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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의 다락방] 1화 " 유럽은 꼭 원주민의 땅을 ‘소유’해야 했을까?"

작성자
규문
작성일
2021-01-19 19:49
조회
545
*<이우의 다락방>은 규문의 가장 young한 십대 청년 이우가 규문각의 도서 중 100권을 읽고 자신의 생각을 풀어내는 글쓰기 코너입니다. ‘세상을 다 알아버린’ 15세(본인의 표현에 따르면 ‘반삼십’^^) 이우의 은밀하고도 왁자지껄한 다락방으로 초대합니다! 많은 댓글로 응원해주세요~

*이우의 자기소개 // "안녕하세요. 저는 나이로는 중2가 되었지만 학교는 가지 않아 중학생이라고 하기 좀 뭐한 중학생 엄이우라고 합니다. 처음에 규문에 오게 된 계기는 청소년 수업이었습니다. 근데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나오다 보니까 나이 많은 친구들도 생기게 되었고, 책도 몇 권 읽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몇권을 읽기 시작한 게 글쓰기의 시작이었던 것 같습니다. 정신 차리고 보니까 쓰고 있더라고요! 사실 처음에 학교를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순간적인 결정이었지만 해보니  괜찮아서 계속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학교로 갈 생각이 전혀 없어졌고요!"


유럽은 꼭 원주민의 땅을 ‘소유’해야 했을까?
<그들이 온 이후>를 읽고


글/이우


 

 워드 처칠, 황건 역, <그들이 온 이후>, 당대


1. 그들이 온 이후, 무슨 일이 있었을까


<그들이 온 이후>는 유럽이 일으킨 원주민 대학살을 기록한 책이다. 이 이야기의 시작은 콜럼버스가 인디언들이 살고 있던 아메리카에 상륙한 1492년부터다. 콜럼버스는 그 대륙에 살고 있던 원주민들을 데려다가 노예로 만들었다. 이것을 시작으로 원주민들은 생활권을 뺏겼고, 땅과 관련해서 유럽인과의 갈등이 커지기 시작했다. 서양인의 ‘인디언 대학살’은 1600년대부터 약 400년 동안 계속해서 일어났다. 1600년대 초반에는 좀 잠잠했으나, 중반부터 다시 유럽의 학살과 전쟁이 시작되었다. 1637년을 시작으로 피쿼트 전쟁, 비버 전쟁, 필립왕 전쟁 등 여러 번에 걸쳐 계속해서 일어난 것이다. 하지만 이 전쟁들은 전쟁이라기보다는 유럽이 갑자기 쳐들어 온 것이라고 해야 할 만큼 동등하지 못했다. 정확히는 일방적으로 유럽이 원주민들을 침략한 것이었다. 그 때는 사람의 수, 무기, 여러 물자들 외에도 그들이 원주민들보다 훨씬 유리한 조건에 있었다. 유럽인들에게 총이나 폭탄이 있었다면, 원주민들에게는 창이나 활, 도끼 같은 것들밖에 없었다. 그리고 소수로 이루어져 있던 원주민 부족과는 달리, 침략자들은 상당수의 조직화된 군사들을 이끌고 원주민들을 침략했다. 그들은 노인, 여성, 어린이를 가리지 않고 총을 쏘아댔다. 그 와중에 살아남아서 도망쳤던 원주민들이 학살이 끝나고 인디언 거주지로 돌아왔을 때, 미국의 총을 맞아 죽은 원주민들의 시체는 기괴하게 얼어붙어 있었다고 한다. 유럽은 원주민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며 상당한 넓이의 땅을 뺏었다. 한마디로 땅을 소유해서 그 땅에 있는 자원들을 가져가려는 그들의 목적을 성공적으로 달성한 것이다. 그 결과, 그들은 전쟁을 치르고도 남아있는 원주민들을 여러 번에 걸쳐 다시 학살했다. 그리고 결국 원주민은 원래의 10%도 남지 않게 되었다.

