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n

1026 수업 공지

작성자
수경
작성일
2015-10-21 20:03
조회
435
감동받다가도 종종 이게 뭔 소린가 싶었던 1, 2부와 달리 에티카 3부는 읽는 내내 가슴을 쿡쿡 아프게 찌르네요. 다른 분들도 많이 그러셨던 듯.
1, 2부를 건너뛰고 이번 학기부터 합류하신 세 선생님들은 역시 다소간...이 아니라 꽤 많이 어려움을 느끼고 계실 텐데,
서브세미나로 부디 이 감동과 고통(?)을 확장하실 수 있기를 ^^;

데카르트와 스피노자 둘 다 몰두해 있던 정서/정념의 문제에 있어 가장 확연히 구분되는 것은 무엇인가?
채운쌤 말씀대로 그것이 어디서 비롯되는가, 하는 지점에 있지요.
<정념론>에서 명확히 말하는 대로 데카르트는 외부 대상이 우리의 정념을 불러일으킨다고 여깁니다.
내 눈앞에 존재하는 어떤 대상이 우리 정신에 불러일으킨 동요, 그것이 곧 정념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스피노자에게 있어 정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외부의 대상이 아니라 외부와 만나 변용된 내 신체입니다.
정신이 관념을 형성하는 대상은 외부 세계가 아니라 외부세계와 접촉해 변용을 일으킨 신체이기 때문이죠. 2부가 이 부분을 내내 설명하고 있었던 거 기억하시죠?

여기서 스피노자가 말하는 적합한 관념, 부적합한 관념에 대한 이해가 가능해집니다.
부적합한 인식이란 무엇인가? 우리 신체의 변용에 따라 생성된 정념을 절대화해 만든 표상이랍니다.
가령 무언가에 대해 불쾌하다, 슬프다, 혹은 즐겁다, 사랑스럽다고 느꼈을 때, 이를 실체화해 선 혹은 악으로 규정하는 것, 이것이 부적합한 관념이라는 거죠.
내 기분이 이렇게 좋거나 나쁜 것은 그 자체로 좋고 나쁜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저러한 상황은 내게 좋은 것이며, 그 반대의 것은 나쁜 것이다....
이럴 때 우리 정서는 특정한 방식으로 고착되며 다르게 변용될 수 있는 역량을 저하시킨다는 게 채운쌤 설명.
이는 데카르트의 주장처럼 내 신체가 아니라 외부 대상에 내 현재 정서의 원인이 있다고 간주하는 것과 같겠죠.
(어쩌면 데카르트는 가장 우리네 상식에 부합하는 철학을 했던 사람일까...하고 생각하게 되네요. 아님 그저 우리에게 이토록 깊이 영향을 줄 정도로 데카르트가 막강한 것인지도.)

적합한 인식은 이와 반대로, 대상에 모든 원인을 투여하지 않는 것, 보다 넓은 필연 안에서 사건을 인식하고 인과를 이해할 수 있는 것.
그런데 이는 습관적 사유를 정지시키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는, 그래서 스피노자 철학에서도 결국 우리는 수행의 필요성을 절감할 수밖에 없다는 게 채운쌤 설명입니다.
이러저러한 것을 당연시하고, 이러저러하게 내가 느끼고 그에 반응하는 것을 자연스레 여기는 한, 우리는 특정한 상태에서는 늘 특정한 정서 상태에 고착되기 마련이라는 거죠.  - 이게 곧 스피노자가 말하는 수동성!
그러니까 스피노자식 수행도 또한 결국 표상을 버리기 위해 신체를 사용한 실험을 시도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는.

사람들과 함께 모여 공부하는 삶이다보니 매번 맞닥뜨리는 가장 큰 문제는, 다른 누구도 아니고 나 자신이 가진 편협함에 대한 것입니다.
새로운 것을 만났을 때도, 그리고 늘 함께 하는 것과 또 부딪혔을 때도, 대개의 경우는 같은 방식으로 그것을 바라보고 생각하고 결론내리려 하는 스스로를 발견하지요.
문제가 발생했을 때 마주하게 되는 게 타인이 아니라 저 자신이라는 건 공부하면서 거둔 큰 수확입니다만, 그러나 당장의 정서가 어제오늘 매일반인지라 늘 일이 벌어지고 나면 그 다음에야 무릎을 칩니다.
그 순간에는 제 해석이 절대적이기 마련이니까요.
하지만 조금 지나면 또 그마저 잊고 다시 똑같은 정념에 휩싸이고요.
수행이란 게 말이 쉽지(불교n에서는 이 단어가 입에 오르지 않는 적이 거의 없죠) 도무지 인간이 할 수 있는 게 맞나 싶을 정도.
다른 선생님들도 비슷한 생각 아닐까 예상합니다만, 우리 그렇다고 회의적이고 냉정한 태도를 견지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요(몇몇 학인들 얼굴이 떠오릅니다 ㅎㅎ)
스피노자가 믿었던 대로 하나하나 우리 인식의 틀을 깨고 보다 적합한 인식을 해보려는 노력을 의식적으로 해봅시다(....라고 입으로 스스로를 세뇌하려는 1人)
아마 그건 자리에 앉아 짱구만 굴려서는 절대 안 되는 일이겠지요.

자, 다음 주는 다시 <화엄경>입니다. 34~39권 읽어오셔요.
간식은 은하쌤께서 자청해주셨습니다.
그럼 다음 주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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