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n

11.02 수업 공지

작성자
수경
작성일
2015-10-29 15:09
조회
3498
날씨가 갑자기 엄청 춥습니다... 새벽에 나왔다 홀랑 감기에 걸려 비몽사몽하네요... 비몽사몽한 상태로 수업 후기 및 공지 올립니다... 이상한 구석 있더라도 널리 양해를 ^^;

지난 시간은 <화엄경_십지품>을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눴지요.
중요하고도 충격적인 이야기들이 많았는데 남성학우들 대거 불참하셔서 너무 아쉽습니다.
담 시간에는 꼬옥 나와서 이 느낌을 함께 좀 나눕시다! >.<

십지품을 설명하기 전 채운쌤이 던진 질문은 이렇습니다.
십지란 정말로 보살이 머무는 열 단계를 이르는 말일까?
생각해보면 불교에서 수행과정/수준을 단계별로 구분하고 배속한다고 하면 뭔가 이상하긴 합니다;
그렇게 하나씩 독립적으로 구분되어 존재한다는 발상이야말로 불교적 사유와 가장 먼 것 아니겠느냐는.
실제로 <화엄경> 1권 해설에서 보면 십지는 원융한 것으로 하나 안에 다른 모든 게 포함됨을 알아야 한다네요.

채운쌤 설명은 이렇습니다.
어쩌면 하나의 지위가 서로 다르게 변주되는 것이 아닐까, 실상은 초발심이 전부인 게 아닐까.
그러니까 어쩌면 환희지가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도 있지 않을까, 나머지는 그 변주인 게 아닐까.
근이 다른 사람을 위한 열 번의 반복일 수도 있는 게 아닐까....

하지만 보살이 느끼는 그 환희란 것의 정체도 참 묘합니다.
대관절 깨달은 자가 느끼는 즐거움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기쁨과 어디서 뭐가 다른 걸까요?
채운쌤에 따르면 (칠정 중 하나로서)중생이 느끼는 기쁨이란 일시적 기분에 불과하지요.
그런데 스피노자의 지복이라든가 불가에서 말하는 환희는 그런 일시적 사로잡힘이 아니라고.
비근한 예로서 우리가 가져올 수 있는 게 공에서 얻는 기쁨이랍니다.
공부하면서 하하깔깔 좋아라 한다는 게 아니라(-_-) 공부를 통해 내가 나로부터 벗어나는 순간, 나 자신의 깨어짐을 느끼는 순간의 그 강렬함과 시원함, 그게 공부를 통해 맛보는 즐거움이라는 사실.

미뤄 짐작할 때 보살의 환희란 것도 이와 비슷한 게 아니겠느냐는 거죠.
채운쌤에 따르면 중생이 곧 붓다이고 나와 중생이 다르지 않음을, 내가 지금의 이 같은 인연조건에 있으므로 이렇게 존재할 수 있음을 투철히 알 때, 바로 그때 보살은 환희지에 든답니다.
보살의 기쁨은 그러니까 자신의 깨달음이란 곧 자신이 중생이라는 사실에 대한 깨달음이며, 이를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은 이 모든 인연조건 덕분이라는 것을 깨달은 데서 오는 것이라는 거죠.
그러므로 보살은 대중 앞에서 발원하길, 나는 이 깨달음을 가지고 중생과 함께 가겠다고 한다는.

공부를 더 깊이 하게 되려는 조짐인지, 요즘 공부하면 할수록 보살이란 게 감동을 주기보다보다는 까마득해 보이고 아주 아리송합니다그려.
깨달음과 실천이라는 이 두 개의 화두가, 전에는 의심 없이 감동적이었던 반면 요즘은 보면 볼수록 알 수 없다 싶어지거든요.
타인을 내 스승으로 모시라는 말도, 타인을 통해 내 욕망을 보고 아상을 관찰하라는 말도 한없이 어렵습니다.
이런 와중에 하필 맞닥뜨린 게 환희지라니... 이 인연 참 묘하다 싶군요 ㅋㅋ
다음 시간 <에티카> 3부를 다시 찬찬히 읽으며 이에 대한 힌트 좀 잔뜩 얻어봐야겠습니다 ^^

다음 시간은 지난 수업시간 공지대로 <에티카> 3부 복습 진행됩니다. 모두들 다시 한 번 정독하시고 모르는 부분 체크해보시고요, 공통과제는 역시 필수 아이템, 잊지 마세요~

간식은 김동진쌤께 부탁드립니다. 쌤, 안 오시면 앙돼여~

 

 

 
전체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