어찌 보면 아주 간단한 결론일지도 모르겠다. 전쟁을 치르고, 승리한 쪽이 패한 쪽의 모든 것을 가져가고. 하지만 유럽이 원주민들이 살고 있던 땅에 있는 자원만을 원해서 전쟁을 일으킨 것이라면, 같이 공존하며 살거나 나눌 수는 없었을까? 게다가 애초에 원주민에게는 땅이 누군가의 소유라는 개념이 없었다. 하지만 유럽인은 그 누구의 소유도 아닌 땅을 원주민들에게서 빼앗으려고 했다. 이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을까?

이 책을 쓴 저자는 워드 처칠이라는 토착민이다. 토착민이라고 해서 굉장히 경건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지닌 사람일 줄 알고 검색해 보았는데 알고 보니 생각보다 옷 스타일부터 헤어스타일까지 스타일이나 분위기가 굉장히 특이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런 겉모습과 다르게 책을 쓰는 스타일은 감정도 딱히 들어가 있지 않고 기록처럼 덤덤하게 적어놓은 것 같았다. 하지만 문장 중간 중간에서 유럽을 별로 좋지 않게 생각하는 것만은 분명히 드러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이 온 이후>의 부제목은 <인디언 절멸사>이다. 그런데 사실 이 부제목은 잘못됐다. 우리는 흔히 인디언이라고 부르지만 이들은 ‘인디언’, 즉 인도에서 온 사람들이 아니다. 인디언이라는 칭호는 유럽인들이 아메리카를 인도로 잘못 알고 붙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들을 어떻게 칭해야 할까? 아메리칸 원주민이라고 칭하는 것이 옳다. 우리가 알고 있는 ‘미국’은 유럽 사람들이 남들이 잘 살고 있는 땅을 빼앗고 점거해서 형성된 국가인 것이다.

 

 2. 유럽인들의 폭력성

이 책의 제목대로라면 아메리칸 원주민은 절멸했다. 유럽인들에 의해서. 도대체 아메리칸 원주민과 그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내가 알기로는 유럽은 그 당시에 아메리카 땅을 차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메리칸 원주민은 별로 신경쓰지 않았던 것 같다. 이 책에서 읽기로는 아메리칸 원주민과 유럽 사이에는 꽤 많은 협상이 있었다. 주로 땅이나 돈의 분배와 관련된 것이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1830년에 있었던 <뉴에코타 협약>이다. 이 협약은 매우 유명한 것이어서 책에서 보고 바로 ‘아, 들어본 이름이다’싶었다. 이 협약의 대략적인 내용은 원주민의 토지와 미시시피 강 쪽의 토지를 교환한다는 것이었다. 이 협약이 기억에 남았던 이유는 나중에 ‘눈물의 길’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사실 이 협약은 대다수의 아메리칸 원주민이 동의하지 않은 상태였지만 유럽인들에 의해 강제로 이루어졌다. 유럽인들은 체로키족들을 강제로 이동시켰고, 원주민들은 이 사건을 ‘우리가 울었던 길’이라고 불렀다. 얼마나 가기가 싫고 억울했으면 ‘울었던 길’이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사실 그 상황에서 아메리칸 원주민이 할 수 있었던 일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 당시에는 유럽이 모든 권력을 쥐고 있었고 아메리칸 원주민이 미국이 제시한 것에 대해 반항을 했다가는 바로 죽였을 테니까. 나도 직접 겪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 고통을 잘은 모르겠지만 힘들었으리라는 것은 알겠다. 분명 유럽인들은 아메리칸 원주민을 인질로 묶어두며 때리고 밀치고 온갖 학대를 다 했을 거다.

특히 화가 났던 것은 유럽인들이 아메리칸 원주민에게 전염병을 고의로 퍼뜨렸다는 사실이다. 유럽이 퍼뜨렸다는 것은 유럽인들은 이미 그 전염병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또 피해가 얼마나 많은지도 알았다는 것인데 ‘일부러 고통을 느끼게 하려고’ 퍼뜨렸다는 것은 정말 해서는 안 될 행동이었다. 이 전염병은 천연두였는데 약 1520년부터 400여 년 동안 41차례나 퍼졌다고 한다. 천연두 외에도 홍역, 장티푸스, 콜레라, 성홍열, 늑막염 등 수십 가지 전염병이 더 전파되었다. 이런 전염병이 퍼진 결과, 아메리칸 원주민 약 10만 명이 사망했다.

