지(발제 현옥쌤) / 데카르트의 <정념론> 1부(발제 수경)
간식은 현옥쌤께서 해주시겠답니다.

지난 수업에서 나온 이야기 중 우리가 앞으로 계속 생각해볼 질문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죠.
보살이 곧 중생이다. 혹은 번뇌가 즉 삼매다. 처음 듣는 말도 아닌데 이 말 앞에서는 언제나 아연해집니다 ...대체 이게 무슨 소리?!
채운쌤에 따르면 이는 중생들과 나를 '동일화'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답니다.
보살이 중생을 바라볼 때 이게 자신에게 맞게, 자신에게 편한 방식으로 그들을 대하고 자기화하는 게 아닐 거라고 우리도 짐작할 수 있지요.
만약 그런 것이라면 보살은 여전히 아상(및 중생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존재임을 증명하는 게 될 테니. 그렇다면 어째서 보살과 중생이 다르지 않다는 건지...?

앞으로 함께 생각해보자며 채운쌤이 던진 몇 가지 실마리 중 기억에 남는 것은 이렇습니다.
보살이란 중생들과의 헤아릴 수 없는 인연 안에서만, 그 인연과 더불어서만 존재할 수 있다는 것.
아마 이는 어떤 것도 저 홀로 존재할 수 없으며, 어떤 것도 지금 처음 사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전제로 하는 이야기일 겁니다.
(절차탁마 뒷풀이 자리에서 잠깐 나온 이야기이기도 한데)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 우리가 통과하는 모든 존재는 이미 그 전에도 셀 수 없이 많이 있었을  것이며, 우리보다 앞서 있었던 사건과 존재들이 우리와 무관할 수는 없답니다.
이를 니체는 영원회귀의 사유로, 또 불교에서는 중중무진한 이 세계를 설명하는 방식으로 채택한 것 같고요.
요컨대 생성과 해체는 이 세계가 있는 한 언제나 있어왔고 모든 존재는 그 조건 속에서(즉 그와 더불어) 살아간다는 사실.
바꾸어 말한다면 존재, 그것이 삶을 산다기보다는, 삶이 각각의 존재로서 표현된다고 할 수 있다는.

만약 자신을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면, 그러니까 삶 전체가 나와 더불어 매번을 살아간다고 생각한다면, 이 세계는 수많은 '나들'로 이루어진 곳이겠죠.
어떤 작은 물건, 사건 하나 허투루 할 수 없을 것이며, 모든 것이 나와 연관해 생성되고 해체된다고 느낄 수 있을 겁니다.
보살은 이를 받아들이고 이렇게 살고자 발심한 자이며, 다른 수많은 나들과 더불어 그렇게 하고자 합니다.
그 나들이 없다면 보살도 없음을 보살은 머리가 아니라 실존으로서 느끼지요.
그들과 함께 이 세계에 머물고자 하는 마음, 보상이나 다른 세상을 바라지 않고 오직 이 안에서 저 할 수 있는 바를 다 하겠다는 그 마음이 표현된 말이 곧 "깨닫지 못한 중생이 단 한 사람이라도 남아 있다면 그와 함께 머물겠다"는 보살의 발원이라는군요.
저로선 지난 수업시간에 들었던이야기 중 가장 마음에 오래 남는이야기였습니다.
불가능을 예측하며 머뭇거리지 않고, 어떤 기대나 보답을 바라는 마음 없이 행하는 것, 그것이 보살행이래요.
저로선 아직은 썩 잘 상상되지 않는  이야기입니다만.... 앞으로 두고두고 생각해볼 거리가 생겼으니 일단 그걸로 만족하고, 앞으로 꾸역꾸역 나아가볼 생각입니다.
다른 분들도 책에 대한 이질감이나 거부함 등은 접어두시고 저와 함께 걍 가보는 걸로! ㅋㅋ

자, 암튼 보살과 보시 이야기를 이렇게 한바탕 한 뒤 이제 우리는 스피노자의 세계로 갑니다.
격주로 한다고 까먹고 또 까먹지 않도록 종종 책 펼쳐봐주세요^^

그럼 10월에 서늘한 저녁공기 속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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