내가 겪어 본 전염병은 아직 메르스나 코로나 19밖에 없다. 그리고 심지어 걸리지도 않았다. 지금은 과학이 많이 발전해서 전염병을 방지할 수 있는 백신을 개발할 수 있다지만, 원주민들 사이에 전염병이 돌 때는 그렇지 못했다. 병을 치료하지 못했다면 계속해서 전염되고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것을 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 때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가만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원주민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슬픔? 안타까움? 아니면 병에 걸린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미안해 했을지도 모른다.







3. 땅은 누군가의 소유가 아니다


유럽인들은 꼭 사람을 죽여서 땅을 차지해야만 했을까? 음... 같이 공존하며 살 수는 없었을까? 아메리칸 원주민이 원래 그 곳에 살고 있는데, 유럽인들은 그 땅을 원한다. 그리고 아메리칸 원주민은 땅을 누구의 소유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아메리칸 원주민도 같이 사는 데는 반대하지 않았을 텐데... 그러니 같이 공존하며 사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지 않았을까? 하지만 결국 유럽인들이 모든 것을 전쟁으로 해결하려 했다니 좀 슬펐다. 소설처럼 내가 과거를 바꾸는 능력이 있다면 역사를 열심히 공부해서 과거를 좀 더 평화롭게 바꿔 놓을 수 있을 텐데 싶었다.

사람이 이미 살고 있는 땅에 쳐들어와서 원래 살던 사람들을 해치고 땅을 차지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을까? 이런 경우는, 예를 들어 내가 집에 살고 있는데 강도가 쳐들어와서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다 뺏고 집까지 뺏어서 그 강도가 차지하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유럽인들은 ‘강도’였던 것이다. 이런 침략을 당하고 살해당하고 쫓긴 원주민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그들은 땅이 누구의 소유도 아닌 어머니라고 생각했는데 그것 때문에 쫓겨났으니 억울하면서도 슬픈 감정이 대부분을 차지했을 것 같다. 잘은 모르겠지만 땅을 어머니라고 칭하리만치 소중하고 중요하게 여겼다고 하니, 아마도 어머니를 뺏기는 것과 비슷한 참담한 심정이었을 것 같다.

우리는 우리의 땅을 사겠다는 당신들의 제안에 대해 심사숙고할 것이다. 하지만 나의 부족은 물을 것이다. 얼굴 흰 추장이 사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그것은 우리로서는 무척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우리가 어떻게 공기를 사고팔 수 있단 말인가? 대지의 따뜻함을 어떻게 사고판단 말인가? 우리로써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일이다. 부드러운 공기와 재잘거리는 시냇물을 우리가 어떻게 소유할 수 있으며, 또한 소유하지도 않은 것을 어떻게 사고팔 수 있단 말인가? (...) 우리는 대지의 일부분이며 대지는 우리의 일부분이다. 들꽃은 우리의 누이이고, 순록과 말과 독수리는 우리의 형제다. 강의 물결과 초원에 핀 들꽃들의 수액, 조랑말의 땀과 인간의 땀은 모두 하나다. 모두가 같은 부족, 우리의 부족이다.

<시애틀 추장 외, 류시화 엮음.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더숲, 27p.>

아메리칸 원주민에게는 애초에 땅이 누구의 소유라는 개념이 없었고, 누구의 것도 아닌 것을 사고 팔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들에게 대지는 자신의 일부분이었다. 아메리칸 원주민에게 깊은 의미인 대지를 두고 거래를 요청하다니. 처음에는 만약 땅이 원주민에게 어떤 의미인지 유럽인들이 알았더라면 땅을 강제로 뺏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유럽인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만 목표에 있었고,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길에 있는 다른 모든 것들은 치워버렸다. 원주민은 유럽에게 그런 ‘치워버려야 하는 것’에 불과했던 것이다.

나는 이 부분을 읽고 시애틀 추장한테 푹 빠져버렸다. 지금 현대 사람들은 대지를 콘크리트로 덮고, 순록과 말과 독수리는 환경에 맞지 않아서 자주 볼 수도 없다. 그런데 그들은 이런 동물들과 공존하며 살았었고 이것들을 자신의 일부라고 생각했다는 점에서 나의 상상을 넘어선다.


4. 유럽의 역사와 원주민의 역사는 같을까?


이 아메리칸 원주민과 유럽 사이의 역사는 이긴 자인 유럽의 관점에서 쓰여졌으니 분명 빠진 부분이 많을 것이다. 유럽이 강제로 행한 행동들 때문에 피해를 본 원주민의 입장에서 볼 때 말이다. 유럽이 ‘우리는 인디언을 위해 보호구역을 만들어주고, 생필품도 넉넉히 제공했다. 이제 그들은 안전한 보호구역에서 살 것이고, 우리는 우리가 정당한 가격을 주고 산 땅에서 살 것이다’라고 역사에 기록해 놓았다면, 아메리칸 원주민은 ‘우리는 얼마 전 흰 얼굴 추장이라는 사람이 강제로 이동시키는 바람에 여러 부족들이 사망하게 되었다. 그들은 폭력으로 우리를 다루었고, 짐승을 보듯이 취급했다. 이것이 그들이 말하는 신인 ‘하나님’을 믿지 않는 우리들을 대하는 그들 나름의 표현방식이었는지도 모르겠다.’라고 기록해 놓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메리칸 원주민도 거의 없어질 위기에 처했으니, 유럽이 써 놓은 기록이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반드시 유럽과 아메리칸 원주민 사이의 역사 어딘가에는 왜곡된 부분이 있을 것이다. 유럽인의 시점에서 쓰여진 영화나 다큐를 보면 주인공인 백인은 용감하고 정의롭고 멋지게 표현되어 있는 반면 주인공인 백인을 괴롭히는 원주민은 거의 언제나 잔인하고 야만적이고 호전적으로 표현되는 것과도 같이. 예를 들어 내가 본 영화 <내 심장을 운디드니에 묻어다오>는 원주민 학살 사건인 ‘운디드니 학살’에 관한 내용이다. 백인의 오만함과 원주민의 슬픔이 느껴지는 영화였다. 이 영화는 “내가 아는 좋은 인디언은 모두 죽은 인디언이다.”라는 명대사가 나온다. 백인 지휘관이 원주민 추장(?)한테 한 말인데 ‘살아있는’ 원주민한테 하는 말이라기엔 너무 잔혹했다.

역사가 얼마나 왜곡되었느냐 또한 문제겠지만, 가장 큰 문제는 유럽이 얼마나 반성을 하느냐이다. 그 외에도 유럽인들이 아메리칸 원주민과 토착민에게 한 일들은 어마어마했다. 아메리칸 원주민과 토착민들에게 현상금을 붙여 붙잡아다가 집단 학살을 저지른 것, 그들에 관한 악설을 여기저기에 왜곡되게 퍼뜨려서 ‘나쁜 사람들’로 취급되게 한 것, 사람이 아닌 양 마음대로 다루는 것 등등. 어쩌면 이런 행동들을 저지른 대가가 유럽이 지금 겪고 있는 코로나로 인한 피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유럽이 땅을 차지하기 위해 아메리칸 원주민과 전쟁을 했다는 것 치고는 원주민이 너무 맥없이 당했다. 아메리칸 원주민은 굉장히 전투적으로 자랐고, 많이 걸어서 체력도 무척 좋다고 알고 있는데... 아메리칸 원주민이 유럽인들과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당한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총기인 것 같다. 유럽은 원주민들을 공격할 때 총기를 가지고 있었지만 원주민들은 도끼나 창, 화살 같은 무기들밖에 없었다. 이런 무기들로는 유럽에 맞서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이런 부분에선 확실히 유럽이 발전이 앞서갔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유럽인들은 ‘인권 존중’이라는 개념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일단 그들은 ‘나의 목적’을 이루는 것이 가장 먼저이고, 그 이후의 잔일들은 나중에, 언젠가는 해결하거나 그냥 알아서 해결되도록 놔두고 자신의 목적만 달성하면 되는 그런 유형인 것 같다. 그 때문에 아무리 발전이 많이 되었고 뛰어나다고 해도 전혀 멋있어 보이지 않는다. 강하더라도 폭력을 행사하지 않고 말로 해결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유럽은 그렇지 않았다. 자신이 ‘강하다’는 전제 하에 전쟁에서 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폭력을 휘두르고 전쟁을 벌였던 것일까?

이 책을 보며 ‘이 유럽이 내가 알던 그 유럽이 맞나?’하는 생각이 계속해서 들었다. 신사적이고, 무엇이든 잘 갖추어져 있고, 발전이 많이 되어 있는 곳. 내가 생각한 유럽은 이런 모습이었다. 왠지 내가 사는 곳과는 다른 천국일 것 같다는 말도 안되는 로망이 있었다. 하지만 신사적이긴 무슨. 모두 무언가를 ‘소유’ 하고 싶다는 마음 앞에선 무릎을 꿇게 되는구나 싶었다. 무언가를 갖기를 강하게 갈망하고 내가 이것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면 폭력적이게 되기 마련이다. 유럽이 땅을 두고 이런 심정이었던 걸까.

만약에 대학살이 없었더라면, 유럽과 아메리칸 원주민 사이의 관계가 좋아서 공존을 했다면 어땠을까? 서로 좋은 것들을 나눌 수 있는데 유럽이 그런 마음을 내지 않았다는 것이 내심 아쉬웠다. 물론 만약에 유럽이 관계를 원했다고 하더라도 아메리칸 원주민이 그 제의를 받아들였을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두 쪽 모두 동의했다면 지금 상황이 얼마나 뒤바뀌어 있을지 모르겠다. 유럽인들과 원주민이 서로를 차별하지 않고 통합될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만약에 그럴 수 있었다면 지금 세계가 더 평화로울 수 있지 않았을까?



전체 20

  • 2021-01-20 22:20
    유럽인들이 땅을 사겠다는 말이 도통 무슨 의미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는 시애틀 추장의 말이 와닿네요. 특이하고 낯선 것은 오히려 자기가 살고 있지도 알고 있지고 않은 땅을 사겠다고 하고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유럽인의 그리고 우리의 생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넘 재밌게 읽었습니다~ 친구 이우 짱짱

  • 2021-02-03 17:27
    유럽인들은 꼭 사람을 죽여서 땅을 차지해야만 했을까? 하는 질문에서 기성세대의 고정되어 있는 시선이 발각나네. ㅋㅋ 앞으로도 어리석은 어른들의 시선을 넓혀줄 이우의 글을 기대~

  • 2021-01-24 21:59
    내 것으로만들고 싶다는 갈망에서 폭력이 싹트는 거라는 걸 또 새기게 되네요. 이우의 100권 책 읽고 글쓰기 응원해요. 이런 자퇴생도 있다는 걸 알리고 싶고 막 그래요. 이우야 연재 꼬박꼬박 하자.^^

  • 2021-01-22 17:04
    "모두 무언가를 ‘소유’ 하고 싶다는 마음 앞에선 무릎을 꿇게 되는구나 싶었다." 와우!!!
    이우의 다락방에서 앞으로 어떤 생각들이 길어올려질지 기대됩니다. 청주에도 최소한 독자 2명이 연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 2021-01-22 09:00
    부럽다! ~~~학교를 그만둘 수 있는 용기, 이렇게 글을 써낼 수 있는 힘, 규문에서 어린시절 부터 공부할 수 있는 것, 그 무궁한 가능성....., ㅎ~앞으로도 좋은 글 기대해 볼께요~^^

  • 2021-01-22 00:07
    우리가 '대면접촉'을 하지 못하는 동안 이우는 이런 멋진 연재를 준비하고 있었군요! 규문각 도서 100권 읽고 자신의 생각 풀어내기!! 1화 잘 읽었어요. 이우 덕분에,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던 역사의 한 부분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네요. 앞으로 또 어떤 이야기들을 들려줄지 기대하고 있을게요~^^

  • 2021-01-21 23:01
    규문 와서 나이 많은 친구들 생긴 반삼십ㅋㅋㅋㅋ
    규문각에서 100권이라니 그러니깐 이게 지금 1화를 시작으로 100화까지 연재를 하겠다 요 뜻이죠? 와우. 100권 중에 저는 과연 몇 권이나 읽었을지 떨리네요. 역시나 이 책도 처음 보는 책이지만 이우님 글 덕분에 책을 통째로 다 읽은 것 같아요. 소제목 붙이기가 진짜 어렵던데, 어떤 문제의식을 가지고 책을 읽었는지 알 수 있는 소제목들도 좋았구요. '이우의 다락방' 제목도 저는 넘 좋아요. 진짜 다락방에서 찬찬히 읽고 쓴 느낌이 들어서요. 그럼 앞으로의 99권도 재미있게 읽을 준비를 하고 기다리고 있을게요. 잘 읽고 갑니다.

  • 2021-01-21 10:35
    이우의 글을 다시 읽을 수 있다니 좋네요ㅎㅎ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이 사실은 구대륙 침략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유럽인들이 그들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원주민들을 이렇게나 핍박했다는 사실을 지금 이 글을 읽고 알고 나니 씁쓸하네요... 허나 유럽인과 원주민이 공존했다면 정말로 더 평화로운 세상이 됬었을까요? 미국을 개척할 당시 유럽인들이 아프리카인들을 노예로 데리고 왔던 이유가 노예로 삼으러 했던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자신들이 퍼트린 질병으로 몰상되었기 때문인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유럽인들은 이미 원주민들과 자신을 동등한 존재로 보지 않았을 겁니다(이우가 말한 것처럼 인권 존중 따위는 없었습니다). 죽음 아니면 노예행이였겠죠. 이런 생각을 가진 유럽인들이 원주민들과 '공존'했다면 어떻게 됬을까요? 물론 제 견해일 뿐이지만 원주민들이 유럽인들에게 지배당하고 핍박 받는 것은 똑같았을 것 입니다. 그저 다른 형태를 지니고 있었겠죠. 마치 일제가 조선을 점령했을 때 처음으로 행했던 '무단식민통치'가 역사에서 행해졌던 유럽인과 원주민들이 '공존'하지 않고 지배당하는 모습이였다면, '공존'을 택했을 때는 역사는 '문화통치'와 비슷한 양상을 띄었을 것입니다. 물론 유럽인들이 원주민들에게 행한 만행을 변호하려는 마음은 추호도 없지만, 과연 '문화통치'을 받아 유럽인들에게 동화되어 결과적으로는 '민족말살'을 당하는 편이 더 평화로웠을까요?
    이우의 글 덕분에 오랜만에 열심히 머리 좀 굴리며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네요. 다음 글도 기대하겠습니다!

  • 2021-01-21 11:32
    어머나! 짝짝짝~~~이우 글이네요!^^ 텍스트가 아메리칸 원주민에 대한 책이라는 게 인상적이네요. 저도 아메리칸 원주민에 관심 많은데...
    글 완성 축하해요~~^^ 그리고 감사해요. 잘 읽었습니다!

  • 2021-01-20 23:50
    이 글을 읽으면서 인디언 절멸사를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기를 매매할 수 없듯 살고있는 땅을 소유한다는 것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는 원주민들의 말보다는 힘의 논리를 밀어붙인 유럽인들에게 더 이입하고 그들에 가까운 사고방식을 견지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하고 자신을 돌아보게 되네요. 사실 땅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닌데 말이죠.

  • 2021-01-23 13:08
    아이구 어쩜 이리 생각이 깊어졌으려나.
    계속되는 '그랬어야하나?'라는 질문이 통찰력과 한번더 파고드는 사고력을 내비치는거 같네~
    기나긴 글과 그에 걸맞는 깜찍한 생각들..그리고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
    이우가 얼마나 기특하고 자랑스러운지 몰라^^
    화이팅!!!

  • 2021-01-20 21:01
    새벽녘에 글을 읽고...벌써 이렇게 생각을 많이 하게하는 글을 쓰는 이우로 훌쩍 큰것이 자랑스럽기도하고 신기하기도하고 미묘~ 자연과 공존하는 아메리카는 어쩜 더 아름다웠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ㅎㅎ 그래도 LA에서는 콜럼버스데이를 원주민의 데이로 다시 칭하고 원주민의 아픔과 고통을 되새긴다고하니 인류에 대한 희망을 품어보게되네...

  • 2021-01-20 18:54
    내가 정신을 쏙 빼놓고 산 그 사이에도 이렇게 규문 뜰에는 꽃이 피었었구나!!
    우리 이우가 이제 등단했네~^^ 축하축하!!
    이 고난의 길을, 그 눈물의 길을 함께 걸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우야,
    우리는 결코 절멸하지 않는다는 걸 너도 알고 나도 알지.

    이우의 아름다운 출발에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짝짝 짝짝짝^&^

    차암 좋겠다 이우는,
    초록초록 이파리라서 이우는 차암 좋겠다~^_____^ (몹시 부럽ㅎㅎㅎ)

    • 2021-01-20 20:43
      차암 좋겠다 배샘은
      초록초록 이파리 좋은줄 알아서.
      차암 좋다 나는
      이우랑 배샘이랑 나눌 수 있어서

  • 2021-01-20 16:28
    월요일 셔틀 메이트 이우가 드뎌 등단했구료~ 앞좌석에서 내 종알종알대다 갑자기 창문에 머리 고정하자마자 슬립모드가 되는 신기한 능력자 이우^^ 지금을 같이 살아가고 있는 10대를 통한 책읽기는 참 소중한 인연이 될것같아~ 감사한 마음과 기대 듬뿍 담아 응원할게^^

  • 2021-01-20 13:34
    책 100권읽기에 도전하다니 훌륭합니다. 땅이 소유의 대상이 아니란 생각, 또 원주민을 '치워버려야할 대상' 보는 유럽인들에 대한 비판, 아마도 타자를 대하는 방식에 대한 비판이겠죠,?!
    앞으로 이우가 무슨 생각을 펼쳐낼지 정말정말 궁금해집니다^^ 이우야~ 넘 예쁘다!!

  • 2021-01-20 09:39
    유럽적인 것, 강함 등등이 떠오르는 글이군요. 그리고 "정말 해서는 안 될 행동이었다" 대목에서는 이우만의 독특한 생각이 묻어 나오네요. 여기에 정의에 대한 생각이 담겨 있는 것 같은데... 정의를 신봉하는 또 다른 사람으로서는 '정의'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궁금합니다~ 다음 화가 기다려지네요!

  • 2021-01-19 23:50
    와우. 이렇게나 긴 글을 쓰다니. 대다나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길을 가는 이우 대다나다.
    '모두 무언가를 ‘소유’ 하고 싶다는 마음 앞에선 무릎을 꿇게 되는구나 싶었다.
    무언가를 갖기를 강하게 갈망하고 내가 이것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면 폭력적이게 되기 마련이다.' 이 대목이 참 와닿네요.
    근데, 그게 무엇이든 간절히 갖기를 원하면 모두 폭력적으로 될까요?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하네요.

  • 2021-01-19 21:19
    아메리칸 원주민과 유럽인이 서로 공존하며 살았다면 지금의 미국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또 그와 연관된 세계의 모습은 또한 어땠을까요. 이우의 다락방에 숨겨둔 보석같은 글을 읽으며 그 이야기에 젖어 즐거운 상상을 해볼 수 있었습니다. ^^

  • 2021-01-19 20:55
    '땅은 누군가의 소유가 아니다' 부분을 읽고 중세 유럽에서 소유는 '엉덩이'로 하는 것이었다던 일리치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마지막 챕터에서는 '강함'이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되네요~~ 잘 읽었습니다잉